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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50화 (1,250/1,559)

제 1250화

자신의 가문을 박차고 나온 미드는 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깟 가문의 원칙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가문을 지켜야 하는 가주의 입장에선 때론 원치 않는 선택도 내려야 하는 거야.”

“하…….”

허탈한 한숨을 내뱉은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게 딸이 그 쓰레기에게 팔려 가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조금만 양보하면 지킬 수 있는 가족을?”

“네가 그 자리에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고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을 짐짝 취급했다면서.”

“그…… 그때랑은 다릅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온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가 선민의식을 버렸을 때 바뀌는 건 다양했다.

요시아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콱 잡아당겼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어쩌긴요…… 생각해놓은 게 없네요.”

“그냥 뛰쳐나올 때부터 멍청하다고 생각은 했어.”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맥도 없고 실력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본도 없었다.

무엇보다.

“왕실과의 혼약을 파기시킬 방법이 떠오르질 않네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는 답답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에 일단 부딪히고 보자는 심정으로 중앙 아카데미가 있는 곳까지 와버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쓰러졌던 슬럼가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기서 제가 쓰러졌습니다.”

“딱히 의미 없을걸? 여기서 뭘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여기서 이세라를 만났어요.”

“아. 네가 연심을 품은 그 하녀?”

“허, 헛소리하지 마시고요! 그냥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세라의 집은 저쪽이에요. 본래 이번 일이 풀리면 이세라와 그 동생들을 차이드 백작령 중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시켜주려 했…….”

그리 말하던 미드 차이드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목숨을 살려줬던 하녀 이세라의 입이 완전히 폐가처럼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부릅 뜬 그가 허겁지겁 내달렸다.

스릉…….

“어이 도련님.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그때 그의 앞에 다수의 왈패가 인상을 찡그린 채 미드를 노려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니들이 한 건가?”

“뭐?”

“이세라의 집을 저 꼴로 만든 게 너희들이냐 물었다.”

그가 섬뜩한 어조로 물었다.

애초에 소녀 가장이 치안이 극도로 안 좋은 이런 곳에서 몇 년이고 살아온 게 용할 수준이었다.

왜 이제야 생각한 것일까.

그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왈패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그래? 웃기는 소리. 저 꼬맹이 집을 저 지경으로 만든 건 당신네들 귀족 나리들 아니었나?”

“무슨 소리야.”

“우린 두목의 명령대로 저 집의 아가씨가 편히 살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입장이었다. 그걸 박살 낸 건 당신네들이고.”

그 말에 요시아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고 미드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자세히 설명해봐.”

* * *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나는 마지막 영지 관련 업무가 쓰인 서류를 내려놓았다.

성초야 없으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된다지만 내가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사실 다른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제자인 요시아가 잘하는지 괜스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얼마 전 받은 성국의 협조 문서 때문이었다.

똑똑.

“저하. 말씀하신 손님이 들었습니다.”

“들여보내.”

에이미는 내 명령에 곧바로 고개를 숙인 뒤 어디론가로 향했고, 수척해진 인상을 지닌 이를 내 집무실로 데려왔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상당할 텐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마나 게이트를 사용했습니다.”

내가 몸을 돌려 스산하게 웃었다.

“차이드 백작.”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예?”

“자기 필요할 땐 뻣뻣하게 있다가 급기야 조력이 필요하니 생각을 바꾼다라. 뭐 나쁜 건 아닙니다. 차이드 백작.”

나는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그렇게 한가한 인간으로 보입니까?”

일개 백작가의 인간이 대륙의 성자이자 라운의 왕자. 그리고 일인 제국이라 불리는 인간을 만나러 와서 통보하듯 거래를 제안하는 게?

뻔뻔한 것도 정도 것이지.

나는 오만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차이드 백작.”

“예 왕자.”

“내가 성초가 필요하다 하여 그걸 이용해서 제 도움을 받으려 했습니까.”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원리 원칙 따지며 절대 안 된다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내 질문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자기만족이죠? 그냥 넘어가기엔 자기 인생에 오점이 남을까 봐.”

날이 선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작. 원리 원칙대로 사는 건 좋지요. 그런데 눈앞에 있는 화단의 꽃이 다 말라 죽어가는데 숲을 지키는 숲지기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신랄한 비판에 그의 손이 옅게 떨렸다.

“둘 중 하나만 하세요. 그 어느 쪽을 택해도 당신을 탓할 사람 없습니다.”

내 말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간 나를 보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왕자. 당신 말고는……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미드의 친모는 그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잃고 실연에 빠졌습니다.”

아내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

그렇기에 미워해야 하는데 부인의 유언이 막내를 잘 보살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으니 그는 미드를 방치했고, 최소한의 아비로서 해야 할 의무만을 다했다.

미드 차이드의 그 끔찍한 과거 행적들이 이해가 되는 꼴이었다.

본인의 성질머리가 한몫한 것도 있겠지만 아이라는 존재가 본디 살아오는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말이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습니다. 왕자. 나는 미숙한 인간이오. 자식들을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한마디 해줄 자신이 없소.”

나는 눈을 감은 채 차를 음미하며 그의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배운 것이 그런 것인 터라 나는 엄하게만 대해왔지. 적어도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그리 생각했소. 가문 또한 마찬가지요. 가문은 우리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울타리이며 앞으로도 살아가게 해줄 원동력이오. 나는 가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바…….”

“차이드 백작.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만 말하세요.”

짜증스레 내가 중얼거리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원리 원칙을 따져 가문을 지켜온 게 아니었소. 그저 아이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미숙하게 상처만 준 못난 아비였지. 혼인을 치르기 전에 어떻게든 해주마. 그 한마디가 그리 어려웠소.”

가문을 지키기 위해 원칙을 엄하게 지켜온 그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원칙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다.

“미드가 바뀐 것을 보았소. 그 천지 분간 못 하던 아이가 그렇게 스스로를 개척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방치했던 아들보다 잘난 것이 있는가.

아무리 정론이었다지만 그 원칙과 가문을 위해서 가족들이 모조리 풍비박산 나는 걸 보고도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가.

쿵!!

그가 머리를 땅에 박았다.

“도와주십시오. 왕국의 마수에서 제 막내아들과 딸아이를 지킬 수 있게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힘을 빌려달라는 게 아닌 지혜를 빌려달라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맡기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아이나.”

이에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나를 불렀고 허공에서 다크 엘프가 스르륵 하며 나타나자 그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그 서류 건네줘.”

성국과 제국에서 보내온 협조 서류였다.

요시아를 신경 쓰며 차이드 백작가와 보스타 왕국을 주시하던 내가 더욱 깊게 조사를 시작한 계기.

[최근 성초를 통해 병사의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금지된 약물이 유통되고 있어 제국과 성국에서 비밀리에 조사 중.]

[소수의 물량이 풀렸지만, 상당한 연구를 거친 듯한 물건으로 어딘가에서 이미 연구 제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그 내용은 간단했다.

마약으로도 쓸 수 있는 성초를 비밀리에 누군가가 연구하여 못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이상하지 않아요? 특권은 있다지만 일개 말단왕자가 대체 차이드 백작가의 무슨 권한을 보고 왕태자 자리에 도전했는지.”

현실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야 정상인데 집착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있다.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아귀가 들어 맞아간다.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다면 굳이 차이드 백작가를 노릴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백작은 영리한 인간이었다.

그는 그제야 아무 힘도 없던 바실론 왕자가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듯 보였다.

“괜찮은 시나리오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보스타 왕국은 소왕국이죠. 군사력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왕권 강화와 입지를 더욱 굳히기 위해 한 가지 위험한 발상을 했죠.”

“성초를 통한, 마약 제조…….”

“마약이라는 게 단순 약물만 포함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각성제. 증강제도 포함되죠. 한번 복용하면 오랜 시간 강화되는 건 물론 익스퍼터 중에 일부는 벽을 넘을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물론 거짓이겠지만요.”

왕실에서는 이미 성초를 이용한 마약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성초의 유통은 엄중하게 국제연합에서 합동으로 관리하고 있고 아무리 해당 왕실이라 해도 조약에 서명한 이상 대놓고 그걸 횡령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왕실이 내린 결정이 바로 바실론 왕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차이드 백작가의 물량을 소리소문없이 횡령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차이드 백작가의 협력이었다.

“다만 당신은 원리 원칙을 따지며 그걸 요리조리 피해왔겠죠. 왕실에선 속이 탔을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휘어잡는 것.

“바실론 왕자는 뒷배가 없는 힘없는 왕자입니다. 그가 이런 짓을 저지르려면 적어도 왕실이 뒤에서 몰래 밀어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차이드 백작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이에 나는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마침 망나니인 미드 차이드 영식을 이용해 간을 봤을 겁니다. 대량의 빚을 지게 한 뒤 왕실에서 그걸 갚아주면서 해결하려 했을 터.”

“…….”

“그런데 이놈이 정신을 차리더니 갑자기 단기간에 3서클까지 올라가서 결백을 증명해버렸네? 그러니 왕실에선 스페어 플랜을 가동하는 수밖에.”

차선책 베르아 차이드.

“베르아는…….”

“간단히 말해서 당신과 왕실의 알력 싸움에 희생된 겁니다. 베르아 영애를 꼬드긴 방법은 간단하죠. 마침 미드 차이드 영식이 죽어가던 날 영식을 살려준 하녀가 하나 있다던데.”

“…….”

“그놈이 그 하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군요. 왕자도 그걸 알고 있으니 그녀를 이용해 놈을 협박하려 한다고 슬쩍 베르아 영애에게 말했을 겁니다.”

대화가 거의 없어도 동생을 아꼈던 누이가 내릴 결정은 간단했다.

“가문이 오로지 중요하고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아버지는 언젠가 자신을 정략혼의 대상으로 보내버릴 테니 어차피 고를 수 없는 혼담, 동생을 지키는 데 쓰자.”

쾅!!

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바닥을 내리쳤다.

자신의 행동을 봐온 딸아이가 내린 결단. 그 결단을 내리게 만든 자신의 행동에 분통이 터진 듯 보였다.

“어이쿠. 바닥 깨져요. 조심하세요.”

“크…… 크흠! 실례했소. 이 정보가 사실입니까.”

“거짓은 아니죠. 알다시피 제국이나 성국이나 이쪽과 밀접하다 보니…….”

자세한 정보를 위해 장인어른인 린디스 황제와 동생 일이라면 죽고 못 사는 굉장히 서투른 오라비인 살리반 황제가 정보를 흘끗 넘겨주었다.

“해결법은 간단합니다. 바실론 왕자를 꼬리로 내세워 꼬리 자르기를 언제든 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보스타 왕실이 제 발 저려서 꼬리를 잘라버리게 유도하면 되거든요.”

담담하게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미. 대륙연합에 서류 한 장 보낼 준비해.”

“무슨 서류를…….”

“백작. 간단하게 갑시다.”

이번 성초를 이용한 증강제에 대한 정보에 따라 내가 직접 공무를 짊어지고 조사에 나섰다고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이다.

“범인도 있으니 길게 끌 것도 없죠. 보스타 왕실은 내가 보스타 왕실을 의심한다는 소식이 사실로 확인되면 곧바로 바실론 왕자와의 모든 연결점을 끊어버릴 겁니다.

당연히 바실론 왕자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고 오히려 그를 일탈을 저지른 존재로 규정하여 곧바로 쳐내리라.

차이드 백작가는 그 일을 빌미로 당당하게 파혼을 요청할 수 있고 왕실도 이 이상 차이드 백작가를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직접 당신과 손을 잡고 도와주지 않아도 해결되는 겁니다.”

어때요, 참 쉽죠?

그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본다.

“사실 이건 백작이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독고다이마냥 굴지 않았으면 쉽게 해결했을 문제이기도 해요. 가문도 지키고 가족도 지키고.”

오로지 원리 원칙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부드러운 게 단단한 것보다 강한 겁니다. 갈대가 왜 안 부러지는지 압니까?”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는 그를 향해 나는 서류에 글귀를 빠르게 쓴 뒤 에이미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차이드 백작이 중얼거렸다.

“동아줄이 끊어진 바실론 왕자가 어떻게 나올지…….”

그의 우려대로 내 경험상 왕실에 팽을 당한 그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베르아 영애는 문제가 없지만 집을 박차고 나간 미드 차이드는 다르겠죠.”

“녀석이 만약 경거망동하면…….”

“곁에 요시아가 붙어있으니 걱정 마세요.”

제깟 놈들이 날뛰어봐야 6서클 마법사를 어찌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묘하게 감이 찌르르 울린다.

요시아를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없다지만 그녀가 뱀파이어 로드의 힘을 써야 할 상대를 만나면 골치 아파진다.

나는 검은 코트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럴 때마다 뭔가 사고가 터지더라.”

“어딜 가십니까.”

“보스타 왕국 갑니다.”

못난 제자가 사고를 치기 전에 제압해야 하니.

[아아…… 신이시여 당신의 어린양이 기도 하옵건대, 신의 은총 굉장해 엄청나!]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성녀 슈네리아 레켄의 이 건방지기 짝이 없는 기도로 인해 기분이 더욱 저하되었다.

“기도 똑바로 안 하냐 이 싸이코 성녀야.”

동시에 또 다른 기도가 밀려온다.

[당신의 어린양이 비옵건대 당신의 힘이 매우 필요하오니! 짱짱한 강신 한번 내려주옵시고 제 목숨 좀 구해주옵시고!!]

우우웅!!!!

강신.

성녀라고 해도 강신 성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소환한 전례가 있는 싸이코 성녀였다.

다른 건 못하면서 강신을 할 줄 안다니, 보면서도 쉬이 믿기지 않는다.

너 같은 성녀 만나서 너도 고생 좀 해보라고 말하던 프리아 여신의 짓이 분명하다.

그녀는 현재 강신을 할 역량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나는 잠깐 멈춰서 내가 가진 신력을 그녀에게 잠시간 빌려주었다.

신벌이라도 내려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다만 성녀에게 신력을 제공하는 일은 그리 익숙지 않았던 탓인지 나로서도 제법 허탕을 쳤고, 결국 그녀가 원하는 양의 신력을 보내는 데에 익숙해졌을 땐 이미 하루가 흐른 후였다.

그리고 나는 볼 수가 있었다.

한숨도 못 잔 듯 초췌해진 몰골을 하고 있는 백작을 말이다.

미안하네요. 내 성녀가 이 모양 이 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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