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3화
하인스 영지 내엔 데이비의 허가 아래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특수한 모임이 존재한다.
단순히 동아리라 불리는 경우도 있고, 연구회나 동호회 등. 명칭 자체는 제법 자유로운 편이기도 했다.
실제로 하인스 영지에서 유명한 연구회는 제법 많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두 연구회 중 하나가 바로 하이엘프 유리아 헬리샤나를 필두로 한 미식연구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인스 영지에서 엄청난 공헌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허구한 날 사고를 친다는 소문이 자자한 또 하나의 연구회가 바로 영지 개발부서였다.
드워프 셋에 인간 둘. 드래곤 하나.
생각보다 풍부한 인원이지만 하나같이 머리에 나사가 빠진 작자들이라는 건 변치 않았다.
“제824회 연구 소재 회의를 시작할게요.”
나이를 두세 살 더 먹었음에도 아직까지 작은 키와 체격을 유지하고 있는 라운의 막내 왕녀. 에오니샤 올 라운의 말에 회의실에 자리에 모여있던 두 인영이 진지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산이 부족해요.”
밑도 끝도 없는 에오니샤의 브리핑에 영지 개발부의 일원인 티아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미식연구회 때문이에요. 괜히 또 사고 쳤다면서요. 그래서 연구회에 할당되는 자금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고.”
“…….”
마지막 인물인 골다 장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대로면 비공정 아스가르드에 적용하려 했던 신무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지 못할 거예요.”
에오니샤의 한숨 섞인 중얼거림에 티아라가 테이블을 쾅쾅 내리쳤다.
“이게 다 미식연구회 때문입니다! 미식연구회에 철퇴를 내려야 해요!”
“싸워서 이길 수 있어요?”
그 질문에 티아라가 입을 다물었다.
미식연구회가 굉장히 또라이들이라 불리지만 개개인의 전력은 절대 무시 못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상위 정령을 부리는 유리아 헬리샤나는 물론이고 나비 여제라 불리던 찬드라의 힘을 사용하는 점순이. 거기에 가장 위험한 존재인 백익 세피로스인 륀느가 버티고 있으니 사실상 미식연구회를 넘어 하나의 거대 전력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런 말 하기는 뭣하다만, 륀느는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인공생명체라 할 수 있지. 그 안에 집약된 기술력은 은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개발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긴 한데, 그 말이 정확하네요. 륀느 씨 혼자서도 일개 국가는 우습게 쓸어버릴 전력이니 원…….”
티아라가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거기에 저희가 관리하는 디셉티콘 편대와 어벤져 편대의 명령권도 가지고 있으니 물리적으론 절대 응징할 수가 없어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는 악질.
특히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놓은 골렘들을 허구한 날 끌고 가서 기괴한 짓을 저지르는 륀느를 절대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정말 얄미운 존재.
골렘에 한없이 의욕이 넘치는 티아라에게 있어서 륀느는 가장 궁금하고 가까이 두고 싶으면서도 얄미운 애증의 존재였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예산이 더 모일 때까지 아스가르드의 신무기 계획은 무기한 정지하도록 할게요. 반대 있으신가요?”
“아쉽지만 없어요.”
“나도 없네.”
어차피 남은 부원인 에디손 기술고문이나 드래곤인 루델라이트. 그리고 골고다 장로는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 신경도 쓰지 않으리라.
“저기. 에오니샤 왕녀님.”
“티아라 씨가 저를 그렇게 오글거리게 부르는 데엔 다 이유가 있겠죠?”
“네. 있어요. 가서 예산 좀 올려달라고 하면 안 돼요?”
“이미 지금 받고 있는 예산도 적은 편은 아니에요. 그리고 오라버니는 제가 그렇게 가서 말한다고 들어줄 사람도 아니고요.”
가족이기에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지만 의외로 칼같이 지킬 건 지키는 인물이었다.
“골다 장로님. 솔직히 가서 여동생이 잘 하지도 않는 애교를 피우면 내줄 거 같지 않아요?”
“그럴 거 같긴 하오만.”
골다 장로가 눈에 이채를 띠며 턱을 어루만지자 에오니샤가 빨개진 얼굴로 테이블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둘 다 조용히 하세요! 이미 결정이 난 일이니 다 내버려 두고 다음 성과를 준비해야 해요.”
“비공정 아스가르드에 설치할 신무기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그걸로 끝 아닌가요?”
“아뇨. 이번 분기에 내놓을 논문과 연구 기획서는 남아있어요. 그 시안이 몇 개 있으니 오늘은 이것 중에 가장 가능성이 큰 걸 추려낼 겁니다.”
그녀가 손을 툴툴 털어낸 뒤 주머니에서 아티펙트 하나를 꺼내 꾹 누르고 휙 던졌다.
우웅!!
그러자 테이블 위 중앙으로 빙그르르 돌며 밀려 나간 아티펙트 위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획안이에요. 티아라 씨가 발의한 기획서인데…….”
에오니샤의 눈이 게슴츠레 뜨여졌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붉은 도장을 찍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현재 이행할 수가 없어요.”
“아! 그걸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알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돈이 없는데.”
에오니샤가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일축하자 티아라는 눈에 띄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예산과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문제 될 건 없겠죠.”
“그럼 예산은 내가 땡겨올게요.”
티아라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에오니샤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년이 또 무슨 작당을 부리는지 알아보려는 눈초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내막을 분석하기라도 한 듯 한없이 자신감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비공정 아스가르드, 그 외에도 하인스 시설이나 디셉티콘, 어벤져 편대의 정비 비용을 빼먹는다든지 하는 건 아닐 거라 믿어요.”
“쓰읍…….”
입맛을 쩍쩍 다시는 꼴을 보아하니 그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거 공금 횡령이에요. 알아요?”
“안 들키면 범죄가 아니에요.”
당당한 제안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그렇게 하다가 걸리셨죠? 이번 예산삭감 목록에 들어간 건 그 이유도 있을 거예요.”
“음…… 결과물 자체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성공적이었는데요.”
“밭을 한번 가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짓은 하면 안 됩니다.”
결국 예산삭감의 주요 원인이 사고 치는 미식연구회와 티아라 때문이라는 사실이 정립된 셈이었다.
“됐고, 남은 시안들 중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골라봐요.”
말은 그리 하지만 에오니샤도 잘 알고 있었다.
준비된 시안들 하나하나가 전부 여러 문제가 존재하기에 저예산으로 만들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최근 개발부에서 내놓은 새로운 안건이 없었던 만큼 그녀도 속으로는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너무 조급해 마시게. 은사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계속하려는 생각만 있다면 지원해준다고.”
에오니샤가 생판 남남이었다면 달랐을지라도 그녀는 데이비의 이복동생이었다.
비록 에오니샤의 친모가 데이비와 극심한 불협화음을 일으킨 건 사실이었지만 데이비는 그 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안 돼요. 오라버니는 무서운 사람이에요.”
에오니샤가 늘 하던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말버릇을 꺼내 들었지만, 티아라와 골다 장로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에 불과했다.
이후 개발부는 회의에 제시된 안건들 전부 현재 예산으론 제 시간 안에 완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다 미식연구회 때문이에요.”
“복수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악의 근원은 미식연구회라는 사실로 귀결되자 에오니샤가 눈을 번뜩였다.
“티아라, 지금 미식연구회에서 저희에게 맡긴 의뢰가 있죠?”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티아라가 커다란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하나 있어요. 이거네요. ”
연구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꽤 허황된 요구에도 꽤 신경을 쓴 듯 여기저기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
그 코멘트들에 담긴 생각보다 과감한 시도에 에오니샤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티아라가 고개를 저었다.
“미식연구회가 그런 사고를 칠 줄 몰랐으니까요. 개발부서의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불량품을 주겠어요.”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그램 아티펙트를 치워버리고는 설계도를 넓게 펼쳤다.
“본래 용도는 미식연구회가 요구한 물건은 일정 공간 내에 막대한 마나를 불안전 현상을 만들어내서 파장을 특수 코팅된 공간 안에서 무한정 충돌시켜 강제로 발효시키는 장치에요.”
발효라는 게 본래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대륙에서 유명한 연금학파 천재라 알려진 티아라에게는 데이비에게서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그 시간을 강제로 단축시킬 수 있는 장치를 구상하게 만들었다.
“의도 자체는 좋아. 제대로 완성만 되면 큰 실적으로 남겠군.”
평소라면 아무런 거부감없이 의뢰를 진행했을 개발부서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런데 그냥 만들어주긴 애매하죠?”
절대 곱게는 못 만들어주죠.“
음흉하게 웃어 보인 티아라가 펜을 들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설계에 살짝 어레인지를 할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 이 부분.”
그녀가 발효장치의 핵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리켰다.
“특수한 광석으로 코팅하는 핵은 본래 코팅이 없을 경우 독특한 불순 파장을 만들어내요. 따라서 저는 이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해버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한 게 있나요?”
에오니샤의 질문에 골다 장로가 답했다.
“보아하니 저대로라면 사용자에게 상당한 부하를 걸게 되겠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클라이언트가 미식연구회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네. 물론, 그냥 주면 그런 불량품이죠. 다만, 여기 삭제된 부분에 크로마티 강으로 코팅을 하면…… 흐흣. 부작용을 억제하고 기분 나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파장이 만들어지죠.”
“그건 확실하오?”
“네. 드래곤인 루델라이트 씨가 확인해준 사항이니 분명해요.”
요리를 위해 만든 장비인데 그 장비가 사용자를 어지럽게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진짜 쓸데없는 짓이긴 하네요.”
“그렇죠? 하등 이유도 없고 쓸모도 없죠.”
잠시 침묵하며 서로를 바라보던 셋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바로 작업 시작하죠.”
“복수의 시간이 왔구먼.”
다만, 쓸데없을수록 개발부서에게는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에오니샤와 티아라는 둘 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천재라 불린다. 하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조금 다른 탓에 둘의 의견은 자주 충돌을 했던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완전히 의기투합한 두 천재의 머릿속에 미식연구회를 어떻게 골탕 먹일지에 대한 구상이 착착 되어가기 시작했다.
“역산부터 하죠. 골다 장로님께서는 마나 반응에 대해 루델라이트 씨에게 한번 자문을 구해주세요.”
“그렇게 하지.”
“명심하세요. 절대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안 돼요. 그러니 개발부서의 다른 분들을 이 작업에 끌어들이면 안 됩니다.”
“그건 잘 알고 있어요.”
에오니샤가 단호하게 외쳤다.
“작업 시작하시죠!”
* * *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듯 장치를 완성한 에오니샤와 티아라 그리고 골다 장로는 눈앞에 만들어진 가로세로 1m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금속 장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한 단축은 힘들어도 발효 기간을 30퍼센트나 단축할 수 있는 건 큰 발전이에요.”
사실 이와 같은 장치는 이미 연금학파 학계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는 만큼 세간을 경악시킬 발견은 아니었다.
물론, 이론만 있을 뿐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마법의 종주와 천재들이 머리를 싸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작동시켜볼까요?”
이윽고 에오니샤가 음산하게 웃으며 스위치를 눌러 마석을 활성화 시켰다.
그러자 커다란 장치 내부에 비치는 황색의 빛이 스스로 일렁이며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신기한 그 파장의 충돌을 지켜보며 티아라는 파장 감지 장치를 들고 빠르게 경과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에오니샤는 묵묵히 내부에 넣어둔 음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야에 담았다.
“오오…… 그래도 이론이 확립된 게 있어서 성공적으로 돌아가네요.”
“파장도 안정적이에요. 그런데…… 왜 어지럼증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
본래대로라면 기존 확립된 이론과 현재 알려진 이론대로 완성했을 경우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어지럼증을 유발해야 했다.
이 파장이 사람의 균형을 담당하는 반고리관을 강제로 흔들어버리는 것이다.
데이비가 디셉티콘 편대의 편대장인 메가트론에게 장착한 제압탄인 멀미탄 또한 이런 방식을 이용하고 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이상하리만치 안정적인 반응에 티아라와 에오니샤의 표정이 굳었다.
“어? 이거 원래 이래요?”
“그럴 리가요. 이렇게 안정적인…… 잠깐만요. 이거 발효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30퍼센트라면서요!”
티아라가 피를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얄미운 미식연구회에게 이만한 물건을 건네줄 순 없다는 집념이 보였다.
본래 트롤링을 하기 위해 만든 엉터리 작품이건만, 정작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기존의 이론보다 훨씬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발효 속도를 아득히 넘어서는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열이 뻗친 티아라가 장치를 마구잡이로 걷어차 버렸다.
완성품이야 다시 내놓으면 될 일이다.
이 물건이 세상 밖에 나가면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오겠지만 개발부서의 셋에겐 전혀 관심 없는 분야였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다시 고장 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장치를 걷어차던 티아라가 급기야 제어장치를 손에 쥐자 에오니샤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안 돼요. 그건!!”
일단 지르고 보는 티아라의 저돌적인 행동을 막기엔 에오니샤는 너무 작고 약했다.
콰직!!
끝내 티아라의 손에 완성된 발효장치의 제어부분이 박살이 나버렸다.
우우웅!! 우웅!!
동시에 엄청난 파장이 터져 나오며 그곳에 있던 셋 전부에게 그대로 들이닥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지럼증이 셋을 덮치자 티아라와 에오니샤, 그리고 골다 장로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우웅!! 웅!!
“제……제어장치가 박살 나서 너무 강해요! 이러면 미식연구회에 넘겨줄 수도 없어요!”
알듯 말듯 짜증이 나게 어지럼증을 유발해야 그들도 어지럼증을 감안하며 이 장치를 사용할 텐데 이 정도로 심하다면 곧바로 클레임이 들어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에오니샤가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이었다.
“어?”
그들이 있던 공방 전체로 퍼져나가던 파장이 급기야 천에 덮여 있던 커다란 무언가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무기!”
비공정 아스가르드의 신무기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놓은 마나중력자포가 맹렬하게 공명하며 제멋대로 가동하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엎드려!!”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납작 엎드리고 귀를 틀어막는 그 순간.
엄청난 중력파가 개발부서 건물, 아니 일대 부지 전체를 휘감았다.
쿠웅!!
그리고, 그날 하인스 영지에서는 폭주한 파장과 신무기가 공명하며 일대 3백여 미터의 중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떤 곳은 중력이 일반적인 경우의 2배가 되었고, 어떤 곳은 중력이 5분의 1이 되어버리는 기행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에너지를 잡아먹기 시작한 개발부서 건물이 하인스 영지 곳곳에 퍼지는 마나 에너지를 모조리 잡아먹어 버렸고, 급기야 마나등과 같은 장치들을 모조리 정전시켜버렸다.
“……큰일 났다.”
그 몰골을 본 에오니샤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티아라가 조심스레 말했다.
“도망치죠.”
어떤 반박도 나오지 않고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셋은 천천히 중력이 본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마법도 아닌데 중력을 제멋대로 바꿔버린 경악스러운 결과를 내었다.
이것만으로도 학계를 뒤집어버릴 만한 발견이지만 두 여인과 한 드워프의 머릿속엔 일단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남았다.
물론.
영지 전체의 마나 에너지를 잡아먹어 강제로 정전을 만든 만큼 영지에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인간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는 사실은 몰랐다.
“미식연구회랑 아주 쌍으로 사고를 치지 그냥.”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에오니샤가 허겁지겁 공방의 문을 연 그 순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검은 복장의 청년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오……오라버니.”
“너 따라와.”
그리고는 에오니샤의 귀를 잡아당기며 그녀를 끌고 가버렸다.
“아아…… 에오니샤. 당신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요.”
에오니샤가 끌려가자 티아라는 자신들은 살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도망칠 궁리를 했다.
하지만.
“이……이건 전부 티아라가 제안한 거예요! 저는 그냥 받은 설계도에 제작만 했다고요!”
그냥 끌려갈 에오니샤가 아니었다.
“그래?”
그 말에 에오니샤를 아예 둘러메고 끌고 가던 데이비가 티아라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 배신자가!”
“배신은 당신이 했잖아요!”
그 꼴을 보고 있는 데이비의 입장에선 이것들이 미식연구회와 다를 게 뭐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하인스 영지 전체에 큰 사고를 친 이들은 영주성에 매달리는 형벌을 받았다.
당연히 밧줄에 꽁꽁 매달린 셋을 보며 키득거리는 미식연구회로 인해 그들의 혈압이 점점 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반면 이번 사태에 대한 보고를 전해 받은 페르세르크와 데이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데이비. 그대의 동생은 말이야. 진짜 티오니스 역사에 남을 천재로 이름을 알릴 게야.”
자기가 개발해서 자기가 쓰는 데이비와 다르게 에오니샤는 개발한 모든 것을 공표하고 엄청난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낸 것은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거 당분간 숨기자. 알려지면 진짜 난리 나겠다.”
데이비는 이번 사태의 경과보고서와 티아라와 에오니샤가 만든 설계도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발효 장치를 만든다더니, 인공중력장을 만들어? 마나 핵융합이라도 하려고 했나. 그것보다 이 정도 발효속도면 성초의 안정성을 극한으로 올릴 수도 있겠네”
“현실적으로 그정도 까지는 못하겠지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니…….”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아주 짧은 시간 발현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 여기저기서 중력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우연이고 현재 티오니스의 기술력을 아득히 넘어가는 기술력을 투자한 결과라고 하지만 경이적인 발견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술이 퍼지는 순간 수많은 국가에서 기술력을 탐내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경이적인 발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셋은 어찌하고 있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설계도를 보던 페르세르크가 물어왔다.
“영주 성 정원 나무에 매달아 놓았어. 미식연구회가 한창 놀리고 있을걸.”
먼저 당해본 선배들이랍시고 아주 신이 난 꼴이 퍽 우습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