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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37화 (1,237/1,559)

제 1237화

파랗게 질린 얼굴.

급히 도망치려 해보지만, 배수의 진마냥 퇴로가 없는 그녀는 결국 잡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입이 무거웠고, 결국 나는 원하는 내용을 듣지 못했다.

“절대, 죽어도 알려주지 않을 게야.”

마치 세기의 결단을 내린 것처럼 그녀가 입을 다물어버리니 이쪽에서 할 수 있는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일을 내가 자세히 알게 되면 얼마나 놀릴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서 원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이 대신 잇몸이라는 말이 있듯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아는 이의 정보를 이용해보고자 신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검신 하레스에게 헬프 콜을 던졌다.

분명 그 성질머리가 좋지 않은 검신이라면 알려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건만, 애석하게도 그 또한 페르세르크가 그 당시 어떠했는지는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대신. 한창 자라던 그녀의 자잘한 흑역사에 대해선 들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사실의 전말을 전해 들은 페르세르크는 당장이라도 하레스를 잡아 찢으려 들었지만, 그녀가 신의 영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나를 제외하곤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분을 삭일 수밖에.

초단이가 대학 입학의 준비를 위해 지구로 떠난 뒤 미식연구회도 재미를 위해 그녀를 따라 떠났다.

시간은 잔잔하게 흘렀고, 페르세르크의 뱃속에 자리 잡은 막내는 전혀 문제없이 무럭무럭 자라나 페르세르크의 몸을 만삭의 몸으로 만들었다.

요시아에게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만 전해 들은 채 시간이 흘렀다.

바리스의 걱정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소문만 있을 뿐 요시아나 페르세르크의 종족 문제로 일이 커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기간 안에 3서클을 완성한다던 요시아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로 보아 벽에 막혀 쉽게 진행이 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쉬울 리가 있나.

주기적으로 아이의 상태와 페르세르크의 상태를 진찰하는 내 입장에선 익숙한 일이지만 이번 검진에선 묘한 구석이 눈에 보였다.

“…….”

“표정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라도?”

페르세르크는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두고 상당히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어렵게 생긴 아이이며,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 뭣이냐. 운동 좀 해야겠다.”

내 대답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과 배를 노려보더니 조심스레 물어왔다.

“체중관리는 확실히 했을 터인데…….”

“환골탈태한 인간은 이 악물고 덤벼들어도 체격이 잘 안 변해.”

“하면…….”

“막내가 마기를 좀 많이 가지고 있어. 성초로 억누르는 것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 네 몸에 부담을 많이 줄 거야.”

“…….”

“이대로 놀고먹기만 하면 너 자연분만 절대 못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제왕절개.

배 속의 아이가 자연적으로 태어나기 힘든 상황이거나 분만이 잘되지 않을 경우 수술을 통해 하복부를 절개해 아이를 꺼내는 수술.

그녀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잠깐만요 서방님. 언니는 환골탈태에 격까지 올라간 육신이지 않았나요?”

“그만큼 막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지. 가능성이긴 한데. 생각보다 확률이 높아 보이네.”

이것은 신의 히포크리아도 같은 이야기를 할 터였다.

한때 마왕이었던 그녀와 현재 마왕이며 신격까지 이른 내게서 태어난 아이인 만큼 사실 나로서도 아이가 어떻게 성장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로구나. 운동을 해야겠어. 마기 운용도?”

“그게 메인이지.”

최근 상당히 나른한 움직임을 보이는 페르세르크가 열의를 가지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말을 하니 느낌이 새롭다.

“하면 지구에 좀 다녀와야겠구나.”

“지구? 왜?”

“이곳에 있으면 자꾸 늘어지니…….”

그녀도 최근 게을러진 자신을 알기는 아는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운동 자체는 이곳에서 하는 게 좋긴 한데.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아. 간 김에 현아 이 세발낙지도 좀 데리고 가라. 그것도 요새 운동 부족이더라.”

연희 누나의 경우 자기관리가 철저한 편이지만 현아는 한때 굉장히 차가운 성격을 띠었던 것과 별개로 굉장히 푼수기가 짙었다.

게으른 성격도 어디 사라진 것도 아닌 듯했고.

“아.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에이리아가 손을 들며 동행을 알렸다.

“편한 대로 해. 어차피 문은 열어놨으니까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면 되지. 아참. 너 몸 튼튼하니까 복부가 정면으로 눌리는 것만 아니면 요가도 괜찮아.”

어느 쪽이건 일반적인 산모와는 경우가 달랐다.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당장 쪽지 하나를 꺼내더니 뭔가 빠르게 써 내렸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 기회에 한 번 배워보는 것도 좋겠구나.”

* * *

하인스 영지는 다른 영지에 비해 굉장히 발전한 편이다.

가능한 모든 요소를 도입한 것도 모자라 일반적으로 티오니스의 왕국이나 제국의 황실에서도 보기 힘든 시설들이 잘 설치되어있으니 말이다.

그 덕에 하인스 영지에 들리는 여행객의 목표가 대부분 보통 보기 힘든 문물을 접해 즐겨보려는 입장이 강했다.

물론, 이 흐름 자체가 돈이 되는 걸 아는 만큼 그것을 모방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제대로 구현하기 힘든 것들이 반수 이상인 만큼 하인스 영지가 주기적으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걸 매일 보고 있는 나로선 딱히 신선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게는 즐거운 요소가 필요했고, 그 요소를 한번 물어뜯기 시작하면 절대 놓지 않았다.

“이제는 진리를 보지 않으시나 봅니다. 대현자님.”

“선생님!!”

입술을 꽉 깨물고 부들부들 떠는 제자를 보며 나는 이 지루한 삶에 한 줄기 빛이 내림을 느꼈다.

“그냥 둘 걸 그랬네. 그럼 더 재밌었을 텐데.”

“그만 해요…… 그만하라구요…….”

요시아는 내가 보여준 마법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았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맹신했어야 할 자신의 이론과 마나의 운용방식에 갑작스런 의심을 품게 되었다.

당연히 혼란 속에 틀어박힌 요시아는 고작 며칠 만에 자신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성장의 단계에 빠르게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객관화를 시작한 요시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 기간이 이제 3주 정도 남았나?”

“…….”

“가능할 거 같던?”

“선생님이 직접 보시면 되잖아요.”

“그날 한번 자극을 준 뒤로 어떻게 됐는지 전혀 본 적도 없고, 예상도 해본 적 없으니까.”

미드 차이드는 요시아의 제지이지 내 제자가 아니었다.

“널 가르치는 건 상관없는데. 그놈은 다르지.”

“미드…… 아카데미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인스 아카데미로 편입 신청할 거래요.”

“뭐?”

“자격은 충분하기도 하고, 본인도 가문을 떠나서 스스로 목표를 이루고 싶어 하는 듯 보여서요.”

“차이드 백작이 용케 허락했나 보네.”

“차이드 백작은 미드 녀석에 관해선 굉장히 멀리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사랑하던 부인을 죽이고 태어난 아이다.

사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기에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그는 의무적으로 아비의 노력만 했고, 미드가 원하는 대로 그냥 방치했다고 한다.

“그러니 개망나니가 나오지.”

“뭐. 결과적으로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요즘은 주변에 평이 좋아요.”

별장에서 일을 하는 시종과 시녀, 하인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편입시험은 공정하게 치를 거야.”

“선생님이 꽂아준다 해도 제가 편입시험 치르게 했을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기간이 부족하긴 한데…….”

“가능성은 있냐?”

“사실 낮죠.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꽤 자신만만한 얼굴을 해 보였다.

누구 제자인지 참 착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뭔가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다.

내가 바랬던 삶. 내가 바라는 어떤 삶의 지표.

적당히 잘 녹아들어서 살아가는 것. 바리스가 내 힘과 위치를 적극적으로 국제 정세에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고마운 동생이 아닐 수 없다.

“미드 차이드의 성과에 내가 손을 대진 않을 건데. 네가 필요한 건 얼마든지 지원해줄게.”

“그럼 제 휴가…….”

“그건 네가 성공하면 그때 생각해보마.”

“아…….”

아쉬운 듯 그녀가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그럼 실전 교육을 할 만한 곳이 필요해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그와 별개로 그녀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는 듯 보였다.

“실전 교육이라…….”

라스트 위스프가 있는 오지의 마물 사냥은 안 될 말이고. 그렇다고 대륙에 널리 퍼진 몬스터의 사냥도 방법은 있지만 제 시간 안에 효과를 끌어내기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마법사에게 쥐약인 마나의 흐름, 구조를 방해하며 실전경험도 쌓을만한 장소.

그렇다면 어떤 곳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그놈 데리고 와. 마침 적당한 곳이 있다.”

“네? 진짜 있어요?”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지구 쪽에서 난리거든.”

패잔병 놈들이 날뛰는 게.

“선생님. 설마 나차 제국의 패잔병을 말하는 건 아니죠? 그보다 미드 그 애를 지구로 데려가도 돼요?”

“계약마법인 로드 오브 기어스(고위 흑마법)로 기억을 저당잡고 넘어가면 될거야.”

나는 티오니스와 지구의 문물 교환에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든 함부로 손을 댔다가 곪아버릴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구에서 본 모든 것을 저당잡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 모든 정보를 티오니스에서 사용하지 않고 발설하지 않는다는 계약만 걸면 충분했다.

“그렇게만 하면 나중에 조정도 가능하고.”

“정확히는 선생님이 그쪽 문제 해결이 귀찮아서 떠넘기는 거 아니에요?”

“이걸 들키네.”

피식 웃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 * *

현재 지구에는 일부 무장세력이 무분별하게 공격을 하고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전 나차 제국 황제의 명을 받아 지구에 침공을 감행한 제국병들로 이들 중 상당수가 상당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들의 수준만으론 지구와 전쟁을 해도 승산은 낮은 게 현실이다.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고 머릿수도 한정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놈들이 국제 테러 조직과 손을 잡았다는 모양이었다.

보급을 일정 받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위험성이 높아진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추가적인 물적 지원이나 인적지원은 없지만 엄청난 수가 테러단체에 합류한 건 절대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기에 놈들은 기본적으로 악마의 개조를 받은 터라 육체능력이나 변이 같은 괴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극한의 세뇌까지 거쳐진 완벽한 악마의 군세. 그냥 남겨놔서 이득 볼 요소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현재 그 테러조직은 이라크에 존재하는 과격파 집단과 협약하여 활동범위를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쪽으로 옮겨 불이 거세게 번지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이 소식은 알하자드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데이비. 왔습니까.”

“상당히 피곤해 보이네요.”

상당히 피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테러 단체가 얼마나 극성인지 알법했다.

“그럴 수밖에요.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라크뿐만 아니라 저희 나라 내부에서도 그들의 테러 활동이 보고 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알하자드의 국가까지 휘말린 게 아니었으면 그냥 알아서 해결하라 했을 겁니다.”

“하하…….”

쓰게 웃지만, 그는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이 일에 내가 관련되어있다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지구는 더 많은 나차 제국의 군대와 싸워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의 전력은 마나를 다루는 이들에겐 굉장히 강세를 보입니다. 다만 화기 쪽에선 크게 메리트가 없었습니다만…….”

“상황이 바뀌었죠. 그놈들 인간이 아닌 뭔가로 변하기 시작했으니.”

정작 숙주인 악마가 죽어 나자빠졌는데도 살아서 난동을 피우는 놈들이라니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이리 도와준다 하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나토 측에서 제시한 게 마냥 무시하긴 어려운 이득이기도 하고.”

“하면……”

“유럽에 남은 일부와 중앙아시아로 넘어온 본대의 80퍼센트 정도만 소탕할 겁니다. 그 외에 20퍼센트는 제가 아니라 제자인 요시아 쪽에서 해결할 테니 걱정 마세요.”

내 말에 그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이번 일이 잘 풀리면 꼭 사례 하겠습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정 그러면 나중에 좋은 술이나 한잔 대접해주면 됩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나차 제국의 패잔병들이 악마화를 통해 하나하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지만 수가 무한할 순 없다.

그래서 이놈들이 선택한 방법은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지구에 있는 테러 조직의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악마화된 세포를 이식하여 그들조차 같은 존재로 만들어낸다.

악마종치고는 참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한 개체가 아닐 수 없었다.

“현재 가장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들은 바그다드 외곽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테러단체입니다.”

“예.”

나는 이후로도 테러단체의 전력을 빠르게 분석했고, 요시아가 참관하며 미드 차이드가 실전경험을 쌓을 법한 장소를 적당히 물색했다.

귀찮은데 알아서 처리해준다면 나야 감사한 일이니.

* * *

실전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수집능력과 대처능력이었다.

그런 만큼 요시아는 내가 알려준 영역에 있는 테러단체의 소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도 지구에 자주 왔던 만큼 지구의 무기나 흐름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화기 무기는 내가 막아줄게. 다만, 그 외적에 존재하는 힘이나 그들의 장비에서 나오는 마나 재밍 장비는 네가 해결해야 해.”

“재밍이라고요? 2서클 마법사가 그게 가능해요?”

“일반적으론 안 되지. 다만 서클과 별개로 해결방법은 있는 거야.”

2서클 마법사 정도면 마법을 발현하기도 전에 재밍 당하겠지만 방식을 바꾸고 제어만 잘하면 위력은 다소 떨어져도 사용할 수 있다.

“실전경험이야. 될 때까지 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넌 절대 3서클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

일반적인 3서클 진입난이도가 이토록 어려울 리는 없다.

하지만 현재 미드 차이드는 고작 몇 주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3서클 안에 올라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극한의 상황에 내몰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죽으면요?”

“걱정 마. 선생님이 말하는데, 사람 쉽게 안 죽어.”

“다치면요?”

“치료해줄게. 성국의 성마법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뱀파이어 로드는 능력이 많으니까.”

그 말에 불안해하면서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드 차이드 영식.”

이에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에 보험이나 깔아둘 겸 그를 부른 뒤 아공간에서 로브 하나와 지팡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빌려주는 거다. 실전경험이 끝나면 요시아에게 반납해.”

“이게 뭡니까?”

“뭐긴 스태프랑 로브잖아. 보면 몰라?”

그걸 묻는 게 아닐진대…… 그의 표정에 서린 감정은 금방 알아냈지만 나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직접 알아내 봐. 복잡한 위장 속에 숨겨진 기능을 찾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라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알하자드에게서 전해 받은 서류뭉치를 스윽 훑었다.

“데이비 님. 륀느 전투 준비 완료.”

“이런 건 저 혼자서 해도 되는데요.”

감정이 없는 무감각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륀느와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레이나가 보인다.

레이나는 현재 내게 소속된 존재라는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처음엔 몰랐으나 레이나와 함께 있던 악몽이 레이나의 광기 어린 모습에 기겁했고 그걸 내게 달려와 부지런히 설명했다.

이후 나는 그녀의 이상을 눈치채고 세계수 알의 도움을 받아 현재 그녀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다.

집착이 강한 것은 일리나도 마찬가지였기에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줄은 몰랐기에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확인하고 파악해야 했다.

“마실이나 가자.”

* * *

유럽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는 나차 제국 패잔병들이 손을 잡은 반군은 범 세계적인 테러단체 파트로시스트라는 조직이었다.

이들은 과거 몬스터가 출몰했을 때엔 침묵했으나 데이비 올 라운이 나타나면서 세계가 안정권으로 접어들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해 자신들의 이권을 확연하게 챙기기 위해 존재하는 과격단체이기도 했다.

“이봐. 적당히 해. 어차피 별일 없을 거다.”

그런 테러단체 소속의 밥은 동료인 카프로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알라께서 간밤에 계시를 내리셨다.”

과격한 교도인 밥의 중얼거림에 카프로티가 비웃음을 던졌다.

“개꿈이라도 꿨나? 그래. 무슨 꿈인데.”

“이곳이 불바다가 되는 꿈.”

“웃기는군. 여긴 다른 곳보다 유별나게 방비가 삼엄한 곳이야. CIA 같은 곳에서도 정보수집이 쉽지 않은 곳이라고.”

“알고 있다.”

“국가 이권이 걸려 있으니 타국에선 함부로 신경 쓰기도 힘들지. 그렇다고 이 나라 군대가 움직인다? 몬스터 때문에 정신없는데 잘도 신경 쓰겠군.”

실제로 이 지부의 이들은 테러 활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렇기에 이곳은 조직에서도 비밀리에 중요한 위치였지만 실상 노려지는 경우는 적은 편이었다.

밥의 단답형 대답에 카프로티가 혀를 쯧쯧 차고는 독주 한 병을 나발 불며 마셨다.

“뭐 됐다. 하고 싶으면 편한 대로…….”

“잠깐. 누군가 오고 있다.”

“뭐?”

이곳은 인적이 드문 지역이다.

그렇기에 예정에 없던 누군가의 방문이 달가울 순 없었다.

“몇 명?”

“셋. 체격이 그리 크지 않다. 하나는 아이로 보이는군.”

망원경으로 접근하는 거수자를 확인한 밥이 무전기를 들었다.

일단 사태를 전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쿠르릉…….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가뭄으로 비 한 방울 온 적이 없었…….”

“피해!!”

카프로티가 밥의 팔을 잡고 몸을 날렸다.

쩌어엉!!!!

동시에 엄청난 굵기의 섬광이 초소의 절반을 날려버리며 하늘을 찢고 사라진다.

툭…… 투투투툭…… 쏴아아아아아!!!!

이윽고 폭우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멍하니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밥과 카프로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바람이 흩날리며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 중 한 명의 후드가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체격을 지니고 있는 이.

보통이라면 아이의 존재가 그리 경계 대상일 리가 없지만. 그 존재의 얼굴을 아는 이들은 절대 함부로 판단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비…… 빌어먹을! 티오니스 성자의 호위대장!!”

“갑자기 왜 여길?!”

한 손에 거대한 포신을 만들었다가 지워낸 륀느가 천천히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젠장! 지원 요청……!”

“기왕 시작했으면 확실히 해야지?”

밥과 카프로티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손길 때문이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인 청년의 정체를 깨달았다.

“티…… 티오니스 성자가 왜 우리를…….”

밥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친구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냥 두기도 애매하잖나.”

“그깟 이유로!”

“그러길래 나차에서 온 놈들과 손을 잡으랬나?”

그 말과 함께 그들의 몸이 툭! 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데이비가 한쪽 귀를 누르며 장비를 가동시켰다.

“정리 시작하자.”

그 말과 함께 저 멀리서 다가오던 륀느와 레이나가 각자 무기인 창과 크로우바를 꺼내 들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드 차이드가 요시아의 보호를 받으며 실전경험을 쌓기 시작한 그 시각.

데이비는 대륙적으로 움직이며 대규모 소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은 빠르게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티오니스 성자가 범국가적인 테러단체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간단한 소식이었다.

다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건을 일으키던 테러단체의 앞날이 많이도 캄캄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전해 들은 일부 인간들은 같은 시각 방송을 하고 있던 에반젤린의 방송에 가서 그 소식의 진위를 불었다.

[방장!! 티오니스 성자가 테러단체 파트로시스트랑 전쟁 벌였다던데 찐임?]

물론, 극성팬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아빠가요? 파트로시스트라면 그…… 최근에 테러로 시끄러웠던 조직 아니에요? 흠…… 잘 모르겠네요. 아빠는 나한테 그런 건 이야기를 안 해줘요.”

불만 어린 표정으로 에반젤린이 툴툴거렸다.

“아니 그보다 빨리 레디나 박으라고 이 인간들아!!”

에반젤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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