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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44화 (1,244/1,559)

제 1244화

에반젤린은 거의 무아지경에 가까운 파괴본능을 드러냈다.

그것은 비단 그녀의 분노 때문만이 아니었다.

종의 특성이 극한의 분노를 드러냈다.

드래곤의 시조라 불리는 고대룡과 악마종은 그야말로 상극.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다.

정신계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성장을 이룬 게 아닌 에반젤린에게 있어서 이 낯선 감각은 그녀를 분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지금 현재의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파트로시스트나 나차의 패잔병 따위가 아니었다.

이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숨겨진 지하벙커.

그 아래에 놓인 자연동굴과. 그 자연동굴에 위치한 거대한 악마의 알.

데이비가 있었다면 멸종한 악마들이 왜 자꾸 이렇게 나오는 건가 하며 투덜거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진실은 조금 간단했지만 그걸 아는 이는 이 세상에 단 하나, 여신을 제외하곤 없었다.

비록 현재의 에반젤린이 방송을 켜고 대량의 힘을 흡수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힘만으로도 충분했다.

방송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힘은 한계치까지 빠르게 성장할 테니 말이다.

단단한 암반과 바위를 두부 자르듯 잘라버리고 그녀의 입에서 방출된 브레스가 대지를 녹여 고온의 흔적을 남긴다.

하필 고대룡이 종족적 상극인 악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파트로시스트에겐 현 상황이 재앙일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숨겨왔고 조금 문제가 생겼어도 목표를 이루는 데엔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건만. 아차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박살 났다.

이미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이 에반젤린의 폭주에 휘말려 전투 불능이 되거나 사망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냐 외칠 수도 있지만 그걸 동조해줄 인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과격한 테러리스트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 인간들이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수단을 생각해내!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라고! 저 미친년을 당장 막아!”

그렇게 외쳐보지만 현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휘두르는 에반젤린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과거 영상에서 본 그녀는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인간이 아니라더니 마치 성장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타당!! 탕!

맹렬하게 화기를 쏟아붓는 이들과 각자의 각성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에반젤린을 공격하지만, 에반젤린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벙커 전역을 휩쓸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부숴나갔다.

그녀는 마치 거대한 덤프트럭처럼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파괴해버렸고, 그녀를 대적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몸에 크나큰 상흔을 입은 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앞길을 막지 않으면 죽이지 않았다.

마치 그들에겐 관심 없고 이 아래 숨겨진 것을 찾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변이 매개체를 몸에 받아들인 이들은 완전히 조각나버렸지만, 아직 그러지 않은 순정 인간들은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

당연히 목숨이 중요한 인간들은 그 진리를 깨닫고 에반젤린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녀를 막는 이 중 다수가 빠져나가니 그녀의 돌진은 더욱 가속이 붙었고 이내 파트로시스트가 남겨놓은 지하 동굴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서야 에반젤린은 폭주하듯 내뿜던 분노를 어느 정도 가라앉힌 듯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뭐야.”

이게 뭐라고 그렇게 분노가 터진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의 인간들은 절제 박승현을 공격한 나차의 패잔병들이 있는 곳이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거대한 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숴버려야 할 무언가일 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그녀가 용신검을 가볍게 튕겼다.

“이봐요.”

이미 그녀가 저지른 짓 때문에 겁에 질려있던 이들이다.

이들이 지닌 일신의 무력은 모두 제각각. 그중엔 극히 위험분자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기습이고 비열한 수고 지금 저 미친년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저게 뭔지 당장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녀의 눈에는 어떤 타협의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직통으로 한국에서 이곳까지 날아왔느냐!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들의 입은 꿀을 먹은 것처럼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 * *

괴형체들이 에너지를 보내는 주체는 반드시 존재한다.

변이 매개체를 통해 만들어진 어떤 무언가.

NATO를 포함한 연합에서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벌레와 동물 심지어 사람까지 모아 제물로 사용한 뒤 특수한 변이 매개체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게 악마종과 관련되어있을 거라는 확신은 분명히 들었다.

단순히 변이체 정도의 수준이라면 걱정할 건 없지만 오랜 시간의 경험과 직감이 말했다.

이거, 악마종, 그것도 굉장히 큰놈과 관련이 있다고.

애초에 변이 매개체의 출처부터가 불분명했다.

나차의 황제가 주었다고 하기엔 지금 느끼는 이 미묘한 느낌은 놈보다 더 어둡고 깊다고 본능을 자극했다.

그렇기에 괜히 사건 키우기 전에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용의주도하게 목적지를 숨겼고, 마냥 찾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에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사실이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무엇이 되었건 선을 넘었으면 넘은 부위를 도려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은 초장부터 무너졌다.

에반젤린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했고, 날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고, 폐허가 된 사막과 바위 절벽지대 틈 사이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반젤린은 이 바위 절벽 지대의 아래에 존재한다.

황급히 도망치는 이들을 보니 에반젤린이 놓친 건지 아니면 따로 건드리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은신처를 들킨 그들은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망에 걸려들고 일망타진 당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어딜 가시나.”

하늘 빼곡히 매직 미사일들을 장전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내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티…… 티오니스 성자!”

“그게 다인가?”

내 질문에 그들이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좋게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승천하여 올라가려는 영혼들을 향해 내가 손을 뻗어 올렸다.

눈이 검게 변하며 한차례 번뜩였고, 파괴된 바닥 속에서 뻗어져 나온 검은 손들이 그들의 육신에서 혼을 뜯어낸다.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명한다.]

너희에게 안식을 불허한다.

콰드득!!! 콰직!!!

물리적이지 않은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지지만 그건 전혀 신경쓸 문제가 아니었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그들의 몰골에 어떤 자비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놈들의 혼이 모조리 찢겼을 때. 나는 그 혼을 다시 육신에 밀어 넣었다.

“아.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아귀로 만들어버리면!”

굶어 죽은 귀신 아귀.

지금 나는 이놈들을 무한한 공복에 시달리는 아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놈들은 죽지도 못한 채 끊임없는 공복에 시달릴 터.

물론 그냥 두면 당연히 여기저기 피해를 끼치기에 나는 놈들의 사지육신을 끊어버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놈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예전이라면 잔인하다고 말하며 하지 않았을 행동이건만, 이놈들이 내 시선을 돌리자고 에반젤린을 공격한 놈들이라는 사실만으로 꼭지가 돌아버렸다.

뒤이어 저승이가 황급히 나타나 나를 말리지만 내 얼굴을 한번 본 저승이가 파랗게 질려 물러났다.

“아니…… 안 되긴 하는데…….”

“똑바로 말해.”

“됩니다. 예. 되요. 우치 그 인간도 가끔씩 악인의 영혼을 잡아 찢어버리는데 당신이라고 못할까. 예, 찢으세요. 마음껏 찢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윤회도 똑바로 못할 영혼들. 그냥 여기서 완전히 으깨지고 업보를 청산하는 게 더 좋겠네요. 예.”

저승이의 태세변환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나는 에반젤린을 공격했던 놈들의 혼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잔혹하게 찢어발겼다.

그리고, 파괴된 흔적 너머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대부분은 토벌당했고, 유일하게 남은 이들은 에반젤린의 기습공격으로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다 해결했으면 모습을 드러내야 할진대. 대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에반젤린이 다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도 걱정이 되는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해도 에반젤린은 태어날 적부터 어화둥둥 길러온 너무도 소중한 딸아이였다.

“요시아. 지금부터 3분 후에 끝낸다.”

-아? 선생님! 잠깐만요! 10분! 10분!

“웃기는 소리 마라. 기회 많이 줬다.”

지금 이 지하에 있는 놈을 처단해버리면 미드 차이드의 실전 경험을 빠르게 쌓아주고 있는 요시아의 계획이 비틀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악마의 흔적을 찾아도 바로 없앨 생각은 없었다.

그때였다.

쿵!!

묵직한 소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렸고. 에반젤린이 가진 특유의 고대룡의 힘이 한차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요시아. 1분.”

-네? 무슨?! 선생님? 선생님!!

[무검기]

[단공]

쩍!!

망설임 없이 공간을 찢어 강제로 틈을 벌린다.

그곳에 보인 것은 트와일라잇을 한 손에 쥔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에반젤린과 그런 에반젤린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색의 기괴한 괴물이었다.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에반젤린의 작고 흰 손등 위에 작은 상처가 난 게 보였다.

그 순간.

“어…… 아빠?”

콰아아아앙!!!

엄청난 백색의 기둥이 하늘에서 낙하하며 그대로 놈을 찍어눌렀다.

애초에 자칫하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쓸데없이 많은 걸 생각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굉장히 나쁜 버릇이었다.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최근 나는 행동을 빠르게 옮기고 있는가.

여유와 목표에 취해 느긋해지진 않았는가.

눈이 돌아가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 * *

나의 난입은 예상치 못했는지 에반젤린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가 왜 여기에?”

“그건 내가 할 말 같지 않니? 에린아.”

담담하게 묻지만, 에반젤린도 알아차린 듯 보였다. 지금 내가 혼내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반사적으로 제 손등을 뒤로 숨긴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일단 나중에 이야기해요.”

내가 만든 백색의 기둥에 짓눌린 괴물이 버둥거린다.

어지간히 강한 힘이라도 빠져나오지 못할…….

콰드드득!!

이걸 빠져나오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에반젤린이 씩씩거렸다.

“저거 내꺼에요! 건들지 마!!”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화나게 만든 것일까.

단순 테러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화를 내기엔 지금 에반젤린의 분노는 묘하게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다만, 중요한 건 에반젤린은 정말 이 이상 내 개입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요시아.

마음속에선 헛소리 말라며 놈을 다시 짓뭉개버리고 에반젤린을 데리고 돌아가라 말하지만, 에반젤린의 저런 단호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압!!”

이윽고 에반젤린이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역수로 틀어쥐고 날아들었다.

거대한 체격에 튼튼한 다리. 마치 영화에서나 볼법한 갑각으로 이루어진 우주 괴물 같은 형태를 취한 녀석은 에반젤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날카로운 꼬리를 휘둘렀다.

카앙!! 콰드드득!!

하지만 에반젤린의 등 뒤에서 뻗어져 나온 거대한 용의 앞발이 놈의 육신을 짓밟았고 그 틈을 이용해 에반젤린의 검이 놈의 몸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끼이이이익!!!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놈이다. 이놈이 깨어났다는 말은 사실상 자신의 위기를 감지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대로 만약 놈이 성장한다면, 어쩌면 나차 제국에서 황제의 육신을 훔쳤던 악마종보다 더 지독한 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의 수준을 가늠하긴 어렵다 할지라도, 놈을 살려놓는 건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치직!! 선생님?! 진짜 딱 3분만! 3분만요! 얘 지금 무아지경에 들어갔거든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3분이면 3서클……!

빠악!!

그때 에반젤린과 충돌하던 놈이 거대한 팔로 에반젤린을 한번 후려쳤다.

내 눈이 크게 뜨여진다.

“아파…….”

밀려 나간 에반젤린이 이를 아득 깨물며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악마종은 그런 에반젤린을 두고 최악의 수를 던졌다.

푸스스스…….

“웃어? 지금 비웃은 거야?!”

내가 나서지 않고, 에반젤린은 상대할만하다고 여긴 것일까.

놈의 비웃음에 에반젤린이 수치심 가득한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는 이를 빠득 깨물고는 소리쳤다.

“내가 이것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소리친 그녀가 후다닥 내 쪽으로 달려온다.

그리고는 내 품에 그대로 안기며 눈물을 흩뿌렸다.

“으아아앙!! 아빠! 저 새끼가!!”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치직! 선생님? 내 말 듣고 있어요? 진짜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9서클 초월계]

[범위 압축]

[이기아스(광역파괴)]

으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육신이 일순간 무속성, 무색무취의 에너지에 일그러지고 찢겨 나갔다.

-아…….

동시에 요시아의 탄식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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