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6화
트론트가 펼친 시간장벽을 아벨이 간섭하면서 외부와 내부의 시간차를 비틀어버렸다.
그 대가로 아벨은 엄청난 내상을 입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지만 어째서일까.
권능도 잃어버린 그가 시간을 간섭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세계의 법칙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설명할 방법 이외에는 말이다.
아벨은 자신이 하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막대한 내상으로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으윽…….”
그나마 버티던 마지막 제노엔 트론트도 변화의 틈을 완전히 버티지 못했는지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동시에 시간의 장벽이 일순간 부서져 내리며 파스스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장벽은 제노엔 트론트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그런 그가 악마화가 되며 제노엔의 힘과 그 본래의 권한을 잃어버리면서 시간의 장벽을 유지할 힘도 사라진 셈이었다.
사실 어떤 이유에서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벨과 에반젤린의 용감하면서도 무모한 작전은 이들의 시간을 잡아먹었고, 바깥과 시간을 격리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시간 정령 알타이르와 다르게 이 공간의 시간을 왜곡시킨 것은 트론트였다.
그리고, 시간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던 아벨의 목숨을 건 도박이 성공하면서 일정량의 시간을 벌어들였고, 그 틈에 데이비와 파르테논이 타나토스의 악마화를 다시 진행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상 제노엔들에겐 가장 만나선 안되는 존재.
그것이 눈앞의 신격,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아……아버지…….”
힘없는 목소리로 데이비를 부르는 아벨을 보며 데이비는 착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벨. 이 미련한 자식아…….”
“하하…… 그래도 어떻게든 된 거 같네요.”
그렇게 말한 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버지가 제게 그랬죠. 넌 지키려고 무리하지 말라고, 그런데 해냈잖아요, 그렇죠?”
“아벨. 말하지 마라. 너 지금…….”
“저…… 이제 좀 쉬어도 될까요?”
쓰게 웃으며 그가 고개를 떨구자 지친 얼굴로 주저앉아있었던 에반젤린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아벨? 야. 왜 그래…….”
그가 다급히 불러보지만, 아벨은 미소지은 채로 천천히 쓰러졌다.
“아벨!!!”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에반젤린이 허겁지겁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아빠! 얘 왜 이래요?!”
“…….”
데이비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손을 뻗어 아벨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류가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없어진 게 아니었다.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게 식기 시작한 것이다.
에반젤린은 데이비의 그런 변화를 민감하게 눈치챘고,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뭔가 장난이겠지.”
에반젤린은 천천히 아벨의 뺨을 툭툭 쳤다.
“야. 눈떠. 눈 안 뜨면 누나가 네 간식 다 먹는다? 아빠가 너 먹으라고 사놓은 간식들 알지? 그거 내가 다 먹을 거야.”
대답은 없었다.
철썩…… 철썩!!
급기야 에반젤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제 동생의 뺨을 마구 쳤다.
“야! 눈뜨라고 눈!!”
비명을 지르듯 소리쳐보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쿠웅!!
기괴하게 변해버린 제노엔 트론트가 데이비와 에반젤린을 향해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들어왔다.
이미 그의 모습은 인간형이 아닌 괴물의 형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지근거리까지 가지도 못했다.
무형의 힘이 그를 짓눌러 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 내려놔. 아벨은…….”
“아빠! 아벨 괜찮은 거지?! 괜찮다고 하란 말이야!! 으아…… 으아아아아!! 아니라고! 얘가 여기서 이렇게 죽을 애가 아니라고!”
비명을 질러보지만, 에반젤린은 이전에 들은 사실을 기억해냈다.
시간의 권능을 써서 이 시간대로 오기 위해 그가 얼마나 무리하고 자신의 몸을 학대했는지 말이다.
그의 힘이 생각보다 약했던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데이비가 그렇게 보이게끔 만들었을 뿐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했는데. 또 이번에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가 죽었다?
에반젤린의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건 당연했다.
결국, 아벨을 붙잡고 오열하는 에반젤린을 보며 데이비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아…… 잠 좀 잡시다……. 누님…….”
“어?”
죽은 듯 입을 열지 않던 아벨이 투정을 부리더니 이내 꿍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은 것이다.
“뭐……뭐야? 너 살아있었어?”
황당하다는 얼굴로 에반젤린이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아빠…… 얘 죽은 거 아니었어요?”
“죽은 거 아니야. 그냥 많이 지친 거지.”
데이비가 화를 낸 건 단순히 그가 제 몸을 죽음 직전까지 학대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죽기 직전이지.”
“네?”
“그러니까 애 좀 잘 보고 있어라.”
푸스스…….
몸을 살짝 일으킨 데이비가 늘 입고 다니던 얇은 코트를 벗어 에반젤린에게 던져주었다.
“고생 많았고, 미안하다. 푹 쉬고, 나중에 아빠랑 면담 좀 하자.”
왜 무리한 짓을 했냐는 타박이지만 그것조차 기뻤다.
쓰게 웃는 그를 보며 에반젤린은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 *
묵묵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괴물 같은 존재.
신격, 데이비 올 라운을 보며 제노엔들은 겁에 질렸다.
타나토스가 오래전 파르테논을 억제하기 위해 그의 종족을 바꾸면서 그의 힘의 존재도 바뀌었고, 여신의 약속효과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약속을 한 것은 파르테논이었지만 정작 그 안에 숨어있던 이들 또한 같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이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수단을 둘이나 잃은 셈이었다.
악마종 고유의 특성은 현재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으……으으!!”
한발 두발 물러나며 고통스러워하던 트론트가 데이비를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그들에겐 악마화가 익숙하지만 직접 몸을 움직이고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건 별개의 숙련도를 요구했다.
즉, 이전보다 약해지면 약해졌지 절대로 강해질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콰드득!!
순식간에 청적색의 궤적이 한차례 번뜩였고, 트론트의 팔이 어깨까지 잘려나갔다.
“끄아아아악!!! 빌어먹을 파르테논! 이 배신자가!!”
그의 발작 섞인 외침에 데이비의 어깨 쪽에서 작은 구체형태의 영혼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배신자? 웃기는군. 나를 이용하고 동족들의 혼을 소모품처럼 사용시킨 네놈들이?
“뭐라?”
그의 말에 트론트가 흠칫 놀랐다.
-내가 왜 여신의 약속을 다시 믿었는지 알고 있는 건가?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들의 숭고한 반란에 대해 들었을 땐 그도 납득했다. 그동안 몇 번을 당했는데 한 번 정도는 반항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
문제는 그 후였다.
이놈들이 여신에게 반기를 든다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네놈들이 복수를 위해 나를 이용한 건 이해할 수 있다. 너희가 가진 복수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나 또한 그랬으니, 하지만,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걸 끝까지 이해 못 하겠는가? 그게 내가 너희들에게 실망한 이유다, 트론트.
“네놈은 동족을 저버리겠다는 거냐?”
-나는 단 한 번도 동족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런 동족을 배신해?!”
-미안하지만 내가 말한 동족은 너희 같은 배신자가 아니다.
그말과 함께 파르테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사라졌다.
“이야기 끝났냐? 자세한 건 나중에 듣고. 일단 볼일부터 끝내자고.”
콰직!!!
트론트의 육신이 다시 한번 찢겨나간다.
“우리도 계산해야지 이 x새들아.”
데이비의 표정에 광기 어린 표정이 서렸다.
“지금 내가 타나토스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거든? 니들을 아주 잡기 좋게 잘 바꿔놨어.”
-젠장! 흩어져라!! 지금 싸움은 불가능…….
서걱!!!
급히 도망치던 제노엔 하나가 허공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반으로 양단되며 떨어져 내렸다.
“착각하는 거 같아서 바로잡아주겠는데. 여기서 살아나서 나갈 생각하지 마라.”
데이비의 눈에 섬뜩함이 서렸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으니.”
* * *
제노엔 트론트는 현 상황이 쉬이 믿기지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악마화가 다시 진행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상에 강림한 데이비는 그야말로 재앙이며 악귀 그 자체였다.
허공을 떠다니는 청적색의 검, 초단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데이비의 의지에 따라 놈들을 찢어발겼고, 데이비는 맨손으로 놈들을 잡아 잘근잘근 찢어놓았다.
아들과 딸을 다치게 한 놈들을 향한 아버지의 분노, 인간으로서의 분노,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분노가 뒤섞인 그의 손속에는 사정을 봐준다는 문장이 없었다.
“끄아아악!! 그만! 주……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걸하는 제노엔 하나가 또 육편이 되어 찢겨 나갔다.
악마화가 완전히 진행되어버린 그들은 더 이상 데이비의 신격에 보호받지 못했다.
그저 맹수 앞에서 찢기는 고깃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0명, 아니 그 이상 되던 동족들의 영혼이 찢겨나가고 목소리가 사라질 때마다 트론트의 상태는 점점 좋지 않게 변해갔다.
일부는 도망치고, 일부는 저항했지만, 데이비는 공평하게 그들을 찢어발겼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격 데이비 올 라운이 보여줄 거라 생각한 모습에서 한참 거리가 먼, 처절할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오랜 시간 그들이 가사상태에 빠져가면서까지 준비한 복수가 눈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로썬 이 모든 사태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동족들을 학살하고 있는 신격도 이해할 수 없었고, 동족을 배신한 파르테논의 돌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을 그토록 사랑해준 프리아 여신이 자신들을 져버렸다는 것이 너무도 분하고 원통했다.
하지만 여기서 언제까지 무너지고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한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 아직 살아있는 동족들을 규합하여 틈을 엿본다면 반드시 기회가 있을 터.
이곳에는 신이 남겨놓은 안배가 더 있으리라.
확보한 신물만 있다면…….
콰드득!!
그때 섬뜩한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강타했다.
“언제까지 멍 때릴래.”
상념에서 빠져나온 트론트는 자신이 패닉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그의 주변엔 악마화한 동족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시체의 산 사이에서 홀로 고고하게 선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 데이비 올 라운이 있었다.
“괴물 같은 놈.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잘살고 있는 사람 세상에 밀고 들어와서 먼저 수많은 인간들을 죽인 게 누군데 정당성을 논해.”
“여신이 언제까지고 네놈들을 봐줄 것 같으냐.”
트론트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전신에 검은 기류를 뿌리기 시작했다.
분명 파르테논은 그들이 힘을 사용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추측했지만 트론트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면서도 데이비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여신이 언제까지고 봐줄 거 같냐고? 말이 우습네. 네가 보기에 여신이 너희들을 버린 줄 알았나 보지?”
“그럼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글세. 적어도 버렸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방법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거다.”
“헛소리.”
“애초에 너와 말이 통할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네.”
데이비가 손을 까딱이기가 무섭게 전신에 검은 기류를 뿜어내던 그가 입에 엄청난 기류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치 브레스를 쏘듯 데이비를 향해 그것을 쏘아 보냈다.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에너지탄이었다.
아무리 악마화가 되었어도 트론트는 처음을 제외하고 힘의 사용에 미숙하다는 분위기를 주지 않았다.
동시에 한 걸음 내디딘 데이비가 슬쩍 움직이자 에너지탄은 허공을 찢어발기며 지나간 뒤 거대한 웜홀을 만들어내고는 사라졌다.
비록 에너지탄은 사라졌으나 그 공격이 사라지고 난 장소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악마종이 정확히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건지 네놈은 알고 있나?”
“뭐. 직접 겪은 것처럼 말하니 우습네. 너도 결국 기억을 읽은 것뿐이잖나.”
“악마종은 타나토스가 여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병기. 비록 놈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여신의 약속을 경계했다곤 하지만 악마종의 기본 골자는 신을 향한 반기를 드는 자들이다.
그의 손에 검은 불길이 모여들었다.
“내가 최악의 경우의 수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말과 함께 주변의 시체들에게서 검은 무언가가 빨려 나와 그에게 스며든다.
-으으어어어…….
-왜……왜! 나를!
끌려들어 가는 건 악마화된 제노엔들의 혼이었다.
“우리의 대의를 위해서다. 희생해라 동족.”
-으……으아아……. 안돼…….
-이걸 원한 게 아니야…….
실제로 그들은 희생을 원하지 않는 듯 했지만, 트론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놈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승리에 도취해있지 마라, 언제고 반란이 성공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거늘.”
그의 오만한 말투에 데이비는 정강이를 걷어차듯 가볍게 허공에 발질을 했다.
쩌적!!!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변한다.
“제 동족 다 잡아먹고 내세운 그 대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
데이비가 한 손에 초단이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간다.
“장담하는데. 아들이 다친 걸 본 아빠의 분노도 그것보단 대의가 깊을 거다.”
“닥쳐라!!!”
괴성을 내지르며 그가 검은 기류를 모아 데이비를 향해 휘둘렀다.
그의 손톱이 지나간 자리엔 데이비가 뿌려둔 신격조차 오염시키고 변질시키는 검은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분명히 위험해 보이는 정도의 공격이었다.
“아……아빠!!”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에반젤린이 황급히 데이비를 불렀지만, 데이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 남겨둔 힘조차 버리고 신격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힘이 가벼울 거라 여기지 마라!”
놈의 손톱이 데이비의 근처에 닿자 무형의 장막이 엄청난 스파크를 일으키며 그의 공격을 저지해냈다.
동시에 데이비의 걸음도 멈췄다.
치직!! 치지지직!!!
맹렬한 스파크와 함께 장막이 일그러지며 비틀리고 웜홀로 바뀌어간다.
“신격은 오만하지! 그렇기에 네놈의 힘이 사라졌을 때 네놈의 표정이 궁금하구나!”
강대한 격성과 함께 남은 손을 뻗어 데이비를 잡아 찍어누르듯 그가 양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데이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데이비를 보호하던 장막이 사라졌고 그는 보호가 사라진 데이비의 육신에 그대로 손톱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그의 손톱은 데이비의 맨손에 저지됐다.
“이게 무슨…….”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데이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
한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낚아채 고정시킨 데이비는 심드렁하게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너희들. 세계의 법칙이 바이러스로 판단한 모양이더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무슨?”
“세계의 법칙까지 찬성한 이상 니들은 무슨 짓을 해도 못 이긴다고. 아벨이 산 것도 너희 덕분이다, 이 개새끼들아.”
데이비는 웃는 얼굴 그대로 그가 가진 힘 이상으로 막대한 힘을 세상 전역에서 끌어오며 그를 짓눌렀다.
“또 한 가지. 악마종은 타나토스가 만든 건데. 잘 알고 있나?”
“크윽?!”
“그 타나토스가 다루던 게 생명력이야.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생명력을 다루는 온전한 권한은 내게 있고.”
이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본능적인 경고가 머릿속을 울리자 트론트는 황급히 자신의 모든 힘을 방출해 데이비를 떼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방출한 힘은 데이비가 찔러넣은 청적색의 검, 초단이에 의해 두부처럼 찢어지며 갈라졌다.
푸욱!!
날카로운 검 끝이 그의 몸을 관통한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격통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며 그의 무릎이 절로 꿇려졌다.
“남은 놈들은 금방 올려보내마. 어차피 널 제외하고 이제 강한 힘을 지닌 놈은 얼마 없잖아. 안 그래?”
잔혹하게 웃는 데이비를 향한 적의가 그의 전신을 장악했다.
트론트는 자신의 안에 남아있던 동족들의 혼을 모조리 소모시키며 자신의 힘을 강제로 발현시켰다.
최후의 저항.
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게 있었다.
데이비가 그동안 쌓아온 힘은 그가 예상하는 이상으로 강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초단이를 놓은 맨손으로 그가 방출하는 힘을 압박하듯 붙잡은 데이비는 미소를 지운 채 마지막을 선고했다.
“네 영혼은 절대 곱게 정화되지 못할 거다.”
콰드득!!
“끄아아아악!!!!”
프레스에 짓눌린 물건처럼 그의 힘이 기이하게 비틀리고 찌그러진다.
그의 육신이 이곳저곳 찢어지며 비틀렸고, 그 끔찍한 격통에 트론트는 계속해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데이비는 한치의 자비도 없이 그가 방출한 힘 채로 그를 압착하듯 짓눌러버렸다.
그의 비명은 수 분이고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보는 이들이 겁에 질릴 정도로.
트론트는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냉정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는게 데이비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