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7화
“끄으으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 소리는 분명 길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비명 소리는 얼마 가지 못해 무형의 파장과 부딪혀 허공으로 흩어졌다.
데이비는 맨손으로 트론트의 몸을 짓눌러버렸다.
당연히 트론트에겐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신격을 약화시키고 그가 신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최후의 수단까지 썼건만, 정작 데이비의 공격 수준에는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압박이 강해졌다.
여신이 진짜 괴물을 만들어놓았구나.
트론트는 절망에 휩싸인 채 서서히 찌그러져 갔다.
그가 방출한 힘을 데이비가 짓눌러버리면서 역으로 그가 압박을 당한 탓이었다.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힘의 격차 속에서 그는 여신에 대한 증오를 더욱 불태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여신의 탓이니. 자신들을 고통 속으로 내몬 것 또한 그녀였다.
여신에 대한 증오는 점점 커져 갔고, 그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 엄청나게 방대한 검은 안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물러난 데이비는 곧바로 아벨과 에반젤린의 앞에 내려섰고 한손을 가볍게 허공에 휘저었다.
콰지지지지직!!!
막대한 반발력이 주변에 터져나간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정리할 테니. 돌아가서 아빠가 빵 구워줄게.”
“진짜죠?”
그녀가 굳은 얼굴로 말하자 데이비는 고개만 살짝 돌려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빠가 거짓말하는 거 봤니?”
“네.”
“그럼 어쩔 수 없고.”
콰지지지직!!
힘으로 검은 안개의 파장을 완전히 밀어낸 데이비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초단이가 스스로 부유하듯 날아올라 그의 손에 잡힌다.
-굉장히 어둡네요…….
초단이가 질색하며 말을 걸어왔다.
“파르테논. 네가 아는 변화냐?”
-전혀. 나는 저런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 타나토스가 내게 말하지 않고 숨겨놓은 것이겠지.“
타나토스는 미쳐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용의주도한 신이었다.
검은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트론트의 모습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했다.
거대한 액체로 이루어진 듯한 신체 부위가 상당했고 고체로 이루어진 육신은 이것이 어떤 형태다 라고 콕 찝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했다.
대신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힘은 너무도 검고 지독했다.
-그우우우우우!!!
이성을 놓은 듯 괴성을 내지른 놈의 형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놈의 형체가 마치 검은 불사조처럼 커지기 변하기 시작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이야. 불닭이가 보면 자존심 상해하겠네.”
한껏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어서 자기와 비슷한 생김새에 더 큰 위압을 내뿜으면 못 참고 달려드는 신수, 주작 불닭이가 여기 없는 게 다행인 일이었다.
츠츠츠츳!!!
수십 가닥으로 나뉜 놈의 날개에서 검은 구체들이 일제히 발광하기 시작하자 데이비는 초단이를 들어 한발 내밀었다.
쩌어엉!!!
일순간 검은 구체들이 발광하며 사방으로 가리지 않고 광선들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끔찍한 파괴의 향연이었다.
광선이 닿은 곳은 공간이 일그러지며 정체 모를 웜홀을 만들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꺄악!!”
에반젤린이 비명을 지르며 기절한 아벨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이에 데이비는 초단이를 쥔 손을 살짝 비튼 뒤 그대로 그어올렸다.
쩌억!!!
동시에 맹렬하게 사방으로 흩어지던 광선들의 허리가 일제히 잘려나가며 막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아아아아앙!!!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놈이 다시 한번 검은 구체를 만들어내려 하기 시작했다.
이에 데이비는 한 손에 블랙홀 같은 형체를 만들어내 빠르게 회전시켰다.
[광역파괴]
[이기아스]
으드드득!!!
순식간에 놈의 형체가 일그러진다.
강한 것은 사실이나 놈은 너무 불안정했다.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에 불과했고, 그런 틈은 당연히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파앙!!!
대지를 박차며 데이비가 빠르게 날아오르자 놈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와 거리를 벌리고 검은 구체들을 일제히 한쪽 방향으로 사출했다.
[먹어치워라]
하지만 그 공격이 닿기 직전 데이비가 웅얼거린 작은 목소리에 검은 광선들이 일제히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쩌어어엉!!
동시에 그 공격이 데이비의 주변에서 하늘 쪽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사출되며 흩어져버렸다.
자신의 공격을 빼앗기고 애꿎은 곳에 방출시켜버린 것에 당황한 트론트가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친다.
검은 광구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한번 두번도 아니고 세 번은 선 넘었지.”
쩌억!!!
데이비의 손에 쥐어진 초단이가 빛을 일렁였다. 동시에 막대한 수의 버프 마법이 데이비에게 가해지고, 반대로 디버프 마법들이 놈에게 스며들었다.
상대를 약하게 하고 자신을 강하게 하는 건 전략의 기본이었다.
[마령검 80초검]
[필사즉생 생즉필사(必死卽生 必生卽死)]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검기가 허공을 찢어발겼고, 하늘에 뜬 구름들 사이로 사라졌다.
쩌엉!! 퍼엉!!
그리고 고작 1~2초 지났을까.
데이비가 놈을 베어 넘기고 넘어가기가 무섭게 하늘에 뜬 구름들이 마치 채썰기라도 당한 것처럼 폭음을 일으키며 조각조각 잘려나간 뒤 흩어져버렸다.
천천히 낙하하여 착지한 데이비는 몸을 촤아악! 끌며 몸을 돌렸고 검을 튕긴 뒤 허공에 던지고 양손을 끌어모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마나를 모아 강제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초월 서클 흑마법]
[데미 울티마]
빛을 삭제하는 궁극 흑마법이 발현되며 그대로 놈을 집어삼켰다.
트론트는 필사적으로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가 만들어낸 흑마법은 그의 도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입자가 분해되듯 트론트의 몸에서 반사되어나오는 빛까지 모조리 흩어진다.
서서히 그의 형체가 사라지는 걸 보며 데이비는 숨을 짧게 골랐다.
처절한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 * *
아벨이 트론트가 사용한 시간의 흐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외부와 내부의 시간 틈을 바꿔놓았을 때.
가장 페르세르크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절대 나서지 말라 하였건만, 그새를 못 참고 에반젤린과 아벨이 사고를 친 것이다.
두 아이는 무리하게 적들을 찾아 떠났고 소식이 끊어졌다.
두 아이 모두 너무 소중한 아이였던 만큼 페르세르크는 혹시라도 다쳤을까 쉬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괜찮을 거예요. 데이비가 갔잖아요.”
무슨 이유인지 적들의 공세가 뚝 끊어진 현재. 난장판이 된 요새를 내려다보며 혼란스러워하는 페르세르크를 일리나가 조심스레 다독였다.
“아벨도 에반젤린도 영특한 아이들이니 별문제 없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리 말하는 페르세르크를 보며 일리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아벨일까, 에반젤린일까.
그녀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둘 다 같겠지만 친혈육이라는 건 보통 사람들의 본능을 끌어내기 마련이었다.
혹 두 아이가 잘못되어 페르세르크가 실수라도 저지르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데이비 님이 이곳으로 온다고 전달. 륀느가 빠른 보고를 높게 평가.”
이곳을 습격한 괴물들의 수는 무려 수십만.
그야말로 엄청난 대규모 전쟁이었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괴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장소도 그랬지만 이곳에 버티고 있는 전력이 너무 강했던 탓이었다.
륀느의 보고에 눈을 크게 뜬 페르세르크가 소리치듯 물었다.
“아이들은?!”
“무사하다고 보고.”
그 대답에 페르세르크의 주먹에서 힘이 풀렸다.
안도한 것이다.
동시에 멀리서 허공이 열리며 데이비가 에반젤린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아벨을 부축한 채 걸어 나왔다.
“아벨!! 에반젤린!”
동시에 페르세르크는 눈물까지 흘리며 뛰쳐나갔고 아벨과 에반젤린을 양팔에 한 명씩 끌어안고 두사람을 받아냈다.
“어……엄마…….”
“무사했구나…… 무사했어. 그렇다면 된 거야. 다 된 게야…….”
지친 목소리, 걱정이 다분히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무어라 말하려던 에반젤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은 페르세르크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 광경을 보며 일리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과연 아벨이 자신의 친혈육이었다면 본능적으로 에반젤린보다 아벨을 먼저 찾지 않았을까.
그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에반젤린이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배 아파 직접 낳은 아이는 그런 존재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괜찮겠지.”
그녀는 그런 점에서 안도했다. 아이를 가지지 않았으니. 에반젤린에게 상처를 줄 일도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엄마로서 가족으로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나를 보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고집이 세고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였다.
그렇기에 일리나에게 있어서 아이라는 존재는 갈구하면서도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가 더욱 성장해서 페르세르크처럼 모두를 똑같이 봐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아벨과 에반젤린을 페르세르크에게 맡긴 데이비는 그 자리에서 남은 악마종들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놈들은 자신들의 수뇌부와 트론트가 소멸한 것을 깨닫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려 했지만, 데이비의 손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어딜 가든 그와 연결된 존재들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인간이 없는 오지에 숨었더니 정체 모를 기사단 놈들이 나타났고, 인간이 많은 지역에 갔더니 어떻게 알아냈는지 귀신같이 찾아와 목숨을 끊어놓았다.
복수에 미친놈처럼 데이비는 한치의 자비 없이 악마종들을 모조리 찢어발겼고, 그렇게 악마종들은 죽어가며 자신들을 배신한 파르테논을 저주했다.
하지만 파르테논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비의 검, 초단이가 마지막 악마종을 완전히 소멸시켰을 때. 파르테논은 데이비에게서 떨어져 나와 말했다.
-약속은 서로 지켰고, 더 이상 볼일은 없겠지.
“네 동족들이 널 배신자라 칭하던데.”
-진실을 알고 싶은가?
“진실?”
-트론트를 포함한 동족들을 동조하던 내가 왜 갑자기 그들을 배신했는지.
그 말에 데이비는 침묵했다.
악마종과의 전쟁이 끝났고, 대륙은 하인스가 가지고 있는 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직접적인 해결을 위해 쐐기를 박아넣고 희생을 극단적으로 줄인 에반젤린의 이름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아벨은 스스로 그 이야기를 거부했지만 말이다.
“배신했냐라…… 떠오르는 가설이 하나 있긴 하네.”
데이비는 그가 여신의 영역으로 떠날 수 있는 문을 유지시키며 그에게 말했다.
“네 동족이 고작 내가 죽인 악마종 수십 명 정도는 아니었을 거 아니야.”
-…….
그 수는 수백일 수도, 수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아는 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오로지 단 한 명뿐이야.”
여신 프리아.
고작해야 제노엔 따위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제노엔들의 영혼까지 제물로 바쳐도 이번 전쟁은 스케일이 너무 컸고.”
-그래서?
“네가 했던 말을 종합했을 때 이런게 아닌가 싶네.”
직접 싸운 트론트를 포함한 제노엔들은,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지 않은 다른 동족이나 직접 가담하지 않은 다른 동족들의 혼까지 이용한 게 아닌가 하고.
-…….
“네가 그놈들을 향해 배신을 먼저 한 건 그놈들이라 말했지. 넌 그걸 몰랐을 거야.”
트론트를 포함한 소수의 동족들이 다른 동족들의 혼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에 사용하는 소모품으로 썼을 것이라고.
“뭐, 틀려도 상관없는 이야기지.”
데이비의 웃음에 파르테논의 영체가 파르르 떨렸다.
-네놈과 적이었지만 이렇게 미친놈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너도 마찬가지야. 성국에서 직접 죽인 이는 없다지만 네가 헤탄 왕국에서 죽인 인간들이 적은 수는 아니거든. 그 대가는 여신이 직접 치르게 할 거다.”
-그 벌은 달게 받을 것이다. 나 또한 트론트와 다르지 않아.
그 또한 악마화의 조건으로 영체가 다시 악마화가 되었다.
-하지만 죽어간 다른 동족들은 다르지. 그들의 혼은 여신의 손을 타고 정화되어 여신의 심복으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 길을 만들었다면 내 끝이 끔찍한 소멸일지라도,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여신에게 향하는 균열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대륙을 뒤흔든 악마종과의 전쟁이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은 뒤에 그 종지부를 찍었다.
대륙에선 전쟁의 끝을 알리는 소식이 퍼져나갔고, 이번 사태의 뒷정리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적대 관계였던 마족의 갑작스런 동맹참전이 바로 그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데이비가 치밀하게 짜올린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
마족과 인간의 공식적인 종적과 화해의 발판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