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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54화 (1,254/1,559)

제 1254화

“초단이지?”

“네? 아, 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 이는 키가 상당히 큰 사내였다.

적당히 태운 피부에 얇은 차림새를 한 금발의 사내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 보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아니. 우리 학과 후배지? 길 잃은 거 같아서 도와주려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앞장섰다.

“안내해줄게. 다른 신입생들은 거의 다 모였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는 꽤 익숙한 행보를 보이며 초단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읏…….”

이에 초단이가 흠칫 놀라며 팔을 빼자 그가 잠시 놀란 듯 그녀를 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해. 버릇처럼 너무 친근하게 굴었네. 이쪽이야.”

“네, 감사합니다.”

나쁜 사람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초단이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묻는다면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말할 것이다.

베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검.

실제로 초단이는 단순 각성상태만으로도 넬타리드의 반쪽이나 타나토스에게 큰 치명상을 입힌 전례가 있는 검이었다.

오랜 시간 성장해왔고, 데이비의 손에 완성된 절세의 마검.

신검 칼디라스와는 별개로 사용자가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게 아니라면 오히려 실력을 감퇴시킬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검이기도 했다.

하지만.

에너지 체를 현신하여 인간 형태로 있는 초단이가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일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근력, 가용 가능한 마나 또한 다양하다곤 하지만 그 출력량이 적었다.

인간에 비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인간과 다를 바 없다고 하여 그녀를 해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금발의 청년을 따라가자 커다란 건물의 앞에 표지판을 든 대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과 점퍼를 입고 있는 이들 앞으로 다수의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이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 왔다!”

이윽고 금발의 청년, 김대양은 곧 각성 학과라는 팻말이 있는 곳으로 초단이를 데리고 갔다.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초단이에게 향했다.

일부는 신기하다는 시선을. 일부는 얼굴을 살짝 붉혔고, 일부는 애써 관심이 없는 척 시선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건 상당히 관심을 받게 되어버린 초단이는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하나의 계획이긴 하지만 초단이에게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대학 생활과 그 수업이었으니 말이다.

“어라? 대양 선배님, 두 분 아는 사이였어요?”

그때 과 점퍼를 입은 한 청년이 묻자 김대양이 킥킥 웃었다.

“아니. 별건 아니고, 길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길래.”

“오…… 그래도 용케 알아봤네요.”

“예쁜 후배를 못 알아볼 수가 있나.”

그의 말에 일부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보였다.

“자! 줄 서주세요! 초단 양 맞죠?”

“네? 아! 네 맞아요! 초단이라고 해요.”

“다시 들어도 신기한 이름이네. 어쨌든 저기 줄 서주세요. 여기 줄이 전부 각성 학과 학생들이니. 초단양과 동기입니다.”

존대를 하는 선배의 말에 초단이는 신기한 듯 수십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남녀성비는 남자 쪽이 확실히 많다는 게 느껴졌다.

듣기로는 성비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면 성비가 7대 3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이야…… 티오니스 성자 딸 입학했다더니 진짜였네.”

“근데, 벌써 대학생이야? 티오니스 성자 20대 아니었나?”

“그렇게 치면 에반젤린도 똑같지 뭐.”

“그게 뭔데 씹덕아.”

“구독자 수백만에 연예인보다 인기 많은 에반젤린을 몰라? 누가 누구보고 씹덕이래 촌놈 새끼가.”

“와. 이게 이렇게 되나.”

초단이를 보며 수군거리는 이들 중에는 에반젤린의 시청자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예정 시간이 다 되자 무언가 대화를 나누던 김대양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각성 학과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4학년 선배인 김대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전부 한국대 각성 학과에 들어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원시원한 성량으로 외친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이 많지는 않으니 신입생 OT를 하기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번씩하고 갈까요? 거기 제일 앞에 있는 너부터.”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는 남성을 단상 위로 부른 김대양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긴장하지 말고, 약식으로 자기소개 부탁할게.”

“네…… 네 선배님.”

긴장한 듯 한 청년이 어렵사리 입을 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 * *

하인스 아카데미와는 조금 다른 학부 생활.

초단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겉으로 말하자면 초단이를 대하는 이들은 두 부류였다.

그녀를 신기하게 여기거나 호기심이 동해 가까이 오는 이들이 반수.

그리고 질투 같은 묘한 감정으로 인해 가까이 가지 않는 이가 일부. 가까이 가기엔 부담스러웠는지 부끄러웠는지 시선은 보내거나 관심은 보이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걸지 않는 이들이 다수.

김대양을 필두로 한 과의 선배들은 이내 학과 교수님 두어 명을 데려와 소개를 해주었고, 그 뒤로 학부생들을 데리고 짐을 풀 기숙사를 안내했다.

다섯 명 정도가 한 번에 들어갈 만큼 작은 기숙사였지만 초단이에겐 그런 것 하나하나가 어떤 새로운 즐거움이며 호기심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간단히 학생 식당에 들려 식사를 마친 그녀는 커다란 운동장에서 다수의 남자들이 축구를 차는 모습을 과자를 먹으며 구경했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배들은 후배들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쟤는 싹싹한 게 학생회가 찜하겠네.”

“쟤는 운동 잘하는 걸 보면 과방 죽돌이 예약이고.”

“대학원생…… 대학원생의 냄새가 난다.”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말하던 이들은 문득 말없이 초단이를 바라보고 있는 선배인 김대양을 바라보았다.

“선배. 무슨 생각 해요?”

한 여학생이 묻자 김대양이 상념에서 빠져나오며 허허 웃어 보였다.

“무슨 생각하기는 이번 학생들도 다 활발해 보인다고.”

“속 보이는 소리하지 말고. 그래서 이번엔 누구 짚었는데요? 설마 초단이?”

그 말에 근처에 있던 2~3학년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선배.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진짜 안 됩니다.”

“과 터지는 꼴 보고 싶으면 괜한 짓 하지 마세요.”

걱정과 우려가 담긴 말투였다.

하지만 김대양은 고개를 저었다.

“미쳤냐? 그래. 초단이 쟤 생각보다 굉장히 어리숙하고 순진해 빠져서 살살 구슬리면 금방 넘어오겠지. 인간이랑 별 차이 없어서 술도 금방 취한다며. 그럼 술 먹이고 정신 차리면 사고 치는 상황도 나오긴 할 거다.”

김대양은 그런 점에서 천재였다.

“선배는 어떻게 보면 진짜 악질이에요. 선배 때문에 눈물 삼키는 후배들이 한둘인 줄 알아요?”

물론 그게 여학생이 아닌 대부분 남학생들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동기가 선배와 썸을 타고 밤을 같이 보냈다는 사실을 알면 우울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김대양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건 그 선에서 줄타기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싫다는 애는 억지로 안 건드려.”

“예이. 말은 잘하지요.”

“이 새끼가?”

김대양이 인상을 찡그리며 곁에 있던 남자를 퍽퍽 찼다.

“하늘 같은 선배를 뭘로 보고.”

“됐고. 선배, 이번엔 진짜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괜히 건드리지 마세요.”

“에이 설마. 대학생이나 돼서 아빠라는 작자가 딸 사생활까지 간섭하려고.”

“그건 모르죠. 어쨌든. 괜히 술 먹이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요.”

“안 해 이 새끼야. 나도 내 목숨 소중해.”

물론, 그렇게 안 한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저런 애들은 술 먹이고 어떻게 하면 뒷감당 못 해.”

그저 후배들은 어휴 저거 또 시작이다 라는 시선만 보낼 뿐이었다.

“괜히 우리 학교 폭발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폭군이네 완전 하하.”

“틀린 말도 아니지.”

“아. 대양 선배. 근데 이번에도 대면식해요?”

대면식.

겉으론 여러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만 사실 신입생들 군기 잡기였다.

“이번엔 넘어가자.”

“네?”

“그 짓까지 했다간 진짜 나도 감당 못 하겠다. 걱정 마라. 아무리 내가 여자를 좋아해도 과 폭파 시키겠냐.”

“하긴…… 알려지면 진짜 골치 아픈 문화긴하죠.”

보통 입학식 이후에 하거나 MT에서 하곤 하는 별로 좋은 문화는 아니었다.

지구의 상식은 이미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평화에 찌들어있던 세상은 사라졌고, 어느 정도 세상이 변했으니 말이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자 초단이도 재밌어졌는지 어느덧 친해진 동기들과 함께 응원봉을 흔들며 즐거워하는 게 보였다.

아직 어려 보이지만 대학에 왔다면 성인이라는 소리일 터.

뽀얀피부에 신기한 머리색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하면 대학 생활에 어떤 로맨틱한 환상을 지니고 있던 학생들에게 초단이는 그런 환상의 끝에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자! 3:2로 불곰 팀이 이겼으니 대머리 독수리 팀은 벌칙이다!”

이윽고 김대양이 분위기를 띄우며 소리쳤다.

이에 대머리독수리 팀이라 불린 학생들이 볼멘소리를 냈지만 어쩔 수 없이 움직이며 벌칙을 수행하는 게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참 건전했다.

평범한 대학의 OT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며 저녁이 되자 각성 학과 선배들은 교수님들을 모신 뒤 각성 학과에게 배정된 강당에 신입생들을 모았다.

미리 준비한 돗자리 위에 엄청난 양의 과자와 음료수, 술안주와 맥주, 소주 등등을 세팅했다.

“자! 다들 첫날 고생 많았고! 다들 성인이니까 술 못 마시는 사람 없지?”

김대양의 외침에 한창 기분이 좋아져 있던 신입생들은 대여섯 명씩 둘러앉아 크게 대답했다.

“예!”

“네!”

남녀 가리지 않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들을 보며 김대양은 헛기침을 몇 번한 뒤 교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교수님. 한 말씀 해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교수 또한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으며 틀에 박힌 건배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자! 교수님 건배사도 끝났으니 가자!! 내가 신입생이라 외치면 너희들이 파이팅! 하고 짠 하는 거다! 오늘은 죽자고 마셔도 좋다! 니들 선배들이 쏘는 거니까!”

그 외침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각성 학과에 온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한다!! 신입생!!”

“화이팅!!”

조금 낯간지럽지만 군중심리에 휘말린 신입생들은 그저 즐거운 듯 함께 소리쳤고, 서로 잔을 부딪치며 어색한 사이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초단이는 커다란 대접에 담긴 소주와 맥주의 합작품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뭐해? 안 마셔?”

“아…… 응, 술은 조금…….”

“흐음. 맛있는데. 크으! 이 맛이지.”

깡소주를 글라스 잔으로 벌컥벌컥 들이킨 남학생 하나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그녀에게 점점 다가왔다.

“난 박무식이라고 한다 초단이지? 잘 부탁해.”

“아. 잘 부탁해요. 초단이에요.”

“야야! 저 새끼 벌써 작업 들어간다!”

사방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술에 한창 용기를 얻어 말을 걸었던 박무식이 당황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야 이 새끼들아!!”

술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며, 한편으론 판단을 흐리게 만드니 말이다.

아빠는 술 좋아했지…….

술은 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초단이는 아빠가 술을 먹고 맨날 엄마에게 혼나는 장면을 많이 봐왔다.

반 신급인 그가 취하기 위해선 그만큼 독한 술을 마셔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김대양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렵게 생각 하지마. 술 못 마시겠으면 안 마셔도 돼. 강요하지 않으니까.”

“아 선배님.”

“여기 애들 전부 착한 애들이야. 뭐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차별하고 그런 못된 놈들 없으니까 편하게 먹고 마시면서 친해지면 될 거야. 대학 생활에 친구가 있는 건 좋은 거거든.”

그렇게 말하며 초단이의 어깨를 두드린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힘들면 선배들한테 언제든 상담 신청해도 좋고.”

“아…… 감사합니다.”

“술은 영 부담스러운 것 같으니 주스라도 마셔.”

그리 말하며 초단이의 앞에 놓인 잔을 빼앗아 가려 할 때였다.

“마…… 마실래요!”

초단이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허겁지겁 손을 뻗어 잔을 다시 받았다.

“오오. 진짜 마시게? 마시면 원샷인 거 알지?”

그의 말에 초단이는 긴장한 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술에 크게 내성이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마실게요!”

그리고는 눈을 꼭 감은 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오오오!!”

사방에서 박수 소리와 탄성이 흘러나오자 초단이는 눈을 감은 채 쓴맛이 강하게 나는 술을 모조리 마셔버렸다.

“푸하…….”

그리고는 화끈하게 대접을 내려놓고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으…… 써.”

“잘했다! 자자 한잔 더!”

이에 김대양이 술을 권하자 한창 오기가 생긴 초단이가 다시 잔을 들었다.

손을 대건, 대지 않건 선배들 입장에선 후배들을 꽐라로 만드는 건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거침없이 술을 들이켜는 초단이를 보며 김대양은 누가 보지 않게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한창 시간이 흘렀을까.

술에 용기를 얻은 초단이는 제 친구들을 여럿 사귀기 시작했고,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다가도 어느새 말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슬슬 졸기 시작하거나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먹을 상황이 되자 선배들이 하나둘씩 후배들을 모아 기숙사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초단이는?”

“아까 화장실 간대요, 선배.”

한 2학년생의 말에 김대양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슬슬 신입생들 기숙사로 돌려보내자. 혹시 모르니까 너희들은 각기 한 명씩 방에 들어가서 신입생들 상태 봐주고.”

“초단이는요?”

“내가 찾아서 데려다줄게.”

“예.”

2~3학년 후배들이 신입생들을 깨워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로 빠져나온 김대양은 한창 취했는지 바깥의 밴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잠시 멈췄다.

“아…… 별이다아…….”

해맑게 웃는 초단이를 보며 잠시 넋을 놓은 듯 바라보던 김대양은 이내 양 뺨을 강하게 쳤다.

“자자. 힘내자 김대양. 이건 둘도 없는 기회다. 저렇게 예쁜 애 꼬셔서 여친으로 못 만들건 뭐야…….”

단순 육체에 탐닉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홀로 조용히 중얼거린 그는 천천히 초단이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텁!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김대양이 흠칫 놀랐다.

묵직한 손아귀의 힘이 그의 어깨를 누르듯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는 곧 자신을 내려다보는 2미터는 훌쩍 넘는 새하얀 토끼를 볼 수 있었다.

“어…… 어어…….”

터질듯한 근육을 과시하는 변태 토끼의 등장에 놀란 그가 굳어있자 토끼는 말없이 그와 시선을 마주했고 이내 초단이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다시 김대양을 가리켰다.

이후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킨 뒤 손목을 돌려 그를 향하게 가리켰고 이내 주먹 쥔 손에 엄지손가락으로 제 목을 스윽 긋는 시늉을 한 뒤 사라졌다.

쓸데없는 생각하면 뒤진다.

생명체에 깊게 각인되는 공포에 김대양은 술기운이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꿰고 있다는 듯 바라보던 붉은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흐읍…….”

그리고는 이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초…… 초단아?”

“어? 대양 선배애.”

해맑은 미소와 애교에 가슴이 쿵쿵 뛰었지만, 그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X발…… 건드리면 죽는다. 이건 진짜…….’

생각보다 인간은 성욕보다 생존 욕구가 앞섰던 모양이었다.

결국 초단이와 어떻게든 가까워져 보려 했던 선배들은 김대양을 필두로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한 후에야 쓸데없는 접근을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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