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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39화 (1,239/1,559)

제 1239화

빼액 소리를 지르는듯한 기도가 다시 울려 퍼졌다.

“여신은 이런 기도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존재에게서 듣겠지.”

이러니 자아가 있는 채로 버틸 수가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 불경한 성녀가 요구하는 대로 신력을 마저 빌려주었다.

그 양은 많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자기의 역할을 해내리라.

“그런데 진짜 어쩐다.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단순히 경쟁자로 인식하면 살짝만 손대는 것으로 레이나가 자신이 최고라고 판단하고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륀느를 견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음습한 집착은 내게 종속된 존재가 자신 혼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잘 들어라. 유한 대책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싶으면 따끔하게 질책해서라도 바로잡아.]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내 손에 죽어온 많은 신들처럼 뒤틀린 무언가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걸 내 눈으로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일대를 모조리 정리한 레이나가 예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저 잘했나요?”

“잘했어.”

웃으며 긍정의 의사를 내비치자 그녀는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런데 좀 전에 그가 터뜨린 건 일반적인 무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요.”

“아주 약간 악마종의 힘이 느껴진 거로 봐서 황제 놈이 뭘 이상한 걸 만들었던 모양이네.”

담담하게 말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토 소속의 연합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척!!

말없이 경례를 올려오는 다국적 특수부대원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이제 정리는 끝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상부에선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럼 됐네요.”

“헬기에 타시지요. 모시겠습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군인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거야 여러 방법이 있지만.

“예전부터 헬기라는 거 한번 타보고도 싶었고.”

타본 경험이야 있지만 그래도 제법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이윽고 헬기가 날아오르자 헬기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위장교 하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랄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당신이 아니면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이 다른 수작을 부리지도 못하게 짓밟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단순히 테러단체 파트로시스트도 문제인데 나차에서 온 패잔병 놈들이 뒤엉키면서 NATO 같은 유럽연합에서도 함부로 전면전을 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게다가 위험하면 재빠르게 몸을 빼던 놈들이 이제는 국가의 부대를 위협할 정도로 강한 전력을 보유하자 이들로서도 골치를 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제를 극적으로 나와 손을 잡음으로써 해결했으니 부하의 목숨을 건진 꼴이 아닌가.

“당신 덕분에 애꿎은 부하의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아무리 싸우는 게 천직인 군대라고 해도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

“그럼 다행이네요.”

두두두두두…….

몬스터 사태 이후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아 폐허가 된 지역을 지나 도시로 진입한다. 거대한 빌딩이 작게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커다란 부대의 부지 내로 진입하는 걸 확인했다.

레이나는 그저 말없이 한켠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몇몇 군인들이 흘낏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반면 륀느는 언제 잡아 왔는지 모를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벌리고는 장수풍뎅이를 덥석 삼켜버렸다.

“…….”

그리고는 잠시 후 다시 뱉어내 버렸다.

“매우 맛없다고 분석.”

멀쩡히 밖으로 나온 장수풍뎅이는 날개를 파르르 떨고는 이내 급히 도망쳐버렸고 륀느는 아쉬운 듯 장수풍뎅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부대입니다. 바쁘시겠지만 적어도 사령관께서 부디 만나고자 하시니…….”

“예 알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부터 시작해서 아직 유럽지역에 남은 잔당을 모조리 소탕하는데 며칠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맹렬한 모터음과 함께 부대 내부에서 체력 단련과 자기 관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던 중 나는 연병장에서 한 명의 군인이 헬기 쪽을 올려다보며 손을 드는 걸 볼 수 있었다.

말없이 그를 보고 있자니 장교가 나를 따라 시선을 돌린다.

“무엇을 보고 계십…… 아.”

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급히 무전기를 받아 어딘가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나일세. 지금 B 연병장에 홀로 선을 그리고 있는 장병이 있을걸세. 그에게 포상을 내리도록.”

이걸?

내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자 그는 괜찮다며 허허 웃었다.

누가 봐도 그냥 햇빛 때문에 그늘을 만든 모양새인데. 장교의 눈에는 경례를 한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멀어지는 연병장 쪽으로 한 명의 장교가 허겁지겁 장병을 향해 뛰어가는 게 보였다.

아마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간 장교일 것이다.

이건 어느 나라건 비슷하구나.

모병제의 국가는 다를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게 옛날에 티비에서 봤던 그건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윽고 헬기가 착륙하고 자리에서 내리자 다수의 군인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대, 차렷! 경례!”

척!!

이에 고위장교가 나를 보며 허허 웃어 보였다.

“경례를 한번 받아주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래도 됩니까? 저는 따로 군인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요.”

“예의를 차리는 것이니까요.”

“그럼.”

내가 절도있게 경례 자세를 취해주자 그들의 표정이 한껏 밝아지는 게 보였다.

“그럼 가실까요?”

“바로!!”

척!

이후 그가 나를 안내하자 나는 조용히 그를 따라 병영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노쇠한 장군 한 명과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안토니오?”

그중 한 명은 내가 알고 있는 이였다.

최근 에반젤린의 영상을 편집하는 일에 재미를 들린 알하자드의 직속 휘하 비서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케인?”

“오랜만입니다.”

넬타리드의 사도이자 한쪽 인격이 일리나의 양아들인 발키리아 종족, 케인이였다.

“네가 여기 있는 걸 보니 뭐 중요한 일이 벌어졌나 보네?”

“별건 아닙니다만. 도움은 필요해서요.”

“실은 중앙아시아 연합을 대표해서 제가 온 것입니다.”

안토니오와 케인의 설명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의 다른 인격이 있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 투정 심한 어린애는 이런 자리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장군인 파스티오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자 나를 안내해온 고위장교는 자신의 직속 상관에게 경례를 올린 뒤 빠르게 퇴장했다.

저 정도 계급의 사내가 물러날 정도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일 터다.

“일단 들어볼까요. 대가를 받는 김에 협조하기로 한 일이니.”

“감사합니다. 간단한 브리핑은 이곳에 있는 신의 사도께서 해주실 겁니다.”

넬타리드 교단은 검증된 신의 교단이니 케인의 위치가 어지간한 교황보다 상위에 있다는 건 분명했다.

“당신이 파트로시스트를 해결해주신 덕분에 큰 문제로 번지는 건 막았습니다.”

“그런 치하나 하자고 모인 건 아니지? 본론부터.”

케인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하대하는 내 모습에 장군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는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걸 봐주십시오.”

이윽고 케인이 손을 튕기자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던 아티펙트에서 빛이 올라오며 어떤 물체를 투영했다.

“이건 뭔데.”

“악마종의 피를 농축시켜 만든 변이촉매입니다.”

“변이촉매?”

“네. 생명체의 구조를 변화시켜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촉매지요. 파트로시스트와 손을 잡은 타향의 존재들도 이것을 이용해서 변한 겁니다.”

그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 아닌가? 그래서?”

“실은. 일반적인 변이 촉매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이들이 파트로시스트와 손을 잡으며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음모라…… 요지는 연합에서도 쉽게 처리하기 힘드니 나보고 그걸 막아달라?”

“지금 투영되고 있는 변이촉매는 익히 알려진 인간을 조금 변화시키는 수준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거로 보이는 저기에 노출되면 어떤 존재가 만들어질지 모르니까요.”

“네가 처리하면 되잖아.”

“느낌이 심상찮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중앙연합도 같은 뜻입니까?”

“파트로시스트는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니까요. 괜한 문제로 여러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처리해야겠다는 입장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처리야 어려울 건 없었다.

희생자가 문제일 뿐이지.

“희생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그전에 처리해야겠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찮습니다. 갑자기 세력을 늘리고 활동범위를 늘린 것도 이상하고, 이들이 보이는 행동방침도 이상합니다.”

“결론만 말해.”

“아무래도 이미 저놈들은 필요한 희생제물을 모두 모은 것 같습니다.”

그의 설명에 내 눈이 낮게 깔렸다.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나가 자신감을 내보였다.

“죄 없는 이들을 희생시켜 만든 괴물을 그냥 둘 순 없어요.”

용사가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만 천성이 집착이 강한 성격이라 이렇게 된 것이리라.

레이나의 일로 내가 심상찮은 표정을 짓고 있자 장군은 마치 내게 감명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타국의 일인데도 사람의 목숨이 걸린 것만으로도 이리 심각하게 고민해주시다니. 정말 당신은 성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인격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닌데요.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변이촉매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퇴로를 막으시겠다?

장군이라는 자리를 노름으로 딴 건 아니라는 거지.

“NATO 측에 가입된 국가에서 저와 한 거래의 약속만 잘 지켜주신다면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움직여 봅시다. 그전에. 놈의 위치를 피해가 적은 지역으로 한번 옮기면 먼저 할 일이 있는데. 협조해주시겠습니까?”

“먼저 할 일이요?”

“예, 경험이 필요한 놈이 있어서요. 잠깐 경험도 시켜줄 겸.”

“그건…….”

“대신. 놈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개입하겠습니다.”

“그럼 상관없지요.”

* * *

일리나 데 팔란은 집착이 강한 성격이다.

과거 뱀파이어를 상대로, 그 집착을 발휘했었고, 그 이후에 데이비를 사랑하는데에도 집착을 거침없이 내비쳤다.

지금에 이르러 데이비에게 망설임 없이 애정을 표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분야가 아닐까.

정말 좋아하는 것과 너무 좋아해서 상대를 망가뜨리는 정신병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일리나 본인은 그것을 몰랐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말없이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손에 들린 임신테스트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는 한 줄. 실패지만 그녀는 안도했다.

“다행이다…… 지금 아이가 생기면 안 돼.”

그녀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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