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51화
사라진 이세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슬럼가를 장악하고 있는 왈패두목이 독자적으로 그녀를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진짜 생각지도 못했네.”
왈패. 흔히 말하면 깡패였다. 그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이세라를 몇 년간 문제없이 살게 지켜주고 보호해주었으며 그녀가 납치당할 때도 조직원을 보내고 그 후에도 조사를 하고 있는가.
혹시 이세라에게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의외로 왈패 두목은 간단하게 그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은인의 아이다.
오래전 이 슬럼가를 장악하고 있던 왈패의 두목이 세력권 싸움에서 한번 패해 죽을뻔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그렇게 칼침을 맞고 죽어가던 그를 살려준 건 지금은 죽고 없는 이세라의 양친이었다는 모양이었다.
“바실론, 이 개양아치 같은 새끼.”
그리 말하지만, 과거 미드 차이드도 이세라를 멸시하고 누명을 씌워 쫓아낸 전력이 있는 만큼 뭐라 하기엔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무뢰배에 자비 없는 슬럼가의 지배자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는 이세라의 양친에게 어떤 채무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돌다 슬럼가에 흘러들어온 이세라와 그녀의 동생들을 알아본 그는 그녀가 좋은 곳에서 살아가게 돕진 않아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조직에서 그녀를 해치지 못하게 조직원들을 동원해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마 귀족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일부 왈패는 귀족의 행패에 휘말려 내던져진 그녀에게 안쓰러운 생각을 품고 있었던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또다시 귀족에게 잡혀갔다.
왈패 두목은 이 사실을 알고서 신중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이세라를 위해서라지만 함부로 나섰다간 슬럼가의 조직 전체가 개 박살이 날 터.
고작해야 조직원 수십을 부리는 조직이 귀족에게 대항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 대신 은밀하게 그녀가 어디로 끌려갔는지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생긴 거나 하는 짓은 어디 종말을 앞둔 무력 깡패집단처럼 생겨놓고 왜 이렇게 의리가 넘치나 몰라.”
“보통 왈패들이 이래?”
“아뇨. 진짜 인간 말종들이 가득한 곳이 슬럼가의 왈패조직이에요. 선생님은 그걸 왜 모릅니까?”
“왜 모르긴. 샤쿤탈라에선 엮일 일이 없었고, 하인스는 왈패라고 할만한 게 없으니까.”
괜한 짓을 위해 들쑤시다간 벌집을 지키는 왕이 나타나서 독침으로 헤집어버리는데 그놈들이 무슨 수로 버틸까.
“이세라가 특이한 케이스지.”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면 되는 일이었다.
조직이 미행한 결과 이세라가 끌려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한곳, 바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한 안개 호수의 중앙섬이라는 곳이었다.
“안 도와주실 거죠?”
“응. 구경만 할 거야. 그게 너한테도 좋을 거고.”
“조력자를 먼저 찾아야겠네요.”
현재 어떤 인맥도 없는 그가 유일하게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
“평소에 인맥 관리는 안 했지 않나?”
“있어요. 반드시 도와줘야 할 사람.”
중앙 아카데미.
직접 충돌한 학생회나 일반 학생들과 달리 이번 일에 대한 표면적인 증거만 믿고 그를 범죄자로 몰아넣었던 한 교수가 있다.
“류다 교수. 그녀는 제게 빚이 있을 테니.”
* * *
안개 호수의 중앙섬.
중앙 아카데미가 있는 대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존재한다.
물도 맑고 경치도 좋은 장소이지만 유별나게 특정 구간만큼은 매시 자욱한 안개로 가득한 장소이기도 했다.
특수한 아티펙트 없이는 숙련된 탐험가들도 길을 잃는 지역으로 방대한 크기의 호수인 탓에 한 번 들어서면 주변 지형도 보이지 않아 전후좌우조차 구분할 수 없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안개 호수의 중앙섬 내부로 진입하면 꽤 오래전 이곳에 안개가 퍼지기 전 만들어진 어떤 왕국의 유적이 존재했다.
놀랍게도 사람 하나 없어야 할 이 폐허 속에는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미드는 류다 교수로부터 뜯어낸 아티펙트 스크롤 중 기척을 완전히 차단시켜주는 스크롤을 사용해 소리 없이 그들을 따라 숨겨진 시설로 진입했다.
하지만 시설 내부로 진입할수록 점점 의아함이 그를 감쌌다.
“이상한데. 분명 사람은 있는데. 왜 아무것도 없지.”
분명 기이한 느낌은 들었다. 이곳을 지키는 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이 까지 수는 많았으나 정작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게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가만히 있던 요시아가 눈을 부릅뜨더니 그를 잡아챘다.
“선생님?”
“너 여기 있어.”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가 일어났다.
“무슨…… 왜 이러세요. 갑자기?”
“괜히 움직이다 다치지 말라고. 난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으니.”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잿빛 안개처럼 흩어져버리자 멍하니 그녀가 있던 곳을 보던 미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지는 않았다.
곧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빨리 옮겨. 영 꺼림칙하니까.”
“예.”
커다란 상자를 옮기는 이들을 발견한 그는 코를 찌르는 혈향에 인상을 찡그린 채 눈을 번뜩였다.
뭔가 있다.
요시아는 움직이지 말라 하였지만 지금 꼭 확인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이 그를 감쌌다.
이후 그는 아티펙트 스크롤을 한 장 더 찢은 뒤 빠르게 숨어들었고, 그들을 몰래 따라가 미로 같은 폐허 속을 헤맨 끝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했다.
“이세라!”
그것은 낡은 철창 감옥 속에 만신창이가 되어 갇혀있는 하녀 이세라의 모습이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녀의 몸 곳곳에는 자상으로 가득했고, 일부는 화상자국까지 있었다.
추욱 늘어진 그녀를 발견한 그는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가두고 있는 감옥 문에 손을 댔다.
당연히 지키는 이 하나 없는 이 감옥 문은 자물쇠로 강하게 잠겨있었다.
두껍고 단단하다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드는 빠르게 마법을 구현시켜 단단한 자물쇠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급히 뛰어 들어가 이세라를 구속하던 구속구들도 모두 부숴버렸다.
“이세라! 정신 차려봐! 야!”
공허한 얼굴로 늘어져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그를 본 뒤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일어날 수 있겠어?”
“아…… 동생…… 제 동생들이!!”
공허하게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발작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모진 고초를 겪은 듯 보이는 그녀가 똑바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일단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빠져나가기 힘들어진다.”
“…….”
“네 동생들도 같이 이곳으로 온 건가?”
그의 질문에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는 힘없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당신은…… 왜 당신은 저를 끝까지 못살게 구는 건가요.”
절규 어린 그 목소리에 미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괴롭히고 쫓아낸 것도 모자라 이제야 겨우 살 방법을 찾은 저희 가족을 왜 또 이리 못살게 구십니까!”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그녀에게 그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나가자. 네 동생들은 내가 반드시 찾아서 구해오마.”
“으흑…… 흑…….”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를 끌어안고 다독인 그는 빠르게 생각을 했다.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요시아 프랑소스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새겨들었던 말을 되뇌며 그는 깊게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이세라를 보호하며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본래 바실론 왕자가 납치한 그녀를 데려올 생각이었으나 이곳에서 그가 생각지 못한 더욱 무거운 어떤 현실이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일을 확인만 할 수 있으면 왕실이 강제로 만들어낸 차이드 백작가와의 연결 끈도 강제로 끊어버릴 수 있을 터.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녀를 두고 갈 수도 없었고 그녀의 동생들을 무시할 수 도 없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엔 지금만 한 적기도 없었다.
‘우선은. 이세라의 동생부터 찾아야 한다.’
그는 결단을 내리기가 무섭게 이세라를 등에 업었다.
“이…… 이게 무슨?! 그만두세요! 귀한 옷에 피가 묻으십니다!”
“조용히 해. 귀족 가문을 등졌으니 너나 나나 결국 이제는 똑같다.”
“도련님…… 그게 무슨…….”
“미안하다 말하진 않으마. 내가 한 짓이 있으니 평생 나를 용서 못할 거다.”
다만.
“그래도 지금은 저항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그 말과 함께 그는 남겨둔 아티펙트 스크롤 중 육체 강화 스크롤들을 모조리 찢었다.
막대한 마나가 그의 전신에 감돌기 시작했고 그는 기척을 숨긴 채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네 동생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알고 있나?”
“아마…… 여기서 왼쪽 통로에 있는 정체 모를 방일 거예요. 그곳으로 끌려가던 사람들을 봤어요. 제 동생을 데려간 자들도 그쪽으로 향했고.”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뭐가 되었건 확인해야 했다.
“침입자다!!!”
그때 갑작스런 굉음이 울려 퍼졌고 부산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선생님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자신이 아니면 범인은 요시아뿐이다.
심상찮은 분위기 속에서 다수의 인영이 그를 발견하고 포위하기 시작했다.
“보고합니다! 이곳에도 침입자 발견! 흡! 차이드 백작가의 영식 미드 차이드입니다!”
“뭐? 지금 장난해?! 당장 잡아!!”
아티펙트 너머로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도 알고 있었다.
바실론 뤠 보스타였다.
스릉!! 창!!
순식간에 검을 빼 드는 기사들을 보며 미드는 자신이 가진 남은 아티펙트 스크롤과 마나의 잔량을 점검했다.
등에 이세라를 업은 채 저들을 이기기 위해선 스크롤의 힘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가볍게 발을 튕긴 뒤 영창을 빠르게 읊었다.
단순 마법 실력만 가지곤 저들 중 둘만 붙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정예를 상대로 그정도도 충분한 수준. 그렇기에 그는 류다 교수에게서 빼앗아 온, 아니 협조받아온 아티펙트 스크롤을 곧바로 활성화했다.
“붐!!”
콰아아앙!!!
4서클의 폭발계 마법 붐이 터져나가며 주변의 시야를 가린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미친 짓인 만큼 그는 경로에 있는 적들을 최대한으로 쳐내며 빠르게 목적지로 내달렸다.
“큭! 놈이 도망친다! 놓치지…… 크아아악!!”
하지만 미드 차이드는 강한 이들의 추격을 몇 번이고 겪어보았다.
도망치면서 설치한 함정 마법이 발현되며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가스가 터져 나왔다.
“몇 장 없는 건데 돌겠네!”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친 그는 다시금 내달렸다.
“이세라! 내 말 들리지? 어!?”
“……네…… 네에…….”
뭔가 공허한 목소리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빠르게 격화되는 전투에 그녀의 부상도 있으니 지쳐갔으리라 그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한 미드는 눈을 부릅 떴다.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산이었다.
그것도, 핏기 하나 없는 시체의 산.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체의 산 한켠에 보이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몸에 그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버려진 아이의 얼굴은 그도 알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면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요시아의 마나가 진하게 전해져 왔다.
아무리 본래의 힘을 사용하지 못할지라도 6서클 마법사가 고전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체의 산 중간에 버려진 아이의 모습이었다.
미드는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과거 죽을뻔했을 때 이세라가 그를 살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곁에 있던 작은 아이. 이세라의 동생이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죽어있는 아이를 본 미드의 얼굴에 극도의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바실론!! 이 개새끼야 당장 나와!!!”
분을 참지 못하고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소리쳤다.
“인간쓰레기만도 못한 새끼! 대체 사람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콰직!!
그때였다.
갑작스런 울림에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천으로 단단히 동여매 그의 등에 업고 있던 이세라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 커허…… 쿨럭…….”
급소에 찔려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그의 몸을 찌른 것은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쥐고 있는 것은.
“이세라…… 대체 왜…….”
바로 그가 등에 업고 있던 이세라였다.
“간단한 세뇌야. 어때 마음에 드나?”
그때 그의 귓가로 역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왜 여기까지 왔나. 그냥 도망갔으면 목숨이라도 건졌을 것을.”
저벅저벅 걸어 나온 그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이세라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고는 곧바로 그의 복부에 또다시 날카로운 칼침을 놓았다.
“끄으으윽!!!”
몸에 총알이 관통당하는 고통을 여럿 겪어봤다고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드를 검으로 찍어누른 채 바실론 왕자는 잔인하게 그의 몸을 쑤셨다.
“커헉…… 쿨럭!”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이 미친 새끼가.”
“그래도 왕족인데 너무 험한 게 아닌가. 미드. 친구 사이에 그러면 많이 섭하네.”
미친 새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바실론 왕자는 다시금 칼을 뽑아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끄윽!!”
“별거 없어. 이곳은 오래전 뱀파이어가 연구시설로 쓰던 곳이더라고, 어떤 탐험가들이 발견한 장소기도 하고.”
그는 재밌다는 듯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연구자료는 대부분 못 쓸 것들이지만 그중 하나가 굉장히 유용했지. 인간을 세뇌시키고 강화시켜 완벽한 전투 병기로 탈바꿈시키는 병기화 프로젝트.”
그는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까진 성공사례가 거의 없었다만 결과적으로 네 뒤에 있는 년처럼 강화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거든.”
공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세라를 돌아본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이세라의 몸 곳곳에 난 자상과 화상 자국들이 스르륵 하며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초는 사용하기에 따라 마약으로도 쓰이지. 다만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그 성초의 사용법을 이용해 인간을 세뇌하고 거기에 맞춰 육신을 강화시키는 연구를 했더라고.”
즉. 바실론이 차이드 백작가를 통해서 성초를 필요로 했던 것은 이 연구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미친 새끼 왕실이 잘도 가만히 있겠구만.”
“무슨 소린가. 이걸 힘없는 왕자인 내가 혼자 가능하다 보는가?”
그의 말에 미드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네 누이 베르아 차이드를 끌어들이거나 널 빚더미에 나앉게 만들었던 계획 대부분이 왕실의 원조를 받았기 때문이네. 그게 아니면 네 마나와 거의 비슷한 마나를 위장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결국 보스타 왕국이 원했기에 이런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성초를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 가만히 있던 차이드 백작가를 건드렸다는 소리였다.
“물론 이런 짓이 지속되면 의심을 받을 수 있지만, 차이드 백작가가 그 죄를 전부 덮어 써줄 테니 문제도 없고.”
“이걸 국제연합이 알면 참 잘도 가만히 있겠네.”
그의 이죽거림에 바실론 왕자가 킥킥거렸다.
“그들은 몰라. 어차피 오늘을 끝으로 이 시설도 완전히 멸할 생각이거든. 필요한 데이터는 전부 확보했고. 더 이상 여길 남겨놓을 이유가 있나.”
“…….”
“요시아 프랑소스가 나타난 건 조금 문제이긴 했다만.”
“하. 선생님하고 직접 충돌했으면 니들 전부 끝이야.”
“아무리 티오니스 성자의 제자라도 그 괴물을 풀어놨으니 죽은 목숨이지. 내가 여기 있었다는 정보는 없고. 대부분의 죄는 저위에서 날뛰는 괴물이 다 뒤집어 써줄 테고.”
미드와 요시아는 괜한 호기심으로 이곳에 왔다가 뱀파이어의 유산을 건드려 죽었다.
그는 그렇게 상황을 포장시킬 생각이었다.
한가지 진실을 모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바로 요시아가 저런 괴물로 죽일 수 없는 뱀파이어 로드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힘을 숨겨야 하기에 뱀파이어의 힘을 사용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걱정 마라. 네 누이까지 해칠 생각은 없으니. 다만 그 과정에서 누이가 조금 고생할지도 모르겠군.”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는 말투였다.
다만 미드의 시력은 마치 졸린 사람처럼 점점 흐려질 뿐이었다.
“왕실이 내 뒤를 봐주고 내가 보스타 왕국의 비밀을 쥐고 있는 한, 절대로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손짓을 하자 이세라가 다시 검을 받아들고는 높이 들어 올렸다.
공허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는 이세라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때였다.
쓰러진 그의 시야 너머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푸른색의 작은 구체가 마치 반딧불처럼 느릿느릿 날아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저걸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는데.
잠시 생각하던 그가 이내 눈을 부릅 떴다.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떴다.”
“뭐?”
“끝났다고 이 새끼야.”
그가 이죽거리며 바실론을 도발했다.
그리고는 힘없이 푸른 구체를 가리켰다.
“저게 뭔지 알아?”
“음? 저것은…….”
처음 보는 푸른 구체. 마법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생명체라고 하기엔 이질적인 그 빛이 천장에 닿는다.
동시에.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평생 단 한 번도 볼일 없는 8서클 대마법. 이 씹어먹을 호랑 말코 같은 침팬지 새끼야.”
[8서클 폭염계]
[프로메테우스.]
쩌적!!
푸르게 빛나는 구체가 이내 회전한다. 동시에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불어났고 단단한 지반으로 이루어진 공동의 천장에서 순식간에 불어나며 경이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주변의 마나를 모조리 흡수하는 듯한 흡입력을 내보이며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푸른색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지닌 불의 기둥.
그야말로 재앙. 태초의 화염이라 불러도 좋을 대마법이 지반을 완전히 녹여버리며 하늘을 찢어발겼다.
동시에 그 구멍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안개가 마치 압도적인 힘에 찢겨 나가듯 사라지는 게 보였다.
수백 년간 사라지지 않은 안개를 일거에 없애버리는 화력이 담긴 마법이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굉음과 대지를 뒤흔드는 지진은 부산물에 불과했다.
“이게 무슨…….”
같은 마법사이기에 경악을 담은 얼굴로 좀 전까지 굳게 닫혀있던 지반을 녹여버린 화염 기둥을 보던 그가 미드를 바라보았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바실론 왕자…… 저 정도의 8서클 대마법이 여기서 펼쳐졌다는 게 뭘 말하는지 알고 있나?”
저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그 질문에 그가 한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럴 리가…… 티오니스 성자가 왜 여기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씹x끼야.”
이유는 모른다. 데이비가 절대 이곳에 나타날 리 없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치…… 침입자를 막아!!”
이내 허공 속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이가 빠르게 미드를 지나치며 뒤에서 나타난 침입자를 향해 파고들었다.
수는 대여섯. 모두 익스퍼트급 암살자들이다.
푸욱!!!
하지만 그들 전부가 갑작스레 나타난 새하얀 빛을 머금은 작은 소녀의 빛의 창에 꿰뚫리며 벽면에 처박혔다.
하인스 영지에서 유명한 데이비의 친위대장이라 불리는 이.
작은 체격과 다르게 하나의 거대한 병기나 다름없는 존재인 륀느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그를 보며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죽어가던 미드를 퍽! 하고 걷어찼다.
“환자는 입 다물고 있어라. 왜 네가 우쭐하고 난리야.”
충격으로 인해 미드의 의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데이비가 바실론 왕자를 시야에 담았다.
“바실론 뤠 보스타.”
그저 이름만 불렀는데.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압박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를 다시 건드리는 걸 보니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