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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78화 (1,278/1,559)

제 1278화

초단이의 날카로운 검신이 놈의 전신을 헤집어 놓았다.

아벨은 멍하니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분명 저 악마가 무언가 말하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제 아버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놈을 난자해버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아벨에게 있어서 데이비 올 라운, 즉 그의 아버지가 싸운다는 점은 상당히 익숙지 않은 광경이었다.

강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본 적은 없다.

그렇기에 그 충격은 가히 놀라웠다.

아벨은 태생부터 많은 힘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그 힘을 곧바로 다루지는 못했다.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 서서히 올라온 케이스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금방금방 강해지는 다리안이나 태생부터 강했던 에반젤린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여기서 쓸 말은 아니지만, 한때엔 에반젤린 누님과 다리안 형이 아버지를 뛰어넘었기에 아버지도 그들에게 대부분의 문제를 맡긴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과거에 대단했다곤 하지만 사실 그건 과장된 것이라 생각한 점도 없잖아 있었다.

실제로 그를 만났을 때 아버지가 보여준 무력은 강하긴 해도 대처가 안되는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다.

전성기 때 아버지의 무력이 이정도니 사실상 형인 다리안이나 누나인 에반젤린의 힘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장녀인 초단이의 경우 특수한 케이스니 별개로 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한때 그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게 과연 큰 도움이 될까.

조금 못 미더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이 모두 날아가는 데에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보여주었던 무력은 그가 지닌 힘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에반젤린 누님이…….”

다리안과 자주 투덕거리던 에반젤린이 아버지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지던 게 설마하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곤 생각지 못했다.

그가 방금 휘두른 일검을 막으라면 막을 수 있을까.

마법으로? 어림도 없지. 방금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시간의 축을 무형의 힘으로 먹어치워 버리고 무방비가 된 악마를 찢어버린 공격은 완전 초면이라고 하기엔 애매했지만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워 버리는 수준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계는 단연코 그가 지금껏 본적도 없는 힘의 흐름이었다.

오만해졌던 마음이 한순간 공손해지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수차례 베어지며 치명상을 입은 악마가 비틀거리더니 이내 흩어지듯 분해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악마가 온전히 사라졌을 때. 하늘을 보던 그가 말했다.

“초단이의 힘으로도 안 죽어? 타나토스도 못 버티는걸?”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엔 허탈함이 서려 있었다.

“아들. 다친 곳은?”

그 물음에 상념에 빠져있던 아벨이 깜짝 놀라 데이비를 바라본다.

“아버지…… 방금…… 어떻게 하신 겁니까?”

“늘어난 시간은 비틀림이야. 기본적인 법칙이 아닌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이니 그걸 먹어버리면 되는 거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건 못쓰겠네.”

그리고는 방금 먹어치운 것으로 추정되는 힘을 허공에 흩뿌려버렸다.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는 아벨을 지나치며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가자. 아들. 네 엄마가 걱정하겠다.”

“아버지?! 아직 해결 안 된 일이!!”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 거다. 그리고. 당장 이번 일로 바리스가 상당히 귀찮게 됐을 거다.”

한 왕궁이 날아가 버렸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어버렸고. 악마가 사라졌음에도 붉은 하늘을 여전히 유지되어있다.

그리고,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초대도 받지 않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티오니스 유일 성자. 데이비 올 라운.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데이비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아벨로썬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가 이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는 유예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벨은 묵묵히 제 아버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왕성에서의 소식을 전해 들은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다 뒤집어쓴 거다…… 이 말이네? 그리고 그 사태를 일으킨 놈은 네 손에 죽었고?”

“일단은 그렇게 될 거 같은데. 죽었다고 하기엔 손맛이 영 찜찜해. 국제 연합도 시끄러울 거야. 아마 내게 직접 걸고넘어지기엔 피곤하니 라운 왕실에 압박을 가하는 이들도 있을 거야.”

단순한 무제도 아니고 일국의 왕성이 모조리 날아갔다.

처음엔 목숨을 건진 헤탄 국왕도 그 이후에 생긴 여파 때문인지 사망상태.

살아남은 귀족도 적은 판이니 현재 헤탄 왕국은 그야말로 무정부상태나 다름없었다.

일국을 그렇게 만드는 건 전쟁이 벌어져도 잘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수의 비난은 피할 수가 없는 상태.

나를 향한 비난이라면 웃어넘기고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바리스만 피곤해지겠지.

바리스의 앞길을 도와주진 못할망정 망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왕위를 이어받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바리스는 의도하지 않게 저 무거운 자리에 올랐다.

그런 주제에 나를 따르고 내가 왕실의 파워 밸런스를 뭉개버렸음에도 나를 지지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바리스가 곤란할 상황을 일으키는 건 최대한 피하는 입장이었다.

“조만간 국제연합이 소집될 거야. 그때 자세한 정황을 물어볼 거고.”

“아…… 설마. 그곳을 아무런 정리도 하지 않고 곧바로 돌아온 건.”

“그래. 유일한 상황증거가 될거다. 짧으면 내일 바로 소집될 수도 있어. 그때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받던지. 아니면 찍어누르든지. 결정하게 될거야.”

국제연합에 합을 맞춰주는 건 괜히 적대해서 너 죽고 나 죽자가 되어버리면 결과적으로 이 손에 엄청나게 많은 국가들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그 흐름에 맞춰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 파국을 바라진 않았다.

그 행동 자체가 왕위를 바리스에게 넘겨준 자가 해선 안 될 월권행위였으니 말이다.

바리스가 전 대륙과 전쟁을 결심한다면 나서겠지만 바리스는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니 그에 맞춰주는 게 동생에게 짐을 맡긴 형의 의무였다.

그리고. 악마가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부 분열을 일으켜선 곤란했다.

그 대답에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벨은?”

그때 조용히 있던 페르세르크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마 아들의 몸이 안 좋은 걸 아니 확인도 할 겸 보고 싶은 것이리라.

“아마 내 침실에서 쉬고 있을 거야.”

아벨은 현재 하인스 내에서도 알려진 이가 극히 드물었다. 아는 이라고 해봐야 극히 일부.

실제로 요시아나 코오나 같은 경우도 아벨의 존재에 대해 언급만 할 뿐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이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일반 객실에 머무르게 할 순 없었다.

“미묘하게 불안한데요.”

그때 조용히 책을 보던 초단이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 * *

미식연구회와 영지개발부가 연합에겐 둘도 없는 기회였다.

무슨 일인지 피곤한 얼굴로 영주성으로 돌아온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의 소재를 파악한 유리아와 에오니샤는 원거리 통신을 통해 자신들의 계획을 정리했다.

“우선 영지 개발부에서 만든 정령 은폐 밀실에 은공을 유인한 뒤에 그곳에 둘만 가둬놓는 거죠.”

“오라버니는 단번에 부숴버릴 거 같은데요.”

“그건 코오나 씨가 해결해줄 거에요. 영지개발부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던 작품이라 부수면 굉장히 슬퍼할 거라고 기름칠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박정하고 잔학무도한 데이비라도 동생이 열심히 만든 작품을 대번에 부수는 짓을 하진 않으리라.

“그렇게 되면 저희가 문을 열어주는 시간까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요. 그리고 이제 거기서 우리 미식 연구회의 진가가 드러나는 거랍니다.”

처음엔 뒤통수를 칠 생각으로 가득했던 두 조직이었다. 하지만 가히 난이도가 높은 데이비를 공략하는 데에 많은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서로 심취해있다는 걸 잊은 그들이었다.

유리아의 정령술과 점순이의 힘, 그리고 륀느의 구현능력을 이용하고, 자잘한 기술적인 문제는 영지개발부의 에오니샤와 티아라가 맡았다.

그렇게 뚝딱 만들어진 정령 은폐 밀실 장치는 처음엔 그저 아티펙트처럼 보이지만 활성화하는 순간 정해진 공간을 완전한 밀폐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단순한 분위기면 절대 은공은 신경도 쓰지 않죠. 그러니까 이것들을 쓸 거예요.”

유리아는 자신이 준비해둔 물건을 몇 개 꺼냈다.

“폭마석을 연구하다가 만든 에프렘 발화 열매에요. 식용으로도 쓰지만 지구에서 쓰는 번개탄과 비슷하죠.”

주변의 온도를 상당히 올린다.

“그리고 이건 활성화되면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고요. 너무 심하면 안 돼요. 그럼 어떻게 되건 밀폐공간이 박살 나버릴 테니. 적당히 더운 정도만 유지할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

“그리고…… 이게 보팔레빗에게 부탁해서 가져온 마계 서큐버스들이 재배하는 약초.”

맛을 위해서 모든 약초를 연구해온 유리아인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건 다 사용한다.

“그거…… 괜찮은 거 맞아요?”

“괜찮아요. 은공은 이 풀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요. 서큐버스들이 비밀리에 재배하는 물건인데. 이성에 대한 호감을 올려준다고 하나 봐요.”

준비는 완벽했다.

유리아는 아티펙트를 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처음엔 배신할까 했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거 너무 재미있네요. 이번일 만큼은 절대 배신하지 말도록 할까요?”

본래엔 적당히 돕는 척 발을 빼려 했다만. 마음이 바뀐 지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일을 정령이 보고 기록해줄 거에요. 어차피 큰일이야 나지 않겠지만, 아마 은공도 꽤 당황하실 거라 믿어요.”

그 말에 에오니샤가 쿡쿡 웃었다.

“현재 오라버니는 지친 상황이니 한 시간 정도만이라도 마음을 비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겠죠.”

우아하게 예쁜 슬림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묶어 이미지를 완전히 변신한 코오나가 현재 그의 침실로 향하고 있다.

계획은 완전했다.

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현재 침실에 있는 건 데이비가 아닌 아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똑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흠칫 놀란 아벨이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숨죽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그는 혹시나 할 상황에 대비해 인식저해마법을 이용해 모습을 멀쩡한 상태로 숨기고 있었다.

그 덕분에 놀라진 않겠지만 일단 침입자인 만큼 소란이 일터.

분명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했는데.

끼이익…….

그때 대답도 없는데 스스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 시간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다?

대체 누구인가. 어머니인가. 아니면 툭하면 창문을 타고 들어오던 륀느나 요시아 누님일까.

그런 생각에 머리가 아프던 찰나.

생각외의 인물과 눈을 마주친 아벨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코……코오나?”

동시에 그의 목소리에서 이질감을 눈치챈 코오나가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우우우웅!!

하지만 코오나가 진입한 걸 확인한 영지개발부와 미식연구회의 밀폐 공간이 활성화되어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의도하지 않게 밀실에 갇혀버렸다.

* * *

“흐흠. 계획은 완벽하네요.”

“그러게요.”

멀리서 정령이 만들어낸 장막으로 주변을 완전밀폐하는 장막을 본 에오니샤와 유리아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본 골자는 티아라와 에오니샤가 만든 아티펙트에 정령의 힘을 담은 결계였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소리도, 시야도 하나도 전달되지 않는다. 본래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 했던 기획이지만 데이비에게 퇴짜맞은 뒤로 사실상 무산된 계획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유리아는 문득 에오니샤가 들고 있던 무언가를 보고 의문을 표했다.

“에오니샤 님? 그런데 그건 뭔가요?”

“이거요? 폭주제어장치……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당황한 에오니샤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대체 뭐길래요.”

“정령의 힘이 폭주하지 않게 막아주는 물건이에요. 상당히 아슬아슬하니까요.”

“폭주하게 되면…….”

“결계가 엄청나게 단단해지겠죠. 어지간한 힘으론 부서지지 않을 거예요. 무려 오라버니의 힘을 담아놓은 아티펙트를 이용한 거라…….”

몸을 지키라고 준 아티펙트를 이런 곳에 썼다는 걸 들키면 혼날 테지만 본래 연구자라는 건 싸이코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별일은 없겠죠?”

“별일이야 있겠어요? 폭주하면 지속시간이 조금 더 짧아져요. 본래 예상대로면 한 시간 정도인데. 만약 정령의 힘이 폭주하면 길어야 20분에서 30분 정도.”

어차피 그렇게 길게 잡아놔야 쓸모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에오니샤와 유리아는 섬뜩한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춥지?”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에오니샤도 추운지 가운을 깊게 눌러 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하지만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둘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절대 들려와설 안될 목소리였다.

* * *

아벨과 코오나는 서로 대치한 상태로 경악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당신 누구죠?”

코오나는 아벨의 맨 얼굴을 처음 보기에 경계하듯 한 손을 들었다. 문제는 이 정령 밀폐공간에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은 물론, 그녀의 힘이 계속해서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큰 힘을 쓸 수 없었다.

반대로 아벨의 경우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는 깨어있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코오나가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눈앞에 나타난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모습은 같은데. 그 분위기가 조금 다르니 새로운 느낌이 들어 더욱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대답해요. 당신 누구죠?”

“오……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침입자가 아닙니다.”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는 건가요?”

“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어차피 들킨 거 괜한 거짓보다는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선 비밀로 할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누군데요.”

“제…… 이름은…….”

잠시 중얼거린 아벨이 갑작스런 열기와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비틀거렸다.

‘웁…… 몸의 과부하가…….’

겉보기만 멀쩡할 뿐 사실 아벨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특정 트리거만으로도 그의 상태가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소리였다.

비틀거리며 그가 쓰러지려 하자 코오나가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이봐요! 이봐요! 괜찮아요?!”

당황한 코오나의 외침에 아벨은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쓰게 웃었다.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몸이 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몇 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당신은 여전히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적일지도 모르는 자신을 부축하며 괜찮냐 묻는 그녀의 배려는 사실 아벨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미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그렇게 바랬는데. 대체 왜 그런 사고에 휘말려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게 된 건지.

충동과 혼란. 그 혼미함 속에서 아벨은 멍하니 손을 뻗었고, 예쁘게 화장한 코오나의 뺨에 손을 올렸다.

“거봐요…… 내가 그렇게 입으면 예쁠 거라고 말했잖아. 코오나 누나.”

“제 이름을 알아요?!”

“나…… 일단 조금만 잘게요……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 줘요…….”

그렇게 말한 아벨이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마치 잠꼬대하듯 웅얼거렸다.

“이런 투정은 그만 부리고…… 어차피 본심도 아니잖아…….”

이미 미리 준비된 장치로 인해 묘하게 더운 공기가 주변을 엄습했다.

척 보기에도 괴로워 보였던 그의 얼굴이 편안해진다.

마치 피곤해서 잠든 것처럼 변한 그 흐름에 코오나는 자신의 힘으로 그의 몸을 치료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그제야 그의 몸 상태가 엄청나게 안 좋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상처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 일단 공간을…….”

쩌엉!!

다급히 코오나가 허공에 자신의 힘을 흩뿌렸다.

하지만, 폭주해버린 밀폐 장벽은 그녀의 힘으로 뚫리지 않았다.

“왜 안 부서지는 거야!”

당황한 그녀가 몇 차례 더 부숴보려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완전히 갇혀버린 상황에서 코오나는 후끈거리는 열기와 유리아가 미리 준비해놓은 서큐버스의 열매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건지.

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의식을 잃기 전 그는 코오나에게 처음 보는 유형의 따스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시선과 한마디. 그리고, 손끝의 감촉이 그녀의 몸을 섬뜩하게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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