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6화
바실론 뤠 보스타. 보스타 왕국의 막내 왕자인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보고 서류를 훑었다.
“차질없이 진행되겠지?”
“예, 저하.”
“처음엔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 설마 거기서 살아남을 줄 몰랐지.”
“다행히 그가 평소 쌓아온 행실, 그리고 저하의 이미지 덕분에 문제없이 넘어갔습니다.”
중앙 아카데미 학생회와 칠성 교수들은 미드 차이드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선 갱생 불가능한 쌩 양아치나 다름없던 미드 차이드에게 어떤 호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칠성 교수들은 사고를 치고 잡힌 미드 차이드를 그대로 교수 회의실로 끌고 간 뒤 한자리에 놓고 노려보듯 압박한 전례도 있었다.
성격이 급한 칠성 교수 중 하나는 아예 그에게 인생의 참맛을 보여주겠다며 마나를 끌어 올리려다 멈춘 사례 또한 있었다.
미드 차이드는 고립됐다. 그는 절대 이해받을 인간상도 아니었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그런데. 그놈을 살린 게 누구인지에 대해선 아직 알아낸 게 없나?”
“죄송합니다. 워낙에 인적이 드문 곳이라. 예상되는 곳을 뒤져보았지만 딱 한 명을 제외하곤 없었습니다.”
“딱 한 명?”
“예, 이름은 이세라. 나이는 열여섯. 과거 차이드 백작가에서 하녀로서 종사한 적이 있더군요.”
그 말에 바실론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년이 놈을 살린 건가?”
“그건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어째서지?”
“본인이 아니라고 한 것도 있지만…….”
“고작 그런 거로 의심을 거뒀다고?”
“하녀 이세라는 미드 차이드의 전속 하녀로서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그리고 끝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내쫓겼습니다.”
그 말에 바실론이 피식 웃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선하고 유약한 왕자는 여기 없었다.
“원한이 있으면 있지, 절대 살릴 인간은 아니라 이거군.”
“예. 그래도 혹시 몰라 예의주시는 시켜놓았습니다.”
“그럼 됐어. 그보다…… 저길 보라고.”
그가 피식 웃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흘끗흘끗 받으면서도 벤치에 앉아 평민마냥 빵을 우걱우걱 씹어먹고 있는 미드 차이드가 보였다.
이미 이 아카데미 내에서 그를 동정하거나 그와 가까이하려는 이는 없다.
하지만.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은 달랐다.
“갑자기 나타나서 마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지. 같은 시기에 저놈의 인성도 바뀌기 시작했고.”
솔직히 그녀의 존재에 대해 조사했을 때 조금 많이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의 교육이 어떻게 된 건지 짧은 시간에 미드 차이드를 2서클까지 끌어올린 것도 용하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끝내 3서클의 벽을 넘었다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
“재밌네. 저 여자. 남의 집에 와서 깽판을 놓다니.”
“어떻게 할까요.”
“미쳤어? 하인스 영지는 건드리는 거 아니야. 뭐 그래도 직접 한번 만나는 보자고.”
* * *
로브를 깊게 눌러쓴 요시아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당분간은 밀착해서 가르치는 건 못 해줘. 나도 내 일이 있으니까.”
“이거면 충분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빵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그가 포장지를 쓰레기통 쪽으로 휙 던졌다.
하지만 포장지는 땅에 떨어졌고 멍하니 그걸 보던 미드 차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다시 넣었다.
이전의 그였다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기는 했다.
“곧 청문회가 있을 텐데 괜찮은 건 맞아?”
“안돼도 해야지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알면 최선을 다해서 보답해. 선생님이 성초를 원하는 건 나쁜 이유 때문이 아니야.”
“형님과도 같은 내기를 했죠.”
“너 하나로 안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기왕이면 활로를 하나 더 뚫은 것뿐이야.”
요시아의 대답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약속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아버지가 내리는 겁니다.”
“되면 이득이고 안되면 아쉬운 거지. 널 굴리다 보니 나도 6서클에 도달한 거니까 손해는 아니야. 덕분에 내 휴가들이 멀쩡히 생환하기도 했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미드 차이드의 몸이 굳었다.
“다행이네. 다친 곳은?”
“바실론…….”
“말이 짧은 거 같은데?”
“왕자님.”
미드 차이드의 눈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섭섭하기는 우리 사이에 그럴 수는 있나.”
“우리 사이가 뭔데 말입니까.”
“하하. 잊었나? 우린 둘도 없는 친우…….”
“개소리 집어치우세요. 왕자님.”
미드 차이드는 대놓고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당신 같은 괴물을 친구로 둔 적은 없습니다.”
그는 더 할말이 없다는 듯 돌아섰다.
이에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있던 요시아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릎 부분을 탁탁 털어냈다.
“다른 인간도 아니고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웃기네.”
“뭐라고요?”
“그렇지 않나? 빈말로라도 넌 좋은 인간은 아니지. 쓰레기에 가깝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
“이젠 그 역겨운 가면 너머의 본성을 숨기지도 않네요.”
“이제와서 무슨. 걱정 마. 널 제외하고 그 누구도 내가 이런 인간인 걸 아는 이는 없으니.”
그렇게 말한 그의 시선이 이번엔 요시아에게 닿았다.
“외부에서 왔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인간쓰레기와는 엮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바실론은 요시아의 정체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에 요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미는커녕 완전히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이에 미드 차이드가 요시아를 보호하듯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확실히 제가 인간쓰레기라는 말은 부정 안 하겠습니다.”
“…….”
“다만, 당신도 다를 바 없어요. 왕이 되기 위해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미친 왕자.”
“이거야 원, 왕족 모독도 적당히 해야지. 그래. 마음껏 지껄이시게. 패배한 개새끼 따위가 짖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렇게 말한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채 미드에게만 들리게끔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바뀌는 건 없어. 미드 차이드. 너의 그 어리석음 때문에 차이드 백작가가 흔들리는 거야. 난 그저 그 기회를 이용했을 뿐이고. 그 인과(因果)를 잊으면 쓰나.”
“왕자!”
“자, 그럼 청문회 때 보자고. 무얼, 걱정은 말게, 나는 증인으로서도 참석할 생각은 없으니. 멀리서 구경이나 하겠네. 그래. 유일하게 3서클 마법사가 되겠답시고 노력했다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쉽게 될 리가 있나.”
그가 비웃음을 던지며 미드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떠나갔다.
* * *
청문회는 중앙 아카데미 학생회와 칠성교수, 그리고 해당 재판을 담당할 상임 교수 셋이 참석한다.
재판으로 치면 칠성교수가 검사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학생회는 그런 피고가 되는 학생을 변호해주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재판장은 상임 교수가 맡는 편이었다.
상임 교수는 가장 상위 교수인 칠성교수와는 조금 다른 사실상 학장과 같은 입장을 지니고 있는 소수의 교수였다.
다만 이 마녀재판은 보통 정말로 큰 사고를 치는 놈이 아닌 이상 펼쳐지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와 검사 위치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특히 중앙 아카데미에서 평판이 바닥을 치는 미드 차이드라면 더더욱.
“학생, 미드 차이드는 입장하라.”
수많은 배심원으로서 학생들이 마치 원형 강당 같은 곳에 모여있다.
그들은 성격 나쁜 미드 차이드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듯 제법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틈 사이에 학생 교복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는 요시아가 그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시작된다. 지루한 설전은 사실 의미 없었다. 무슨 말을 하건 미드 차이드는 나락으로 몰릴 테니 말이다.
사실상 공개 마녀재판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누구도 이 시스템을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사실상 구색을 갖추기.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주어질 마지막 기회.’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한 명을 몰아넣고 이렇게 압박을 주는 건 어떨까 싶은 요시아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런걸 한 적이 있었지…….’
샤쿤탈라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모조리 째고 사고를 쳤다가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F반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지. 류다 교수.”
상임 교수의 말에 칠성 교수 중 늘씬한 체격을 가진 아름다운 교수 한 명이 뿔테안경을 고쳐 썼다.
“그럼 시작하지요. 중앙 아카데미 생도 미드 차이드는 중앙 아카데미의 박물관에 대규모 폭발 아티펙트를 터뜨린 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흐음…….”
“현 칠성 교수회에서는 당시의 정황과 현장에서 미드 차이드 학생이 검거된 점. 그리고 여러 증거를 미뤄볼 때 유일한 범인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치의 동정심도 없는 싸늘한 눈빛으로 미드 차이드를 바라보았다.
“학생회. 변론하게.”
그 말에 깔끔한 옷을 입은 금발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호인의 자격으로 학생회 현 시간부로 학생 미드 차이드를 변호하겠습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학생회장은 말없이 그를 보다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이상입니다.”
아무런 변호 없이 “이상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어떤 변호도 할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일방적인 흐름이다.
이에 상임 교수는 익숙하다는 듯 이번엔 미드에게 말했다.
“미드 차이드 학생. 직접 말해보라. 저 말이 사실인가?”
일개 학생이 받기엔 너무 무거운 위압.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인생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그 흐름 속에서 미드 차이드는 담담하게 답했다.
“거짓입니다.”
평소라면 겁에 단단히 질려있었어야 할 그였다.
하지만 미드 차이드는 담담하게. 그리고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박물관에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폭파시켜버린 것은 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계략일 뿐이었습니다.”
“닥치세요!!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을 고하는 겁니까! 당시 폭발을 일으킨 폭마석에는 당신의 마나를 포함한 다수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류다 교수. 발언을 허가한 적은 없소.”
상임 교수의 말에 칠성 교수인 류다가 짧게 혀를 찼다.
“어차피 끌어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상임 교수님. 저는 아카데미의 전통을 박살 내버린 저 학생에게 당장이라도 응징을 가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마지막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어떤 섣부른 결론도 용납하지 않겠소.”
“…….”
아무리 구색뿐인 청문회라도 그 의미가 퇴색되게 둘 수 없다는 그의 고지식한 결정이라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생회는 변호인의 입장에 서서 침묵했고, 칠성교수진은 검사의 입장에서 학생을 몰아붙였다.
배심원인 학생들 또한 그의 편이 아니니 사실상 미드 차이드가 무슨 말을 하건 소용이 없었다.
미드 차이드는 조용히 한켠에 앉아 상황을 보고 있는 바실론 왕자를 시야에 담았다.
그래. 그 사고가 터지기 직전, 아니 터지고 난 후에도 미드 차이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선민사상과 오만함. 지독한 혐오적인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아무 소용없으리라.
그렇기에 그가 말했다.
“존경하는 상임 교수님. 저 미드 차이드는 이 사건에 대한 결백을 내세울 증인도, 물증도 없습니다.”
“하면, 그 당시의 행동을 인정한다는 뜻인가?”
그 말에 바실론 왕자의 입가에 보이지 않는 비웃음이 걸렸다.
“아뇨.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혐의는 인정하지 않되, 그것을 결백할 증거도 없다라…….”
“따라서, 중앙 아카데미의 신물이나 다름없는 메인 아티펙트. 진실의 천은의 사용을 요청합니다.”
그 말에 주변이 강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생회는 물론이고 칠성교수진들 쪽에서도 흠칫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시끄러움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자 상임 교수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조용!!”
그리고는 엄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미드 차이드 학생. 진실의 천은이 어떤 물건인지는 알고 있는 것인가?”
“예, 학생인 이상 모를 수가 없지요.”
진실의 천은. 오래된 유물이자 중앙 아카데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아티펙트 중 하나였다.
아티펙트의 조건은 3서클 이상의 상당한 마나 숙련도를 지닌 마법사였다.
“하지만 아티펙트를 사용하기 위해선 최소 3서클 이상의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다른 3서클 마법사는 많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선 미드 차이드가 직접 3서클의 수준을 지니고 아티펙트를 제어해야 했다.
하지만.
“웃기는 소리! 진실의 천은을 사용하기 위해선 3서클 마법사가 되어야 합니다. 3서클이 그리 높은 경지라고 할 순 없으나 보통 학생 중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겨우 문턱을 넘는 수준이지요.”
류다 교수는 이미 미드 차이드를 범인으로 낙점한 것처럼 의견을 설파했다.
“하지만 미드 차이드 학생의 경우 중간 평가에서 고작 1서클 중반의 실력만을 보였습니다.”
노력하면 조금 똑똑한 용병출신 마법사들도 1서클에서 2서클 문턱까지 볼 수 있다.
당연히 낙제생이나 다름없던 미드 차이드가 3서클에 도달했을 리가 없었다.
마법 아카데미도 아니고 일반 아카데미에서 어린 나이에 높은 경지를 다루는 마법사는 잘 없으니 말이다.
“류다 교수의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학생회에서 조용히 답하자 상임 교수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진실의 천은을 사용해서 어떻게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거지? 또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해도 미드 차이드 학생은 1서클, 그것도 2서클에 도달하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 한데 최소 조건인 3서클…….”
“직접 검사해보시지요.”
미드의 단호한 대답에 상임 교수가 입을 다물고는 그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 짧은 침묵 끝에 류다 교수가 천천히 일어나 나아갔다.
“상임 교수님, 직접 확인요청을.”
“허가하오.”
그 말에 류다 교수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청문회석에 홀로 서 있는 미드 차이드의 육신에 마나를 쏟아부었다.
“알량한 거짓으로 넘어갈 생각 마세요.”
“…….”
“처음 당신이 사고를 쳤을 때 나는 당신에게 기회를 주자 말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후회가 되네요.”
미드 차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업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마나가 미드와 공명하며 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 꼴을 보던 보스타의 막내 왕자 바실론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다 요시아를 발견하고 저벅저벅 걸어왔다.
“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있습니다만.”
“…….”
학생의 교복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잠입해있던 요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마세요. 나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을 생각이니.”
“그는 자기 무덤을 판 겁니다. 그는 고작 1서클 마법사였죠. 사람이 바뀐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 봐야 그가 한 달 안에 1서클에서 3서클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폐급은 내버려 두고 나와 함께 하시죠. 요시아 프랑소스 조교수.”
“나를 알고 있나요?”
“이래저래 조사는 했습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직접 보니 확신이 서는군요.”
현재의 요시아는 머리색만 바꿨을 뿐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어머, 저를 알아보셨나 보네요.”
“샤쿤탈라 최연소 천재 마법사를 모를 수가 있습니까.”
“입에 발린 소리는 거슬리네요.”
“하하. 이래 봬도 왕자인데…….”
“어머, 사과드려야 할까요?”
담담하게 말하는 요시아의 어깨에 그가 손을 올렸다.
“이제 끝입니다. 당신이 왜 저런 쓰레기와 엮여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하죠. 처음부터 진실의 천은을 쓴다니 하는 헛소리로 시간을 끌어본들 소용없다는 소리…….”
그렇게 말하던 바실론은 그에게 시선 하나 안주고 미드를 보고 있던 요시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마…… 말도 안 돼.”
류다 교수가 경악한 듯 중얼거린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그녀의 질문에 미드 차이드는 조용히 침묵했다.
서클을 드러내는 마법은 상호 간에 협조가 있으면 발현할 수 있다.
미드 차이드의 본래 서클은 1서클. 하지만 지금 그는 1서클을 넘어 2서클. 그리고 3서클에 해당하는 빛을 내뿜는 것도 모자라 마법사들로서는 처음 보는 현상까지 품고 있었다.
“그냥 3서클이 아니야…… 이런 건 본적도 없거늘…….”
“선생님 한 명 잘 만났습니다. 다시 없을 은혜를 주신 분도 만났고요.”
미드 차이드가 류다 교수를 향해 말했다.
“제게 기회를 준 걸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까. 류다 교수님.”
“…….”
“당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바뀔 겁니다.”
그의 눈이 총기로 가득하게 빛났다.
“그러니 이딴 일로 누명을 뒤집어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무슨 말을…….”
“나는 반드시 5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될 거라 이 말입니다.”
미드 차이드의 주변엔 마치 띠처럼 생긴 빛의 고리가 3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3서클을 의미하는 흐름이었다.
다만, 미드 차이드의 서클 주변엔 마법사들도 처음 보는 독특한 고리가 하나 더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바실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가 마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는 입수했다. 당연히 요시아를 조사하면서 그가 2서클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들은 뒤였다.
그가 3서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건 불과 하루 전에도 확실했건만.
대체 언제 3서클을 넘었단 말인가.
게다가.
“저 고리는 대체…….”
3서클을 의미하는 고리 이외에도 맹렬하게 움직이는 이질적인 고리는 쉽게 이해가 가는 형태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미드 차이드를 이용해 차이드 백작가를 온전히 손아귀에 넣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그런 바실론의 초조한 시선 끝에 예쁘게 미소짓고 있던 요시아의 시선이 닿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머리 끝단부터 천천히 본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미드 차이 끝내주죠? 아, 그래도 쫄지 말아요. 미드가 당신과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건 그건 사실 내 알바가 아니니까.”
“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바실론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존대까지 잊은 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