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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04화 (1,304/1,559)

제 1304화

에반젤린이 고대룡이건 특수한 힘을 지니고 있건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PC를 이용한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조작하는 게 대부분인 만큼 잘해봐야 반응속도가 조금 더 좋다 정도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재능이라고 해야 할지 에반젤린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게임에 익숙해지며 같이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들을 농락했다.

“아니 이게 또 에린 씨가 살인범이라고?!”

“말이 돼 이게?!”

“내가 말했잖아 이것들아! 저거 완전 여우라니까? 속으면 안 된다고!”

“아니 그 상황에서 누가 쟤를 의심해…….”

혼란스러워하는 스트리머를 뒤로한 채 속으로 키득거리고 있던 에반젤린은 어느덧 피곤해진 느낌을 받았다.

“고생하셨어요. 다음에 또 같이 게임 해요.”

“오. 진짜죠? 약속한 거예요?”

“네. 얼마든지 불러주세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그럼 잘 부탁할게! 다음에는 생존게임으로 같이하자!”

유난스러울 정도로 다른 스트리머들에게 귀여움을 받던 에반젤린이었던 만큼 그 인기가 상당했다.

하지만 더 끌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났다.

애초에 작정하고 준비된 합방이 아닌 깜짝 게스트 개념이었던 만큼 이 이상 끌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배웅해주는 스트리머들을 뒤로한 채 음성채팅을 끝낸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기 화면으로 바꾸고 입을 열었다.

“잠깐 낙서나 하면서 토크나 할까요?”

그렇게 말한 뒤 그림판 하나를 켠 그녀가 휘갈기듯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낙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며 그녀가 꺄르륵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요.”

-아아, 방장 벌써부터 못된 거 배우기 시작했다.

-방장 살인범 돼서 인성질하는 거 다 봤다.

“아니, 인성질이라뇨. 어디까지나 기쁨의 댄스였지.”

-팩트 : 보통 그런 것을 보고 인성질이라고 한다.

-티배깅 단어 몰라? 엉?

“티……티배깅이라니! 어……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뭘 하기도 애매하니까 종료 전까지 뭘 할지나 생각해보죠.”

-아니 컨텐츠를 시청자한테 떠넘기는 스트리머가 있다?

-세상에 직무유기가 무슨…….

“방송 여기서 종료할까요?”

-당연히 저희가 생각해드려얍죠.

-얼른 머리 굴림 ㅎㅎ

-충성충성.

“장난이에요. 원래 방송을 여기서 멈추려고 했는데. 다들 아쉬운 거 같기도 하고, 저도 싱숭생숭해서…… 그냥 핑곗거리 대고 좀 더 남아있는 거니까.”

부끄러운 듯 그녀가 시선을 회피했다.

“어……어쨌든 뭐라도 생각해봐요. 얼른!”

부끄러움을 애써 무시한 채 그녀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제안을 해왔다.

-근데 방장은 다른 취미는 없음? 그림 말고.

시청자의 질문에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취미가 여러 개여야 해요?”

-아니 그건 아닌데…….

-방장은 왠지 또 뭐 하나 가지고 있을 거 같아서.

“딱히 없어요. 예전엔 용사가 되고 싶다고 무작정 가출하고 그랬는데…….”

-팩트. 방장은 현재 5살도 되지 않았다.

-와씨 이렇게 말하니까 확 와닿네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어지간한 놈들보다 성숙한 3살 ㅋㅋㅋ

“아……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나랑 보통 성장 방식이 다른데!”

괜히 부끄러워진 그녀가 빽 소리 질렀다.

“후…… 딱히 아무것도 없는 거 같으니 오늘 방송은…….”

똑똑.

“에린아, 안에 있어?”

그때였다. 방송 부스 바깥에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초단이 언니?”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의 문을 열어주자 청적색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묶은 초단이가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온 게 보였다.

“앗! 붕어빵!”

“헤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나서 하나 사 왔어.”

그녀의 대답에 에반젤린은 뛸 듯이 기뻐하며 봉지를 받아 펼쳤다.

“우와…… 잘 먹을게!”

“그래. 방송 중이네? 괜히 방해 안 되게 가볼게.”

“어……어어?”

-안돼유. 누님 가지 말아유.

-아니 어떻게 찾아온 게스트를 이렇게 보낸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콘텐츠가 되는데 이걸 포기해?

폭발하는 민심을 보며 에반젤린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언니. 잠깐만 놀다가.”

“응? 아니 방송하는데 방해되는 거 아니야?”

“아이, 괜찮아.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끄려던 참이었어.”

“그렇다면야……. 반가워요. 여러분들. 초단이에요.”

-아…… 치유된다.

-팩트. 초단이도 에반젤린과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다.

-아니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10살도 안 된 대학생 오우야…….

애초에 초단이는 청단이 홍단이와 다른 케이스이기에 나이가 소용이 없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니, 등에 그건 뭐야?”

“아, 이거? 요즘 가야금 배우고 있어. 뮤트 님이 가르쳐주고 계시거든. 아버지께 말씀드리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 만들어주셨어.”

초단이가 자랑하듯 커다란 가방을 풀어 그 안에 든 밝은색의 가야금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가야금과는 그 외관이 조금 달랐지만, 그녀가 손가락으로 현을 조금 튕기자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오……. 그럼 연주도 가능해?”

“음? 글쎄.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라.”

“언니 피아노는 잘 쳤잖아. 한번 보여줘 보여줘.”

에반젤린이 종용하자 초단이는 짧은 고민 끝에 가야금을 그녀의 무릎 위에 얹고는 가볍게 현을 이리저리 튕겼다.

“그럼 해볼까? 괜히 시청자분들한테 민폐 끼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니 누가 그래.

-그런 놈 데려와!!

에반젤린의 방송에서 에반젤린을 제외하고도 미식연구회나 간혹 참석하는 초단이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스트이기도 했다.

“그럼 뭘로 연주해볼까?”

“가야금이 한국 악기죠?”

-ㅇㅇ

-맞음.

“그럼 다른 나라 음악을 해볼까?”

에반젤린의 권유에 초단이는 눈을 감고 현을 두어 번 더 튕겼다.

“아. 최근에 아버지께 배운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파르르 떨리던 현을 잠재운 그녀가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긴장한 듯 에반젤린을 바라본다.

“한다?”

“기대할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약한 소리를 내며 그녀가 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아아…….”

현을 뜯음과 동시에 초단이의 입에서 아름답고 청명하며, 신성한 음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는 이들이 숨을 헉 들이켜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녀가 선곡한 음악은 다름 아닌 찬송가 계열이었다.

“아…… 이거 들어본 적 있어. 어메이징 그레이스!”

에반젤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의 곁에 앉아 지켜본다.

신나게 떠들던 채팅창 또한 그녀가 연주를 제대로 시작하며 노래를 부르자 쥐죽은 듯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와……. 혹은 미친……. 같은 글귀가 올라왔지만, 대부분은 조용했다.

아름다운 음절로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손끝을 타고 퍼져나가는 소리는 에반젤린이 미리 세팅해둔 덕분에 더욱더 소리가 공명하듯 울려 퍼지며 아름답고 신성한 분위기를 풍겼다.

뛰어난 기교가 섞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초단이의 연주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직격타로 꽂혀 들어갔다.

마치 수많은 성가대가 합창을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음률에 에반젤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초단이를 바라보았다.

초단이가 악기를 간혹 연주하는 건 본적이 있지만, 신의 영역에 있던 음유시인의 영웅 뮤트에게 배운 뒤로 완전히 몰라볼 정도로 대단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뮤트 님이 아빠랑 엄청 비교하던데.’

[이야. 이거 물건이네, 조금만 다듬으면 네 아빠는 그냥 넘어서겠다.]

그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초단이의 연주는 그만큼 에반젤린의 심금을 강하게 울렸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연주를 끝마친 초단이가 천천히 손바닥으로 가야금의 현을 덮자 주변을 몽롱하게 만들던 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를 끝낸 후부터 약 5초간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

-가야금이 원래 저런 소리가 가능했음?

-미친 듣는 귀가 신성해지는 기분이네.

-아니 노랫소리 왤케…… 쩔어…….

-holy…….

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했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청자들은 이내 채팅창을 박살 낼 것처럼 화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와…… 언니 진짜 대박. 그리고 님들은 채팅 좀 적당히! 서버 흔들려요!!”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엄청난 반응에 당황한 에반젤린이 급히 중재하려 하지만 계속되는 폭발적인 반응은 이내 튼튼한 그녀의 채널을 순식간에 폭발시켜버렸다.

* * *

“와…… 이건…… 와…….”

과거 프로게이머였으나 은퇴한 이후로 방송계를 타고 있는 박시우와 함께 있던 그의 친척 동생 박시현은 에반젤린의 방송에서 들려온 음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 진짜 연락 없어?”

“아니 그동안 바빠서 못 물어봤지.”

“이건 진짜 뜬다. 와. 부녀가 쌍으로 진짜 경악스럽네,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해? 그냥 배운 거라잖아.”

박시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에 시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좋아.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형. 방금 음악 들었을 때. 어땠어?”

“개쩔었지.”

“그렇지? 왜 개쩔었어?”

“음? 글쎄다…….”

“설명하기 힘들지?”

시현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데.”

“그게 포인트야. x발, 나도 이쪽 업계에서 많이 일해봤지만, 자칭 전문가라는 꼰대들이 음 이건 좋고 이건 안 좋아 이러는 거 많이 봤거든? 각자 기준이 있단 말이야.”

“야 말을 해도…….”

“근데 그래도 본 게 있다 보니 저 인간들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기준점 같은 건 보이는데.”

“그런데?”

“이건 그게 없어.”

그냥.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그냥 좋다.

이게 한마디로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아직 시우는 몰랐다.

“장담하는데. 이거 영상 따서 올리면 조회수 억 단위 장담한다.”

“무슨,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저 에반젤린이라는 애 구독자 수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해. 하루아침에 영상 떡상하고 진짜 난리 날걸?”

괜스레 호들갑 떤다며 시우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며칠 뒤.

시우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이게 왜 진짜냐?”

조회수 321,423,123

“조회수 3억…… 벌써 욕심 많은 놈들은 연락했겠네.”

“아니 이게 그 정도라고? 얼씨구, 이거 네가 말하던 그 유명한 오케스트라단 아냐?”

“원래 오케스트라는 혼자서 뛰어나면 오히려 퇴짜를 맞거든? 오케스트라라는 게 원래 서로 손발이 맞아야 하고 수준도 맞아야 하니까.”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락을 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얘 연주가 나머지를 강제로 끌어올릴 정도로 주변을 동화시킨다는 거야. 흔히 말해서 연주하는 거로 다른 이들을 자극해서 각성시키는 수준이라고.”

시현은 전날 영상을 들으며 자신 또한 같이 연주해보고 직접 깨달았다 말했다.

“혼나 모난 돌은 정 맞는다지만 그 모난 돌이 다른 부분까지 전부 끌어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단순히 크리에이터로써 재미와 웃음을 주는 수준이 아니었다.

“꼴에 천재 소리 듣기 싫어하던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얘는 진짜 천재야. 나 같은 건 감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상에 다시 없을 진짜 천재.”

듣고 보니 어이가 없다.

“언니는 음악 천재고. 동생은 그림 천재고…… 아빠는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대체 저 집안은 못 하는 게 뭐야.”

동생은 드래곤 그림 한 방에 수많은 용박이들을 만들어냈고, 언니는 연주 한번에 엄청난 조회수를 뽑았다.

물론 두 소녀가 아름다운 것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보통 가야금연주는 해외까지 퍼지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네. 그냥 뭘 잡아도 흥해, 얘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부탁해오는 시현을 보며 박시우는 잠시 고민하다 그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있던 데이비의 번호를 바라보았다.

뭐라 보내야 할까.

갑자기 이렇게 연락을 보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시우 오빠 오늘도 마피아 게임 해요?

그나마 말을 터놓기 쉬운 에반젤린의 연락이 왔다.

“이거다.”

“형?”

“걱정 마라. 내가 네 인생 소원 반드시 이루게 해주마.”

“와씨 진짜 고맙다! 나 이거 한번 작업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저 음악에 미친 새끼.

시우는 헛웃음을 흘리며 에반젤린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래 저 정도로 자기 일에 집중하는 놈이니 사고는 안 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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