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1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리지만, 함부로 추측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할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방금 전 사라진 부원인 진아름의 핸드폰에서 들려온 소리는 섬뜩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무언가가 질질 끌려가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 전원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방금 소리. 풀숲을 끌면서 나는 소리가 아니에요. 콘크리트 위에서 뭔가 질질 끌릴 때 나는 소리 같은데요.”
굳은 얼굴로 배윤성이 중얼거렸다.
이에 가장 연장자인 박성율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윤성아. 너 뭐 알아낸 거 있어?”
그저 기우이기를 바라는 물음이었지만 숲을 보는 배윤성의 표정은 심각했다.
“아무래도 얘 지금 폐병원으로 간 거 같아요.”
쾅!!
“그게 말이 돼?! 그 겁많은 애가 거길 왜 혼자가!”
박성율의 외침에 배윤성은 대답 대신 묵묵히 부적들을 꺼냈다.
“x발 어머니가 오늘 날이 영 아닌 거 같다고 할 때 알았어야 했는데…….”
혼잣말이지만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어쨌든 제가 데려올 테니까 다들 여기 있어요.”
“야…… 야! 혼자 간다고 저길?”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다 데려가요? 분명히 말하는데. 무당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요.”
“아니 그 겁많은 애가 왜 하필 저 산으로 간 거야…….”
사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굳이 화장실을 간다며 저 산으로 갈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솔직히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인데…… 지금 저 산 엄청나게 음기가 강해졌거든요? 어머니한테 들었던 거 이상으로.”
배윤성이 자괴감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지금 저 안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요.”
본래 예정보다 아득히 강해진 음기는 예사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한테 연락해도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네가 어떻게 못 해?”
“솔직히 자신 없어요. 저는 돌팔이 무당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가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기 초단아!”
“네?”
“너 혹시 귀기를 잡을 수 있어?”
혹시 모르니 뭐라도 붙잡아야 했다.
이에 그가 조심스레 묻자 초단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저 혼자서는…….”
그녀는 막대한 힘을 품고 있지만, 아직 그 힘을 그녀가 직접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녀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티오니스 성자. 즉 데이비 올 라운의 손에서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작은 힘 정도야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지금 같이 일반인이 느끼기에도 귀기가 강한 정도라면 그녀의 힘으론 거슬리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안된다고?”
“아버지가 있어야 해요.”
그 말에 그가 손뼉을 쳤다.
“그럼 티오니스 성자에게 연락을 하면!!”
귀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뭔가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의 도움을 빌리면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의견을 내놓던 찰나 초단이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지금 엄청 바쁘실 거예요.”
그녀의 말에 배윤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이었다.
찌이이익!!
갑자기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씨x 진짜 미치겠네?!”
배윤성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며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가 돌아온 것은 약 10초 정도 후였다.
“뭐야 뭔데?! 무슨 일인데!”
잔뜩 겁에 질린 아린이 다그치듯 묻자 그는 손에 쥐어진 찢어진 부적을 가져왔다.
황색의 괴황지는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찢은 것처럼 난자되어있었다.
“이거 진짜 정상적인 상황 아니거든요? 어떤 미친놈인지 모르겠는데. 저기 폐병원에서 뭔 짓을 한 거 같아요. 이 정도로 귀기가 강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무슨 짓을 했다고?”
“떠오르는 게 별거 있어요? 흉가 체험 동아리가 와서 강령술을 했다거나, 손대면 안되는 걸 건드렸다거나.”
그가 중얼거렸다.
“미안한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딱 두 개거든요? 첫째, 그냥 도망치거나.”
당장 여기서 빠르게 철수하면 자잘한 처치만으로 귀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아름을 버리고 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다 같이 저 위로 올라가서 진아름을 데리고 나오던가.”
“다 같이 가야 해?”
“전에 말했죠? 초단이 영기가 엄청 짙다고. 그래서 어지간한 것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해요. 근데 초단이랑 내가 전부 빠지면 여기 사람들이 무사할 거 같아요? 조금 전에 부적들 다 찢어졌는데?”
본래라면 초단이를 이곳에 두려 했으나 이 정도로 귀기가 강하면 배윤성 혼자서도 해결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부적이 단순히 찢어지는 것만 봐도 육안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정말로 문제가 생긴다면, 단체로 홀려서 흩어지듯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끝장이었다. 야산에서 조난당하는 건 귀신에 홀린 게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럼 초단이가 여기 남고…….”
“처음엔 나 혼자 가려고 했는데…… 부적이 찢어질 정도면 저거 나 혼자서 감당 안 돼요.”
배윤성은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미친 귀신이 진짜 있는 거라는 게…….”
“몬스터도 있는데 귀신이 없을까. 원래 보통 이 정도로 심한 곳은 잘 없어요. 있어도 일본에 이누마키 터널마냥 아예 틀어 막아버리고요. 여기도 유명한 심령 스팟이니 뭐니 하지만 그정도는 아니라서……”
배윤성의 말에 가만히 있던 박현지가 손을 들었다.
“저…… 윤성아. 나 영기 많다고 했잖아…… 그럼 내가 남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기다리면…….”
“안돼.”
“왜!?”
겁에 질린 그녀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넌 몰아내는 게 아니고 불러들이는 체질이야. 이런 곳에서 나랑 떨어지면 아마 너부터 노릴 거라고 어머니가 그랬어.”
그의 말에 박현지는 눈물을 뚝뚝 떨궜다.
“흑…… 괜히 여기 온다고 해서…….”
“미안하다…… 진짜 나도 이 정도로 심해진 줄은 몰랐다…….”
애초에 배윤성의 잘못이 아니었다. 폐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문제였고. 이곳을 여행지로 잡은 회의가 잘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김아린은 자책하는 배윤성을 다독였다.
“자책하지 마. 이거 네 잘못 아니야. 돌팔이니 뭐니해도 네가 그동안 도움 준 게 얼만데.”
귀기 어린 폐병원이라고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실 근처 산에서 야영을 하건 무슨 짓을 하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뭔가 이상하게 상황이 돌아갈 땐 그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김아린, 빨리 결정해. 늦으면 잘못하면 굿판으로도 해결 안 돼. 이 정도로 귀기랑 음기가 강하면 진짜 어지간한 무당도 비명횡사할 수 있어.”
배윤성의 말에 한참 침묵하던 김아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아무리 그래도 아름이 버리고 도망칠 순 없잖아. 야 윤성아.”
“어.”
“어디까지 가능해?”
“진짜 한국에서 비밀리에 봉인된 심령 스팟 수준이 아니고서는 초단이 곁에 딱 붙어있으면 홀리진 않을 거다. 남은 부적 다 태워서라도 안 홀리게 해줄 테니까 빠르게 갔다 오자.”
결정은 내려졌다.
* * *
사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기엔 지금 시기는 굉장히 추운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조금 독특한 지형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 몬스터가 나타났다가 소탕된 이후로 이곳 지형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물이 사시사철 굉장히 따뜻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기가 쌀쌀해도 물놀이를 오는 이들이 간혹 존재하는 곳.
그곳이 이곳이었다.
새카만 산길을 다수의 남녀가 옹기종기 붙은 채 플래시 라이트에만 의존하여 올랐다.
“다행히 경사가 그렇게 크진 않으니까 이 길 따라 쭉 올라가면 될 거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배윤성은 손에 방울을 들고 딸랑딸랑 울리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거…… 효과 있어?”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돌겠네 진짜 한기가 미쳤나…….”
산짐승, 벌레 하나 울지 않는 고요한 숲은 지나가면서 밟을 때 나는 나뭇잎 소리가 전부였다.
“잘못하면 길 잃는 거 진짜 한순간이에요. 잘 따라오고 있죠?”
“어…… 어어…….”
후방에서 그들을 따라가던 초단이는 굉장히 짙어진 한기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검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오로지 데이비의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힘을 아예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힘이 강해지면서 어느 정도는 방출할 수는 있으리라.
물리적인 힘에는 아직 익숙지 않아도 비 물리 계통의 에너지를 차단하는 건 가능했다.
문제는.
‘제어가 안 돼.’
자칫 같이 있는 이들조차 크게 위험할 수 있는 만큼 그녀로선 함부로 힘을 방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검으로 변해 다른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건 더욱 안될 말이었다.
잘못하면 휘두르기도 전에 역으로 큰일을 당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문득 어떤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푸스스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것은 기다란 깃털을 가진 기괴하게 생긴 까마귀였다.
하지만 그것은 가까이 오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다른 이들은 저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다 왔다…….”
상념에 빠져있던 초단이는 어느새 커다란 4층 건물이 눈에 보이자 발걸음을 멈췄다.
“아…… x발 진짜 귀기 미쳐 돌아가네…….”
배윤성의 말대로 초단이가 보기에도 이 건물은 낮에 봤던 것과는 별개로 엄청나게 싸늘한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겁에 질린 현지가 한발 두발 물러나려 했다.
“현지야. 떨어지면 안 돼.”
“나…… 나 진짜 무서워…….”
괴담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 부원들이지만 눈앞에 이런 것을 보면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와들와들 떠는 현지의 손을 김아린이 꼭 잡았다.
“걱정하지 마. 금방 데리고 나오면 돼. 알겠지? 절대 떨어지지 마.”
“…….”
흐느끼는 현지를 다독이는 동안 배윤성은 마치 홀린 것처럼 주변을 계속해서 훑었다.
“진아름. 전화 걸어봐.”
이윽고 그가 말하자 박성율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야…… 안 터진다…….”
“애초에 산속에서 핸드폰이 터질 리가 있나.”
그렇게 말하던 이들이 그대로 굳었다.
“잠깐만, 그럼 아까는 왜 전화가 된 건데?”
박현지의 울먹거림에 오한이 돋았는지 박성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아름 그거 다른 곳에 간 거 아니야?”
“아뇨. 여기 맞아요.”
그렇게 중얼거린 배윤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 분명해.”
그렇게 말한 그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어?!”
“아름이 스마트폰이잖아!”
당황한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정문 앞에 떨어진 스마트폰은 다름 아닌 사라져버린 진아름의 핸드폰이었다.
“홀린 거 같다 아무래도.”
“돌겠네 진짜! 그럼 어떻게 해.”
“버티고 있어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빨리 찾아서 데리고 산을 내려가야지.”
그렇게 말한 그는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하…… 진짜 싫은데…….”
그리고는 방울을 빠르게 흔들며 부적 하나를 꺼내 기둥 중 하나에 붙였다.
“한번 홀리면 진짜 나도 어떻게 못 하니까 절대 떨어지지 마세요.”
그리고는 앞장서서 걸어 들어가는 그를 보며 나머지 부원들도 따라 들어갔다.
폐병원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고 난장판이었다.
“아무리 폐건물이라도 이렇게 난장판이 될 수가 있나?”
“전에 듣기로는 여기 입원해 있던 정신병자 하나가 여기 불을 질렀다더라.”
그 탓인지 여기저기 탄 자국이 가득 보였다.
“그런데 병원이 꽤 큰데 어떻게 찾아?”
그 질문에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배윤성과 초단이가 동시에 말했다.
“3층.”
“3층.”
거의 동시에 나온 대답에 남은 사람들이 겁에 질린 듯 움찔했다.
“뭐…… 뭐야?!”
“얘 3층까지 올라간 거 같다. 빨리 가자.”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한가지였다.
빨리 데려 나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겁에 질린 채 박성율에게 착 달라붙어 걸어 나가던 두 여성은 계속해서 초단이가 뒤에서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려는지 계속해서 고개를 돌렸다.
“초…… 초단아. 겁 안나?”
“겁은 안 나는데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건 맞는 거 같아요. 거의 다 왔어요.”
그 말에 가장 앞장서서 걸어 나가던 배윤성은 계단의 끝부분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보았다.
“어…… 어딘데?”
“왼쪽.”
그 말에 초단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오른쪽이에요.”
“뭐?”
그 말에 배윤성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이라고?”
“네. 생명 에너지가 오른쪽에서 느껴져요. 왼쪽은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아버지가 생명 에너지를 다루기 때문에 착각할 리가 없어요.”
초단이의 대답에 박성율이 인상을 찡그렸다.
“야 윤성아…….”
“돌겠네…… 나도 홀리겠는데 잘못하면…….”
그나마 초단이가 멀쩡하니 그녀를 믿는 셈이었다.
결국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을 들어간다.
버려진 폐병원답게 수많은 병실로 가득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앞장서서 가던 배윤성이 어딘가에서 멈췄다.
“씨x…….”
절로 욕지기를 뱉어낸 그가 주춤거렸다.
“나…… 솔직히 어지간해선 겁 안 먹거든요? 잘 알죠?”
“어…… 잘 알지…….”
“근데 지금 진짜 무서워서 뒤질 거 같거든요?”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중환자실이라 적인 문을 바라보았다.
“진아름 쟤…… 저 안에 있어.”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악!!!!”
무언가를 본 듯 창밖을 멍하니 보던 박현지가 비명을 내지르며 갑자기 반대편으로 달려가 버린 것이다.
“박현지! 박현지!!”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놀란 배윤성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야! 뭔데 뭘 봤길래…….”
김아린이 와들와들 떨며 중얼거렸다.
“시간 없어요! 일단 들어가. 진아름부터 찾아서 데려나가요.”
이후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게 불가능해졌음을 깨달은 배윤성은 빠르게 중환자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버려진 장비들이 가득한 캄캄한 병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두려움이 느껴진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입구에 부적을 한 장 붙이고 걸어 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들어간 지 몇 걸음 되지 않은 그 순간.
쾅!!
갑작스레 중환자실의 문이 스스로 닫혀버렸다.
깜짝 놀란 아린이 급히 문을 열려 했지만 무언가가 걸리기라도 했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진짜 미치겠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의 가장 안쪽.
완전히 낡아빠진 침대 위에 진아름이 눈을 부릅뜬 채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본 김아린과 박성율은 그대로 겁에 질린 듯 주저앉아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동시에 배윤성이 급히 뛰어가 누워있는 진아름의 팔을 낚아채 일으켜 세웠다.
“아…… 움직였다. 다 나은 거야?”
“진아름!”
“아닌데? 아직 아픈데? 그럼 다시 치료받아야 하는데.”
그때 진아름의 입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배윤성과 김아린 그리고 박성율이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져 버렸다.
박현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도망쳐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던 초단이는 그나마 힘을 잘 제어하는 윤성까지 상태가 좋지 않자 최후의 수단을 염두에 뒀다.
그런 그때 그녀의 뒤쪽 굳게 닫힌 중환자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마치 안에 누가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노크 소리였다.
“성율 오빠…… 윤성아…… 초단아…… 문 좀 열어줘…….”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였다.
“나…… 나 진짜 무서워. 제발 혼자 두지 마…….”
겁에 질린 목소리로 울먹거리는 박현지의 목소리에 초단이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장난은 적당히 치세요.”
그녀의 말에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초단아? 초단이지? 문 좀 열어줘! 이거 왜 안 열려?! 나 혼자 진짜 너무 무서워!”
그녀의 외침에 초단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지 선배는 생기가 하나도 없진 않아요.”
그 말에 현지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대신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질질 끌리는 소리. 동시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치가 빠르네?”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문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쾅쾅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그 너머에서 고개를 기이한 각도로 꺾은 무언가가 그녀를 맞이했다.
정체 모를 검은 무언가에 뒤덮인 까마귀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지만 초단이는 손을 뻗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힘을 방출해보자.
제어도 안 되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힘이 강해지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무분별한 행동은 절대 해선 안 될 짓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에게 혼나는 한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그녀가 자신의 안에 있는 힘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플래시 라이트로 비친 그녀의 뒤쪽 그림자가 꿀렁이더니 이내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
동시에 초단이와 고개를 기이하게 꺾은 까마귀가 고개를 들어 그 존재를 바라본다.
-퉤.
오른손에 침을 퉤 뱉은 거대한 적색의 도깨비는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거대한 검은 도깨비 방망이를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귀싸대기 쳐올리는 듯한 자세를 잡은 뒤 섬뜩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흉신악살(凶神惡殺)]
검붉은 벼락이 도깨비방망이에 깃들고. 순식간에 휘둘러진 방망이가 까마귀를 그대로 짓이겨 버렸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방금까지의 분위기를 한방에 뭉개버린 도깨비의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