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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81화 (1,281/1,559)

제 1281화

콰앙!!! 쾅!!!

평화의 상징 중 하나인 성국 뱔사스.

그런 성국의 수도에서 대규모 폭발과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비명과 혼란.

그 끔찍한 광경은 도저히 여신을 모시는 성국의 수도에서 볼법한 상황이 아니었다.

“성기사단은 어쩌고 있는가!!”

“현재 1사단과 3사단, 11사단이 혼란 속에서 겁에 질려 난동을 부리고 있는 국민들을 진압하고 보호하고 있고, 4사단과 7사단, 8사단에 12사단은 쓰러진 이들과 위험한 상황에 그대로 노출된 이들과 부상자들을 옮기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현재 곳곳에 생겨난 기현상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난장판에 가까운 상황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붉게 변한 하늘로 계속해서 희끄무리한 영혼 같은 무언가가 빨려 올라가고 있었다.

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생명력과 관련이 있냐 한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붉은 하늘을 나는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헤탄 왕성의 하늘이 지금 이 지경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건…….”

“헤탄 왕성에 있는 것과 동일하네요. 다만, 그곳과 다르게 뭘 흡수하고 있어요.”

사방에서 빨려 올라가는 희끄무리한 형체들을 보던 앨리스는 골목길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 한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몸 안에서 무언가를 배출해낸 뒤 쓰러지는 것을 보고 뛰어갔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거 같아요.”

“영혼은 아니에요.”

쓰러진 이의 몸에 손을 대보자 숨은 쉬고 있다. 다만 마치 기력을 빼앗긴 것처럼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빨리 빨리 움직여요! 급한 병자들이 가득합니다!”

사방에서 사제들이 허겁지겁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테러와도 같은 사태에 성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조금 전 맡은 아주 옅은 배교의 냄새 때문일까.

신격을 얻은 뒤로 언제부터인가 맡을 수 있게 된 사소한 변화.

신을 모시던 자가 신을 등지는 행동을 했을 때 생기는 특유의 향은 처음 맡아본 것임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스릉…….

말없이 홍단이와 청단이를 불러내 손에 쥐자 앨리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지금 가시면 안 돼요. 솔직히 당신이 한 게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 홀로 사라져버리면 의심하는 이들이 생길 거에요.”

“그래서요?”

“제가 당신의 가신이라면 이런 의심요소는 가능한 피하라고 간언하고 싶네요. 우선 상황을 정리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앨리스 교수님.”

“네.”

“이번 기회에 남의 앞길 막는 놈들 한번 싹 다 솎아낼까요?”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내 대답에 간담이 서늘해졌는지 앨리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신은 가끔씩 보면 참 솔직한 인간이라 무섭네요.”

“그럼 귀찮은 것들은 잘 부탁하겠습니다.”

“기왕이면 이사고를 일으킨 놈도 찾아서 작살내주시면 고맙겠네요.”

고향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건 절대 좋은 감정은 없으리라.

“신을 모시는 사제가 그래도 됩니까?”

“일개 신관인데요. 뭐.”

요즘은 대주교 출신이 일개 신관 소리를 듣는가.

“게다가 성자라는 양반이 저보다 더한데 뭐 어때요.”

가끔 이 여자는 뭔가 많이 비틀려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타앗!

바닥을 가볍게 박차며 에이리아가 지닌 추적용 아티펙트가 울리는 곳으로 빠르게 향했다.

아벨과 에이리아의 안전이 확보되는 순간 그들을 돌려보내든지 안전한 장소로 옮긴 뒤에 악마 놈을 다시 추적할 생각이었다.

이놈을 남겨놓으면 반드시 후에 화가 되어 돌아올 터.

멀쩡히 둘 생각은 없었다.

-그으으으…….

성국에는 정말 많고 다양한 결계들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 성국이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불려온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성국에서 갈 수 있는 성역은 그 정도가 심했다.

물론, 그런 제약을 나는 한차례 무시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잠깐 이동을 했을까.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일부 사제들의 앞에서 멈춰섰다.

그들은 내가 더는 나가지 못하도록 틀어막은 뒤 나를 노려보았다.

“성자, 데이비 올 라운 대공.”

“무슨 일이지?”

바쁜데 사람 발을 묶으니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있을까. 싸늘하게 그들을 쏘아붙이자 서로 눈치를 보듯 그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중 한 명이 천천히 나서서 말했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내가 그걸 너희들에게 보고해야 하나?”

“말조심해주십시오! 아무리 성자라곤 하나 우리는 성국의 정식 신관…….”

“그래, 풋내나는 신관님.”

그 비난에 그들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성국의 정식신관이 어디 가서 험한 말을 들을 상은 아니었으니까.

수행이 부족한 젊은 놈들이다.

혈기가 넘치니 아직 자신을 다스리는 법도 모를 터.

겉보기에 이놈들의 나이는 잘 쳐줘 봐야 10대 중후반.

갓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녀석들이었다.

남녀 혼성 신관들 사이에서 가장 급이 높아 보이는 젊은 금발의 신관이 나서서 나를 바라본다.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현재 성국에는 알 수 없는 습격이 진행되는바. 이대로면 죄 없는 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예?”

내 물음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인상을 살짝 굳혔다.

“그러니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힘이라면 지금 휘말리고 있는 불쌍한 이들을…….”

그들의 요청은 그러했다.

당신이 대륙에서 존경받는 성자라면.

자애의 여신을 모시는 자라면,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도와라.

“그건 성국의 상부에서 내려온 요청인가?”

“지금 그것이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휘말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어요!”

상부에서 내려온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태에 투입된 젊은 신관 중 일부의 독단일 터.

그럼에도 이들의 얼굴에는 어떤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직급이 뭐지?”

“세임스 가문의 토펜느 부주교입니다. 아무리 성자라 한들, 예를 지켜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까.”

존중하는 놈치고 참 적대적인 시선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부주교? 부주교의 위로 보좌주교 교구장 대주교 등등 직급이 많고 그 사이사이에도 급수가 있는 만큼 온전히 높은 위치라 할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정도 나잇대에 오르기엔 상당한 직급임에 틀림없었다.

앨리스가 주로 말하던 성국 내의 엘리트 가문의 자제이리라.

“토펜느 부주교. 그러니까 부주교가 하고 싶은 말은 남들 다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너는 여기서 뭘 하냐 이건가?”

“그……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럼 쓸데없이 남 방해할 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직접적인 습격은 없다지만 무언가를 빼앗긴 인간들이 쓰러지고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남을 붙잡고 방해할 틈은 있는가.

내가 망설임 없이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그 순간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멈추십시오! 당신은 성자이지 않습니까! 성자가 고통받는 자를 외면하고!”

스릉…….

내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자 그가 눈을 부릅 떴다.

“어이. 도련님. 남에게 뭘 요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당신은…… 저 고통받는 이들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대답해줄 가치는 없는 듯 했다.

나는 멍하니 굳어있는 그를 지나친 채 화마가 일고 있는 건축물에 대량의 물을 소환해 들이 부어버렸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는 그 사이로 그를 지나쳐 갔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도 젊은 엘리트, 토펜느 부주교는 나를 노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런 놈이 나중에 귀찮아질 테지만 1초라도 신경쓸 생각은 없었다.

* * *

에이리아의 곁에는 아벨이 지키고 있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고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는 사람들은 몸 안에서 새하얀 것들을 빼앗기지 않았기에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버지!”

“이상은 없고?”

“네. 어머니도 무사하십니다.”

그의 말대로 에이리아는 놀란 듯 보이지만 침착함을 유지한 채 쓰러진 사람에게 물의 정령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신성 마법으로 치유가 안 되고 정령의 힘으로도 치유가 안 되는 건 이미 시도해보았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 워프를 열어줄 테니 에이리아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악마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며 내게 강하게 요청했다.

“몸은 안 좋아도 어느 정도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습니다.”

“에이리아를 혼자 보내라고?”

“그건…….”

“아들.”

짧게 그를 부른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디 숨어있는지. 그놈이 맞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정확하게 알아보기 전엔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거다. 방심하는 순간 크게 다치는 거다.”

한번 당해본 놈이 그걸 잊나.

“하지만 그놈은 아버지께 이기지 못하잖아요. 전과 달리 아버지께서 신경 쓰고 계신다면…….”

그는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특히 이 악마 놈은 과거 심연의 힘처럼 일반적인 힘의 상위에 있는 건지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움직인다.

“아…….”

그제야 짧은 탄식을 흘리는 그였다.

이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악마를 완전히 끝내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 지속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악마는 무슨 생각인 건지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머……멈췄다!”

붉은 하늘은 여전하지만, 하늘로 빨려 올라가던 새하얀 영혼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몸에서도 영혼 같은 것이 빠져나갈까 두려워하며 혼란스러워하던 성국의 사람들은 갑자기 혼란이 멈추자 힘이 빠진 듯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야말로 전조 없이 찾아온 재앙과 갑자기 사라져버린 흔적 너머로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나마 놈을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 이상 내 쪽에서도 조금 무리하게 추적을 감행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아빠! 정신 차려요. 아빠!!”

어린 소년이 추욱 늘어진 중년 사내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이들. 그들은 이 사태가 끝났음에도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그놈은…….”

곧바로 공간을 찢어 균열을 만든다.

“먼저 가. 흔적이 아예 없진 않을 테니 한번 조사해볼 거다.”

나는 아벨이 자신의 주먹을 파르르 떨다 분노를 억누르고 에이리아를 데리고 균열 너머로 가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8서클이니 에이리아가 안전하다 판단되는 순간 다시 돌아오리라.

아벨과 에이리아가 떠난 뒤 나는 마치 홀린 것처럼 어디론가로 향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와 불에 타오르는 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감이 부르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말없이 눈 앞에 펼쳐진 현상을 시야에 담았다.

어두운 골목길에 펼쳐진 것은 검은 먹으로 된 무언가가 골목 가득히 그려진 형태였다.

마치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 그릴법한 지독한 몰골에 나는 손을 올렸다.

그리고 신력을 천천히 발현하여 주변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배교의 향이 묻어나는 신성력이었다.

“내부에서 악마를 도운 놈이 있다는 건데…….”

그 뒤에 느껴진 것은 악마와 충돌할 때 놈이 간혹 보여주었던 힘의 잔향이었다.

다른 악마종을 본 게 아니기에 정확한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두 번이나 죽여버린 그놈이 가진 힘과 흡사했다.

헤탄에 이어서 이번엔 성국이라.

간단히 생각하면 이놈이 다음 목표로 다른 왕국을 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추적할 수단이 없는건 사실이었다.

이에 나는 여신과 공명을 위해 신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다.

“다프네?”

“뭐하냐 멍청아.”

거친 목소리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여긴 언제 내려왔습니까?”

“네가 잘 처리하는지 두고 내기했다가 망할 거 같아서 몰래 내려왔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라 이겁니까?”

“우리도 몰라. 여신은 그저 지켜보라고만 할 뿐. 그녀가 시험하는 게 너인지, 아니면 그 악마인지는 우리도 가늠하기 힘들어.”

악마종이 활개를 친 건 1만 년 전.

그때의 일을 아는 건 이제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고대의 영웅인 다프네라 할지라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옆에서 조언 정도는 해줄게. 그동안 모아놓은 힘이 있어서 힘을 쓸 순 없어도, 하루 정도는 현신은 해 있을 수 있어.”

“나야 좋죠.”

다프네가 조력해준다면 이쪽도 편해진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인포스 알파에 있던 내 동기 루시아 쉘만이 지독한 다프네 신봉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실을 미루어보건대 초대 성녀 다프네는 그야말로 성국 발샤스에서는 전설에 해당하는 위인일 터.

이곳의 인간들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껄렁껄렁한 느낌의 여자가 그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성녀 다프네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루시아도 다프네의 정체를 모를 때 상당히 화를 많이 냈었다. 초대 성녀를 모독하지 말라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마굴 일로 엮였을 때도 한번 그랬죠?”

그땐 루시아 쉘만이었지만 성국은 어떨는지.

“어차피 내가 다프네라는 사실은 너 말고 아무도 몰라. 괜한 짓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그녀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린 뒤 신성력을 발현하여 골목에 그려진 기이한 낙서들을 지워버렸다.

* * *

세임스 가문의 토펜느 부주교는 고통에 울부짖는 성국민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괜찮습니다. 곧 나으실 겁니다.”

그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성역이나 다름없는 이 성국을 공격하다니. 분노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를 가장 혼란스럽고 화나게 하는 건 성자의 존재였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성녀 리나는 이곳저곳을 바쁘게 다니며 다친 이들을 모아 치료를 시도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신성 마법으로도 이 사태를 막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이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테러리스트를 찾아낸 것으로 사태를 종식시켰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났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먼저 성흔을 내려받은 대륙의 성자는 대체 왜 나서지 않는 것인가.

자애의 여신의 성흔을 받은 자가. 여신의 뜻에 따라 자애와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인간이 어찌 그렇게 남을 보듯 쓰러져 가던 사람들을 본 것일까.

그는 그런 인간이 성흔을 받은 성자라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주변 일부에서는 성자인 데이비가 무언가를 한 게 아닌가 하며 굳은 믿음을 보이는 멍청이들도 있었다.

그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토펜느 부주교도 사실 그가 무슨 이유로 움직였는지에 대해선 확신하는 게 없었다.

최근 성국 내부의 젊은 세력에서는 불경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자주 하는 불량 성자에 대한 불만이 많이 나왔다. 로암 사제가 그중에서도 가장 극성이었지.

토펜느는 가문의 방침 때문에 엄연히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실제로 엘리트 가문의 도련님으로 어릴 때부터 신관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다만, 오랜 시간 노력해왔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의 사랑을 받는 이가 다른 이라는 사실에 서운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성자인데. 신이 선택한 존재인데. 그런 자가 저런 성품이라니.

오늘 일 이후로 그에 대한 일말의 존중과 존경심도 들지 않았다.

“고통받는 자들을 무시하는 자는 성자의 자격이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 순간.

그의 손목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끄으윽?!”

갑작스런 통증에 놀란 그가 비틀거린다.

하지만 그 아픔보다 그를 놀라게 하는 건 상처의 형태였다.

“이건…… 설마 성흔?!”

경악한 그가 눈을 크게 뜸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어떤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선택받았다. 신의 사도로써 네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라.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예……예! 제 몸과 마음을 신께 바치겠나이다!!”

토펜느 부주교는 자신이 성흔을 받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귓가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땅에 거짓 성흔을 지닌 자가 있다. 누구인지는 보는 순간 알 수 있을 터. 그의 행동을 막아라.

데이비 올 라운!

토펜느의 눈이 번뜩였다. 그자의 성흔이 가짜였단 말인가! 그럼 대륙은 그자에게 놀아난 것인가!

지독한 분노와 배신감에 치가 떨리기 시작한다.

-로암. 그가 너를 도우리니.

그 말과 함께 새하얀 로브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다.

“토펜느 부주교님. 로암입니다.”

“당신은…….”

얼마 전 행방불명 된 것으로 알려진 로암이 그와 접촉했다.

중립이던 토펜느가 사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내이기도 했지만, 신의 계시 앞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가짜라면…… 그의 민낯을 끌어내고, 또 말이 나온 대로 그가 이 사태를 일으킨 게 맞다면, 제 목숨을 불살라서라도 그를 막을 것입니다. 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따를 것입니다!”

토펜느 부주교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생각을 했다.

신이 내린 흔적과 계시. 그렇기에 그는 보지 못했다.

로암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움직여라. 방해가 들어오긴 했으나 인간들의 시간은 상당량 모았다.

-그에게 들키지 않고 내가 돌아가기 위해선 그의 발목을 묶을 필요가 있다. 내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 나는 대륙의 성자에 비견되는 입지를 얻을 수 있는 힘을 주마.

로암에게만 들려오는 악마의 속삭임. 토펜느와 로암은 데이비라는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같았으나 그 방향성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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