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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83화 (1,283/1,559)

제 1283화

에반젤린은 마치 유전자 단위로 새겨진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 으르렁거렸다.

저 특성이 단순히 에반젤린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텐데.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에반젤린의 양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저지했다.

“이거 놔줘요! 그 새끼가 살아있다고!”

“조금만 릴렉스하자. 딸.”

그 한마디에 에반젤린이 흠칫 놀라더니 나를 돌아본다.

이에 손을 천천히 놔주자 그녀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한 발, 두 발 물러났다.

“아빠…… 혹시…… 어디 다쳤어요?”

“뭐?”

“왜 평소에 안 하던 호칭으로 부르고 그래요. 두드러기 나게…….”

그 말에 나는 평소와 달리 에반젤린을 어떻게 불렀는지 짐작했다.

아벨과 이야기하다 보니 아들, 아들 하던 게 버릇이 된 것일까. 내가 언급하고도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볼래? 금방

“마침 저기 필요 인원들이 오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다수의 신관들과 함께 성녀 리나와 앨리스가 함께 오는 게 보였다.

“데이비 님, 이 일의 원흉을 찾는 데 꼭 필요한 이가 하인스 공녀님이었나요오? 그런데 그 복장은…….”

그녀의 물음에 에반젤린이 나름대로 예우를 차려 인사를 올리지만, 문제는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이 티오니스의 복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파란 청바지에 한쪽 어깨에 밴드가 달린 커다란 박스티를 입고 있으니 보는 이들이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이에 아공간에서 꺼낸 고풍스러운 로브를 에반젤린에게 덮어 씌워버리자 그녀가 버둥거리다 침묵했다.

평소대로라면 짜증을 내며 답답하다 할진대. 에반젤린은 로브 후드 너머로 보이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잠시 고민 끝에 내 팔을 잡았다.

“공녀께서 놈의 위치를 안다니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요?”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았던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에반젤린이 그놈을 찾아내면 내가 가서 처리합니다. 간단하죠?”

에반젤린이 어떻게 놈의 위치를 찾는지 성국측에선 의아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걸 의심하기엔 상황이 급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두세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간이나 보려고 소문난 딸바보인 이 사람이 공녀까지 데려온 줄 알아요?”

앨리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앨리스 대주교…….”

“성녀님. 결단을.”

전이라면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저놈의 꽃밭은 언제 한번 크게 혼을 내고 새로 가르쳐야 한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앨리스였지만 자리 때문일까. 아니면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며 많이 유해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성국의 일을 다 내려놓으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일까.

상당히 깍듯하기 그지없다.

“아프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오…… 사망자는 적다고 할지라도 저 붉은 하늘이 빼앗아 간 것이 무엇이건 그 사람들에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일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동행할게요오. 다른 분들은 피해 복구에 힘써주세요.”

“하지만 전후 사정을 우선…….”

“성자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제가 보증할게요오.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한다면…… 제가 막을게요오.”

“알겠습니다. 성녀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저들끼리 합을 맞춘 뒤 리나 성녀는 숨을 고르며 커다란 신관의 지팡이를 들었다.

“제가 같이 해도 될까요?”

“편한 대로 하세요.”

이 머릿속이 꽃밭인 성녀가 방해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이 기회에 오해를 싹 다 청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에반젤린. 이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

“아빠……아빠! 그 새끼! 꼭 묵사발 내줄 거지?!”

거의 강박증에 가까운 적의는 달갑지 않았다. 어릴 땐 용사가 꿈이라며 누군가를 지키는 걸 좋아하지 않던 에반젤린이었고 성장을 하고 나서도 툴툴거리긴 해도 누군가를 지키는 데에 자신의 힘을 쓰는 걸 아끼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 에반젤린이 미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대라는 게 우습기 그지없다.

고대룡은 드래곤의 시조라 불리지만 드래곤과 조금 다른 특성들이 아직 더 있다.

정작 마지막 고대룡이던 아비트와 이클립스가 사라진 현 세상에서 고대룡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여신을 제외하곤 있을 수가 없었다.

내 허락과 함께 참고 억누르던 것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에반젤린이 몸을 웅크렸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자색의 세로로 찢어진 눈으로 변하며 흉포한 피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양 어깨 위쪽 공간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거대한 용의 앞발이 튀어나와 대지를 지탱하듯 쿵!! 소리를 냈다.

“흐업?!”

“세……세상에!!!”

에반젤린이 나의 양녀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갓난아기 때부터 급성장했다는 말을 듣고도 세상엔 별일이 다 있네 하는 일부 부류와. 아예 소식을 모르는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초단이와 별개로 에반젤린에 대한 궁금증은 일부 호사가들에게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존재인가.

대륙의 성자의 양녀라 들었는데 어디서 온 것인가.

사실 꽤 오래전부터 많은 국가의 내로라 하는 귀족들이 하인스 영지와 연을 트면서 에반젤린의 혼담에 대해 스리슬쩍 찔러넣은 사례도 있었다.

하나같이 에반젤린이 알기 전에 불태워버렸으나 에반젤린이 가지는 입지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으으…….”

몸을 웅크린 채 거대한 드래곤의 앞발을 컨트롤하는 그녀의 전신에서 주변을 짓누르는 피어가 쏟아져나오자 앨리스가 기겁하며 양손을 강하게 부딪쳤다.

[5급 성마법]

[순백의 성벽]

쿠웅!!!

마치 그녀의 뒤에 있는 허공에서 두 개의 팔이 돋아난 것처럼 튀어나와 있던 용의 앞발은 그녀의 양쪽 바닥을 강하게 움켜쥔 채 더욱더 격동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뒤쪽 허공이 또다시 찢어지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날개가 공간을 찢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경이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경외 어린 시선과 두려움이 섞인 모습으로 에반젤린을 바라본다.

쩌적!!!

쿠우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형체가 검은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이내 일대를 완전히 검은 안개로 휘감아버렸다.

한순간 퍼져나온 검은 안개는 인체를 무시하듯 지나가며 사라졌다.

“오……여신이시여…….”

“세상에…… 공녀의 정체가…….”

검은 안개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향해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아득히 거대한 체격을 지닌 거대한 존재.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저릿해 멈춰버릴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거대한 드래곤은 자신의 위치를 강하게 표명했다.

“……전보다 더 거대해진 거 같은데?”

그리고, 에반젤린의 현신을 보던 내가 문제점을 제시했다.

“예? 더 커진 거라구요?”

“네. 육체 성장은 끝났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아비트도, 이클립스도. 그 본체의 크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어떠했는가. 아무리 하프 고대룡이라 할지라도 그 크기가 두 고대룡에 비하면 작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만약 그게 정상적인 고대룡의 크기이고 지금 에반젤린은 온전한 크기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녀는 어떤 조건을 기준으로 현재 본래 크기를 모조리 불러낼 수가 없고, 작아진 형태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에반젤린에게 급속도로 바뀐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진 힘.

방송을 하면서 계속해서 힘을 축적하는 그녀의 행동을 생각했을 때.

어쩌면, 그녀의 힘이 강해질수록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쿠웅!!

이윽고 거대한 날개를 한차례 펄럭이며 엄청난 풍압을 일으킨 에반젤린은 오랜만의 현신을 선포하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엄청난 크기의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앙!!!

대지가 뒤흔들리는 풍압인 만큼 보통 사람이라면 고막이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포효소리.

다행히 위험 범위 내에 있는 이들은 앨리스가 보호해준 탓에 크게 고막이 상한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두려운 시선으로 그녀를 볼 뿐.

다만 에반젤린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지 거대한 파충류의 눈동자를 하늘로 올려다보고는 입을 쩍 벌려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입을 쩍 벌린 그녀의 입에서 엄청난 크기의 브레스가 허공을 원 형태로 찢어발기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브레스가 방출되면서 생겨난 엄청난 풍압과 압력에 앨리스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는 걸 본 나는 손뼉을 가볍게 친 뒤 그녀의 힘이 주변을 부수지 못하게 장벽을 쳤다.

쩌어엉!!!

경이적인 장면을 펼쳐낸 에반젤린의 브레스가 붉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한차례 관통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무슨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던 붉은 안개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역시 고대룡과 악마는 극상성이 분명해 보이네.”

붉은 하늘에 엄청나게 거대한 구멍을 뚫은 것으로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고개를 들어 하늘에 일직선으로 거대한 원형의 무공을 만들어낸 에반젤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개를 움직여 남은 붉은 하늘을 브레스로 그어버렸다.

그녀의 브레스가 관통한 붉은 하늘을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고 쉽게 복구되지 못했다.

“저거…… 신력은 먹히지도 않고, 포식으로 먹어도 다시 채워지던 것 같은데.”

어째서 신력이 먹히지 않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리나 성녀.”

이윽고 에반젤린이 날개를 펄럭이자 나는 리나 성녀의 팔을 잡아 당긴 뒤 그대로 허벅지와 등에 팔을 걸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어어? 성자니임?”

“앨리스 교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믿고 기다릴게요. 내 고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놈을 반드시 멸해줄 거라 믿어요.”

허탈한 표정으로 에반젤린을 보며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에반젤린이 엄청난 반발력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창공까지 높게 날아오른 그녀가 방향을 바꿔 그대로 낙하하며 천천히 그 각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용이 대지를 향해 내리꽂히다가 머리 바로 위에서 각도를 틀어 저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대한 건물의 바로 위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그녀 때문일까.

건물 위 성국의 깃발들이 미친 듯이 휘날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본체를 시야에 담은 사람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얼어버린 것처럼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조금 빠르게 갈게요.”

이후 나는 플라이 마법을 사용한 뒤 가속 마법을 걸고 에반젤린이 빠르게 날아가는 장소로 향했다.

뭐가 되었건, 에반젤린이 당도한 장소의 끝에. 그 악마가 있을 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

“두 번까지는 용서해도 세 번은 못 참지. 속도 올립니다.”

“네에? 으…… 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는 에반젤린을 따라 움직였다.

숨어있는 놈의 위치를 에반젤린이 금방 찾아낸다는 사실을 놈이 알지는 의문이지만,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으리라.

* * *

거대한 용…….

토펜느 부주교는 조금 전에 느낀 공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이를 악물었다.

두렵기 그지없다. 신께서 말씀하신 존재. 성흔을 얻었으나 그것을 어떤 이유로 잃어버리고 타락해버린 존재.

그가 생각하는 티오니스 성자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의 앞에 서니 엘리트라 불리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그를.

그런 그를 그가 발목을 잡을 수 있을까. 신께서 말씀하셨다면 자신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신업을 완수해야 할 터인데.

가능할지 자신감이 없었다.

“다들 뭐합니까! 당장 움직여요! 습격은 없다지만 지금은 국가 재난 상태인 거 모르시나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저 x랄 맞은 안개가 더는 다른 이들을 침해하지 못할 방법을 찾아야지!”

오래전 토펜느 부주교가 존경했던 두 성녀 후보 중 하나. 앨리스를 보며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으로 갈 것이다. 말을 타면 오래 걸리지 않겠지.

툭!!

그때였다.

신관 복장을 입은 한 여성이 그와 몸을 부딪쳤다.

“읏…… 미안하오. 내 급해서 주변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과 부딪힌 여성을 바라보고 사과했다.

하지만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툭툭 털어내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얼타게 만든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도 한몫했지만, 그녀가 품고 있는 거친 느낌 속에 숨겨진 표현하지 못할 성스러움과 우아함이 묻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이윽고 그녀가 조용히 묻자 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복장을 보니 최소 주교 교구장 이상의 직급이었다.

“네…… 괘……괜찮습니다.”

“미안해. 다른 곳을 보다가 그만.”

“이해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바쁠 텐데 어서 가봐.”

여성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종용하자 토펜느는 그제야 자신의 과업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 잠깐 젊은 신관님.”

그때 그녀가 다시 그를 부르자 토펜느는 마치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거 받아. 성표야.”

“성표…… 이걸 왜 제게?”

“필요해 보여서. 마음이 조급해지면 될 일도 안 되는 거야. 힘내. 젊은 신관님.”

“감사합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는 급히 뛰어가는 그를 보며 여신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토펜느가 듣지 못할 한마디를 남겼다.

“교구장 옷을 훔쳐 입길 잘했지, 우리 막내, 누나가 진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이 고생을 알고 있나 몰라.”

* * *

에반젤린은 그야말로 폭주 기관차마냥 놈을 향해 똑바로 직진했다.

내가 신격을 지니고 있다곤 하지만 악마의 존재에 대해선 쉽게 추적할 순 없었다.

어째서인지, 신력이 놈을 추적하는 걸 오히려 방해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콰앙!!!

이윽고 오래되어 보이는 방치된 거대한 신전까지 날아간 그녀는 거대한 체격을 이용해 그대로 신전에 들이박았다.

아. 저건 안 되는데.

뒤따라가던 내가 그녀를 막아 세우기 위해 신력을 끌어올리려던 순간이었다.

우웅…… 쩌엉!!!

무형의 장막이 펼쳐지더니 그대로 에반젤린의 거체를 튕겨냈다.

콰아앙!!!

당연히 그대로 부딪힌 에반젤린이 바닥을 구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에게 큰 타격이 될 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르르르…….

낮게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날개를 한차례 펄럭이더니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앞발을 이용해 그대로 무형의 장막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형의 장막은 갑작스런 침입자를 저지하기 위해 막대한 반발력을 일으켰지만, 눈이 돌아가 버린 에반젤린은 그야말로 힘으로 그 장막을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요오! 고신전의 결계는 반발속성이 강해서 힘으로 찢으려 들었다간!”

쩌적!! 쩍!!

기겁하던 리나 성녀가 입을 다물었다.

“반발속성?”

“아……아니에요…… 세상에…… 고신전의 결계가…….”

내게 안겨있던 리나 성녀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고신전의 결계는 처음 듣네요.”

“네에. 오래전 성국이 건국될 때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성역과 고신전 때문이에요오.”

성역. 특수한 몇몇을 제외한 이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장소.

과거 나는 성역에 심연의 공주 스쿨드와 울드를 끌고 가 끝장을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역과 비견되는 또 하나의 신성한 장소 중 하나가 바로 고신전이라는 모양이었다.

건물의 양식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프리아 여신의 축복이 서린 신전이라는 말만 전해져온다는 것이었다.

“고신전의 결계는 수천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해요.”

내가 봐도 알겠네. 저건 프리아 여신이 직접 내린 결계이리라.

“이상한데요?”

결계를 찢어 발겨버린 뒤 빛으로 화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에반젤린을 보며 내가 의문을 토해냈다.

“이상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침입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계입니다.”

“네. 그런데요오?”

“그런데 왜 악마 놈이 저 안에 멀쩡히 들어가 있는 겁니까?”

에반젤린이 신력이 섞인 결계를 찢는 것도 웃기지만 그보다 황당한 것은 왜 신의 결계가 악마 놈을 보호하냐는 것이었다.

“글쎄요오.”

“성국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나?”

“그……그럴 리가요오…… 아무리 교황 성하라 해도 이곳에 누군가를 들이는 건 불가능한데에…….”

인간의 힘으로 악마를 들이는 게 불가능하다면 가능성은 하나였다.

여신이. 이놈을 보호하고 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내 신력이 놈에게 잘 먹히지 않거나 놈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전부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윽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던 에반젤린이 멈칫했다.

동시에 낡은 고신전 안에서 붉은 안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녀가 눈을 크게 뜸과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 에반젤린을 향해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저 개새…….”

고신전에서 튀어나온 놈이 에반젤린을 노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리나 성녀를 놓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콰아앙!!!

6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체격의 괴물이었지만 그만큼 덩치가 큰 탓인지 움직임이 제법 단순했다.

그르륵…… 그륵…….

순식간에 에반젤린의 앞을 막아선 내가 놈의 팔에 손을 뻗었다.

신력이 발현된다. 이걸로 확실해지겠지.

나는 신력을 모조리 끌어내 놈의 팔을 터뜨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놈의 팔은 신력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파고들어 왔다.

적어도 지구나 헤탄에서 봤을 때도 이 정도로 영향이 없진 않았건만.

이걸로 확실해진 느낌이었다.

여신이 이놈을 보호한다. 그것이 지금 여신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었다.

정말로 여신이 과거 앨리스를 보호할 때처럼 지킬 생각이었다면 내 앞에 나타나겠지.

그렇다면, 성흔을 받은 성자로서 여신의 뜻에 따라…….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 제어기]

[명치 X나 세게 치기]

콰아앙!!

친히 신력을 빼고 내 손으로 으깨드리리다.

옛 성현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했던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니,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없다고.

온전한 신격이라곤 해도 완전한 신이 아닌 나는 여신에 비하면 한창 젊은 것이니까.

카아아악!!!

내질러진 일격이 놈의 몸통에 거대한 구멍을 냈다.

그와 동시에 에반젤린의 뒤쪽 허공에서 뻗어져 나온 용의 앞발이 쓰러진 거체의 괴물을 짓누르고 발톱을 찍어 넣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즈음이었다.

치직.

음?

내 주머니에서 처음 듣는 잡음과 함께 초대 성녀 다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비. 잘 들려?

“예. 듣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던 참인데.”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내가 지금 결계를 치느라 좀 바쁘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잘 들어.

다프네의 목소리는 심드렁하기 그지없었지만 진중했다.

-여신이 그놈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쯤 되면 대충 눈치챘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이놈 찾아 아작내고 찾아갈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신이 그놈을 보호하는 게 아니야.

그녀의 의외의 발언에 내가 멈춰선 채 통신기를 노려보았다.

“이건 무슨 소립니까? 솔직히 타나토스의 끄나풀을 프리아 여신이 지키고 있는 것도 지금 황당한 상황에.”

-여신이 지키는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하는 거야.

죽이는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한다?

애초에 현재의 프리아 여신은 큰 영향력이 없는 존재인 것은 맞겠지만 그런 뜻이 아닐 것이다.

“못 죽인다라. 그게 말이 됩니까?”

-웃긴 일이지만 돼. 자세한 건 나중에, 지금 네가 새겨둬야 할 사실은 하나뿐이야. 신격을 지닌 존재는 절대 놈을 죽일 수 없다.

“그게 뭔 개소리…….”

-그게 여신이 그들을 만들 때 한 약속인 모양이야. 자세한 건 내 일이 끝나면 다시 해줄게.

신격을 지닌 존재는 그를 죽일 수 없다.

그 말대로라면 놈을 찾는 건 고사하고 두 번이나 찍어눌렀음에도 죽이지 못한 원인이 내가 온전한 신격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무슨 상황이 그따위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놈을 죽일 수 없다.

“그럼 내가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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