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55화
처음엔 서로 서먹서먹하던 사이도 술이 들어가면 단숨에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각성학과 신입생들은 처음엔 낯을 가리다가도 슬슬 술이 들어가길 몇 번 반복하니 어느새 친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주요 무리로 나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리와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초단이는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새내기 남자들의 경우엔 예쁘장한 초단이가 성격도 좋으니 호감을 사는 편이었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호기심이 상당히 지분을 많이 차지했다.
물론, 그런 것을 제외하고도 그녀가 제법 인기를 끈 것은 그녀의 소박함에 있었다.
티비나 매체를 통해 알려진 싸가지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재벌만 접해오던 사람들이 세상에는 은근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보다 평범하고 소박한 부잣집 딸내미를 만났을 때 느끼는 그 괴리감은 반대로 생각보다 별 다를 게 없네? 라는 결론을 짓게 만든다.
덕분에 초단이는 기본적으로 OT 기간 친해진 몇몇을 제외하고도 제법 여기저기서 인맥을 쌓아두는 모습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둥글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저기. 초단아? 네가 보기에 신입생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어?”
“음? 아아. 정유석 선배가 제일 잘생기셨어요.”
한 치의 거짓 없이 말하는 그 대답에 멀찍이 앉아 신입생들의 과자를 보충해주던 정유석이 흠칫 놀랐다.
“오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그 대답에 사람들이 탄성을 흘린다.
그리고, 때론 술이 들어간 군중심리는 가끔씩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사겨라! 사겨라!”
“우우우!”
한창 취한 이들은 브레이크가 이미 고장 나 있었고, 두사람을 마치 밀어주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날 동기로부터 초단이의 곁에 무엇이 붙어있는지 들었던 정유석은 온몸에 핏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후배님이 좋게 봐주니 고맙네.”
오죽하면 예쁜 신입생은 일단 안면을 트고 건드리고 보는 4학년 난봉꾼 김대양이 그녀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으려 하겠는가.
처음엔 별일이네 하던 후배들이었지만 그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근육 토끼 보팔레빗의 분신체를 만난 이야기를 했을 때 일부가 현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사귀어요? 왜요?”
그런 그들의 흐름 속에서 초단이가 찬물을 끼얹었다.
“응? 왜냐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썸도 타고 연애도 해보고 하는 거지. 성인이 됐는데 그런 것도 즐겨봐야 하지 않아?”
순수한 의문을 담아 초단이와 친해졌던 연소아가 질문하자 초단이는 정말로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좋아하는 거랑 사귀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말투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들이 모두 침묵했다.
그녀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지만, 사고방식 자체의 틀이 뭔가 다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뭐 할말이 없긴 한데.”
정말 모른다는 듯 갸우뚱하는 그녀를 보며 일부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야. 우리가 뭔가 생각을 잘못한 거 같다.”
“나도 지금 그 생각했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지를 못 하고 있었지만, 초단이는 묘하게 인간의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가끔씩 보였다.
사실 그녀가 어떻든 그건 다른 이들이 언급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초단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은 소문으로도 들어 알음알음 알고 있었기에 그 괴리감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푸하…… 이거 맛있다아…….”
그때 초단이가 칵테일을 꼴깍꼴깍 마시더니 한창 취한 얼굴로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근본적으로 다르긴 해도…… 뭐 상관있나.”
“아쉽게 됐네! 유석아.”
“이상한 소리 마세요. 너희들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쟤 술 적당히 먹게 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먹으면 내일 숙취 때문에 또 고생한다.”
“네.”
후배들은 뭐 상관없나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펑!!!
갑자기 초단이의 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옅은 연기가 퍼졌다.
“음?”
“뭐야!”
갑작스런 사태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곧 연기가 걷혔을 때. 그들은 다른 이유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후하…… 누, 누니 빙글빙글 도라아…….”
초단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너무도 작고 귀여운 쌍둥이로 보이는 두 아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으우…… 기분 좋아아…….”
순식간에 홍단이와 청단이로 나뉘어버린 그 모습을 보며 정유석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마치 그녀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친척 형한테 이미 듣긴 했는데 진짜 놀랍네.”
“뭐야?! 뭐야 뭔데!”
“꺅 귀여워!”
앙증맞은 두 꼬마의 모습에 일부는 귀엽다며 야단법석을 부렸고 일부는 당황한 듯 소리쳤다.
“전에 초단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사장이 제 친척인데요. 듣기로는 저 두 꼬마가 초단이래요. 저 빨간 머리 애가 홍단이, 그리고 저 파란 머리 애가 청단이.”
“뭐야. 그럼 꼬마애가 합쳐져서 초단이야?”
“와 근데 진짜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딸아이 이름이 홍단이 청단이가 뭐야…….”
“야. 조용히 해 미친놈아.”
순간적으로 혹여 또 그 토끼가 나올까 알만한 선배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근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네. 솔직히 곱단이 향단이도 있는데 홍단이 청단이가 훨씬 더 어감도 이쁘긴 하다.”
“근데. 그렇게 되면 초단이도 어린애라는 소리 아닌가?”
“인간이 아니잖아. 기준을 사람에 대면 안 되지.”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김대양에게로 이동한다.
그 시선은 마치 저런 작은 어린애에게 손을 대려 한 미친놈들 보는듯한 시선이 담겨있었다.
“미친. x발! 난 소아성애자가 아니야 이 새끼들아! 나도 이런 줄 알았으면 절대 안 건드렸지!”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를 쥐어뜯는 그를 보니 그조차 초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
“헤헤. 언니이…… 우리 아빠 어디 있서어?”
잔뜩 취한 듯 홍단이가 곁에 있던 동기 여학생의 소매를 잡고 묻자 그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글쎄? 언니는 잘 모르겠네.”
“우웅…… 아빠 보고 싶어!”
투정부리는 듯한 그 말투에 여학생이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몸을 비틀고는 홍단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아! 귀여워라!”
“갑갑해!”
버둥거리지만 취기가 이전됐는지 홍단이의 손아귀엔 힘이 없었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은 소녀의 애교에 순식간에 부산스러워졌다.
이후로도 홍단이와 청단이의 애교는 각성학과 학생들 전체를 휩쓸었다.
보통 꼬마들이 귀엽다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는 치명적인 앙증맞음으로 여기저기 쪼르르 뛰어다니며 과자를 집어 먹고 혀가 꼬부라진 듯한 말투로 사람의 마음을 대뜸 녹여댔다.
“티오니스 성자가 왜 딸등신이라 불리는지 잘 알겠네.”
“나 같아도 저런 딸 있으면 진짜 하루하루가 흐뭇하겠다.”
“와…… 보통 저 나잇대 애들 보면 진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 안 듣고 밉상인데…….”
일부는 경악했다.
“아. 전에 유아교육과 수업 들을 때 교수님이 그러더라. 미운 3살 죽이고 싶은 7살.”
“그니까. 내 조카만 해도 저 나이 되면서 얼마나 고집이 센지……. 7살 됐을 때 그 쪼그마한 악마가 잔머리 굴리니까 진짜 돌아버리는 줄.”
순식간에 각성학과 최고의 인기쟁이로 등극해버린 두 아이는 아주 신이 난 듯 노래를 부르고 애교를 피우며 과자를 흡입했다.
새내기는 물론 선배들까지 귀여운 두 아이의 모습에 손에 쥔 과자들을 먹여주기 바빴고 도대체 저 작은 몸에 어떻게 이 많은 과자들이 들어가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홍단이와 청단이는 주는 대로 먹어치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창 술이 들어가서 축제 분위기가 된 새내기들 판 사이에서 신나게 놀던 두 아이는 취기라는 무기를 등에 업고 더욱 치명적인 짓을 했다.
“헤헤. 홍다니 춤 잘 추는데!”
“청다니도 할 수 있어!”
“오, 그래? 멋지네.”
두 아이의 자랑에 마치 귀여운 딸을 보는 듯 그곳에 있던 이들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보여줄까?”
마치 고민하는듯한 말투에 서로 눈치를 보냈다.
척 봐도 부탁해달라는 듯한 아이 특유의 행동이다. 이에 한 명이 총대를 메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꼬마 아가씨들 춤 한번 보여줄래?”
“헤헤. 좋아!”
그리고는 쪼르르 뛰어가 중앙으로 향했다.
서로 눈치를 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을 보며 누군가가 두 아이를 흉내 내듯 조용히 소곤거렸다.
“준비됐어, 청?”
이에 또 한명이 받아치듯 드립을 받는다.
“물론이지, 홍.”
순간적인 드립에 일부가 웃음을 터뜨리거나 말거나 두 아이는 귀여운 율동을 하듯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무릎을 까딱였다.
“꼬물꼬물~”
그리고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칼군무를 보여주듯 율동을 펼쳤다.
이에 광기에 휩싸인 각성학과 학생들은 마치 엄청난 가수들을 응원하듯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순식간에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한 두 아이는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행동 자체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한참 동안 신나게 뛰어다니며 이쁨받은 탓인지 기분이 잔뜩 좋아진 두 꼬마가 서로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쉿. 얘들 잔다.”
“아 진짜 너무 귀여워.”
“사진 찍어뒀다가 내일 보여줄까.”
“헛소리 말고 한 명 따라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한 선배가 청단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며 고갯짓했고, 흐뭇한 얼굴로 홍단이의 자는 모습을 보던 한 신입생이 금방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선배. 얘는 제가 옮길게요.”
혹여라도 두 아이가 깰까 조심스레 안아 든 두 사람이 청단이와 홍단이를 안아 기숙사 쪽으로 나갔다.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가만히 있기를 잠시.
신입생들은 조금 전 홍단이와 청단이가 보여준 애교에 넋이 나갔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 대화주제의 일부는 두 아이로 나뉘어버린 초단이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량 차지했다.
그리고. 새내기가 아닌 선배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김대양에게 시선을 보냈다.
“와 선배. 진짜 인간말종인 건 알았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x…… x발 아니야! 미친 새끼들아! 아니라고!”
“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어린애를 노린 거예요?”
“아니라고 미친! 난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니까! 야! 나도 예쁜 후배보고 마음이 동할 수도 있는 거지. 설마 이런 줄은 몰랐지!!”
그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선배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야. 근데 쟤 성인이라고 술 먹인 거 아니었냐? 암만 봐도 아직 5살 조금 넘어 보이는 꼬맹이 같은데…….”
초단이는 전혀 문제없다며 술을 마셨지만,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던 두 꼬마를 보는 입장에선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던 김대양이 벌떡 일어났다.
“야. 니들 잘 들어, 어이! 새내기들도 전부 집중!”
그가 소리친다.
“이제부터 쟤한테 절대 술 먹이지 마라!”
“쟤는 진짜 죄책감 들어서 술 못 먹이겠다.”
“다음부터 술자리에 가도 쟤는 음료수만 먹여!”
초단이 금주령이 만장일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는 별개로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새하얀 근육 토끼는 홍단이 청단이가 한창 무릎을 까딱이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 저장했다.
[홍단이 청단이 합동 율동영상 이름으로 저장되었습니다. 파일을 전송하시겠습니까?]
[yes]
-이 귀한 걸, 너 포상 휴가.
데이비는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