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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48화 (1,248/1,559)

제 1248화

요시아 프랑소스는 기분이 좋은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로 하인스의 영주성을 찾았다.

“선생님! 좋은 소식이 있는데요.”

늘 그렇듯 익숙하게 그의 집무실로 침투한 그녀는 문득 평소와 다르게 분위기가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

집무실의 안쪽 책상에는 데이비가 앉아있다.

하지만 그는 척 보기에도 우울해 보이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정신계 마법으론 흠집도 낼 수 없는 데이비가 저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요시아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대체 누가…….”

본인이 스스로 저 꼴이 났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가 데이비를 공격했다는 뜻이리라.

범인은 어디 있는가.

요시아가 황급히 혈기를 끌어올리며 주변을 탐색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냥 내버려 두어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요시아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리자 편안한 복장에 배를 쓸어내리고 있는 페르세르크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미련하게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다가 영락한 꼴인 게지.”

“네?”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정확히는 알하자드와 함께 대뜸 에반젤린의 레어로 쳐들어가서 누가 더 좋냐며 선택을 강요했다는 일이 발단이었다.

선물 공세를 받는 동안은 좋아했던 에반젤린이지만 두 사람이 둘 중에 누가 더 좋냐며 선택을 종용해오자 마음속에 숨겨둔 반항심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둘 다 싫어!!]

그 이후 빽 소리 지르고 도망가버린 에반젤린의 외침에 알하자드는 물론, 데이비까지 저 지경이 된 상황이지만 요시아는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미드 차이드가 결백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어요. 솔직히 3서클 가능할지 애매했는데. 선생님이 준 마석 덕분에 성공했어요. 고마워요.”

요시아가 자랑하듯 말했다. 하지만 데이비는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한 기색만을 내비쳤다.

이에 요시아는 강수를 던졌다.

“실은 선생님께 말하지 않은 사실인데요. 미드 차이드와 차이드 백작가의 장남인 타프 차이드에게서 약속을 받아냈어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드는 데이비. 그의 눈가엔 다크서클이 퀭하니 몰려있었다.

“무슨 약속.”

“성초. 성초의 물량을 일정량 구해준다는 약속이요.”

그녀의 말에 데이비가 담담하게 그녀를 보았다.

“왜 안 놀라요?”

“네가 그걸 왜 신경 써.”

“선생님께 선물 하나 못 해줘요?”

정론에 데이비는 입을 다물었다.

“헤헤. 물론 막내인 미드 차이드가 이번에 결백을 증명하고 3서클 마법사로서 어엿한 마법사가 되었으니 이미지가 바뀌긴 하겠지만 사실상 성초를 구해주긴 힘들겠죠. 하지만 타프 차이드 장남은 달라요. 그는 차이드 백작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전부 성초의 물량을 구할 수 있도록 차이드 백작을 설득…….”

“안될 거다.”

데이비가 퀭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차이드 백작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데이비는 이미 그와 만나본 바 있었다.

“그런 인간은 자기 딸이 납치돼도 절대 나설 인간이 아니야. 성초를 재배하는 가문들은 하나같이 비슷해. 그나마 물량이 남아있는 차이드 백작가라곤 해도 좋은 결과는 얻을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데이비가 왜 이렇게 도와준 것인가.

요시아의 혼란스러운 시선에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드 차이드가 어떻게 되건 그건 내 알바가 아닌데. 넌 아니잖냐.”

요시아는 제자였다.

그것도 데이비가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친 제자나 다름없었다.

“나는 너를 가르친 것뿐이지 그 외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선생님…….”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슬슬 복귀해. 3서클까지 올랐다고 해도 너무 급하게 하면 체하는 법이다. 어느 정도는 쉬어줘야 할 거야.”

“네…….”

요시아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데이비의 말대로 사실 성공 가능성은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보스타 왕국의 막내 왕자. 바실론 뤠 보스타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

아이나가 구해준 보스타 왕국의 왕자 바실론의 행각도 그저 멀찍이서 볼 뿐이었다.

“선생님…… 성초는…….”

“그건 신경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에…… 그보다 바실론 왕자도 참 뻔뻔하네요. 진범이면서 미드도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요리조리 빠져나가다니.”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피곤한 얼굴로 데이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아장아장 걸어들어오는 다리안을 품에 안아 꽉 끌어안자 녀석이 불편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다리안. 너는 아빠가 싫다는 말하지 말거라.”

“시…… 시러! 시러!”

“…….”

데이비가 그대로 굳어버리자 다리안은 페르세르크에게 양팔을 뻗어 올렸다.

“데이비. 다리안과 자주 안 놀아주니 아이가 어색해서 그러는 게야.”

현재 다리안이 제일 따르는 이는 에이리아와 에오니샤 올 라운이라는 사실이 쓰게 다가왔다.

* * *

에반젤린은 빨개진 얼굴로 선물 받은 인형을 노려보았다.

“아빠 진짜 미워…….”

그녀에게 데이비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귀찮게 하고 자꾸 아이 취급하여 화가 나지만 세상에서 제일 믿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그를 모욕하면 당장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할 정도로.

그녀에게 데이비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저렇게 어린애처럼 다가와서 부끄럽게 아빠를 좋아하냐 묻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언니. 합격 축하해. 곧 입학이네?”

“고마워, 아마 입학식은 가지 못할 거 같아. OT에 참석하는 거로 위안 삼아야겠지?”

“아빠한테 들었는데. OT라는 것에 가면 사흘 밤낮으로 놀고 술 마신다던데.”

“으음…… 마실 순 있지만 달갑진 않네.”

에반젤린이 입학한 학과는 남녀 비율이 동수를 이루지는 않는다.

남성의 비율이 조금 더 높은 정도의 수준으로 처음엔 데이비가 남자들이 많은 곳에 가면 어떻게든 해보려는 놈들이 가득할 거라며 달갑지 않게 여기기도 했었다.

“절제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는데. 한국대도 한때엔 대면식을 하고 그랬데.”

“대면식? 그게 뭔데?”

초단이가 블라우스를 자신의 몸에 가져다 대고는 전신거울을 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 기 잡기라고 하더라구. 신입생들을 한창 굴리는 거지.”

“왜?”

“나도 몰라. 인간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위계를 잡으려 드는 작자들이야. 라고 아빠가 그러더라.”

한껏 데이비를 흉내 내는 에반젤린의 대답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머리색은 어떻게 할 거야?”

“굳이 손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다 들켰을 텐데.”

“그렇지? 언니 생각보다 유명하니까.”

초단이는 이미 에반젤린의 방송을 통해서도 몇 번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다.

평범한 학과생으로 들어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당장은 몰라도 그녀가 OT에 참석하는 순간 다 알려지리라.

데이비의 이름값에 눌려 아무도 다가오지 않게 될지. 아니면 그녀에게 상당한 관심이 쏟아질지는 사실 아무도 몰랐다.

초단이는 학과생활이 기대된다는 얼굴로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국대.

절제도 그렇고 신성 그룹의 차기 총수라고도 불리는 현아도 재학했던 학교였다.

물론 학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선물 많이도 받았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한 보따리 준비해준 모양이더라.”

신성 그룹을 관리하는 데이비의 전생의 동생인 현아와 연희 자매부터 해서 산소 남매, 데이비와 제작 계약을 맺고 있는 마가와 포도까지 다양한 이들이 그녀의 입학을 축하하며 선물을 보내왔다.

초단이는 마냥 이런 일이 즐거운지 연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 언니, 이건 선물.”

“이게 뭐야?”

“알하자드 삼촌이 준 인형.”

손바닥만 한 인형이지만 장인이 만들기라도 했는지 굉장히 섬세하게 마감이 되어있는 예쁜 인형이었다.

“가방에 달고 다녀.”

“이건…… 얼마짜리길래…….”

“몰라. 삼촌이 이야기를 안 해주더라. 고급 소재를 썼다곤 하는데.”

실상 현아가 선물해준 가방이 천만 원을 가볍게 호가할 뿐만 아니라 알하자드가 준 작은 인형이 그와 비슷하다는 걸 그녀들은 알지 못했다.

* * *

요시아는 데이비에게 들은 대로 사회공부를 할 겸 보스타 왕국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악마 같은 외적인 존재가 날뛰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개입하지 말라는 데이비의 경고도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그저 지켜볼 생각뿐이었다.

미드 차이드도 미드 차이드지만 아카데미를 나와 바로 조교수로 들어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경험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중간에 각성했다 할지라도 뱀파이어 로드의 존재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닌지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

안개처럼 흩어진 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문득 차이드 백작가의 브로치가 달린 로브를 입은 두세 명의 인영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체격을 보면 여리여리한 소녀의 체형이었다.

괜히 흥미가 돋은 그녀는 곧바로 차이드 백작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를 따라갔다.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척을 완전히 차단하고 미행을 했을 즈음. 이내 로브를 뒤집어쓴 인영은 작은 저택에 도착한 뒤 주변을 둘러보고는 빠르게 내부로 들어갔다.

더더욱 흥미롭다.

요시아는 눈을 반짝이며 스며들 듯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외의 만남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오게. 베르아 차이드 영애.”

“보스타 왕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이는 다름 아닌 미드 차이드의 이복누이.

베르아 차이드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앉아 와인잔을 들고 있던 이는 다름 아닌 바실론 왕자였다.

“내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영애를 불렀네.”

“이 야심한 밤에 귀족가의 영애를 불러내시는 것은 향후의 일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만…….”

베르아 차이드.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소녀는 말없이 바실론 왕자를 보며 불만을 털어놓듯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게. 내 긴히 영애에게 할 제안이 있어서 말일세.”

그렇게 말한 바실론 왕자는 이내 베르아 차이드에게 어떤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이것은 무엇이옵니까?”

“약혼제의서일세.”

그 한마디에 베르아 차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어째서인가? 내 듣기로 영애는 그리 욕심이 많은 인물이 아닌 거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힘이 없는 막내 왕자라 눈에 차지 않는가?”

그 질문에 베르아 차이드는 담담하게 그를 보며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하. 저는 아직 혼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거 아쉽군. 차이드 백작 영애인 자네와 내가 혼례를 올리면 더욱 왕실과 차이드 백작가 간에 끈끈한 끈이 생길 거라 여겼건만.”

아쉽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아쉽군, 내가 알기로 차이드 영애는 겉으론 차가울 뿐 동생을 상당히 아낀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슨?!”

“내, 미드 차이드의 약점을 하나 쥐고 있네. 그를 몰아붙이는 건 정말 어렵지 않지.”

그의 미소에 베르아 차이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떠한가. 내 어느 쪽을 택하든 상관은 없네만. 기왕이면 평화적으로 차이드 영애와 혼약을 치르는 거로 동생에게 가하던 손길을 모두 거둬줄 수 있네.”

“저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베르아 차이드가 눈을 크게 뜬 채 소리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요시아는 허리춤에 있던 공간 확장 주머니에서 팝콘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녀의 눈은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 있더군. 이세라라고 했던가. 오래전 차이드 백작가에서 쫓겨난 천한 하녀가 하나 있었지.”

“…….”

“그녀가 미드 차이드 영식을 구했네.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베르아 차이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가 대체 무슨 수로 제 동생을 쥐고 흔들지 예측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꼴을 보고 있던 요시아는 공간 주머니에서 콜라를 꺼내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마셨다.

두 사람은 바로 곁에 요시아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이야기지. 나는 지금 왕실의 힘을 이용해 이세라라는 하녀를 구금시켰네. 죄목이야 짓기 나름이지만 얼마든지 평민 하나의 인생을 나락으로 보낼 수 있지.”

미드 차이드의 변화는 예상외였지만 제법 흥미로웠다.

“그가 많이 변했더군. 같은 사람이라곤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그가 이세라라는 그 하녀 출신의 소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데.”

“저하. 그만두십시오. 대체 제 동생에게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직 이야기 안 끝났네. 그녀의 신변을 내가 잡고 있으면 그는 내 말을 어기지 못하게 되겠지. 뭐, 믿기 힘든 심경의 변화겠지만 꼴에 친구의 탈을 쓰고 있었던 만큼 믿어도 좋네.”

바실론의 말에 베르아 차이드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와작…… 와작…….

“나는 그리 복잡한 걸 시킬 생각이 없네. 바보 같은 미드 차이드가 자기도 모르게 큰 사고를 치게 유도할 뿐이니. 그렇게 되면 그는 다시 나락으로 내몰리겠지.”

“제발…… 멈춰주세요…….”

쪼오오옥…….

콜라를 한 모금 빨아 마시는 요시아가 마치 드라마를 보듯 다시 팝콘을 한 움큼 쥐었다.

“다만, 영애. 나도 이나라의 국민을 해치고 싶지 않아. 내가 바라는 건 형제들을 모두 제치고 왕태자가 되는 것.”

“…….”

“그 길목에 반드시 차이드 백작가의 힘이 필요하네. 그러니 선택권을 주지.”

와작와작.

“약혼제의서를 받아들이게. 그렇게 하면 내 미드 차이드에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그 이세라라는 하녀도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조하겠네.”

하녀 이세라는 하나의 도구로써 이용되고 있다. 미드 차이드가 그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를 쥐고 흔들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약혼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바실론 왕자는 그를 건들지 않겠다 약속한다.

베르아 차이드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가. 겉으론 차가운 척하지만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지 않았나. 그 동생이 이제야 잘못을 깨닫고 사람답게 살아보려 하기에 기쁘지 않았나?”

대체 어디까지 예측한 것일까.

베르아 차이드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실제로 그녀는 동생의 변화에 가장 크게 기뻐했고 기대하고 있었다.

“동생의 앞길을 막는 걸 그냥 두고 볼 텐가? 아니면, 어차피 정략혼으로 팔려갈 몸, 차라리 가족을 지켜보겠는가.”

그녀의 주먹이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강하게 쥐어졌다.

“무얼. 걱정은 마시게. 내 영애를 학대할 생각도 없으니. 게다가 나 정도면 제법 잘생기지 않았나.”

“저하는…… 정말 지독하십니다.”

“귀족의 혼례라는 게 으레 그런 법이지.”

그가 여유롭게 웃었다.

“나도 나쁜 결정을 내리긴 싫네. 당장 결정하라곤 하지 않겠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라네. 약조하지. 혼인을 통해 차이드 백작가가 내게 힘을 실어준다면, 내 평생 영애를 사랑하겠네.”

“…….”

“사흘 정도면 되겠는가? 좋은 답신을 기대하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베르아 차이드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참. 이 일, 기왕이면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알아봐야 서로 좋을 게 없을 텐데. 이 사실을 알면 미드 차이드는 절대 이 제안을 용납하지 않을 테지. 이쪽도 손해긴 하지만, 내게도 제법 손을 거들어주는 귀족들이 있다네.”

“…….”

“몰랐는가?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차이드 백작가를 건드릴 줄 알았는가?”

그 말을 끝으로 바실론 왕자가 나가고 베르아 차이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침묵했다.

요시아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 스르륵 하며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사흘 뒤.

며칠 만에 백작가를 찾아와 미드의 마법을 봐주려던 요시아는 미드 차이드가 베르아 차이드의 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가는 상황을 직감했다.

쾅!!

“누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바실론 왕자와 정략혼이라니요!!”

“소란피우지 말렴. 이 일은 내가 결정한 일이야.”

“아버지는 알고 계십니까?”

“응. 알고 계셔.”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는 미드 차이드였다.

미드 차이드가 변한 것을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한 타프와 다르게 베르아 차이드는 아직 인지하지 못했을 텐데.

흥미로운 감정을 누른 채 요시아는 안개화 상태로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언제부터 네가 내 앞날에 신경 썼다고 그러는 거니?”

“누님!!”

“조용히 하고 나가렴. 정략혼으로 바빠질 테니, 살롱과 티파티에 바쁘게 드나들어야 해. 그러니 당분간 널 만나기 힘들 거야.”

그렇게 말하며 축객령을 내리는 그녀의 모습에 미드가 씩씩거렸다.

“거짓말 마십시오.”

그가 싸늘하게 으르렁거렸다.

“누님. 거짓말할 때 버릇은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베르아가 흠칫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숨겼다.

“그래? 그럼 처음부터 잘 좀 하지 그랬니. 이 누나에게 폭언을 일삼지 않는 건 제법 놀랍지만, 우리가 그렇게 서로 아등바등 핥아주는 사이는 아니잖아?”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시끄러워. 나가. 너와는 어떤 이야기도 할 생각이 없으니.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

“누님!”

“나가라고!!!”

베르아 차이드가 악을 쓰듯 소리 지르자 미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후 베르아는 자신이 소리를 격하게 지른 것에 놀란 듯 파르르 떨었지만, 곧 차가운 표정으로 바꾸었다.

마법사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동생의 앞날을 열어주겠다는 누나의 집념은 놀랍다며 요시아는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외부인. 차이드 백작가에 간섭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드 차이드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베르아 차이드는 이내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과 이제야 바뀌기 시작한 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죄책감 때문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가씨…… 울지 마셔요…… 저 같은 천것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아가씨를 믿어요.”

하녀 하나가 그녀를 다독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베르아 차이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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