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2화
“진격해야 하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네!”
보나프로트 중장이 테이블을 강하게 치며 눈앞에 있는 베돌프 파리스 중장을 노려보았다.
계획은 좋은데, 이놈의 파벌이 문제였다.
비록 베돌프 파리스가 보나프로트 중장보다 계급은 높지만 아무리 대장급 장군이라도 함부로 무시하기엔 보나프로트 중장의 전공이나 입지를 무시할 순 없었다.
“자네의 의도는 모르는 바가 아니네. 하지만 우린 군인일세. 명령에 따르는 게 우리 군인이라는 말이네.”
“그 명령이 설사 잘못된 것이라도 말이오?”
“이봐, 보나프로트!”
“나는 납득할 수 없소! 우리는 지키기 위해 조직된 군대올시다. 정작 그런 군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다가 다른 곳에 맡겨버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무능을 입증하는 꼴이오.”
“자네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네. 하나. 그렇다고 한들. 저 괴물을 확실히 처단할 방법이라도 있는가?”
“있소이다!”
“그 과정에서 의미 없이 피를 흘릴 병사들을 생각해보았나!”
그 외침에 보나프로트 중장은 속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군인이 목숨을 걸고 민간인을 지키지 않으면 대체 군복은 왜 입었으며 총은 왜 들었는가!!”
“자네의 말이 틀린 바는 아니나 다치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왜 마다하는 것이냔 말일세!! 사람의 목숨이 개미처럼 보이기라도 하는가! 자네의 전공에 그들이 희생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서로 바라는 점은 평행선일 뿐이었다.
결국, 보나프로트 중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돌프 대장이 돕지 않는다면 가용 가능한 병력은 한정적으로 줄어들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면 모든 게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빌어먹을, 겁쟁이 같은 노친네.’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보나프로트 중장이 그를 노려보았다.
“우린 움직일 것이오.”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후에 역사에서는 장군과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게 궁금해지는군!”
“자네는 야심이 너무 많아.”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보나프로트 중장은 자신을 향해 다가온 부관을 향해 말했다.
“병력을 준비시켜라. 직접 전장으로 나가 지휘하겠다.”
“자…… 장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복잡하게 재는 게 아니라 적이 나타나면 총과 칼을 쥐고 싸우는 자들이라는 소리다!”
* * *
당연히 보나프로트 중장의 군세는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파트로시스트에서 만들어낸 괴물들을 원천에 차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도 그걸 막을 생각은 없었다.
최근 지구에는 군인들의 입지가 각성자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뼛속부터 군인이었던 보나프로트 중장은 숭고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군인이라는 존재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오래전 봐온 군인이라는 존재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베돌프 영감은 겁이 너무 많군…….”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린 그는 헬기에 오른 채 빠르게 전장으로 향했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이는 없었으니 말이다.
“목표는 현재 폐건물들을 집어삼킨 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놈이 움직이기 위해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 전에 화력을 집중시켜 놈의 에너지를 하락 파괴시켜야 한다.”
보나프로트 중장은 파트로시스트의 배신자가 알려준 정보를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연합 내부에서도 배신자가 있다는 말은 전해 들었다.
배신자는 어디든 존재한다.
보나프로트 중장은 파트로시스트의 배신자를 통해 이번 계획의 단계를 어느 정도 들었고, 지금 나타난 괴물들이 그들의 최종 카드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냥 두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리라.
과거 흉신 때 존재했던 재앙이 다시 일어나는 건 옳지 않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비록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고, 이 사태를 방관했다지만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는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존재에게 손을 빌리는 걸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의 힘이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군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건 결코 반길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고집이라면 고집이라 부를 수 있는 부류의 문제였다.
어느 쪽으로 가든 목적지에 도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미리 준비된 특수 탄두를 삽탄한 전차와 공격 헬기들을 앞세운 뒤 뒤편에 놓인 수많은 견인포들을 훑었다.
화력은 충분하다. 공중지원을 신호로 저 괴물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장군. 이곳은 위험합니다! 부디…….”
“조용히 하게! 지금 이 순간까지 뒤에 숨어서 전황이나 지켜볼 만큼 내가 겁쟁이로 보였나!”
“아…… 아닙니다!”
대령급 장교가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공중지원은?”
“앞으로 3분 후에 도착합니다.”
괴물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놈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대량의 마나를 먹어치우며 더더욱 강해지리라. 특히 그 과정에서 각성자의 힘은 놈의 힘을 더욱 상승시켜줄 거라던 정보를 들었기에 그는 각성자의 개입도 엄격하게 방지했다.
모두가 그의 결정에 어리석고 고지식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수차례 의심 끝에 파트로시스트의 배신자를 구분해낸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이때를 위해서 정말 수많은 의심을 해왔으니 말이다.
그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모두 잘 들어라! 우리는 누구인가! 그래. 바로 군인이다! 군인의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민간을 외부의 위협으로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다!”
그는 격하게 소리쳤다.
그에게 있어서 군인은 언제든 사람들을 지켜주는 절대적인 벽 같은 존재였다.
“제군들은 어찌하여 군인이 되었나! 각기 이유가 존재하겠지. 하지만, 한가지는 모두 같을 거라 나는 믿는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총을 들었기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랑스러운 우리 앞에 지금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체가 존재한다. 제군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의 외침에 마치 준비된 듯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려왔다.
“무기를 들어라! 총을 겨눠라! 탄약을 장전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라! 그대들의 희생은 향후 그대들이 지키고자 한 모든 가족들의 미소를 지켜줄 것이다!”
비록 장교나 사관, 병사들의 눈에는 정말로 이게 가능한 짓일까. 괜히 개죽음당하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어린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지만, 보나프로트 중장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30년 같은 3분이 지났다.
하늘 저편에서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8대의 폭격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동시에 전투기의 통신이 전달되었고 놈들은 건물을 집어삼킨 채 멍하니 꾸물거리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 형태의 괴물을 향해 특수한 효능이 서린 탄두를 거침없이 박아넣었다.
찰칵!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일어난다.
선공은 자신이었다.
베돌프 파리스 대장은 데이비 올 라운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버린 것에 대해 잠시 군대를 물려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보나프로트 중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포격 개시!!”
그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을 향해 포격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벼락에 가까운 폭탄 세례는 끝도없이 쏟아져 나갔다.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폭발에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괴물은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내질러댔다.
놈의 육신은 처참하게 찢겨 나갔고, 누가 봐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성능 고열탄.
보나프로트 중장이 채택한 탄두들이었다.
이 괴물들은 일반적인 화력으로는 잡기 어렵다.
유일한 약점은 초고열의 열기.
어지간한 열기는 놈에게 치명상을 먹이기 힘드니 보다 뜨거운 열을 발생시키는 화력이 필요했다.
“2차 공격을 준비하라!”
수차례 폭격이 쏟아지고 반격을 할 틈도 얻지 못한 채 몸을 비트는 괴물체를 보며 보나프로트 중장이 손을 꽉 쥐었다.
효과가 있다.
이대로라면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적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몸을 꿈틀거리며 비비적대던 괴물이 기이한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자…… 장군! 놈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괴이한 소음은 비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노래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 기묘한 울림에 공격하던 것도 멈춘 채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았을까.
엄청난 열을 받아들인 괴물이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의 육신은 여기저기 찢겨 나갔지만, 그 노랫소리는 어째서인지 너무 평온해 보였다.
거대한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그 울음소리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보나프로트 중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놈이 무언가를 할 틈을 주지 마라! 제2차 공격을 준비해!!”
여기서 뭔가 잘못되면 절대 좋을 수가 없다.
반드시 놈을 처리해야 했다.
분명 정보대로라면 놈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굴다가 완전히 소멸했어야 했다.
파트로시스트의 배신자는 어느 쪽이 이기건 관심 없다는 입장이었기에 그에게 파트로시스트의 히든카드가 지닌 약점을 모두 알려준 것이다.
당연히 쉽게 믿지 않았고 수차례 교차 검증까지 마쳤건만.
그가 말했던 정보 중에 이런 이야기는 단연코 없었다.
하지만 단편적인 변수만 가지고 작전을 멈추고 퇴각할 순 없었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그는 생각을 굳히기가 무섭게 명령을 내렸다.
노래를 부르는 놈의 전신에서 어떤 검은 빛의 가루가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놈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것이다. 놈이 강해지기 전에 놈을 처리해라!”
그의 외침에 다시금 포격이 개시된다.
일제히 날아드는 포탄이 엄청난 속도로 착탄하고 지진과 함께 굉음을 울렸다.
아무리 특수한 개체라도 방어막도 없이 이 정도의 화력을 버틸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제 곧 놈의 시체가 나오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괴물은 죽기는커녕 더욱 커져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찰나.
괴물이 노랫소리를 울려 퍼뜨리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촉수들을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한 거리에 포진해있던 보나프로트 중장의 군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줘!!”
어림잡아도 수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그곳까지 날아든 촉수들은 일순간 수십 수백 수천 개로 분열하여 전차와 인간, 장비를 가리지 않고 달라붙었고 마치 무언가를 흡수하듯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끄아악…… 끄윽…….”
“자…… 장군…….”
그 범위는 계급의 고하를 나누지 않았다.
보나프로트 중장을 향해 날아드는 촉수를 대신 맞은 한 젊은 장교가 온몸에 핏줄이 돋아난 채 떠듬떠듬 말했다.
“도망…… 치십…… 시오…….”
그 모습을 보나프로트 중장이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부릅 떴다.
“으아아아아!!!”
그리고는 곁에 있는 이의 총을 빼앗아 들고는 미친 듯이 촉수를 향해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가 쏜 총알의 화력으론 촉수에게 상처하나 내지 못했다.
“공격해!! 놈이 더 이상 개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공격하라!!”
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다시금 날아간 초고열 탄두들은 놈에게 적중만 할 뿐, 어떤 효과도 불러오지 못했다.
처음엔 효과가 있었다.
아니 그걸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속았단 말인가…… 그렇게 조심했건만. 그조차 손바닥 안이었단 말인가.’
정작 상대는 이 사태를 모두 예견하고 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효과가 없다.
아니 놈은 오히려 공격을 먹어치우고 덩치를 더욱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신들은 저놈에게 더욱 큰 힘을 쥐어줄 뿐이었다.
놈은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강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특수한 힘을 먹어치우고 강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속았다.
저 괴물이 원하는 양의 에너지를 모두 먹어치우면 어떻게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도망?
재앙과도 같은 난전이 되어버린 흐름 속에서 그는 한 손에 든 권총을 파르르 떨며 바라보았다.
“퇴각…… 퇴각하라.”
“장군!”
“살아남은 이들만이라도 퇴각하라! 퇴각하여 이 일을 반드시 알려라! 절대 놈을 공격해선 안 된다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장군! 가셔야 합니다!”
“나는 가지 않는다! 군인으로서 임무를 실패한 자에게 남겨질 결말은 죽음뿐이다!”
그는 단호하게 외치며 권총을 집어 던지고 피를 모조리 빨려 죽은 것처럼 말라비틀어진 병사의 제식 병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직접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후웅…….
아주 짧고 강렬한 바람이 불었고, 그곳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볼수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검은 점 같은 것을 말이다.
마치 우주에서 유성이 떨어지듯 낙하하는 그것은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내 대낮임에도 시야에 명확하게 들어왔다.
사실 시력 관련 능력을 각성한바 있는 탓에 유별나게 시력이 좋은 편이었던 보나프로트 중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 떴다.
어떤 방비도 하지 않은 채 머리부터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는 그를 보며 그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한국으로 갔을 텐데? 그가 왜 여기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그가 급히 소리쳤다.
“아…… 안돼! 놈은 힘을 먹어치우고 더욱 강해지는!!”
군대의 화력도 먹어치우고 강해진 놈이다. 그런데 티오니스 성자의 힘까지 먹어치우면 그땐 정말로 답이 없으리라.
황급히 소리쳐보지만, 그의 목소리가 닿을 리는 없었다.
매처럼 엄청나게 강화된 시력으로 그것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던 도중 그는 데이비가 허공에서 몸을 살짝 비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손에 이내 청적색의 검이 쥐어지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몸을 한 바퀴 돌린 그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지는 걸 본 장군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파직.
푸른 섬광 같은 안광이 그의 양쪽 눈에서 번뜩였다.
그리고 양손으로 검을 잡은 데이비가 낙하하며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쩍!!
첫째로 괴물을 중심으로 가로의 대지가 갈라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앙!!!
뒤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원형의 충격파가 수십 차례 퍼져나가며 닥치는 대로 다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그 여파에 휘말려 날아가지 않기 위해 주변의 사물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틴 보나프로트 장군은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수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이곳에 이 정도의 충격파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건 엄연히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낙하 후 어떤 공격도 가하지 않았다.
그대로 유성우처럼 괴물을 향해 낙하했고,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로로 한번 갈라진 충격은 이내 추가로 세로로 찢어졌고, 이내 3차원으로 찢어지듯 사방으로 그 검기를 퍼뜨려나갔다.
청적색의 검기는 이내 맹렬하게 팽창했고 이내 무슨 공격으로도 죽지 않던 괴물을 단순히 힘으로 찍어눌러 버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용을 쓰는 괴물이었지만 그가 만들어낸 청적색의 검기는 자비 없이 괴물을 짓누르고 찢어발겨 버렸다.
그리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보나프로트 중장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주저앉은 채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에게 상성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힘을 먹어치우고 강해진다 해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데이비 왕자. 즉 티오니스 성자는 그런 한계를 아득히 넘은 위력을 때려 박았을 뿐이었다.
자신은 멍청하게 속았고, 괴물은 자신들을 이용했다.
모든 사태에 회의감이 들어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였다.
언제 온 것일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백 미터 떨어진 괴물이 있던 곳에 있던 티오니스 성자가 어느새 그의 곁으로 와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를 향했다.
그것은 엄청난 경외의 시선이었고 두려움, 그리고 정체 모를 시선들이었다.
데이비 왕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괴물이 자신들의 힘을 먹어치운 것을.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 자신은 일을 방해한 방해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은 데이비 왕자가 일임했으니 말이다. 자신들은 본래 해야 할 일도 내버려 두고 공에 눈이 멀어 이런 사태를 초래한 머저리에 지나지 않았다.
화를 내고 욕해도 할말이 없는 상황에서 침묵이 이어졌을까.
데이비는 말없이 그를 보다 돌아섰다.
“장군이 화력을 쏟아 부어준 덕분에 놈의 시선을 끌 수 있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그 한마디.
하나도 맞지 않는 저 엉터리 발언에 모두가 멍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데이비가 왜 저런 말을 남겼는지를 말이다.
‘하…… 희생된 이들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 것인가…….’
보나프로트 중장은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대참사와 그 대참사로 인해 의미 없이 죽어간 병력들에게 단 한 마디로 의미를 부여해준 데이비에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결국 그에게 아무것도 비빌 수 없는 인물일 뿐이었다.
그는 멍하니 주춤거리며 일어났고, 가장 경계하며 가장 믿지 않았던 데이비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연합의 3개 군단. 군단의 중장 보나프로트 루시우 중장이 보고 합니다.”
“받겠습니다.”
데이비는 착잡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현 시간부로 특수임무 종료를 보고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같잖은 연극. 진실은 잔인하지만, 남은 이들과 허무하게 죽어간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준다.
실리적으로 1도 쓸모없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자신들을 도와준 데이비 왕자에 대해 그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였다.
군인으로서, 지휘관으로서의 감사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많은 병사들을 죽게 만들었다.
아무리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지만 베돌프 대장의 말마따나 이것은 의미 없는 희생이 될 뻔했다.
임무에 실패한 장군은 그만큼 목숨의 무게를 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다 압니다. 그러니 아무 말 하지 마세요.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도 압니다.”
그런 그를 향해 데이비가 시선도 마주하지 않은 채 피해 현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에 중장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감싸 쥐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