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3화
“끄응…….”
않는 소리를 내며 넓은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누워있던 콘타스 대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짐이 어디 가서 무력이 밀려본 적이 없거늘…….”
“상대가 그 자이지 않사옵니까. 대제.”
“네놈은 누구의 부하더냐. 지금 네놈의 황제가 흠씬 두들겨 맞았거늘, 당장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고.”
짜증스레 쏘아붙이는 콘타스 대제의 물음에 그의 보좌관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무엇이냐? 그 건방진 눈깔은.”
“대제. 왜 이렇게 될 걸 알면서 도발하셨습니까. 그가 유명한 공처가라는 사실을 대륙에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하. 웃기지 않더냐.”
대제는 끙끙 앓으며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이게 다 데이비의 대련을 빙자한 구타에서 나온 결과였다.
고작 소왕국의 대공주제에 이토록 한 제국의 황제를 구타할 수 있다니.
아무리 강대한 나라의 왕이 했다고 해도 당장 전쟁해야 한다며 입을 모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제는 그것을 공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는 소수의 이들 또한 그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걸로 끝난 게 다행인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은 국제 정세나 이미지, 국가의 힘, 혹은 정치적 입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인간입니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런 도발을 하신 겝니까.”
“궁금하지 않더냐. 마음만 먹으면 대륙을 단시간에 정벌하고 지배할 수 있는 남자라는 놈이 왜 이렇게 사회에 묻어 사는지를.”
그는 흥미롭다는 듯 대륙지도를 훑어보았다.
“이 대륙 전역에 그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서부, 중부, 동부. 그 외에도 여기 알려지지 않은 오지에 있는 아직 모르는 무언가까지. 그런 마당에 이제는 마왕까지 손을 잡았다지.”
한켠에서는 혹여 데이비가 마왕에게 세뇌당한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 있었지만, 대제는 그게 정말로 어리석은 대답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대륙에 알려진 용사 마왕의 전승 따위는 그의 앞에선 어차피 인형놀음이나 다름없는 것을.
인간이 도달해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올라간 존재.
대제는 어릴 때부터 동물적인 본능이 강했던 만큼 다른 이들과 달리 데이비를 보는 시선부터가 달랐다.
“정말 탐이 나는군.”
진심을 담아 입맛을 다신 그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한데 대제, 이대로 그냥 넘어가도 괜찮겠사옵니까.”
“상관없다. 확인할 것은 다 확인했고, 의심 가던 문제도 해결했으니.”
“의심 가는 점? 대제, 소신은 머리가 좋지 않아 대제의 의중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나이다.”
“간단한 일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짐 또한 처음엔 마왕에게 그놈이 세뇌된 게 아닌가 생각해보았다만.”
“의심 가는 정황이긴 했지요. 하면, 그 진상을 알아내셨다는 말입니까?”
“물증은 없지만 재밌는 가설이 떠오르더군.”
대제는 손에 턱을 괴고는 물었다.
“마왕이 감히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어찌하여 마족을 돕는 것일까. 네놈은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거야 여신의 계시…….”
“그걸 믿으라고? 설사 사실이라 해도 그놈은 절대 자기 이득 없이 따를 놈이 아니지. 특히. 마족이라면 더더욱.”
마족은 한때 적이었다.
대제가 아는 데이비 올 라운은 적에게 생각보다 자비가 없었다.
반면 조금 유한 면도 존재하지만 모든 상황을 대입해봐도 마족이 갑자기 데이비의 마음에 들었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가설은 두 가지지, 첫째. 그놈이 처음부터 마족을 편에 끌어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마족 중 누군가가 그의 곁에 있거나.”
“대제?!”
“그거 알고 있나? 헤탄 왕국이 날아가기 직전 그곳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
성자 데이비 올 라운 대공의 첫째 부인이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마족이라고.“
그 말에 보좌관은 데이비의 부인을 떠올렸다.
어지간해선 여성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그조차 당혹스러워할 만큼 아름다움을 드러내던 여성의 미소가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대륙 6대 미녀로 유명했던 이들조차 미색이 바랠 정도였지요. 물론, 그 6명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웃기는군. 그 대륙 6대 미녀 중 셋 이상이 그놈의 곁에 있으니.”
팔란의 금지옥엽 일리나 데 팔란. 새로이 합류한 린디스의 황녀, 에이리아 알 린디스.
그 외에도 연금술사 학파에서 유명했던 적발의 그 발칙한 꼬맹이. 티아라라고 하였던가.
그 외에도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베르단데가 존재하지만, 그녀는 세간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아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쨌든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없습니다…… 어떤 정보도 없더군요.”
“그래. 그녀의 행동에는 어떤 기품이 있었다. 평민 출신이라곤 할 수 없지. 본능적인 버릇 속에서 기품과 우아함이 묻어있다는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그녀가…… 왕족, 혹은 고위귀족이라는 뜻이옵니까.”
“열에 아홉은 그렇겠지. 그렇다면 다시 이야기를 돌려보지. 왕족인 그녀에 대한 정보가 어째서 없을까. 정보 통제? 그가 어째서 그런 짓을 하겠는가. 어지간해선 뻔뻔하게 구는 그도 신중하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더 신기했다.
자신이 그였다면 이런 짓 따위 하지 않고 뻔뻔하게 밀고 나갔을 텐데. 그리한다 하여도 그 누구도 그를 저지하지 못할 텐데.
대제의 입가에 흥미로움이 서린 미소가 걸렸다.
“그녀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말까지 중얼거린 보좌관이 눈을 크게 떴다.
“뭐, 사실상 억측이긴 하지만, 그녀가 마족이라던 소문이 사실이라면. 모든 게 맞지. 그가 헤탄 왕국까지 단시간에 날아간 이유 하며, 그가 마족을 돕는 이유 전부.”
“하오나 대제. 마족들의 이마에는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작은 뿔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어떤 뿔도…….”
“그건 감추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지.”
중요한 건 그녀가 마족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을 경우였다.
“그리고 이걸 눈치챈 건 짐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삼제국은 전부 확실히 알아낸 셈이었다.
“과연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기대되는군.”
* * *
“그대. 아벨이 먹는 분유를 왜 자꾸 야금야금 훔쳐먹는 게야.”
페르세르크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내 뺨을 쿡쿡 찔렀다.
커다란 의자에 몸을 기대듯 앉아있는 내 다리 위에 마치 말을 타듯 올라 앉아있던 그녀가 나를 내려다본다.
의자에 기댄 내 몸 위에 올라앉았으나 무게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맛있더라고.”
아벨이 태어나고 본래라면 수유를 해야 했건만 애석하게도 페르세르크는 체질적인 문제인지. 첫 아이이기에 그런 것인지 수유가 잘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에이리아에게 대리 수유라도 시킬 일이지만 마냥 부담을 줄 수 없다는 판단하에 사둔 분유이기도 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이걸로 밥이 되나?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막내아들이 먹는 것인데 괜찮은지 확인은 해봐야 한다면서 한 스푼 털어먹어 본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반이나 먹었다고?”
“저거 먹이지 말자. 마약이야 마약.”
“뻔뻔한지고…….”
단순히 확인차, 혹은 호기심에 한 스푼 털어 넣었던 것이 다인데 오가며 심심하면 한 스푼씩 털어 넣다 보니 반절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새로 하나 사면 되는 것을…….”
“아껴야지. 우리가 돈을 펑펑 쓰는 걸 보면 애들이 뭘 배우겠냐.”
“또, 또 핑계. 그대 그거 병이야. 이번 마족 종전 회담 때도 그랬고.”
일부러 그런 사태를 유도해서 그녀가 마족이라는 확신을 삼제국의 통치자들에게 박아넣어 버렸다.
그녀가 그런 존재이니 괜히 엎거나 파고들지 말고 적당히 승낙하라고.
“그대는 말이야. 가진 힘을 쓰면 되는데. 일부러 그 중간 즈음에 묻어가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중간치기를 하니까 현 상황이 유지되는 건데.”
“끄응…….”
불만 어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종아리를 오므려 내 다리를 휘감고는 양손으로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그대. 입가에 분유 가루 묻었어.”
“어? 진짜로?”
“기다려 보아.”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맞출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고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밀어 내 입가를 스윽 핥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살짝 적신 뒤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맛있구나.”
“그렇지? 맛있다니까? 오가며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한 숟가락씩…….”
“그렇다고 본녀가 숨겨놓은 자재창고까지 숨어 들어가서 가져오는 건 아니지.”
“그건 그렇고, 슬슬 내려와 줄래? 아침부터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무슨 상관인가. 본녀도 이제 다 회복되었거늘.”
“아벨 동생은 계획에 없는데.”
“걱정 말아.”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은 월말이니.”
헛웃음을 흘린 나는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렸다.
“요물이 따로 없네.”
* * *
“그만! 그만하라고요. 이 미친 인간들아!!”
비명을 지르며 에반젤린이 양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후벼팔 것처럼 손바닥으로 짓눌렀다.
“끔찍하고 불결해! 아무리 나라도 드래곤의 생김새 보고 매혹되진 않아! 한 번만 더 용 그려달라고 하면 싹 다 밴 때리고 방종할 거에요!”
에반젤린이 그린 드래곤의 그림이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버린 탓에 하나의 새로운 이상 취향을 만들어버린 탓일까. 에반젤린은 그쪽 업계의 인간들 일부에게 그녀는 하나의 개척자. 혹은 새로운 종교의 교주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단연 주 방송 대상인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러고 있으니 골머리가 더 아플 수밖에.
-엣헴. 드래곤계 거장님.
-흠흠 거장님 말씀하신다. 모두 조용.
“너희 둘 다 밴이야!!”
삐릭!
-나폴리탄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트라이브게이트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발할라!!!
떠나기 전 마치 순교하는 광신도마냥 소리치며 사라지는 걸 본 에반젤린은 그 아이디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그녀가 드래곤의 생김새에 대해 뭐라 언급할 때 처음 이방에 왔다면서 상태가 왜 그러냐고 비웃던 인간이었다.
당연히 에반젤린은 절대 원치 않았고, 그녀의 위치의 특수성도 있는 만큼 대놓고 방송에서 음란한 말을 하는 미친 인간들은 없지만, 그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결국, 그림에 대한 의욕까지 팍팍 깎여버린 에반젤린은 태블릿의 팬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파일을 종료시켜버렸다.
“그림은 여기까지. 오늘은 게임이나 좀 할래요.”
띠링.
사수자리 님께서 5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방장, 마침 절제쉑 마피아 게임하던데. 같이 하자고 해보셈.
“아, 사수자리 님. 50만 원 정말 감사드려요. 마피아 게임이요? 들어본 적은 있는데. 어떻게 하는데요?”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묻는 그녀를 향해 채팅창의 민심이 불타오른다.
-와 50만 원인데 리액션 실화?
“네? 그런 게 있어요?”
-그것도 평소에 감사드려요 하다가 ‘정말’ 감사드려요. 라고 하네 ㅋㅋㅋㅋㅋ
-아오. 저 댕청한 얼굴로 이게 왜? 라고 하는 게 나를 미치게 한다 ㅋㅋㅋ
-해명해.
-해
-명
-해
-명.
“아니, 무슨 리액션을…….”
당황한 듯 주춤거린 에반젤린이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거렸다.
물론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더욱 즐거워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녀를 돕기라도 하듯 음성채팅 알림이 울린다.
“어? 절제 아저씨다! 잠깐만요 님들, 내가 리액션은 다음에 준비해올게!”
-도망 보소.
-와. 민심 나락 간다!
악다구니를 쓰는 시청자들을 애써 무시하던 에반젤린이 옜다 먹어라 하듯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었다.
“사수자리 님 50만원 감사드려요. 뾰……뿅.”
시뻘게진 얼굴로 억지 리액션을 한 그녀가 자괴감에 얼굴을 파묻는다.
-이거지!
-ㅋㅋㅋ 클립 땄다 ㅋㅋㅋ
-흑역사 제대로 간다!
“방송 다 싫어…….”
한숨을 내쉰 그녀가 음성채팅을 받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어, 에린아. 혹시 마피아…….
“할래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는 곧 절제의 요청에 따라 미리 준비된 음성채팅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오…….”
-오오…… 오셨다! 드래곤계의 거장님!!
동시에 들려오는 다수의 남성의 목소리.
“어서 와요. 반가워요. 에린 님!”
그리고 3명정도의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나하나가 전부 구독자 40만을 넘는 대규모 스트리머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에반젤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녀를 격하게 환영했다.
물론.
“저…… 그냥 나가도 돼요?”
드래곤계의 거장이라는 한마디에 에반젤린의 평가는 정해졌다.
“야 이 미친놈들아! 애 앞에서 그 이야기 하지 말랬잖아.”
절제의 타박이 이어지지만, 에반젤린은 더욱 우울해졌다.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오…….”
조금 전에 느낀 자괴감과 드래곤의 주제로 인해 파김치가 된 에반젤린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을 더 재밌어하는 이가 더 많았다.
“자자 반가워요. 에린 씨는 처음이죠?”
“네. 에반젤린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세상에 에린 씨 모르면 간첩이지.”
“그……그 정도는 아닌데…….”
프로 방송인답게 사운드가 전혀 비질 않는 음성채팅방을 보던 에반젤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절제 아저씨. 오늘 한다는 게임. 어떤 거예요?”
“아. 이미 깔고 있지?”
“네. 깔고는 있는데.”
“간단해. 8명 중에 살인자가 둘이야. 그 둘이서 생존자인 척하면서 다 죽이면 돼. 들키면 날이 밝는 대로 공개처형을 당해.”
“음…… 한 번 해봐야 알 거 같아요.”
순식간에 실행되는 게임을 보며 에반젤린이 손가락을 풀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게임에 그녀의 흥미가 샘솟았다.
두둥!
이윽고 첫 번째 판.
초심자의 행운인지는 몰라도 단번에 살인자가 당첨된 에반젤린은 로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의 면을 손등에 스윽 닦고 숨기는 캐릭터를 보며 짧게 탄성을 흘렸다.
다만 에반젤린에게 이 게임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게임이었다.
“어? 절제 아저씨.”
“아. 에린아. 혹시 t 한 번 눌러볼래?”
“T요?”
의아한 얼굴로 t 버튼을 누른다.
스릉…….
동시에 에반젤린의 손에 칼이 쥐어진다.
“에린이가 살인자다!!! 얘들아 에반젤린이 살인자다!!!”
“어……어어?”
당황한 그녀가 후다닥 뛰어간다.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절제를 보며 에반젤린이 당황한 얼굴로 칼을 든 채 미친 듯이 쫓았다.
“야 이 나쁜 새끼야! 이런게 어딨어!!”
“아 젠장 다 어딨는데!”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절제는 생존자들을 찾으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그의 주변에는 없었다.
그때였다.
푸슉!!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절제가 고꾸라졌고 누군가의 아바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타의 위에는 시우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앗! 시우 오빠도 있었어요?”
“야. 너무하는 거 아니냐?”
과거 프로게이머였으나 현재는 은퇴하고 스트리머를 하고 있는 전 탑패왕이라 불리던 시우가 씨익 웃었다.
“이 나쁜 새끼 처단했는데. 어떻게 처형은 네가 할래?”
“에……에린아? 우리 말로 하자, 말로.”
“누구 마음대로.”
그말과 함께 에반젤린은 손에 든 칼로 계속해서 쓰러진 절제를 푹푹 찔렀다.
“나쁜 새끼!! 이 나쁜 새끼!!”
씩씩거리며 허공에 칼질을 수차례 했을까.
미동도 하지 않는 절제의 시체를 바라보던 에반젤린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어디다 숨겨요?”
“어……어어? 숨겨?”
“네. 숨겨야 안 들키잖아요.”
“아니…… 이 게임에 시체 숨기는 기능 같은 건 없어…….”
그 말에 에반젤린의 눈이 활활 타오른다.
“이거…… 재밌네요…….”
그 모습을 보며 시우는 떨떠름한 탄식을 흘렸다.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쳤다고 그 사람이 날 쥐어패러 오는 건 아니겠지…….”
가끔씩 지구로 와 시우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일리나가 커다란 거검을 들고 찾아와 항의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시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참. 성자님한테 부탁드릴 것도 있는데.”
오래전 친척의 요구가 있었는데. 그것도 말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며 탄식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