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71화
괴인이 하인스 영지를 침공한 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날은 밝았다.
전날의 일을 곱씹으며 하인스 성의 내부를 거닐던 코오나는 문득 저 멀리서 다가오던 요시아가 말없이 그녀를 뚫어져라 처다보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녀도 의문을 담아 조용히 그녀를 보고 있자 곁에 있던 이가 대뜸 돌직구를 던졌다.
“그날이야?”
“무……무슨 소리를!”
당황한 그녀가 소리 질렀다.
성희롱도 이런 성희롱이 없다. 아무리 같은 성별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건만. 무표정한 거로 치면 둘째가 하면 서러울 저 분홍 머리 뱀파이어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분야였던 모양이었다.
“네 몸에서 피 냄새가 엄청나게 나. 나는 피 냄새에 민감하거든. 이건 단순히 찔리거나 살짝 베이는 거로 나는 피 냄새가 아니야.”
몸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
“일반적으로 이런 냄새를 풍기는 건 두 가지뿐이에요.”
밀피유의 말을 대신해 요시아가 한숨을 내쉬며 밀피유의 다리를 걷어찼다.
“죽을 만큼 큰 상처에서 나온 피거나. 좀 전에 말하듯이. 그래도 밀피유. 조금만 더 배려를 해.”
“죄송합니다. 로드.”
밀피유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니까 그렇게 물어본 거예요.”
“그렇다고 그걸 그렇게 묻나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굳이 캐내 본들 이득도 없고.”
“그럼요?”
코오나가 날이 선 목소리로 묻자 요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혈향이 너무 어두워서요. 단순히 몸이 안 좋은 수준이 아니던데. 혹시 최근에 몸이 아픈 적이 있었나요?”
그 질문에 코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몸에는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피를 흘릴 일도 없고.”
“그럼 이 피 냄새는…….”
“전날 괴인이 습격했을 때. 그가 떨어뜨린 손수건에 묻은 피 때문 아닌가요?”
코오나가 떠오르는 대로 그녀에게 말해주자 요시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피가 축축했나요?”
“아뇨. 말라붙어있었어요.”
“이상하네. 단순히 그런 거로 이렇게 피 냄새가 나진 않는데…….”
“게다가 제 피도 아니에요.”
그 말에 요시아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내가 착각했나?”
묘한 표정으로 그녀가 밀피유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래?”
“네.”
담담한 대답에 요시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몸이 많이 안 좋은가 싶어서.”
“괜찮아요. 그럼 가봐도 될까요?”
“아. 네. 아참. 조금 신경이 쓰여서 그런데. 밀피유를 그 괴한이 날뛰었던 곳에 안내해주실래요? 정확히 손수건이 있던 장소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요시아의 부탁에 코오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급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코오나를 따라가는 밀피유를 뒤로한 채 요시아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상하네. 진짜 착각했나? 왜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지.”
너무 자연스러웠다.
코오나의 혈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그녀의 피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불순물이 섞인 것처럼 말이다.
“뭔가 빼먹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결론지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뭔가 입안에 충치가 생긴 것처럼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아이나가 정보를 가져오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예 소재를 몰랐다면 모를까.
“이 정보 확실해?”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이나가 가져온 정보는 참 간결했다.
그곳 왕국의 정보 길드들의 정보를 사들이고 직접 취득한 정보를 종합한다.
해당국가는 서대륙의 남부에 위치한 소국들.
소문이 퍼진 왕국에선 모두 공통점이 존재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소문이라는 건 분명했다.
다만 헛소리라 치부하기엔 생각 이상으로 자세한 내막이 존재하기에 소문이 알음알음 퍼진 것이다.
물론, 하인스 영지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나 해당국가에서도 확인이 되기 전까지 함부로 이런 소문이 나돌면 곤란하다 여겼기에 소문을 억누르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소문을 퍼뜨리는 장본인은 계속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같은 소문을 계속해서 퍼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을 퍼뜨린 놈에 대한 정보를 종합한 결과 나는 범인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데이비 님. 혹시 원한 살 짓 했습니까?”
내가 고민하고 있자 아이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원한이야 산 놈이 많지.”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겁이 없네요. 대체 뭘 노리고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아이나의 추측대로 이놈은 겁이 없는 게 맞았다.
그렇기에 신경이 쓰였다.
“내 경험상 이런 짓을 대놓고 저지르는 놈이 그쪽 왕국과 관련된 인물은 아닐 거야.”
담담하게 말한 나는 눈을 감았다.
“어쩌면 내가 해당 왕국과 충돌하길 바랄 수도 있겠지.”
단순히 타국에서 이간질을 위해 놈을 움직였다고 하기엔 놈의 마법 성취가 너무 말이 되지 않았다.
대현자이자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던 적탑의 헬리슨 발레스티아조차 그에 비하면 확연히 모자란 느낌이 들 정도의 성취.
갈라졌다곤 하나 분명히 젊은 목소리였다.
아직 젊은 나이 같은데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결과적으로 이런 놈은 딱 한 가지 경우야.”
진짜 뒤가 없는 놈. 갈 곳까지 가버린 놈.
“그냥두면 위험하다는 뜻이군요.”
“시작은 그놈이 했으니 이쪽도 움직여야지.”
“지금 그곳에 직접 가시면 소문의 신빙성만 더 줄 뿐입니다.”
“그놈 죽이려면 내가 직접 가야 해. 이실디나 이런 애들 보냈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감당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나는 안 그래도 소문이 돌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가서 그놈을 쳐죽일 경우 생길 뒷말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반대로 생각해, 아이나. 하인스 영지에 기괴한 소문을 퍼뜨리는 놈이야. 페르세르크와 내가 금실이 좋은 건 대륙에 퍼진 소문이니까 부인이 모함을 당한 걸 보고 눈이 돌아간 내가 직접 찢어버리러 출타했다 한들 문제 될 건 없어.”
내 대답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도 타국입니다. 괜히 간섭했다가 이런저런 말이 나올…….”
“아이나.”
짧게 말을 끊은 내가 살기를 내뿜자 그녀가 움찔거렸다.
“내가 지금 페르를 공격하는 새끼를 살려놔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준비해. 바로 가자.”
“데이비.”
그때였다. 언제 온 건지 페르세르크가 작은 몸을 유지한 채 쪼르르 날아온다.
“그자를 찾으러 가는 게야?”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올테니까.”
“본녀도 같이 가.”
그녀의 뜬금없는 요구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본녀의 일이기도 하니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그대와 데이트를 못간지도 꽤 오래되지 않았는가.”
“아…….”
분명 다른 속셈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무리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든가 하는 그런 행동을 말이다.
그녀의 생각이야 뻔했지만, 굳이 거부하진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오랜만에 생긴 데이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좋아. 같이 가자. 그런데 위험하면 바로 돌려보낸다.”
“본녀를 위협할 존재가 세상에 있겠는가.”
“있겠지. 다굴에 장사 없다잖아.”
확실히 페르세르크는 강한 마법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 마왕 때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은 만큼 위험요소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었다.
“같이 가시는 겁니까? 그자를 찾기 쉽진 않겠지만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한데…… 그 후엔 어찌하실 겁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연한 대답을 내놓았다.
“뭘 고민해. 그놈이 소문을 퍼뜨린 놈이 맞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어지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서야 결과는 변치 않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페르세르크와 관련된 일로 협상할 생각은 없었다.
공자 가라사대.
테러리스트와 협상 따위는 없다고 하였다.
“그럼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그곳에 미리 준비하고 있는 정보부대와 해당왕국의 정보 길드들에게 준비해놓으라 일러놓겠습니다.”
아이나는 제법 유능한 정보원이었다.
* * *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레짝이 된 넝마를 걸친 인영이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나갔다.
척 봐도 멀쩡한 구석을 찾아보는 게 힘들 정도로 낡고 해진 옷이지만 유일하게 그의 허리에 채워진 장검만큼은 불길하면서도 귀해 보이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스락…….
낮이기에 고요한 환락가 거리를 내딛던 그가 비틀거렸다.
“쿨럭!!”
얼굴조차 대부분을 가리는 일체형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탓에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선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보통 슬럼가나 낮의 환락가에서는 그와 비슷하게 꽁꽁 싸매는 이들도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허리 부분까지 밖에 오지 않은 기이한 판초 같은 로브를 입고 있는 그는 외부노출이 이곳 토박이보다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극심한 구토 증상과 함께 비틀거린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격한 기침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단순한 감기로 인한 기침이라고 볼 순 없었다.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그의 손은 시뻘건 피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는 그의 상태가 척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확신을 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기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 흐흐…… 흐흐흐…….”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누가 들었다면 그 깊고 무거운 감정이 서린 소리에 할 말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이한 소리를 내던 그가 비척거리며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겨우 여기까지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에 극도의 증오와 슬픔, 분노가 어리는 게 보였다.
“당신을 죽인 그 개새끼들을 뿌리까지 뽑아버릴 테니.”
오갈 곳을 잃은 분노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목적을 절대 잊지 않았다.
오히려 망가진 육신과 다르게 정신만큼은 더욱더 날카롭게 벼려져 갔다.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그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때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봐 형씨. 거 좋은 거 가지고 다니네? 거지새끼가 어디서 저런 칼을 주웠데?”
“검집만 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데.”
슬럼가에 나타난 거지꼴을 면치 못한 남자.
척 보기에도 비틀거리고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허리에 찬 검만큼은 엄청나게 비싸 보이기 짝이 없다.
당연히 그런 그의 몰골은 치안이 나쁜 이런 소왕국에선 곧바로 먹기 좋은 먹잇감으로 비치기 마련이었다.
고요한 눈으로 사내들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사내 하나가 잭나이프를 건들거리며 꺼내 겨누었다.
“형씨.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놓고 썩 꺼져. 목숨까지는 해치지 않을 테니.”
“크. 자비. 뽕에 취한다.”
저들끼리 건들거리며 낄낄거리는 모습에 사내는 조용히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보 길드로 안내해라.”
그 갈라지는 목소리와 찢어진 부분에서 드러난 한쪽 눈이 너무 섬뜩했던 탓에 그를 막아섰던 사내들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이내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는 듯 보였다.
“하. 거 눈빛으로 사람 하나 죽이겠네.”
“저 칼도 누구 죽이고 훔친 거 아니야?”
낄낄거리던 그들이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도 사내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야…… 고놈의 칼 때깔 고운 것 좀 보소.”
그때 한 사내가 건들거리며 다가와 사내의 허리에 채워진 검에 손을 댄 그 순간이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뜨겁고 붉은 액체가 허공을 갈랐다.
“어?”
갑작스런 소리에 검을 만졌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다른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비스듬히 갈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으……으아아아악!!”
사람을 저렇게 소리 없이 반으로 갈라버린다는 게 보기 쉬운 장면은 아니었다. 어지간히 잔인한 장면에 익숙한 자들조차 놀라 속에 든 것을 게워낼 정도로 참혹한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안내에 두 놈은 필요 없어.”
스산한 목소리로 검을 빼든 그가 검 끝을 질질 끌며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검붉은 색을 띠는 검신은 척 보기에도 명검이었지만 그는 그 검을 거칠게 다룰 뿐이었다.
서걱!!
또 한 번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또 한 명이 비스듬히 갈려 무너져 내렸다.
“으……으아아악!!!”
그제야 사내를 둘러싼 깡패들은 자신들이 건드린 게 단순 부랑자가 아닌 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든 잭나이프는 그가 든 검에 비하면 너무 초라했다.
덤비고 싶어도 도저히 덤빌 용기가 나지 않는 살기였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지도 않던 살기가 순식간에 짙어지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푸드득…….
이윽고 저항하지 못한 채 또 한 명이 쓰러졌다.
“네까짓 놈들이 건드려도 될 검이 아니다. 내 시간을 앗아간 대가도 작지 않을 거다.”
조용히 뇌까린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살아남은 깡패들은 그제야 살기위해선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걱!!
하지만 그에게 걸린 이상 거리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순식간에 한 명만 남긴 채 모조리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리자 홀로 남은 사내들의 리더는 벌벌 떨며 주저앉아버렸다.
“사……살려주세요. 나으리!”
도망도 안 되고 저항도 불가능하다면 남은 건 목숨 구걸뿐이었다.
머리를 바닥에 처박은 채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를 보며 사내는 비척비척 걸어 나갔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악!!”
끔찍한 공포에 그가 눈을 감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파육음이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눈을 뜨자 검을 천천히 납도하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나……나으리?”
“정보 길드로 안내해라.”
정보 길드.
깡패는 눈을 번뜩였다. 자신이 살기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깨달은 것이다.
“아……알겠습니다! 제가 이 근방에서 가장 정보가 빠삭한 정보 길드로 안내하겠습니다요!”
비굴한 깡패의 행동에도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내려다보았다.
보통 치안이 나쁜 왕국에서는 정보길드의 하수인으로 깡패들이 많이 동원되곤 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깡패 리더 또한 그런 케이스였다.
그는 자신이 살기위해선 그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았고 빠른 길로 안내해 정보 길드로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십시오. 이미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정보를 사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정보를 팔러 오셨습니까.
펍으로 위장한 정보 길드 입구를 지나 고요한 지하로 들어서자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사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정보를 팔러 왔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섬뜩한 목소리에 정보상이 흠칫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사고팔다 보면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으니 말이다.
“정보의 값은 들은 후에 계산하겠습니다.”
그 말에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하인스 영지.”
“……죄송합니다. 손님. 하인스 영지에 대한 정보는 따로 사고팔지 않습니다.”
“하인스 영지의 영주. 데이비 올 라운의 부인, 페르세르크 폰 라운은 마족이다.”
사내의 말에 정보상은 온몸에 핏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그에 관련된 소문은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소문으로 듣는 것과 달리 사내에게서 들은 말은 이상하리만치 온몸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손님. 다른 곳은 몰라도 하인스 영지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는 사지 않습니다. 저희도 목숨은 소중한지라.”
“증거가 있다.”
그렇게 말한 그의 섬뜩한 안광에 정보상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증거가 있다면 정말 엄청난 정보선점이다. 하지만 이 정보.
먹고 체하는 걸 넘어 먹으면 뒈져버릴 정도로 위험한 정보였다.
그렇다고 듣지 않겠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사내가 자신을 찢어발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증거라…… 좋습니다. 한번 들어나 보지요.”
그 말과 함께 넝마를 뒤집어쓴 사내는 천천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검은 무복을 입은 한 사내가 소리 없이 들어왔다.
“어르신. 정보를 사러 온 분들이 있습니다.”
“미쳤어? 지금 거래 중인 거 안보여? 당장 꺼져.”
아무리 상도덕이 없기로서니. 이렇게 개념 없는 부하를 둔 기억은 없을 텐데.
정보상이 인상을 찡그리며 타박하려던 찰나였다.
“그게…….”
부하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인스의 성자 데이비 왕자입니다.”
뭐?
그 말에 증거랍시고 무언가를 꺼내던 사내와 정보상 모두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본 사내는 절대 젊은 인상에 가벼운 발걸음이라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인스의 데이비 성자…….”
정보상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반면,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 지부를 찾아왔던 데이비는 넝마를 쓴 사내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찾았다. X새끼.”
콰아아앙!!!!!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날아든 데이비가 넝마를 뒤집어쓴 사내의 목을 낚아채 벽면에 처박아버렸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그렇게 말하며 사내를 압박하던 데이비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네가 페르세르크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냐?”
당장이라도 찢어버릴 것 같은 섬뜩한 살기에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하자 정보상은 양손으로 제 목을 틀어쥐고 컥컥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싸움이 벌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직시할 뿐이었다.
스르릉…….
카아앙!!!
뒤이어 데이비에게 제압당해있던 사내가 순식간에 검붉은 검을 뽑아 들어 데이비를 향해 휘둘렀다.
제압당하고 엄청난 위압에 눌리면서도 사내는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검을 겨누는 그 행동거지에 데이비의 한쪽 발이 조금 땅에서 떨어졌다.
콰아앙!!!
그리고. 언제 걷어차였는지 넝마를 뒤집어쓴 사내의 신형이 벽면을 뚫고 비밀리에 지어진 정보 길드의 건물을 한차례 박살 냈다.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당장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걸 나도 참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 죽이려 드는 데이비의 눈빛에 거짓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하인스 영지에서 요시아가 필사적으로 데이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왜 연락 아티펙트가 작동을 안 하는데에!! 안돼…… 안돼! 선생님! 그 사람 죽이면 안 돼요!!!”
다급한 외침이었지만 대륙 반대편에 있는 데이비가 그 이야기를 들을 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