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2화
전쟁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에반젤린은 많은 고민을 했다.
어릴 적에 그녀는 영웅이 되겠다며 가출을 한 흑역사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소드마스터급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별짓을 다 한 셈이었다.
다만 선천적인 천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티오니스에서 이만한 사태가 터졌고, 엄마나 다른 사람들이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대륙 곳곳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힘을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리나와 페르세르크. 그리고 에이리아까지 입을 모아 그녀의 참전을 극구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아직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직 그 참혹한 전쟁을 보기엔 이르다고.
헛소리.
에반젤린은 이번만큼은 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는 인간과 다른 성장 과정을 거쳤다.
이미 피를 많이 봤고, 그녀가 휘두른 검에 죽은 괴물의 수만 해도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왜 아빠나 엄마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가.
그녀로썬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거들고자 아벨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
대체 무엇이 자신의 참전을 이토록 막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분명,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
다른 전쟁은 몰라도 지금 같은 대규모 전쟁에선 반드시 손대지 말라고.
전쟁은 전쟁일 뿐 다르지 않다.
그동안 겪어온 모든 분쟁이 그러했듯 그녀는 힘이 있고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직접 나설 의향이 있었다.
“누님.”
“왜.”
“후회하실 겁니다.”
착잡한 얼굴로 적들의 움직임이 예측된 장소로 이동하던 아벨이 경고했다.
동생이 너무 건방지다.
에반젤린은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흥, 네 걱정이나 해. 난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몬스터와 싸워온 몸이야.”
“흐음…… 저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누님.”
그렇게 말한 녀석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야. 그거 아빠가 만들어준 거라고?”
“네. 누님이 가진 트와일라잇과 같은 재료입니다. 어떻게 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다시는 못 구할 재료인데 어렵게 구했다고 제가 6서클 마법사가 되었을 때 만들어주셨습니다.”
“흐응…… 그런데 그거, 특수한 능력을 담고 있던데.”
“뭐, 그렇죠. 누님의 검은 더한데요. 뭐.”
“뭐?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아…… 아직 모르셨습니까? 그럼 못들은 걸로 하시죠.”
능청스레 말하는 그가 말의 허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이랴!”
“야……야야! 거기 안 서?!”
당황한 에반젤린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아벨을 급히 따랐지만, 그 추궁 자체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들려오는 큰 소리 때문이었다.
“누님! 상황이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일단 빠르게 합류하시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아직 다른 지원이 부족한 곳이었다.
실제로 몸이 여럿이 아닌 이상 이미 대륙 곳곳에서 하인스 영지의 전력이 전공을 세우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본래라면 린디스 제국에서 병력을 파견하기로 되어 있는 곳이었지만 중간지점에서 갑작스런 습격으로 지원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벨이 온 것이었다.
이곳이 공격 대상으로써 위험에 노출될 것을 알았으니까.
아벨을 추궁하던 에반젤린은 코를 찌르는 지독한 혈향에 표정을 굳히고 급히 말을 달렸다.
도시 중심부와 달리 국경선이나 다름없는 외곽에선 끝없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망할, 이렇게 될거 같더라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누님! 먼저 가서 휘저어주세요! 큰 거로 한번 가겠습니다!”
에반젤린은 아벨이 성벽을 뛰어오르며 대규모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이고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성벽을 가볍게 박차듯 뛰어넘었다.
“…….”
늘 그렇듯 해낸다. 사람들을 구해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가장 가까운 곳에 착지하며 근처에 있던 괴물들을 베어버리는 것으로 멈춰졌다.
“이게…… 뭐야?”
전쟁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녀가 지금껏 겪어온 어떤 분쟁 이상으로 처절하고 참혹했다.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거대한 괴물이 팔을 뻗어 사람을 잡아 눈앞에서 찢어버린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병사들이 악을 지르며 괴물에게 달려들었고, 자신들의 몸이 박살 나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괴물의 몸에 낡은 무기를 박아넣었다.
쓰러져 이미 죽은 괴물 위에 올라타 미친 듯이 도끼를 내리치는 인간은 곧 날아드는 눈먼 화살에 몸이 꿰뚫려 그대로 절명했다.
생지옥.
그녀가 지금껏 겪어온 모든 분쟁은 직접 그녀가 나선 사실상 거의 그녀가 주가 되는 싸움이었다.
그런 만큼 이토록 참혹한 광경을 볼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수십 수백의 인간들이 괴물들과 뒤엉키며 그야말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은 그녀가 알고 있던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송두리째 바꿔버렸고 어떤 두려움이라는 키워드를 심어 넣었다.
이전 성국에서 본 소란도 이런 것과 달랐다.
그곳에선 사람들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과 혼란만 보았을 뿐.
사람이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찢겨나가고 비명과 눈물을 터뜨리며 악다구니를 쓰고 괴물들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진 않았다.
처음엔 당당하게 나타나 검을 휘두르고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나타났지만 지금 그녀는 검을 휘두를 용기조차 잃어버린 채 충격받은 얼굴로 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누님! 정신 차려요!”
그때 증폭된 것처럼 그녀의 머릿속으로 아벨의 외침이 그대로 울려 퍼졌다.
“핫!”
이에 화들짝 놀란 에반젤린은 황급히 검을 들어 그녀를 노리고 달려드는 새까만 머리카락 다발처럼 생긴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괴물은 그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조각나버렸다.
이후 에반젤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마치 악귀처럼 전장에 뛰어들어갔다.
넋이 나간 것처럼 그녀는 광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들을 베어 넘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반 현신 상태를 유지해 허공에서 거대한 용의 앞발을 끄집어내 닥치는 대로 괴물들을 찢어발겼다.
필사적으로 싸우던 이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에반젤린을 보며 눈을 크게 떴고, 이내 사기를 얻은 듯 함성을 지르며 괴물들을 향해 반격해 나갔다.
그만해. 더 이상 싸우지 마.
에반젤린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항전에 가까웠다. 일방적인 살육을 보다 못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삼아 덤벼드는 저항.
그렇기에 그들이 용기를 얻고 싸우러 나간다는 건 곧 처참하게 죽어 나간다는 뜻과 같았다.
“그만…… 그만해…….”
이토록 참혹하게 죽어 나가는 이들을 두고 볼 자신이 없었던 에반젤린은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슈슈슈슉!!!
성벽 쪽에서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들이 마치 비처럼 날아들었고, 몬스터들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들어 충돌하고 폭발해나갔다.
마치 일출을 겪으며 세상에 서서히 밝아지는 것처럼 쓸려나가는 몬스터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필사적인 저항을 했다.
에반젤린은 그녀의 다리를 붙잡는 괴물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쾅!! 쾅쾅!!
평소답지 않을 정도로 과격한 행동이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검을 내리쳤다.
쾅!! 쾅!!
“으아아아아!!!”
콰아앙!!
끝내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괴물을 곤죽으로 만들고 나서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누님…….”
살아남은 이들은 환호성보다는 고요한 분위기였고 일부는 죽은 이들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작은 왕국이 갑작스런 재앙에 맞서 싸운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성을 잃은 에반젤린이기에 아벨이 광역마법으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해가 났을 터.
그녀는 언제 다가왔는지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아벨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했잖아요…… 후회할 거라고……. 전쟁은 누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참혹해요.”
“이건…… 그러니까…….”
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하는 그녀에게 아벨은 싸늘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누님이 겪어온 것들은 누님이 주가 되는 것이지 일반 인간의 기준이 아니에요.”
일반 인간들의 전쟁은 그녀가 겪어온 것들과 달리 처절하고 참혹한 현장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아직 어린 에반젤린에겐 충격적이었다.
* * *
전쟁의 상흔은 전장에서 국한되지 않았다.
“아…… 아파…… 아파…….”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병상에 누워 끙끙대는 병사가 지천에 널렸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끝내 절명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벨?”
“일반적인 경우죠. 누님.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습니다.”
“신관은 어디 있는데!”
“누님. 성국에서 파견되는 신관은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이런 작은 외곽의 시골왕국에는 신관들이 있어도 그 수가 많을 수가 없습니다.”
쳐들어온 괴물의 수는 고작해야 수백.
하지만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아……아벨, 네 마법으로 치료하면…….”
“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은 아버지가 직접 오는 게 아니면 상위 신관들도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상처가 많습니다.”
‘다리를 절개해야 해! 진통제 가져와!!’
‘아악!! 제발 죽여줘!!!’
‘아아……아아……. 군의관님…… 눈이…… 눈이 안 보여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에반젤린이 휘청거리다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잔혹한 장면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끔찍한 상황은 그런 것과 방향성이 달랐다.
“아아…… 아파요…….”
그때 한 병자가 에반젤린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이봐요 군의관! 여기 이 사람 좀!”
“그냥 두세요…… 이미 늦었습니다. 저희가 살릴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에요.”
피곤한 얼굴로 체념하는 군의관의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누님! 그만 하세요. 그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 상처는 살리는 게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냥 지켜볼까.
“아빠…… 아빠를 불러오면!”
황급히 소리치던 그녀가 멈칫했다.
지금 데이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누님…… 우선 나가서 좀 쉬고 계세요. 안 그래도 이곳을 지키는 장군이 누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
허망한 얼굴로 죽어가는 사내를 보던 에반젤린이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지독한 독에 당한 사내는 에반젤린의 힘으로도 아벨의 힘으로도 치료하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아……아아……. 아파요…… 제발…….”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어떻게든 살려줄…….”
고통스러워하는 남성을 보며 황급히 방법을 찾으려던 그 순간.
사내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더니 그대로 추욱 늘어졌다.
“아아…… 아아…….”
그제야 에반젤린은 일반적인 전쟁이. 그녀가 보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고 참담한지 직접 깨달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시신을 바라보던 에반젤린이 그대로 치료소를 뛰쳐나가듯 빠져나가자 아벨이 한숨을 내쉬며 근처 군의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받으세요. 외상 회복약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거에요.”
“아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군의관을 뒤로한 채 아벨은 황급히 에반젤린을 따라 나갔다.
에반젤린은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골목 끝에서 벽을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님…….”
이럴 거 같더라니. 에반젤린은 아직 어렸다. 그런 만큼 일반 인간과 비슷해 보여도 아직 미숙하고 순수한 부분이 많았다.
“누님. 괜찮으세요?”
그렇기에 아벨은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그녀도 알아야 하는 일이긴 했지만, 굳이 그게 지금이어야 했을까.
아니, 아버지는 그렇기에 이번 전쟁에서 그녀를 뺀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똑바로 막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아무리 누님이라도 아직은 어렸다.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귀엽게 웃어 보이던 얄미운 누님은 미래의 에반젤린이었다.
“아벨…….”
“네.”
“이런 거야? 전쟁이라는 거…….”
“네. 지금은 전쟁 초기라 이 정도입니다. 향후 더 심각해지겠죠. 예, 맞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들이 괜히 정신병에 시달리는 게 아니에요.”
“…….”
에반젤린은 어느새 울었는지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아냈다.
“막자.”
“네?”
“막자고. 우리가 막아내는 거야. 이 거지 같은 살육을 일으킨 그 자식들.”
악마종에게서 빠져나온 제노엔.
“그놈들을 우리가 막자고.”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온 거잖아.
에반젤린의 시선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누님. 그놈들 찾을 수 있어요?”
“어?”
“누님과 제가 그놈들을 만났을 때. 그놈들이 함정을 파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그……그건…….”
“마지막으로, 누님과 제가 여길 벗어났을 때. 그놈들이 이곳을 다시 공격하면. 그땐 어떻게 하실래요.”
전쟁이라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아벨의 날카로운 물음에 에반젤린은 우물쭈물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미 병상에서 봤을 겁니다.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지. 마음 같아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저는 몰라도 누님은 안됩니다. 절대로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어요.”
평소라면 나 무시하냐? 라며 화를 냈을 에반젤린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어나세요. 일단 이곳을 지키는 장군이 누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일단 전쟁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감사라도 표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번 전쟁은 지금까지와는 양상이 달라요. 그야말로 처절한 싸움입니다. 저희는 아버지와 달라요.”
아벨의 그런 말에 에반젤린은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데이비 올 라운.
아버지의 빈자리가 이토록 크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때 에반젤린의 뾰족한 귀가 살짝 꿈틀거렸다.
“누님?”
“그놈들이야.”
“네?”
“그 새끼들이 이 근처에 있다고!”
에반젤린이 악마종을 찾아내는 건 잘했지만, 놈들이 제노엔으로 다시 탈피한 이후 그녀의 추적능력은 힘을 잃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분명 놈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 * *
사실 궁지에 몰리고 있는 건 인간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티오니스 대륙에는 없던 괴물들을 무더기로 만들어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제노엔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동족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누님. 이거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이대로 저놈들 보내?”
괴물이 물러가고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이곳은 언제 다시 괴물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에반젤린과 아벨은 로브를 뒤집어쓴 두 명의 인영을 멀리서 조용히 미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놈들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말한 건 너 아니야?”
“하다못해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야…….”
“이미 연락을 보내봤는데 받질 않는 걸 어떻게 해. 무리하지 말고 저놈들이 어디로 가는지만 확인하자.”
“후…… 일단 알겠습니다.”
적어도 전장의 참혹함을 보고 그녀가 슬퍼하지만 않으면 그게 차라리 나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이윽고 그들이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조용히 따라붙은 채 대화를 엿들었다.
“찾았어?”
“여긴 없어. 적당히 더미들을 뿌려놓고 이동하자.”
“망할. 시간이 부족한데…….”
무언가를 찾고 있다?
에반젤린은 기척을 죽인 채 아벨과 시선을 마주쳤다.
저놈들도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위험하지만 정보의 귀중함을 아는 이상 놓칠 수 없었다.
에반젤린은 아벨이 보내오는 수신호를 빠르게 읽었다.
-상대가 강한 놈들은 아니에요. 둘이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한데, 어떻게 할까요?
그 물음에 에반젤린은 데이비의 지론을 떠올렸다.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자빠뜨려.
콰앙!!
순식간에 달려든 에반젤린과 아벨은 각자 한 명씩 담당한 뒤 그대로 그들을 기습했고,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한 뒤 피어로 찍어눌렀다.
“커억?! 무슨?!”
“고……고대룡?! 어떻게?!”
쿠웅!!!
“어떻게긴! 니들 따라왔지!”
빠악!!
거칠게 머리를 걷어차 기절시켜버린 에반젤린이 아벨이 건네준 보자기에 놈들을 보쌈하듯 싸 넣었다.
“가지고 돌…… 어라?”
그렇게 말하던 찰나.
에반젤린과 아벨은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착지하는 륀느와 레이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두 사람이 왜 여길?”
“아벨과 에반젤린을 잡으러 왔다고 보고.”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건 뭔가요?”
“전리품이요.”
에반젤린의 대답에 륀느와 레이나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륀느는 조용히 에반젤린이 가지고 있던 자루를 바라보다 입자를 손끝에 모았고 커다란 빠루를 만들어냈다.
“륀느가 심문 능력을 높이 평가.”
그리고, 레이나는 마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처럼 웃음 지으며 손가락을 뚜둑 소리 나게 꺾었다.
“그거…… 정말 잘됐네요. 마침 이쪽에서 알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레이나의 미소엔 은은한 광기까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