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0화
걱정하던 코오나를 안심시킨 뒤 돌려보내는 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코오나로써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야! 거기 말뚝 제대로 박아!”
초단이는 여행동아리 멤버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천막을 설치하는 것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외부에서 생활하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어떤 목적을 떠나서 단순히 놀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경우는 사실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스스로 혼자 이렇게 타인들과 부대끼며 여행을 온다는 사실 자체가 묘하게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건 이렇게 하고…….”
원터치 텐트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초단이의 곁으로 그녀를 여행동아리로 데려왔던 선배 김아린이 다가왔다.
“어때, 물 좋지?”
근처에 있는 계곡물을 가리키는 아린의 손에는 이미 커다란 튜브가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든. 그래서 한산해서 우리끼리 놀기 딱 좋아.”
그녀는 이 장소를 추천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정말 고요하네요.”
“그렇지? 실은 원래 이곳도 사람이 많았는데. 이 시기에 귀신한테 홀렸으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이 잘 안 오거든, 웃기지? 폐병원까지 가려면 산을 타야 하는데 누가 그 먼 곳에 있는 걸 홀려, 진짜로 그랬으면 심각한 문젠데.”
그녀는 남에게는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레 눈치를 살핀 뒤 초단이에게 작은 괴황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우리 동아리엔 유명한 무당집 아들내미도 있거든.”
척 보기에도 묘한 힘이 서려 있어 보이는 부적이었다.
“뭐, 퇴마니 그런 건 아니고, 귀신한테 홀리는 걸 방지해줄 거야.”
여행에 온 사람들은 초단이와 김아린을 제외하고 4명이었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남자가 둘 여자가 둘 더 있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해! 얼른 정리하고 물에 들어가자!”
시원시원한 인상을 지닌 남성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그대로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어어? 같이 들어가요. 선배!”
뒤이어 신이 난 듯 물로 뛰어 들어가려던 아린은 빠른 눈초리로 초단이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씨익 웃었다.
“선배?”
“초단이도 가자!”
그리고는 바위에 걸터앉아있던 초단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꺅! 자, 잠깐만요!”
“뭔 헛소리야! 물에 놀러 왔으면 일단 물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생각하는 게 국룰인 거 몰라?”
풍덩!!
순식간에 초단이를 끌어안고 물에 다이빙해버리는 아린의 패기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푸훕!!”
그리고 물속에 잠겼다가 빠져나온 초단이가 머리카락을 튕기며 수면 밖으로 나온 뒤 입을 삐쭉였다.
“다…… 다 젖었잖아요…….”
“여분 옷 있지 않아?”
“있긴 한데…….”
“그럼 놀아!”
굉장히 저돌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아린의 행동에 결국 초단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경험은 사실 보잘것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겐 말로만 들어보고 매체를 통해 보기만 했던 것이기에 직접 겪어본 세상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엔 울상을 짓던 초단이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너무 즐거웠던 탓일까.
어느새 그녀는 서먹서먹하던 동아리원들에게 빠르게 녹아들며 같이 놀았다.
그렇게 신이 난 듯 놀던 동아리가 물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2시간 정도 후였다.
“후…… 자. 식사부터 하자. 오늘은 내가 집도한다.”
한 선배가 커다란 칼을 꺼내 들며 생선을 산채로 회 치기 시작했다.
다만, 여행동아리원 치고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와아…… 엄청 능숙하시네요?”
“당연하지, 성율 선배는 횟집 아들내미거든.”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비늘을 벗겨내고 내장을 빼낸다. 순식간에 우럭과 광어, 그리고 돌돔을 횟감으로 만들어버리는 성율의 손놀림에 부원들은 다른 준비를 빠르게 했다.
그리고, 무당집 아들이라 소개한 배윤성은 오랜 친구인 박현지와 함께 불판을 세팅한 뒤 돼지 목살을 익숙하게 구웠다.
“야. 무당집 아들이 고기 먹어도 돼?”
“먹으면 안 될 건 뭔데.”
“하긴. 티오니스에서 온 엘프도 육식하는 마당에.”
“아…… 그 아가씨.”
유리아 헬리샤나.
그녀의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자! 완성!”
순식간에 커다란 접시에 횟감을 올려놓은 박성율이 간이 테이블에 회를 올려놓는다.
“야 진짜 우린 복 받은 거야. 회를 누가 이렇게 그 자리에서 처서 먹냐?”
“하긴. 성율 선배. 잘 먹을게요.”
키득거리는 동아리원들을 보며 초단이도 젓가락을 들었다.
“성율 선배. 잘 먹을게요.”
“어…… 어? 그래! 초단이도 많이 들어! 마음 같아선 참치라도 그 자리에서 회 쳐주고 싶은데 공간이 너무 커서 안 되겠더라.”
초단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심성이 나쁜 이들은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아리원들은 이내 초단이가 가져온 텐트와 장비들을 세팅하는 데 도움을 주고는 모닥불을 만들어 불을 피우고 이야기꽃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역시 여행은 모닥불이지.”
“야 이거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뭐 어때. 주변에 돌밖에 없는데. 그리고 여기 와서 번개탄 굽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이런 일이 익숙한지 무당집 아들 배윤성이 박현지와 투닥거렸다.
“어때 재밌지?”
“네. 엄청 재밌어요.”
“일단 첫날은 이렇게 놀고. 내일 일은 내일 공개하자. 그게 더 재미있으니. 그보다 윤성아, 이상한 건 없어?”
동아리의 흐름을 총괄 책임하는 김아린의 질문에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넣던 배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음기는 적당하고, 초단이 덕분인지 양기가 많아.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 있다가 텐트랑 주변에 부쩍 좀 붙여놓고 올게.”
“그래.”
“저기…… 아린아.”
그때 가만히 있던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그 부적 효과 있는 거야?”
“얘는? 윤성이가 저래 보여도 진짜 영험하다니까? 아무 문제 없어. 그리고 다 미신이야. 귀신 나온다니 뭐니 하는 것도.”
그 말에 초단이와 진아름이 무당집 아들 배윤성을 바라보았다.
“진짜야?”
“저기 폐병원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상관없을 거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저기 직접 들어가지 마라. 지금 시기에 음기가 너무 강해서 들어갔다가 홀리는 인간들 수없이 봤으니까.”
윤성과 현지는 같은 나이였고 아린과 진아름은 그들보다 한 살 더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넷 모두가 2학년인 탓인지 아니면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 생각보다 스스럼없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가방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 팔랑팔랑 흔들던 배윤성이 잠시 주변 눈치를 살폈다.
한창 놀고먹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조금 어두워진 느낌이 들었다.
사람 하나 없는 곳이다 보니 언뜻 보면 굉장히 스산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니 윤성아. 저기 진짜 귀신 나와?”
그때 궁금해졌는지 가장 연장자인 박성율이 물어왔다.
“말도 마세요. 선배.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흉가가 많은데 저긴 진짜 어휴…… 절대 가기 싫으니까.”
배윤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이야기나 해줄게요.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저기 관련해서 출장을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가 하는 이야기는 공포 괴담이지만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재미이기도 하거니와 동아리원들 대부분이 생각보다 괴담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터라 말리는 이 하나 없었다.
“그때 영화 촬영한다고 스태프하고 감독하고 배우 몇 명이 먼저 사전답사를 갔다가 있었던 일인데요.”
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동아리원들은 더욱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워낙에 말재주가 좋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런 윤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단이는 갑작스레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안 놀아라?”
“그…… 글쎄요.”
아린이가 황당하다는 듯 초단이를 보았고 초단이는 잠시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귀기는 그렇게 무서운 편이 아니라서요.”
그 말에 배윤성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쟤 영기가 엄청나. 아니 이걸 영기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혹시라도 뭔 일이 생긴다 싶으면 쟤한테 딱 붙어 있어.”
“윤성아 나도?”
“넌 살아있는 영기 덩어리니까 더 신경 써라.”
배윤성이 친한 친구인 박현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흩트려 놓고는 고기 집게를 들었다.
“하여튼 촬영한답시고 이래저래 손을 대다가 갑자기 한 명이 없어진 거예요.”
다시 이야기를 재개하는 그를 보며 초단이는 손끝에 힘을 끌어모았다.
검의 형태로 데이비와 함께 휘둘러질 때 많은 힘을 발휘해온 그녀지만 인간의 형태로는 따로 어떤 영향력을 끼친 적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직 그녀의 힘은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그래서? 한 명이 없어져서 어떻게 됐는데?”
“어쩌긴 뭘 어째. 그때 어머니는 주변을 둘러보고 계셔서 상황을 바로 본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연락도 안 되고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괜히 들어갔다가 사고 날 거 같으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들린 거예요.”
모두가 숨을 죽인다.
“스르륵 탁…… 스르륵 탁…… 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든 윤성이 마치 귀신을 흉내 내듯 양손을 스르륵 올렸다.
“뭐가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니까 그 자리에서 다 얼어붙었지. 솔직히 그때 그곳에 있던 인간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래서 뒤도 안 보고 도망쳐야 한다고 난리가 났는데. 감독 입장에선 음향 PD를 두고 갈 수가 있나. 결국 자기가 찾으러 갈 테니까 무전기 계속 연락해달라고 했지. 그렇게 내려갔…….”
파스스스…….
“꺄악!!”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박현지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배윤성에게 달려들어 매달리다시피 한 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고 나머지 인원들은 갑작스런 소리에 긴장한 듯 소리가 난 수풀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뭐야 윤성아?”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산짐승 같아요.”
그런 그들을 보던 초단이가 입을 열었다.
“산짐승?”
“네. 귀가 좋은 편이라 구분은 쉽게 할 수 있어요.”
동시에 수풀 속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쑥 하고 나오더니 코를 킁킁거리고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모두가 안심하던 찰나.
초단이는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갔다.
‘저건 뭘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검은색의 까마귀였다.
그런데.
그 까마귀의 형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야. 겁에 잔뜩 질려서 어머니한테 연락해서 데리고 나왔다고 하는데. 그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어머니도 알지 말라고 했다고 일축했다더라. 내가 물어봐도 안 알려줘. 절대 그곳은 가지 말라고 당부만 했지.”
다소 맥없이 끝나버린 괴담이긴 했지만, 분위기와 더불어 그의 말재간 덕분인지 묘하게 오싹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저 산은 음기가 강하긴 하다…… 자 다 먹었으면 적당히 치우고 잡시다. 조금 있다가 주변에 부적이라도 붙여놓을 테니까.”
“난 초단이랑 자야겠다. 얘 무서워할까 봐.”
“반대로겠지.”
김아린이 초단이를 꼭 끌어안자 초단이는 헤프게 웃어 보였다.
배윤성의 부적 덕분인지. 아니면 거리 때문인지. 그냥 미신이었는지. 그 이상으로 묘한 분위기는 남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폐병원이 있지만, 단순히 멀리서 보는 정경일 뿐 그곳에 갈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아린은 조금 전의 이야기 때문에 괜히 무서워졌는지 초단이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다만 무서운 것과 별개로 문제가 생겨 근처에 몬스터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던 아린과 초단이는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듯 잠들었다.
“야! 진아름! 진아름 어딨어!”
잠결에 취해 꿈에서 데이비와 함께 화관을 만들던 초단이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몇 시간 정도 후였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자 숫자는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산스러운 외침이 그녀를 깨운 것이다.
“응? 초단아 무슨 일인데?”
초단이의 부스럭거림에 곁에서 잠을 자던 김아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일어났다.
“선배.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요.”
이에 초단이가 일어나자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아린이 소름이 돋은 듯 부르르 떨었다.
“야…… 야 왜 그래 진짜 무섭게…….”
그러면서도 초단이를 따라 허겁지겁 텐트 밖으로 나오자 이미 대부분의 동아리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게 보였다.
“흐아암. 이 새벽에 무슨 일인데요. 성율 선배.”
아린이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던 횟집 아들이자 가장 연장자인 박성율에게 묻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린아…….”
“네?”
“아름이가 없어졌다. 진아름.”
그 한마디에 아린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곧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 갔다가 그대로 사라졌다고 하더라.”
그 한마디에 윤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저 산 쪽으로 간 거 같은데…….”
윤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영 느낌이 심상찮아. 나는 어머니처럼 영력이 높은 게 아니라서.”
배윤성의 말에 아린은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제 친구인 진아름에게 통화를 보냈다.
옅은 통화음이 계속 울린다.
“전화는 안 되더라. 애가 사라진 지 30분은 된 거 같다. 잠결에 화장실 간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곧 돌아오겠지 하면서 잤다가 이상해서 깬 거야.”
진아름과 함께 잤던 박현지는 불안함이 엄습했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가던 신호가 뚝 끊어지더니 누군가가 받는소리가 났다.
“아름아? 아름아?!”
이에 놀란 그녀가 소리친 그 순간.
모두의 몸에 소름이 쫙 돋게 만드는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깔끔하게 울려 퍼졌다.
스르륵 탁…….
스르륵 탁…….
스르륵 탁…….
끼이이이이익! 쿵!
스르륵 탁.
초단이를 제외한 그곳에 있던 전원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끊어졌다.
스르륵 탁.
그 소리가 어디서 난 건지. 또 이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그들 모두 본능적으로 떠올렸다.
“윤…… 윤성아!”
“조졌다…….”
그의 얼굴도 좋진 않았다.
차라리 몬스터라도 나타났다면 초단이가 있으니 안심하라 말할 수 있는 동아리원들이었다.
초단이가 저래 보여도 티오니스 성자의 딸이니 몬스터에게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초상현상은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