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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56화 (1,256/1,559)

제 1256화

두 아이로 나뉜 초단이는 OT 기간 동안 잠을 자기 위해 배정된 기숙사에서 늦잠을 잤다.

평소 이른 시간에 일어나던 것에 비하면 그녀의 늦잠은 조금 신기한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으음…….”

“홍다니꺼야…….”

정확히는 초단이가 아닌 청단이와 홍단이었다.

두 아이는 서로가 소중하다는 듯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고, 먼저 눈을 뜬 동기들은 그녀들의 그런 귀여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혹여 깰까 조심스레 먼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홍단이와 청단이가 깨어나 다시 초단이로 합쳐졌을 땐 동기들이 전부 나가고 한 시간 정도 후였다.

“초단아. 일어났어?”

“끄응…… 네, 선배.”

“그래. 다행이다. 어제 네가 술에 많이 취해서 좀 걱정했어.”

“죄송해요. 선배.”

“아니, 뭐. 처음 술 먹는다는데 그럴 수도 있지. 사고도 안 치고 잘했어. 그보다 식사는 어떻게 할래? 기존 식사는 이미 끝나서 따로 먹어야 할 거 같은데.”

멍하니 앉아 부스스한 머릿결을 가볍게 흔드는 초단이를 잡아 일으키며 선배가 물었다.

“괜찮으면 우리 동방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라도 때울까?”

“동방이요? 그게 뭐예요?”

“뭐긴 동아리 방이지. OT는 조금 전에 끝나서 전부 해산했어. 너 너무 잘 자서 조금 더 자게 두자고 선배들이 그러더라. 널 태우러 오신 그 비서님? 그분도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깨면 다시 오신다고 하셨고.”

“아하.”

초단이는 문득 자신이 전날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무슨 짓 했나요?”

“하긴 했지.”

그 대답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괜찮아. 그냥 청단이 홍단이로 나뉜 거 뿐이야. 유석이한테 들은 건데 전에 영상으로 본적은 있었지만, 진짜 귀엽더라.”

“아…….”

막대한 마나를 이용해서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가 술에 취하면서 제어를 잃고 두 아이로 나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술이 가져온 여파가 적은 건 아니었다.

마치 필름이 끊긴 것 같은 묘한 거부감도 들었다.

“내가 볼 때 너 술은 잘 안 어울려. 어지간해선 마시지 마.”

“그래야 할 거 같아요.”

“일단 이거 마셔.”

숙취해소제를 건네준 그녀는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학생 본관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조용한 복도를 지나 낡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걱정 말고 들어와. 오늘은 나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아하. 그런데 여긴…….”

“우리 동아리. 여행동아리야.”

그녀의 말에 초단이는 눈을 반짝였다.

마침 가장 관심 있던 동아리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대학이 다시 열리고 동아리 활동도 다시 하곤 있는데. 알다시피 지구 전체적으로 난리가 난 게 얼마 전이니까. 좀 어수선해. 동아리원도 거의 다 빠졌고.”

정확히는 대부분의 한국대 학생들이 사라졌다.

앞으로 다시 늘어날 테지만 한때 한국은 엄청나게 많은 도시를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전례가 있었다.

“킹뚜껑?”

“좋아요. 김치킹뚜껑으로 부탁드려요.”

“오올, 맛잘알~”

기분이 좋은지 선배는 금방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이것도 최근에 다 산 것들이라 걱정 안 해도 돼. 복구가 참 빨랐지. 운이 좋았어. 몬스터가 그렇게 날뛰어도 이 학교 부지는 몬스터가 없었다고 하더라.”

정확히는 여러 요소로 인해 정부 자체에서 대학들을 부흥하기 위해 여러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선배 이름은 알아?”

“아린 선배시죠?”

“맞아. 2학년 김아린. 뭐, 그 난리가 나는 바람에 휴학이 길어져서 나이는 좀 있지만.

김아린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보통 여대생의 기준으로 잡아도 잘 없는 나잇대이기도 했다.

“별수 없지. 사실 지금 대학생 상당수가 나처럼 학년에 비해 나이가 많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김아린의 경우 여러 면에서 파란만장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라면을 후후 불어먹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초단이는 초를 재듯 손가락을 까딱이다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후루룹 마셨다.

“그래도 세계 재벌들 우스운 아가씨가 컵라면은 익숙한가 봐?”

언 듯 보면 빈정거리는듯한 질문이었지만 그녀의 눈은 정말로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검소하게 살라고 하시니까요. 실제로 동생 에린이는 일주일 용돈도 그리 많지 않아요.”

“너무 짠 거 아니야? 아, 이건 좀 선 넘었나?”

“아녜요. 아버지는 정말로 존경스러운 분인걸요.”

초단이는 키득거렸다.

“돈이야 부족하지 않지만, 너무 후한 삶을 살면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스스로 병든다고 하셨어요.”

그 병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한마디로 알 것 같았다.

지독한 선민의식.

흔히들 드라마에서도 재벌들을 표현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했다.

“아…… 네 아버지도 참 대단한 분이네. 솔직히 나이는 내가 더 많다고 들었는데. 생각의 깊이가 다르네.”

그제야 데이비가 왜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그녀였다.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네? 아뇨. 딱히.”

“우리 학과에 무슨 이유로 입학했어? 너도 알다시피 각성학과…… 미래가 보장되었다곤 해도 좀 근본 없잖아?”

몬스터가 나타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지구에서 마나, 균열, 각성자에 관한 학문이 발달해봐야 얼마나 발달하겠는가.

게다가 각성자들이 대학을 진학하는 비율이 낮은 탓에 실질적인 운용을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우리 학과는 본래 다른 이름이었거든. 그런데 하는 일도 비슷하고, 워낙에 각성자 관련 발전도 많이 되는데 국가에서 밀어주니까.”

실제로 각성학과의 선배들 중 다수는 타 과에서 전과하거나 이번에 과의 이름이 전환될 때 부여받은 타과 편입특권을 포기하고 남은 이들이 많았다.

체계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는 학생보다 개척자에 가까운 학과였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현 마나 현상 같은 각성 관련 정보에 대해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의미로 하나의 실전경험을 배우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학교 입장에선 선배긴 해도. 뭐 다 그 인간들이 그 인간들이야. 특히 4학년 선배 중에는 나이 20대 후반도 많으니까.”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돌아온 게 용할 정도인 케이스도 많았으니 말이다.

“후루룹! 그래도 사람이 대단한 게 그 짧은 몇 년 사이에 옛날 인프라를 다시 복구하고 있다는 거야.”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그 넬타리드인가 하는 신의 가호인가?”

키득거리지만 그녀는 그 말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아마 진짜일걸요.’

겉으로 활동하는 건 케인과 프레이아. 즉 발키리아지만 넬타리드는 지구의 생명체를 사랑하는 신.

그렇기에 어떻게든 지구의 흐름에 개입하여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만들고 있으리라.

“진짜 많이 죽었지. 한국에 그 많던 대학 반 토막 나고, 진짜 도시들 죄다 초토화되고…… 복구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학생들도 대부분 사라져서 원래 우리 부의 동아리원이 20명이 넘었는데. 이제는 4명밖에 안 남았어.”

물론, 학생의 전체수가 줄어 동아리 최소 인원의 문제는 사라졌지만 말이다.

“우리 세대는 그런 세대야. 뭐, 네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

키득거리는 선배 김아린의 말에 초단이는 옅게 웃었다.

“저…… 선배.”

“음?”

“신입생은 동아리 가입이 가능한가요?”

“당연히 신입생이니까 되지. 왜? 여기 들어오게?”

“여행동아리. 관심 있어요.”

그녀의 미소에 김아린의 얼굴에 화색이 띠었다.

“낙장불입?”

“그게 무슨 뜻이에요?”

“못 물려준다고.”

그녀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월말에 여행을 갈 거야. 그때 같이 가자.”

“어디로 가는데요?”

“폐병원. 흉가체험.”

여행 동아리가 흉가 동아리였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흉가체험은 아니야. 근처에 물 좋은 계곡이 있거든. 경치도 좋은 산이 많고. 근데 근처에 폐병원이 있으니까 겸사겸사 멀리서 구경도 할 겸.”

직접 갈 이유는 없었다. 흉가체험 동아리가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너 귀신 봐?”

“귀신을 믿으세요?”

“아니 뭐. 마나도 있고 몬스터에 망령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을까. 물론 근본적으로 다르긴 한데…….”

망령조차 살아있는 물체라 칭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귀신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애초에 세계의 흐름,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초단이에게 귀신이라는 존재는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친척 중에 무당이 하나 있거든. 근데 네 아버지가 다녀간 뒤로 어떤 유명하든 흉가에 귀신이 싹 사라졌다더라.”

그녀의 말에 초단이는 생각했다. 이전 귀신과 관련되었을 때 데이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말이다.

“살려달라고 기어서 나오는 거 다리를 붙잡고 다시 질질 끌고 들어가서…….”

“응?”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행 갈게요! 꼭 가고 싶어요!”

“잘 생각했어. 뭐 흉가체험이라곤 해도 사실 폐병원 근처에서 천막에 텐트 치고 노는 게 목적이야. 으스스한 장소에서 하는 여행도 하나의 풍취니까.”

묘한 느낌이 드는 초단이였다.

* * *

초단이가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은 그녀가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을 축하하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또라이는 반드시 존재했다.

“이거 맛있어 보이네요.”

“추가 의견을 제시. 한국대 학생 식당 명물이라 불리는 핫 윙과 수프의 맛을 조사요청. 륀느가 소문난 맛집을 높게 평가.”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륀느가 후드 너머로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러네요. 학생식당. 얼마나 맛이 좋길래 그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지 한번 직접 가볼 가치가 있어 보이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또 한 명의 검은 로브가 후드를 슬쩍 넘겼다.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엘프의 상징인 긴 귀가 흩날렸다.

“점순이도 가실 건가요?”

“맛만 좋으면야.”

“생명체는 자연스레 미식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어요. 맛이 없으면 파리만 날려야 정상이랍니다.”

담담하게 말한 유리아가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검은색의 커다란 가방에 무언가를 주섬주섬 담았다.

“동작 그만. 방금 뭘 넣은 거야.”

소설책을 읽고 있던 점순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유리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유리아는 해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폭마석이에요.”

과거 미드 차이드가 중앙아카데미에서 폭마석을 이용해 박물관을 날려버렸다는 의혹을 받았을 때 범행도구로 사용된 바로 그 폭마석이었다.

“아니…… 밥 먹으러 가는데 그걸 왜.”

그 질문에 유리아는 빙그레 웃으며 가방을 제 뒤로 숨겨버렸다.

“아. 난 안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점순이가 급히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뒤를 잡은 륀느가 그녀를 제압해버렸다.

“미식연구회의 활동에 매우 필요.”

“이거 놔, 이 싸이코들아! 어렵게 자금확보까지 해놓고 또 사고 칠 생각을 하고 있네. 진짜!”

“사고라니요. 저희는 엄연히 깔끔한 연구회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유리아의 얄미운 말투에 륀느가 이를 드러내며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없는 웅장한 브금을 재생시켰다.

그러면서 양손을 모아 마치 비트박스 하듯 어울리지 않는 비트를 쑤셔 넣었다.

“둠칫 둠칫. 자가장자가장~ 지지징!”

겉보기엔 표정이 없는 꼬마 소녀지만 륀느의 본질은 1만 년 전부터 신에 의해 직접 창조되고 존재해온 살아있는 역사이며 인지를 초월한 생체 골렘이었다.

정말 괴악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륀느였다.

비명을 지르며 점순이가 버둥거렸다.

하지만 륀느의 우악스러운 힘에 짓눌린 점순이는 결국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 미친년들아! 전에는 에반젤린 옆에서 수작질하다가 그렇게 당해놓고 건드릴 게 없어서 이번엔 초단이랑 엮이려 들어?!”

“어머, 누가 들으면 이상하게 들리겠네요. 저희는 그저 새로운 맛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할 뿐이랍니다.”

“폭마석의 화력은 일반적인 불과 다르다고 분석. 따라서 완성된 음식을 독특하게 가열하여 더욱더 새로운…….”

“아니 터지면 어쩔 건데!”

“그거야…….”

유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안 들키면 되죠.”

미친년들에게 상식은 필요한 요소 따위가 아니었다.

잔망스럽게 웃는 싸이코 엘프와 아직도 기이한 음악을 송출하는 생체 골렘을 보며 점순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자, 가. 어휴, 맛있는 거 찾아서 먹으면 되지. 꼭 거기에 기괴한 드레싱을 해야 하나 진짜…….”

아무리 미식회라 할지라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좋은 예시로 민트 초코 같은 극심한 취향 차이도 존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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