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7화
진실의 천은.
오래된 아티펙트로 중앙 아카데미 내에선 생각보다 알려진 게 없는 아티펙트이지만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런 아티펙트였다.
작은 천칭처럼 생긴 아티펙트는 사실 그렇게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자살 아티펙트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었다.
길고 얇은 천처럼 생긴 이 아티펙트는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마나를 머금은 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활성화하는 순간 천은 스스로 모양새를 잡으며 어떤 천칭과도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된다.
“안됩니다! 진실의 천은이라니요! 아무리 죄가 있어 청문회까지 열었다고 한들! 그걸 사용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칠성 교수진에서 대표로 나와 있던 류다 교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금 그것 말고 제가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미드 차이드 학생! 그게 잘못되면 당신은 죽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3서클 마법사가 된 거니까요.”
“3서클이 된다고 3서클의 모든 진리를 통달한 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진실의 천은은 자기 목숨을 대가로 하는 건 알고 있겠죠?”
류다 교수의 말에 중앙아카데미의 학생회장 또한 놀란 듯 그녀와 미드를 바라보았다.
“하면, 여기서 제가 이걸 포기하면 그 후의 저희 차이드 백작가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
그 질문에 류다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서 진실의 천은을 가져오게.”
이윽고 고심하던 상임 교수가 언질을 내렸고 류다 교수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진실의 천은이 가져다주는 신뢰는 확실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네 심장이 불타버릴 수 있다. 그래도 하겠는가?”
“그러려고 3서클 마법사가 된 겁니다.”
3서클 마법사는 최소조건이다.
그렇기에 확률이 높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미 한 달 조금 되는 시간 안에 1서클에서 3서클이 된 마당에 무엇이 더 놀라울까.
잠시간의 침묵 후 누군가가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급히 들어오는 게 보였다.
“가져왔습니다.”
상자를 열자 나온 것은 차곡차곡 개어진 얇은 천이었다.
상임 교수는 그것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어 마나를 활성화했다.
“이전에. 학생 중 하나가 이것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죽은 사례가 있다.”
“…….”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기에 나는 이 저주받은 아티펙트를 그리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짙은 피로가 머물러 있었다.
* * *
굳은 얼굴로 요시아를 바라보는 바실론 왕자가 재차 질문했다.
“지금이라도 말리세요.”
그가 위협하듯 요시아를 노려보았다.
“왜요? 겁나세요?”
“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가 결백하다고 한들 제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결백하니까요.”
“예, 예 그러시겠죠.”
요시아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빈정거렸다.
이에 바실론 왕자의 곁에 있던 소년이 허리춤에 있던 검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바실론이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실패하면 그는 죽습니다.”
“그래서요.”
“제자 아니었습니까?”
“이상하네. 남의 제자 죽이려 했던 분이 하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요시아는 심드렁하게 말하다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 그리고 개수작은 집어치우셔도 돼요. 6서클 마법사가 등신으로 보이는 게 아닌 이상.”
요시아의 조용한 위협에 바실론 왕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윽고 청문회가 가열되면서 천칭이 모습을 드러냈고 미드 차이드는 담담한 얼굴로 마나를 일으켜 진실의 천은과 공명했다.
동시에 천칭형태가 된 진실의 천은은 미드의 심장을 대가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마나의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기 시작했다.
2서클 마법사는 제어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운 마나의 흐름 속에서 잠시 긴장한 듯 숨을 내뱉은 미드 차이드가 이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걱정했던 그였지만 한번 겪어보고 확신이 선 듯했다.
실패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윽고 심장과 공명이 끝난다.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서 있던 그는 조용히 자신의 심장을 대가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천칭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진실의 천은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방법은 여럿 존재하지만, 미드가 고른 방법은 심플했다.
“상임 교수님. 사고가 일어났던 곳에서 발견된 폭마석.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담긴 폭마석에서 제 마나가 검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학생의 마나가 검출되었고 그것이 명확한 증거가 되었지.”
“하면 제가 가진 마나와 이 폭마석에서 검출된 제 마나가 정말로 같은지 확인하면 제 결백을 증명할 수 있겠죠.”
진실의 천은으로 확인하기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
그 말에 상임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한다.”
“상임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제어를 잘못했다가는…….”
“그건 본인의 몫이오, 류다 교수.”
진실의 천은은 그 효과가 확실하지만, 제어를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순간 역으로 아티펙트가 만들어내는 힘의 폭풍에 심장이 불타버린다.
그렇기에 류다 교수는 혼란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이윽고 천칭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어렵게 보관해둔 폭마석이 한쪽에 놓이고 나머지 한쪽은 그의 심장에 있는 마나가 뭉쳐진 마나 구체가 올려졌다.
둘의 흐름이 같다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리라.
이윽고 파르르 떨리던 천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진지운동을 하듯 왔다 갔다 하던 천칭을 모두가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그중 일부는 조소를 흘렸다.
“교수들이 전부 입을 모아서 확실하다고 말했는데 처음 보는 아티펙트를 쓴다고 달라질까.”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겐 진실의 천은이 더 신뢰성이 없었다.
이윽고 파르르 떨리던 진실의 천은이 마치 수평을 이루듯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하자 교수들이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멈췄다.”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이내 모두가 결과를 요구하듯 교수들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하지만 류다 교수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나의 독특한 구조가 이렇게 비슷한데 다를 수가 없을 텐데…….”
그녀가 당황한 듯 중얼거리며 빠르게 달려가 자세히 확인했다.
“류다 교수. 결과는?”
그 물음에 류다 교수는 혼란스러운 듯 천칭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답했다.
“폭마석에 남아있는 잔류 마나는…… 미드 차이드 학생의 것이 아닙니다.”
웅성웅성.
그 한마디가 가져온 파급은 거대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확인했다. 폭마석에 사용되고 남은 잔류 마나는 그의 것이 맞다고.
하지만 진실의 천은은 비슷하되 두 개의 마나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 분명 수차례 검증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관련 학과 교수님들 전부!!”
“마나의 고유성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소. 진실의 천은은 일반적인 인간의 감지능력의 수십 배에 달하는 정밀함을 지니고 있지.”
폭마석의 마나가 그의 것이 아니라면, 미드의 결백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폭마석에 다른 이의 마나가 담겼다면 이것의 신뢰성 또한 떨어지게 됩니다.”
류다 교수는 끝까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폭마석에 미드의 마나 이외에 추가로 누군가의 마나를 부여했다면 비슷하되 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이의 마나가 미약하게 섞인다면 오히려 교수들의 감지에 걸렸을 터. 바라 교수. 둘 이상의 마나가 섞인 흔적은 발견되었소?”
“그건…… 아닙니다.”
칠성 교수 중 하나가 대답했다.
“하면 답이 나왔군. 현 상황에서 미드 차이드 학생이 유력한 범인임을 드러내는 폭마석의 마나 잔향 증거는 명확한 증거물로서 부족하다고 판단되었소. 따라서 그를 범인으로 몰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는바. 본 청문회에서는 그를 청문을 잠시 보류하겠소.”
아직 진범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의 완전한 결백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가 범인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폭마석이 증거로써 효용을 잃은 이상 증거불충분으로써 그를 몰아세울 수도 없게 된 셈이었다.
아카데미의 청문회는 그가 범인일 경우 그를 몰아넣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재판과 흡사하되 조금 다른.
그런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청문회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현재 청문회를 파하겠소.”
그 말을 끝으로 상임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웅성거리던 학생들도 의외라는 듯 청문회 현장을 바라보다 천천히 나가기 시작했다.
* * *
“빌어먹을 년이!”
쾅!!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실론 왕자는 옆에 장식된 와인잔들을 걷어내듯 쳐내버렸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청문회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손대지 마세요. 건드리면 책임 안 져요.]
귀여운 외모에 나른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겉보기엔 어린 소녀지만 그녀의 존재는 현재 마법학회에서도 경이적인 존재로서 유명했다.
율리스 중앙 장로를 잇는 마탑에 소속되지 않은 천재 마법사.
아직 세간에 그녀가 6서클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최연소 6서클 마법사라는 명칭까지는 얻지 못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애초에 극소수였다.
바실론 왕자도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그녀의 정확한 경지를 알지 못했어도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그를 더 이상 범인으로 모는 건 불가능해.”
그가 범인이 아니게 되면 차이드 백작가가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할 이유도 사라진다.
당연히 위기로 인해 무리한 선택을 강요받지 않으니 철저한 중립, 원칙을 고수하는 차이드 백작을 쥐락펴락할 수도 없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인간.
그게 차이드 백작이었으니 말이다.
“저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추가로 증거를 조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불허한다. 괜히 연관이 생기는 순간 역으로 한 방 먹을 가능성이 커져.”
바실론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분석했다.
다 잘됐는데 빌어먹을 요시아 프랑소스의 난입으로 망해버린 셈이었다.
“그년은 어떻게 할까요.”
“뭐?”
“고위마법사인 것은 맞지만 6서클도 아닙니다. 암살자들을 잘만 기용하면…….”
“미쳤나?”
바실론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하. 너무 겁이 많으십니다. 고작해야 하인스 아카데미의 조교수일 뿐입니다.”
확실히 하인스 영지가 건드리면 피를 보는 장소인 것은 맞지만 고작해야 조교수 하나에게 일국의 왕자가 벌벌 떨 이유가 있는가.
그들의 의심은 합당했지만 한 가지 사실이 달랐다.
“요시아 프랑소스는 그냥 일개 조교수가 아니다. 빌어먹게도 성자의 제자란 말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그의 외침에 부하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학생으로 위장하고 있는 암살자와 마법사였다.
“너희는 모른다. 티오니스 성자는 서적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유하고 선한 인간이 아니다.”
“하오나…….”
“그의 제자가 지금 세상에 몇 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제자는 여럿 존재하지만, 샤쿤탈라의 F반 출신 중에서도 그가 신경 써서 가르친 건 요시아 프랑소스 단 한 명뿐이다.”
즉. 그녀에게 괜한 짓을 하는 순간. 자칫 그의 분노를 사게 되면 그 후의 일은 불을 보듯 뻔했다.
“빌어먹을, 대체 요시아 프랑소스가 왜 그놈과 연관이 되어있는 건지…….”
분노를 표출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그가 눈을 번뜩였다.
“요시아 프랑소스를 건드릴 수 없다면…….”
그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너희 슬럼가에서 찾았다던 미드 차이드의 하녀, 잘 가둬놨겠지?”
“예? 아. 네. 이미 신병을 확보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왕실에 연락해. 차이드 백작가의 장녀, 베르아 차이드와 약혼을 빨리 진행하고 싶다고.”
미드 차이드로 차이드 백작을 압박할 수 없다면.
남은 수단은 하나뿐이다.
인질을 잡는 수밖에.
그가 위험하게 눈을 번뜩였다.
* * *
미드 차이드가 일말의 결백을 증명받은 그 시각.
데이비와 알하자드는 서로 손에 든 물건을 노려보았다.
“어디 남의 딸에게 선물 공세 질입니까. 미쳤습니까?”
“아빠가 딸을 믿지 못해서 선물 사 들고 가는 시점에서 서로 신빙성 없지 않습니까?”
알하자드가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카테고리였다.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엄청난 선물들을 준비한 뒤 그것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테고리를 준비한 것이다.
반면 데이비가 만든 것은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예쁜 세공이 된 팔찌였다.
“우리 에린이는 소박해서 그런 사치 별로 안 좋아합니다.”
“단순히 돈으로 미는 선물 공세는 아니죠.”
그가 자신만만하게 카테고리를 펼쳤다.
그곳엔 과거 그가 보여주던 요트의 그림이 있던 카테고리와 다르게 예쁜 인형들이 가득했다.
“이탈리아의 디즈니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캐릭터 인형들입니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사요.”
에반젤린은 인형을 좋아한다.
데이비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렸다.
“크흠! 잠시 바쁜 일이 있어서…….”
“동작 그만, 밑 장 빼지 마십시오. 서로 준비 기간은 공평하게 나눠 가졌습니다.”
“자…… 잠깐만요! 화장실만 좀…….”
“웃기는 소리 하시네.”
알하자드가 고개를 까딱이자 치킨 박스를 봉지째로 들고 있던 그의 비서 안토니오가 아티펙트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며 차원 너머에 존재하는 에반젤린의 레어가 열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동시에 에반젤린이 알하자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에 데이비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양팔을 펼쳤다.
“에린아. 아빠한테 올래?”
“어라? 아빠도 오셨어요?”
“얼굴이나 보려고 왔지.”
“바쁜 거 아니었어요? 알하자드 삼촌이 유원지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말에 데이비가 그를 노려보았다.
“크흠!”
이에 알하자드가 헛기침을 했다.
“에린아. 그러지 말고 아빠가 가지고 있는 유원지에 갈래?”
“어허. 그거 내가 선물한 거잖습니까.”
“조용히 해 이 양반아. 내 손에 들어왔으면 내꺼야.”
“허어…….”
아버지와 그 친구의 철없는 싸움을 봤는지 에반젤린의 뒤에서 걸어 나온 페르세르크가 한심하다는 듯 둘을 바라본다.
“둘 다 애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