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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86화 (1,286/1,559)

제 1286화

시초의 악마에게 오래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그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오염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여운 아이들아. 내가 부족하여 너희들을 슬프게 만들었구나.

아직도 세계가 창조되고 가장 먼저 만들어진 그의 귀에 들려온 여신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시간을 헤아릴 수도 없는 과거에서 프리아 여신은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으나, 어떤 이유로 인해 세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시켰다.

붕괴된 세계는 발전을 잃어버렸고, 법칙이 꼬였다.

실패한 피조물인 그의 동족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았다.

실패하였다고 하나, 자신들을 사랑하는 여신을 한결같이 갈망했다.

하지만 여신은 떠났고, 버려진 세계에서 그의 동족들은 하나둘 여신을 갈망하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여신이 말만 번지르르할 뿐 자신들을 버렸다 라고 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여신을 믿었다.

그의 동족들이 멍청이라며 비웃음을 던질 때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는 세계와 연결된 통로를 통해 우연히 티오니스를 포함한 여신이 만든 완벽한 세계를 보았을 때.

그는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들의 세상은 부서졌는데.

그토록 갈망하던 여신의 관심에서 벗어났는데. 이 땅의 생명체들은 그런 여신의 고마움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완벽한 세계에 존재하는 주제에 욕심을 부리는 생명체들을 본 그에게 티오니스는 역겨움의 덩어리였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존재가 있었다.

심연의 신, 타나토스.

이 뒤틀린 신은 그에게 다가와 자신 또한 여신에게 버림말로 사용되었다며 자신에게 힘을 빌려달라 말했다.

여신에 대한 배신감. 자신들이 수천 년 동안 갈구해온 것들을 얻었음에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오만한 생명체들.

그들에 대한 지독한 원망과 분노는 동병상련의 위치를 강조하는 타나토스와 손을 잡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타나토스와 조금 달랐다.

여신이 만든 이 세상의 인간들은 달갑지 않았다. 여신에게도 배신감은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완벽한 세계는 그와 죽어간 동족들이 그토록 바라온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의견충돌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그는 타나토스의 마수에 빠진 후였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예전의 형태조차 잃어버렸다.

콰앙!!

-푸스스스……

기이한 소리를 내뿜으며 악마가 비틀거리듯 물러났다.

제법 위협적이지만 조잡하기 그지없다.

“으윽?!”

한번 베였다간 치명상이나 다름없는 오러 블레이드를 쳐내며 반격을 가해 에반젤린을 튕겨낸다.

이것이 여신, 당신의 뜻입니까.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를 사랑해주었다고 말했으면서. 이용당하기만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돌아갈 생각만 남은 나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이.

지독한 회한과 고통만 남은 이 세상에서 그는 점점 비틀려만 갔다.

당신이 우리를 끝내 저버리겠다면, 우리의 기도 따위는 이제 완성된 세계를 가진 당신에게 닿지 않는다면. 마지막까지 하나의 불씨가 되어 화려하게 타오르리다.

악마의 손아귀에 막대한 시간의 힘이 모여든다.

죽어간 동족에게서 받은 환각과는 다른, 그가 가진 고유의 힘.

그 시간의 힘이 공간 전체를 뒤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악마는 자신이 숙주로 삼아, 씨앗을 심어놓은 인간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시작하라.

* * *

에반젤린이 전위 아벨의 후위.

공세 자체는 엉망진창이었다.

힘만 있고 협동이나 강적을 대하는 경험이 부족한 에반젤린과. 마찬가지로 경험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초조함으로 인해 자신의 장점도 잊은 채 날뛰고 있는 아벨이나.

단단한 몸을 지닌 악마종과의 싸움에서 둘은 놀라울 정도의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추가적으로 지원을 바라기 힘든 이 상황 속에서 신격이 없는 둘의 힘이라면 충분히 완전하지 않은 저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대로 가다간 경험을 쌓게 해주는 건 고사하고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리나만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공간이 비틀려버린 이 공간의 장악력이 강해지면서 단시간에 내 신호를 그녀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리나 성녀. 아직 못 찾았습니까?”

“네? 아…… 네. 죄송해요오…… 너무 이질적이라…….”

놈이 이 힘을 얻은 경로야 뻔했다. 이곳을 습격하고 붉은 하늘을 만들어내면서 인간들에게서 빨아들인 것들이 원인이겠지.

리나 성녀는 현재 코오나를 찾는 겸.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약점인 부분을 찾고 있었다.

본래 회복마법의 일환이었으나 응용하기에 따라서 분석도 얼마든지 가능한 마법이니까.

“계속 힘써주세요.”

“저도 도울 건 없을까요오?”

“지금 당장은 제가 보조할 수 있어요.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영향력이 저놈에게 안 먹히게 될 땐 당신이 나서줘야 합니다.”

그리고, 시공간이 비틀린 영역인 만큼 시간과 관련된 공격이 들어올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터벅…….

애석함을 뒤로한 채 나는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하려 하다가 에반젤린을 위기에 빠뜨린 아벨을 보며 혀를 쳤다.

이것들이 지금 이게 장난인 줄 아나.

촤악!!!

순식간에 앞으로 나가 에반젤린을 공격하려는 놈의 발톱을 막아낸다.

그리고는 놀란 에반젤린을 밀어낸 뒤 한 손을 말아 쥐었다.

쩌어엉!!!

순식간에 가속한 주먹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놈을 후려쳐 날리지만 큰 효과는 없다.

반면 약속을 어기지 말라며 비명을 지르는 신력이 내 몸 안에 내상을 남긴다.

촤악!!

“아빠?!”

내 힘을 과부하 시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무리하게 과부하를 시킨 덕에 놈에게 타격을 줄 순 있었지만 폭주한 신력이 내 팔에 작은 상처를 만들어내 버렸다.

“다친 곳은?”

“…….”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는 에반젤린이었다.

“없는 거 같네. 긴장하고 집중해.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아빠가 어떻게든 하마.”

천천히 다독여보지만, 에반젤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스스스……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 거 같나. 나도 네놈을 죽일 순 없지만 네가 내게 힘을 가할수록 네 영향력이 줄어든다. 그리고, 지금 이상으로 몸에 부하를 걸면서 나를 저지해야겠지. 네가 나를 저지하는 힘이 사라진 그 순간. 내가 이긴다.

악마 놈의 조소에 나는 피식 웃었다.

“네 말처럼 되면 참 좋겠네.”

마냥 저놈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라는 것은 놈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내 팔에 난 상처를 말없이 보던 에반젤린의 눈동자가 옅게 떨렸다.

“아벨.”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저 X새끼가 아빠 다치게 한 거 보여?”

“예 봤습니다.”

그 말과 함께 스르륵 사라지듯 물러난 그녀가 아벨의 등을 떠밀었다.

“가드해 숨겨둔 거 다 꺼낼 거니까. 앞뒤에서 간 보지 말고.”

그 한마디에 아벨은 뭔가 떠올랐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앞으로 나갔다.

* * *

드래곤 특유의 피어를 풀풀 풍기면서 에반젤린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당연히 둘의 불협화음으로 생각보다 상대할만하다 여겼던 악마종은 갑작스레 변해버린 에반젤린의 분위기에 비웃음을 던졌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둘의 행동에 경악했다.

조금 전까지 서로 호흡이 전혀 안 맞던 이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둘의 호흡이 갑자기 좋아진 게 아니었다.

뒤편에서 공격하는 에반젤린의 행동이 변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녀가 풍기는 기세 또한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네까짓 게 뭔데.”

에반젤린이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까짓 게 뭔데 우리 아빠 몸에 상처를 내.”

정확히는 데이비가 그의 공격을 상쇄시키면서 스스로 입은 상처였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류의 문제였다.

이윽고 에반젤린이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납도한 뒤 아공간 반지에 집어 넣어버리고는 손을 뚜둑 소리 나게 꺾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중력의 영향을 벗어난 것처럼 스산하게 흔들리며 폭발적인 기류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르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에반젤린의 손이 마치 비늘 달린 용의 앞발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송곳니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데이비는 아직 모르는 것일까.

에반젤린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그녀를 말리려던 순간.

아벨이 먼저 움직였다.

처음 때와 같이 서로 협동이라곤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공세였다.

이에 데이비의 힘에 약화되어있던 악마종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어리석은 놈들.

차륜진처럼 한쪽으로 시선을 끌고 나머지 쪽에서 치명상을 가하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하지만 협동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이 두 명이 그런 것을 온전하게 해낼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처음 그게 안돼서 서로를 공격할뻔한다든지 서로의 공격 경로를 방해한다든지 했으니 말이다.

쩌어엉!!!!

하지만 아벨의 행동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강하게 반발력을 일으켜 악마의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팔을 쳐내며 튕겨 나간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움직임이 날카로워졌다.

상대방을 잠깐 주춤하게 만들 수 있지만, 본인도 크게 튕겨 나가 한순간 무방비해질 수 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탄해도 충분하건만.

악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튕겨내 순간적으로 틈을 만들기가 무섭게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에반젤린이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반발력을 억지로 이겨내 그녀를 견제하면 될 터.

그랬어야 했는데.

촤아아악!!!

악마종은 자신의 몸 절반이 거대한 갈퀴에 찢겨 나간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푸스스스……. 무슨?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이해도 못 한 상황 속에서 에반젤린이 작은 체구를 이용해 그대로 놈의 몸에 달라붙듯 파고들었다.

촤자작!!!!

동시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에 파괴적인 절삭력으로 그의 몸을 난자했다.

-끼이이이이익!!!!

아직 타나토스에 의해 변한 부분이 남아있다. 고대룡에게 극도로 취약한 부위는 그녀의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생존 본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떨어져라! 날파리 같은 년!!

순식간에 낭마 조각이 되어버린 육신을 순식간에 재생시키며 에반젤린을 튕겨내기 위해 그가 크게 팔을 휘둘렀다.

쩌어엉!!!

그때였다.

이성을 놓은 것처럼 공격하던 에반젤린이 정확한 타이밍에 그의 공격을 패링으로 쳐내버린 것이다.

악마종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육체능력. 공격 방식. 위험도, 모든 면에서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만 둘의 행동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극도로 분노하여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에반젤린이 패링을 완전히 성공시키지 못하고 튕겨 나갔지만 악마종 또한 멀쩡할 순 없었다.

그대로 시간의 힘을 비틀어 그녀를 비틀어버리려 하였으나 그의 힘은 순식간에 데이비에 의해 틀어막혔다.

-빌어먹을 신격!!!

그리고, 그렇게 생긴 틈 안으로 아벨이 언제 밀고 들어왔는지 섬뜩한 표정으로 한 손의 검을 뒤로 당겼다가 내질렀다.

명백히 둘의 행동은 서로의 행동 패턴을 훤히 꿰고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으며.

서로를 완전히 믿고 있을 때 가능한 모습이었다.

고작 저 인간의 팔에 난 상처하나 때문에? 웃기는 소리라며 조소를 흘려보지만 거짓 같지 않아 섬뜩함이 더해진다.

“야. 어딜 봐.”

에반젤린의 몸에서 심상찮은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던 악마종은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아벨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8서클 폭염계]

[프로메테우스]

데이비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8서클계 화염 마법이 펼쳐진다.

이 정도면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놀랍게도 양손을 강하게 부딪쳐 마법을 발현한 에반젤린은 아벨의 마법을 강제로 강화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이 마법을 이 타이밍에 사용할 거라는 것을 예상한듯한 움직임이었다.

죽음에 대한 경보가 본능을 일깨웠다.

* * *

완전히 변해버린 둘의 협공에 악마종은 당황했다.

방금전까지도 가진 힘에 비해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던 녀석들이건만.

지금은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이 그의 본능을 일깨웠다.

아직 필요한 힘을 전부 모으지도 못했고, 완전히 타나토스의 여파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탓에 데이비의 힘에 완전히 면역이 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에게는 죽지 않기에 지금껏 버텨왔건만. 여기서 그가 아닌 저 두 명에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정말로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탈피만 이뤄냈다면. 그렇게 되면 데이비의 신격이 서린 힘들은 전부 면역이 될 테니 자신이 가진 환각과 시간의 힘을 제약하는 힘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고 지금 자신을 압박하는 놈들을 상대로도 억눌린 육체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타나토스의 여파에서 완전히 탈피하기엔 힘이 아직 힘이 부족했다.

아주 잠깐. 잠깐의 틈만 존재한다면.

그때였다.

그와 연결된 씨앗을 통해 로암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식을 거행한다. 틈을 열어라.

그 한마디와 함께 악마종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에 반사적으로 데이비가 손을 뻗어 힘을 차단하려 했지만, 악마종이 한 수 빨랐다.

동시에 차단된 고신전의 균열 바깥에선 다시금 펼쳐진 거대한 붉은 하늘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의 시간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막대한 힘이 그의 안에 스며든다.

“뭔 개수작이야.”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것 같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내 힘을 보충할 계획 정도는 세우고 있었다.

놈의 말에 데이비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니가 그렇게 하게 내가 둘 거라 생각했나 보지?”

-푸스스스슷. 언제 내가 직접 한다고 하였던가?

“이 개새…….”

데이비의 손에 막대한 신력이 모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보다 빨리 시간의 축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공간의 일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으윽?!”

동시에 그 구멍 너머로 엄청난 양의 새하얀 영체 같은 것들이 빨려 들어오며 그의 몸 안에 스며든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의 총량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힘이 부족하다면 더 끌어오는 수밖에.

실제로 그는 갑작스레 강해지기 시작했고, 점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을 감싸던 균열들이 비틀어지기 시작했고 그의 몸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탈피의 전조였다.

“이제 더 이상 네놈은 내게 어떤 간섭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말과 함께 데이비의 디버프가 모조리 부서져 나갔고, 그의 시간의 힘과 환각의 힘을 억제하던 힘도 폭발하듯 부서져 나갔다.

여신의 약속을 온전히 받은 그의 본연의 모습으로 강제 각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신의 영향을 받아 신격이 된 데이비 올 라운의 힘은 약속에 의거하여 그를 죽일 수 없다.

에반젤린과 아벨이 아무리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해도 데이비의 조력 없이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아벨과 에반젤린의 얼굴이 굳었다.

탈피를 하면서 느껴지는 힘이 이전보다 더 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단순한 강한 힘 수준을 넘어 데이비와 비슷한, 아니 어떻게 보면 동일한 신격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서 악마가 말했다.

-네놈이 아니면 누가 날 막을 거지? 이 이상 네놈은 내게 간섭할 수 없다. 자비를 베풀 때 떠나라. 지금 막지 않는다면 저 셋의 목숨 정도는…….

“뭐라는 거야.”

막대한 시간의 비틀림을 이용해 만든 이 끝도없이 펼쳐진 고신전의 균열은 외부와의 연결을 틀어막는 하나의 차단벽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악마종은 몰랐다. 두텁게 차단시킨 벽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안전을 보장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퉁!!! 투웅!!

쿵!!

데이비의 물음과 함께 그의 양옆과 뒤쪽으로 새하얀 빛의 기둥들이 낙하하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전이 마법이었다.

갑작스레 생겨난 대규모 전이 마법들을 보며 악마종이 데이비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던 그 순간.

데이비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차원까지 갈라버리는 시공격검은 나도 온전히 못 다루거든.”

그런데, 세상에 단 한 명 단시간에 그 원리를 몸 안에 새겨버린 미쳐버린 재능의 소유자가 하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이보다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이가.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늘어나던 빛의 기둥 중 가장 먼저 빛을 내던 기둥 안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스르릉…….

가히 신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모습을 지닌 백은의 거검이 천천히 내려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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