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8화
생각외의 상황은 언제든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미드 차이드는 실전경험을 위해 티오니스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온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티오니스 성자는 워낙에 비밀스러운 점이 많은 인간이다.
처음 미드 차이드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호들갑 떨고 자빠졌네! 라는 감상뿐이었다.
인간이 잘나야 얼마나 잘났겠는가. 삼제국이 눈치를 보인 단일 세력? 웃기는 소리지. 수의 폭거 앞에서 장사 없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인생이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티오니스 성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바뀌고, 요시아와 계약을 맺은 이후였다.
데이비의 제자. 그러면서도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힘을 품고 있는 존재.
세간에 알려진 뱀파이어는 잔인하고 악랄한 종족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요시아 프랑소스를 믿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의 변화를 알아채고 도와주려 한 그녀였으니 말이다.
말이 계약이지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드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고 자잘한 계약 내용을 모조리 파기한 후 그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열정과 진정성은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이런 인격자인 요시아 프랑소스의 스승인 데이비 올 라운. 비슷한 나잇대인 그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그 의심을 확신시켜준 것은 요시아 프랑소스가 갑자기 6서클의 벽을 넘어섰을 때였다.
한창 콧대가 높아진 그녀가 스승에게 자랑하러 간다며 떠나고 난 뒤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볼 수 있었다.
군부 소속 전략급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대규모 폭격 마법 같은 건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어마어마한 재앙을 가볍게 일으키는 장면은 감히 판단할 수 없었다.
왜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간이, 인간 재앙. 일인 제국. 삼제국에서도 함부로 견제할 수 없기에 황녀를 정략결혼 시켜서 그와 다리를 놓았다고 소문이 도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준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파창!!!
그가 발현한 날카로운 매직 미사일들이 특수한 방패에 막혀 부서지는 걸 보며 그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어떻게 이런…….”
“저들의 장비는 네 마법의 구조를 흩어서 마법의 형태고정을 방해할 거야.”
“그…… 그럼 마법사 한정으로 완전히 상극 아닙니까?!”
팅!! 팅팅!!
날아드는 총알을 배리어로 가볍게 막아내며 요시아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생전 처음 보는 화기라는 무기에 당해본 입장에선 이 세상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건만, 요시아에겐 그저 하품이 나올 정도로 가벼운 일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가 마나 컨트롤에 더욱 능숙해지고, 내가 가르쳐준 운용방식. 그리고 방출한 마법에 대한 제어를 놓지 않고 끝까지 제어하면 얼마든지 약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요시아의 목적은 테러단체의 소탕이 아니었다.
엄연히 그의 실전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자. 이제 너 스스로 한번 해봐. 분명히 말하는데 지금부터는 네 급소에만 혈기로 보호를 둘러놓을 거야. 한번 죽을 때마다 욕 나오는 페널티를 가할 테니 잘 해봐.”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테러단체가 숨어있는 폐 시가지 속으로 그를 걷어차 밀어 넣어버렸다.
그녀가 제공하는 실전경험은 그야말로 경이적일 정도로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타앙!!!
동시에 어딘가에서 날아온 탄환이 그의 어깨에 적중했다.
“끄아아아악!!!”
고작해야 2서클 마법사. 2서클 마법사도 배리어만 잘 치면 막아낼 수 있는게 탄환이지만 그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급소가 아니기에 보호해주지 않는다.
즉, 요시아는 즉사 부위만 보호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는 급히 몸을 날려 근처 파괴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어차피 이곳은 계속되는 시가전으로 테러단체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제지할 건 오로지 미드 차이드 혼자뿐이라는 소리였다.
본래라면 테러단체도 빠르게 철수할 테지만 그들은 요시아 때문에 갇혀 있는지 움직임을 크게 보이지 않았다.
높은 난이도의 토벌 임무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마나를 운용해 관통상을 입은 팔의 출혈을 강제로 멎게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해온 붕대로 억지로 팔을 감은 뒤 몸을 웅크렸다.
두려움에 눈물이 나고 배신감과 분노로 몸이 떨린다.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자신을 던져놓았냐 말하고 싶지만, 수차례 날아드는 탄환을 보며 그는 마음을 천천히 다잡았다.
여기서 뭔가 해내지 못하면 결국 3서클에 도달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장비와 도구, 그리고 상대의 숫자와 그들의 무기, 전력 등을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계산할수록 절망적인 결론만이 지어졌으나 그의 얼굴은 더 찡그려지지 않았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현재 그가 믿을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요시아 프랑소스, 그의 선생이자 스승은 가능하기에 그를 이곳으로 던져놓았다.
죽도록 아프더라도 죽지는 않는다는 최고의 메리트를 쥐고 있는 점을 잘 이용해야 했다.
“마법사는 언제든 침착해야 한다고 했지.”
그는 벽을 엄폐물 삼아 숨어 그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현 상황을 돌파할 계책을 짜기 시작했다.
* * *
테러단체 파트로시스트는 알게 모르게 위협이 되어온 단체였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각 지역을 들쑤시며 많은 국가기관과 원한을 맺어왔다.
다만 대부분의 행동범위가 분쟁지역에 한정되어있었기에 지금껏 소탕당하지 않고 버틴 것이다.
그런 그들이 나차 제국에서 온 패잔병들과 손을 잡은 이상 패잔병들에게 피해를 입은 해당 국가들에게도 남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많은 정보를 종합했고 파트로시스트의 주요 거점 중 상당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위치와 정보를 확보한다 해도 함부로 진압을 하는 건 어려웠지만 말이다.
생화학, 혹은 생체병기. 혹은 핵병기의 존재. 아직도 위협이 되는 그 위협을 미끼 삼아 버텨온 그들이지만 현재 조직의 지부 상당수가 엄청난 속도로 붕괴하고 있었다.
누구도 아닌 나의 손으로 인해서.
콰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벽면이 날아가며 두어 명의 사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터벅…… 터벅…….
“쿨럭…… 쿨럭……. 대체…… 티오니스 성자가 왜 우리를 적대하는 것이냐!!”
확실히 이들은 정면으로 나와 적대한 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알하자드의 국가와도 척을 진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들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들 또한 괜히 긁어 부스럼인 나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로 신경 쓰지 않는 관계 하지만 그런 관계는 사소한 문제로 곧바로 전면전으로 바뀌었다.
“쿨럭…… 쿨럭……. 이걸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그건 내가 아니라 NATO나 중앙연합이 할 일이지, 내가 부탁받은 건 너희가 손을 잡은 타향의 악마 놈들과 결탁한 부분만 도려내는 것뿐이야.”
“우리의 원한을 사고 그냥 끝날 줄 알았나? 멕시코의 카르텔부터 우리와 손을 잡고 있는 수많은 과격단체가 존재한다. 네놈이 아끼는 것들을 박살 내는 건 어렵지 않아.”
이곳 지부를 담당하는 사내는 내게 뿌리 깊은 적의를 드러냈다.
“해봐.”
담담한 말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
“한번 해봐.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느니 알량한 계획을 세우고 있느니 하는 게 아니니까.”
빙그레 웃으며 몸을 낮춰 쪼그려 앉은 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동시에 내가 과거 먹어치웠던 이클립스가 가진 고대룡의 힘이 눈을 뜨며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한다.
[종의 공포]는 여러 면에서 쓸만한 점이 있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노려보던 그를 보며 생각에 빠진다.
파트로시스트는 나와 관련이 없었다. 그런 만큼 이렇게 된 이상 그놈들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그게 옳은 일인지 아닌 일인지는 상관없었다.
“흐…… 흐흐흐…….”
그때였다.
놈이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웃기 시작한 것이다.
“웃음이 나와?”
“아니. 우리가 네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래서?”
“하지만 절대 그냥은 죽지 않는다.”
그렇게 외친 그는 망설임 없이 제 몸에 달려있던 주머니에서 손을 넣었고 작은 핀을 뽑았다.
팅!!
작은 금속음이 울려퍼지자 레이나가 륀느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려다 멈칫한다.
“오류. 오류.”
동시에 뒤이어 레이나가 새하얀 장막을 펼쳤고, 얼마 가지 않아 녹빛의 폭발이 강하게 일었다.
자살테러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가 터뜨린 수류탄은 일반적인 수류탄과 달리 그 위력이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흐흣.”
기분이 좋은지 레이나가 승리 어린 미소를 륀느에게 지어 보였다.
이에 륀느는 분한 감정을 드러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륀느도 할 수 있다고 명시.”
“그래? 그런 거치곤 잘 못 막잖아?”
뭔가 기분이 좋아진 듯 돌아서서 가는 그녀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헤헤. 역시 저밖에 없죠?”
“그래. 고맙다. 레이나.”
“주변 정리하고 갈게요. 느긋하게 나오셔요.”
그리고는 날개를 한차례 펄럭인 뒤 그녀가 섬광처럼 사라졌다.
고요히 남은 공간 안에서 분한듯한 기색을 내비치던 륀느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데이비 님, 이것으로 충분한지 확인요망.”
“확신은 못 하겠는데. 하나씩 해결해보자. 당장은 네가 제일 경계 받을 테니.”
레이나가 질투를 보이는 이는 세 명이다. 내 신력을 빌려 완성된 세피로스화 할 수 있는 반 종속된 륀느, 마찬가지로 반 종속된 뱀파이어 로드 요시아 프랑소스.
마지막으로 레이나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타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성녀 슈네리아 레켄.
이들 셋과 레이나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바로 내게 종속된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이런 분야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접근해보려 했지만, 혹여나 하는 상황에 나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세계수 알과 신의 영역에 있는 신의 히포크리아를 상대로 자문을 구한 나는 레이나의 상태를 생각보다 간단하게 호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레이나가 질투심을 보이고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비치는 건 륀느나 요시아, 그리고 슈네리아를 경쟁상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이 나를 따르는 종속자로서 존재하고 싶어 하는 집착.
가장 큰 것은 그녀만이 오롯이 내 종속이 되고 싶어 한다는 어두운 집착이었다.
그 집착이 그녀를 병들게 한다.
일리나도 레이나도 어느 정도 집착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집착의 방향이 현재 그녀가 천족으로써 온전히 종속되면서 뭔가 잘못 비틀렸다.
[아아, 나의 신이시여. 은총 가져가요.]
그때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기도 소리가 들려온다.
거리에 관계없이 내게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몇 없다.
“슈네리아 레켄…….”
멋대로 내 안에 있는 신력을 빌려 가려는 그 발칙한 행태에 나는 피식 웃었다.
“건방지게…… 기도는 똑바로 해야지.”
개구리 올챙이였을 적 생각 못 한다고, 나는 당당하게 그녀에게 건네주는 신력을 절반으로 삭감시켜버렸다.
무슨 이유로 내게 기도까지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기…… 저기 신이시여!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은총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