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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84화 (1,284/1,559)

제 1284화

아아아~

신의 성역.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가 존재하는 이 공간은 신의 영역 내에서도 신성하기 그지없는 성역 그 자체였다.

물론, 성역보다는 그곳에 있는 여신이 그 성역의 주축이지만 말이다.

여신은 둥근 원 형태의 연못에 발을 담근 채 앉아 눈을 감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을 흥얼거렸다.

듣기엔 우아하고 신성하기 그지없으나 무언가 다른 느낌도 있었다.

“내가 이래서 여기 오기 싫었는데.”

그때 노랫소리를 끊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눈을 감고 있던 여신의 아바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님프족.

음유시인 뮤트.

세간에선 뮤즈, 혹은 뮤트라고 불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노래 속에 슬픔이 담겨있네요. 솔직히 나도 어디 가서 음유시인으로 자부심 있는 편인데 당신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생이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에요.”

뮤트는 대단한 음유시인이지만 신의 아바타가 부르는 음악은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 창조나 다름없었다.

“슬프십니까?”

님프의 물음에 여신은 다시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따로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지만, 님프, 뮤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데이비와 충돌하고 있는 악마종.

타나토스가 부리던 악마종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시간의 시초 악마를 여신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 악마의 정체가 대체 뭔가요? 힘을 비축해서 내려간 다프네는 이미 들은 것 같지만 나머지는 궁금해하는 거 같던데.”

그녀의 물음에 슬픔이 섞인 노랫소리가 다시 끊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님프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운 입술을 달싹였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한 불쌍한 아이들.”

“누가 자애의 여신 아니랄까 봐…… 아니 잠깐만, 설마 여신님 데이비를 계속해서 신격에 익숙해지게 만들던게…….”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 * *

신격을 지닌 존재는 놈을 해칠 수 없다.

지금 가능한 것은 나와 함께 온 에반젤린과 리나 성녀뿐.

다만, 에반젤린의 힘이 강하다 해도 이전보다 강해진 악마를 상대로 에반젤린이 승리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생각해야 했다.

“조건이 어디까지 통용되냐는 건데…….”

완전 면역이라면 분명 놈은 내게서 도망칠 텐데 그러지 않고 있다.

그게 정말로 중요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죽음을 회피하는 것인지.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신전 안에서 밀려 나오는 괴물들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에반젤린.”

“네?”

“잠깐 물러나 있어라.”

뚜둑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푼 뒤 천천히 걸어 나가는 나를 보며 괴물들이 일제히 거대한 팔을 휘둘러왔다.

“앗! 위험해요오!”

뒤에서 리나 성녀가 위험하다 소리쳤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놈들의 팔이 내게 닿기 직전.

나는 살짝 들었던 발을 가볍게 굴렀다.

[8서클 중력계]

[하이 그래비티]

쿠웅!!!

나를 향해 날아들던 놈들의 팔이 마치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주변이 왜곡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한 중력장이 나를 중심으로 괴물들이 있는 곳을 짓누르기 시작하자 놈들은 그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점점 강해지는 중력은 본래 중력이 가지는 법칙마저 뛰어넘으며 주변을 짓눌러버렸다.

끄그극…… 끄극…….

괴물들의 형체가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듯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나는 걸음을 내디뎌 쓰러진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내 키만 한 머리통을 지닌 거대한 놈들이 쓰러진 채 초점을 잡을 수 없는 눈동자에 나를 담았다.

생명력은 느껴지되 극히 일부. 이것들은 살아있는 게 아닌 인형에 불과하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한 손을 뻗어 놈의 머리에 가져다 대기가 무섭게 놈의 전신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녀석을 시작으로 불길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으로 옮겨붙어 닥치는 대로 불태워버렸다.

“이상하다아…… 척 봐도 저렇게 쉽게 제압될 적이 아니었을 텐데…….”

리나 성녀는 엄청난 위압을 내뿜던 괴물들이 너무 허무하게 당해버린 게 당혹스러운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흐흠.”

그러자 에반젤린이 뭔가 기분이 좋은 듯 가슴을 폈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게 보였다.

“갑시다. 이놈이 내부를 완전히 장악한 거 같은데.”

그 말과 함께 고신전의 내부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처럼 뒤틀리기 시작했다.

좌우와 위아래가 비틀리고 중력에서 벗어난 것처럼 우리가 서 있던 땅은 어느덧 천장의 바닥이 되어있었고, 고신전의 내부 조각들과 여러 바닥들이 조각조각 나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퍼져나갔다.

공간이 압도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세상에…… 그 악마라는 존재는 이런 것도 가능한가요?”

리나 성녀가 긴장한 듯 물어오며 내 곁에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혹시 자신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겁을 먹은 것처럼 몸을 잘게 떨었다.

시야만 변했을 뿐 바닥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 상황이라곤 해도 이런 현상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혹여라도 떨어질까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으리라.

에반젤린 또한 이런 현상이 신기한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어 날개를 현신시킨 뒤 조심스럽게 걸었다.

“속지 마. 환각이야.”

이에 나는 현실을 알려주었다.

“이놈, 환각을 아주 잘 다루네.”

이미 내 곁에는 환각을 다루는 존재가 둘이나 존재한다.

미식연구회의 신입인 나비 여제 찬드라의 힘을 지닌 점순이와 심연의 공주이자 이클립스의 양녀인 베르단데.

겉보기엔 완전히 법칙에서 벗어난 공간처럼 변해버린 곳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가 들어왔던 고신전은 이미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놈이 가진 독특한 환각의 힘의 여파이리라.

베르단데와 점순이도 계열이 다르지만, 이놈이 사용하는 환각은 그런 것과는 조금 달리 굉장히 독자적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이놈의 힘에 여신의 힘이 느껴지는 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다프네에게 자세한 내막을 들어야 하는데.

“아빠…… 갇힌 거죠. 우리?”

“일단 우리가 저놈을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과 별개로 이놈 또한 반드시 여기서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네.”

신격이 안되면 반신은 가능할까.

만약 제대로 된 타격이 가능하다면 당장 불러올 수 있는 전력도 상당할 것이다.

놈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그건 확실히 알겠고. 그 이상은 직접 껍질을 까봐야 알겠지.

“나가는 건 어렵지 않다만. 우선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한걸음 내디딘 내가 한 손을 뻗었다.

[먹어라.]

무음의 의지가 퍼져나가며 내 손에서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놈의 힘은 먹어 치운다고 다룰 수 없다. 그렇기에 먹는 족족 다시 뱉어내야 하는 비효율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내가 힘을 먹어 치우고 완전히 다루는 것과 별개로 연비 자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조금씩 단기적으로 흐름을 끊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이곳에도 그런 핵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쿠웅!! 쿵쿵!

그때, 우리가 서 있던 지반이 갈라지기 시작하며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리나 성녀와 에반젤린이 흠칫 놀라 내 곁에 다가온다.

“에반젤린. 이놈의 위치 아직 잡혀?”

“조금 흐릿하긴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좋아. 그럼 가보자.”

“어서 가요. 그놈 혼내줘요.”

에반젤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에반젤린 네가 할 거야.”

“네?”

마치 세상은 평평하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에반젤린이 경악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랴. 신격을 얻으며 강대한 힘을 얻은 건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좋게만 돌아갈 수 없는 일이렷다.

그 예시가 지금 같은 상황이고.

아무리 독자적이라곤 해도 프리아 여신에겐 같은 신조차 피조물에 불과할 터.

지금 내가 가진 신격은 그녀로부터 나온 것이니. 그녀가 악마의 생명을 보장했다면 신격을 지닌 나는 놈을 어찌할 수단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와 반대로 놈이 나를 해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지만.

“할 수 있지?”

내 말에 그녀는 평소 툴툴대던 것도 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영특하니 지금 악마의 힘이 지난번 그녀와 싸울 때 이상으로 강해져 있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 또한 강해졌다곤 하지만 격차가 상당히 나는 걸 그녀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추가적인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불러오기엔 시간이 너무 늦다.

실제로 포시의 힘을 이용해 공간을 잡아 뜯어보았지만 아주 작정한 건지 아니면 내 신격이 방해를 하는 건지 큰 효과를 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엔 이놈도 시간이 필요할 거야. 더 늦게는 못 놔두지.”

에반젤린은 나를 올려다보다 조용히 물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래.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

내 말에 믿음을 얻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이…… 저도 할 일이 있을까요오?”

그때 리나 성녀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내게 물어왔다.

“성녀님은…… 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앨리스 대주교의 생각에 극심하게 공감하는 바였다.

저 머릿속이 꽃밭인 성녀는 어쩌면 악마조차 교화시키려 들지 모를 일이었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보조하는 선에서 에반젤린과 리나 성녀 단둘이서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관건이었다.

“힐러 있고, 탱커있고, 딜러가 있긴 한데…….”

성녀의 힐량은 부족할 테지만 내가 밀어주면 차고 넘칠 테니 문제가 되지 않고, 버프도 충분하다.

딜러 하나가 더 있으면 좋겠는데. 에반젤린이 괜히 이성을 잃다가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놈이 고신전을 던전으로 만든 이 상황을 이용하여 에반젤린의 문제점을 잡아야 할 텐데. 시간이 충분할지…….

그때 에반젤린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누가 싸우고 있는 거 같은데요?”

내게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만은 느껴지는 것일까.

그녀가 규칙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아빠! 빨리 가요!”

“일단 움직여보자.”

중력이 엉망이 된 것처럼 뒤틀린 이 세계로 인해 리나 성녀와 에반젤린은 잠시 주춤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내 금방 익숙해진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발판 삼아 빠르게 미로 같은 이 공간 너머로 넘어갔을까.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공터에 도착한 에반젤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여긴 거 같은데…….”

“잠깐 비켜볼래?”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물어뜯어야지. 영구적인 제거는 불가능해도 한순간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건 충분했다.

나는 한 손을 뻗어 마치 허공을 잡아 찢듯 잡아 비틀며 포식의 힘을 발현했다.

속이 메스꺼운 힘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흩어졌다.

그러자 우리가 서 있던 허공이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그래픽처럼 지직거리며 찢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다른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법한 현상이었다.

중간중간에 시간이 비틀리는 트랩이 존재하는 거로 보아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시간의 틈에 갇히게 되리라.

아직 에반젤린이 이런 것에 대처하기엔 능력이 부족한 만큼 내가 모두 포식의 힘으로 물어뜯어 버렸다.

직접적인 타격만 아니면 괜찮다는 것인지 아직까진 능력이 통하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완전히 젖혀진 공간 너머로 의외의 장면이 시야에 담겼다.

쾅!! 쾅쾅!!!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쪽 팔에 부상을 입은 채 피를 뚝뚝 흘리며 악마로 추정되는 괴물과 싸우고 있는 아벨이었다.

이놈이 왜 여기에?

그것보다 저 상처는 무엇인가.

아벨의 몸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다. 녀석이 본래 시간대로 돌아가기 전엔 시간의 틈에서 생긴 저 상처들과 내상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보이는 부상은 녀석이 가지고 있던 상처나 내상과는 달리 이곳에서 생긴 것이었다.

“…….”

머릿속에서 생각이 끊어진다.

-이……이런!!

동시에 나를 발견한 악마가 다급한 침음성을 내뱉으며 허공을 넘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가 넘어가려는 균열 앞을 점거한 내가 놈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악마종.”

텁!!

순식간에 놈의 거대한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은 내가 말했다.

“어딜 도망가 이 x새야.”

콰아앙!!!

신력으로 인해 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음에도, 해선 안 되는 짓을 해서인지 몰라도 내 몸 안에서 모든 힘이 비명을 내지른다.

효과가 없어? 나는 놈을 못 죽여?

그럼 한 대 팰걸 두 대를 패고 두 대 팰 것을 열대를 먹이리라.

지극히 단순하고 어리석은 판단이지만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이 신기하고도 엿 같은 현상이 나를 지배한 후였다.

-컥!! 커억!! 컥!! 아직…… 아직도 내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놈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녀석의 팔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지지만 내 주변에 생겨난 작은 장막의 파편들이 놈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내 버렸다.

대체 아벨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 아들, 아벨이라면 겁도 없이 나를 돕겠답시고 에이리아를 하인스 영주성에 데려다 놓고 곧바로 돌아온 것일 터다.

8서클 이상의 마법사이니 워프 정도야 어렵지 않았겠지.

다만, 이놈이 어떻게 고신전의 결계 내부에 들어와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내가 오기 전에 벌써 이놈이 이곳에 와있었다는 소리인데.

단순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안배인지.

쾅!! 쾅!!

-그……그만!! 태초의 약속을 지켜라!!

“아직도 안 죽어? 그럼 이건 어때 이 개x식아.”

쾅!! 쾅쾅쾅!!

점점 놈에게 가하는 데미지가 약해지고 있었다.

내 힘이 약해지는 게 아니었다.

놈의 몸이 끊임없이 변하면서 점점 내 공격에 저항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먹통인 신력과 별개로 다른 힘들은 놈에게 아직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포식의 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리석은 체력낭비나 다름없었다.

냉정하게 분석하고 기습했다면 에반젤린만으로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고 있는 아벨을 봤을 때.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뒷일이 어찌 되건 일단 놈을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파지직!!!

그리고, 그런 계속되는 폭행에 임계점을 넘은 것일까.

끝내 신력이 섞인 내 마나까지 놈의 몸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시작했고, 놈의 공격 또한 나와 같이 약해지며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기 시작했다.

내가 놈을 죽이지 못하듯, 놈 또한 나를 저지하지 못한다.

이건 일방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쌍방향 공명에 가까웠다.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한 탓에 막대한 체력이 소모되는 느낌이 든다.

이 이상은 페이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끌어내 놈을 걷어차 날려버리면서 공격의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처음 놈을 만났을 땐 한번 공격하는 것으로도 놈을 죽일 수 있었건만,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내가 놈에게서 느꼈던 악마종 특유의 힘은 생전 처음 보는 미약한 힘으로 바뀌어있었다.

이러니 미래의 내가 확신을 못 한 것 일터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아벨은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고, 에반젤린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친놈처럼 악마를 공격하고 짓밟던 내가 낯설게 느껴진 것이 분명했다.

“아빠?”

그녀는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그녀는 전혀 모르기에 저런 반응을 보였다.

그때였다.

“어…… 에반젤린 누님?”

“음? 그쪽은 누구세요?”

그 말에 아벨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흠칫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닙니다! 사람 잘못 봤네요!”

당황하니 오히려 의아한 모양새였다. 그리고는 이내 황급히 화제를 돌리려는 듯 내게 소리쳤다.

“코오나…… 코오나 누님이 이곳 어디에 휘말렸습니다! 빨리 찾아야 해요!”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벨도 아벨인데. 코오나가 왜 여기 있나.

아벨 녀석을 붙잡고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나는 조용히 상황을 정리했다.

“왜 여기 있는지는 묻지 않으마.”

내 말에 아벨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침 딜러가 부족했는데 잘됐다.”

아벨은 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신격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신의 힘을 품고 있으니 미묘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놈의 권능은 세계의 법칙이 회수했으니. 이제는 데이비 올 라운과 페르세르크 폰 라운의 아들일 뿐이다. 반절은 악마 놈을 쳐죽일 조건이 충분한 상태였다.

성국의 성녀 하나.

그리고, 아들 하나 딸 하나.

코오나를 찾는다면 그녀도 제법 큰 도움이 되리라.

내 공격은 놈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 넘어 직접 닿지도 않게 된 상황.

놈이 더 변하기 전에 내 버프를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곧바로 아벨의 몸에 손을 뻗어 신성력을 발현시켰다.

녀석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으니 한 번만 말한다. 잘 들어. 에반젤린.”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에반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벨.”

기왕이면 알릴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제 동생인데 모른 채로 넘어가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내 부름에 아벨과 에반젤린 둘 다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본다.

“아버지?”

“아빠……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인사해라. 에반젤린. 네 동생이다.”

겉모습만 보면 아벨이 훨씬 어른이지만 어쩌겠는가. 한 번 동생은 영원한 동생인 것을.

혼란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남매를 보며 나는 문득 걱정이 일었다.

남매는 서로 싸우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던데…….

이 녀석들도 그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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