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7화
수십 년 전 첼로계의 거장으로 유명했던 백포블 교수의 삶은 상당히 무료했다.
언제부터였던가. 마치 자극에 무뎌진 감각기관처럼 격심한 번아웃에 시달리게 된 그는 세계적인 첼로 거장이라는 명예를 얻었음에도 일선에서 물러나 은거한 생활을 선택했다.
물론, 간간이 생활을 위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시간강사 역할을 해왔지만, 그것은 극심한 번아웃에 시달리는 그를 다시 자극시켜줄 요소를 찾기 위한 발버둥일 뿐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그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 가르쳤던 제자 중 하나였던 쥴리아나였다.
최근 소문에 따르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해졌다고 했던가.
확실히 아주 잠깐이나마 그에게 다시 열정의 불을 지펴줄 뻔했던 발칙한 제자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의 열정에 완전히 불을 지피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에게 있어서도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제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 쥴리아나가 연락이 온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한번 속는 셈 치고 직접 보지 않으실래요.
물론, 이제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는 신경도 쓰지 않으려 했다. 뭔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평소에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던 제자의 연락이었다.
잠시간 고민하던 그는 오래전 부모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되새겼다.
예술가는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봐야 한다고.
반쯤은 충동으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바로 갈 일이 없었던 한국으로 향했다.
“자네. 내 시간을 빼앗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는 알고 있는가?”
어째서인지 한국에 와있던 쥴리아나를 향해 나름대로 엄하게 말해본 그가 희끄무리한 수염을 쓸어내렸다.
“교수님. 진짜 후회 안 하실 거에요. 한번 보세요.”
그리고 약 30분 뒤.
“그래. 나 백도블 교수일세. 오랜만이군. 그래 요즘에도 제자 키우기에 여념이 없는가? 그래. 그렇겠지. 자네나 나나 무리한 여정으로 번아웃이 올 수밖에. 그런데 말이네. 한번 와보지 않겠나? 여기? 한국일세.”
만사 귀찮고 의욕이 없어 보이던 백도블 교수는 자신의 지인에게 연락을 날렸다.
“이봐. 백도블 내 시간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는가? 별일이 아니면 크게 화를 낼걸세.”
30분 후.
“한국으로 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오라면 와 이놈아!”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이라 할 수 있다.
하나가 뛰어나게 잘해서 모두를 제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가 부품이 되어 거대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합주의 근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초단이의 연주는 그야말로 이상 그 자체였다.
압도적인 재능을 이용해 혼자 날뛰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연주는 대단했지만, 진짜 숨겨진 수는 그 안에 있었다.
그녀의 연주는 막 뛰어난 기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체 모를 악상을 끝도없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지독한 번아웃들을 날려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좋다.
인생에 마지막을 불태울지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첼로의 거장 백도블을 시작으로 이 업계에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활동을 멈추고 은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십수 명이 모인 것이다.
갑작스런 내방에 당연 여기저기서 관련 업계종사자들은 뜨거운 이야기꽃을 피워올렸다.
그럴 수밖에.
어지간해선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한둘도 아니고 저렇게 다수 모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양반들이 죄다 모여들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들이 모여서 뭔가 큰걸 준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물론, 아무리 거장들이라고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다들 쟁쟁한 이들인 이상 의견충돌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이게 맞다니까 그러네.”
“허허 아가씨. 참 곱구먼, 혹시 내 손자놈이랑 만나볼 생각. 컥!!”
“이 미친 영감탱이가 뭐하는 짓이야.”
“쥴리아나.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나도 이 정도까지 늘어날 줄 몰랐지.”
첼로계의 거장 백도블 교수를 시작으로 다른 각종 분야의 이름있는 이들이 죄다 모여든 현 상황을 보며 시현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도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음악가로서 대단한 존재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고.
초단이의 연주가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열정을 지핀 것까진 좋았지만 하나같이 느낀 바가 달랐던 것이 문제였다.
“젠장!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몇몇이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친다.
분위기가 제법 험악한 것이 나름대로 이름 날린 거장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꼴을 보게 생긴 것이다.
“난 모르겠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도 저 교수님들하고 느낀 바가 달라서 끼어들고 싶을 지경이야.”
쥴리아나도 이해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초단이는 처음부터 한결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연주 소리가 간간이 들릴 때마다 일부는 뭔가 영감을 얻은 듯 기이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구심점이 초단이 이지만 초단이는 이들을 이끌고 악단을 성공리에 끝마칠 실력도, 경험도 없었다.
그러니 난장판이 될 수밖에.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데이비에게 기대를 걸고 싶은 시현이었지만 정작 데이비는 무엇을 하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쥴리아나가 찾아오고 고작 5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밖에 기자들 깔린 거 봤지? 진짜 귀찮게 됐어. 쥴리아나.”
“오…… 미안해. 나도 이 정도일 줄 몰랐지……. 백도블 교수님이랑 몇몇 교수님들께만 연락드린 건데 이렇게 마인드맵마냥 퍼질 줄 누가 알았겠어.”
“하…… 이럴 땐 그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데이비 성자?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사실 쥴리아나가 데이비의 연주를 못 들은 건 아니지만, 그에게선 초단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여기 거장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가 하는 그런 의문도 든 것이다.
이에 시현이 비웃음을 담아 물었다.
“쥴리아나. 너 그 사람 연주 제대로 하는 거 못 들었지?”
“음?”
“난 봤어.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은 하나같이 보조를 위한 연주였을 뿐, 그가 정말로 제대로 연주를 하면 완전히 달라질 거다.”
시현의 말에 쥴리아나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수 없는 천재. 네가 그렇게 극찬하는 사람은 저기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몇 없는건 알지?”
“그게 중요해? 그 사람뿐이야. 이 난장판을 한자리에 끌어모을 수 있는 사람은.”
문제는 정작 그 인간이 나타나질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다들 뭐라도 좀 드시고 하세요.”
언제 나타난 건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나타난 데이비를 보며 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자님!”
이 극한의 혼란을 잠재워줄 이의 등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시현이 급히 뛰어가 그를 반기자 데이비는 이해한다는 듯 씨익 웃으며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예! 필요합니다!”
“그럴 줄 알고 관련 인물을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데이비가 등에 업고 있는 작은 인영을 내려놓았다.
“다왔어요. 언제까지 잠만 잘 겁니까.”
“끄응…… 니가 이 나이가 되어보세요. 온몸이 찌뿌둥하고 졸리기만 하지.”
“그거 병입니다. 병.”
그가 내려놓은 이는 작은 소녀였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으니 말이다.
“저…… 성자님? 이분은?”
“자세한 건 따로 설명해 드릴 순 없고. 지금 구심점이 없어서 혼란이죠? 그걸 잡아줄 사람입니다. 인사해요. 이름은 뮤트. 제 스승님이기도 하고, 처음 지옥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던 초단이를 저렇게 만들어놓은 분이니.”
그 한마디에 시장판 마냥 왁자지껄하던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있는 이에게 향했다.
“데이비.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며칠 안 돼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걱정 말아요. 다른 영웅들의 힘을 빌려서 문제없을 테니.”
“후……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적어도 당신이 바라던 일 아닙니까? 어렵게 육체까지 새로 만들어서 안착시켜드렸는데.”
데이비가 뮤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뮤트에게 있어서 어떤 미련의 존재.
그것은 다시 한번 축제와도 같은 연주를 하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회랑에서의 영웅들은 딱히 그녀의 마음에 들 정도의 연주를 하는 이가 없었기에 불가능했다.
“헛소리하시네요.”
“그걸 바랐으니까 내가 당신에게 악기를 배웠을 때 합주를 그렇게 고집한 거 아니었습니까?”
더 이상 많은 이들과 함께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뮤트는 대신이라고 할 점으로 데이비와 단둘의 합주를 자주 시도했었다.
물론, 데이비의 연주가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가는 기괴한 형태였기에 결국 포기했지만 말이다.
“이런 기회 없잖아요. 스승 생각하는 제자 잘 없어요?”
데이비의 제안에 뮤트는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디 해봅시다. 나도 어디 미련 좀 풀어보게.”
작은 체구지만 당당하게 걸어 나가며 그녀가 말했다.
“다들 모여보세요. 기왕 시작한 거 어디 끝장을 보자고요.”
처음 보는 자그마한 소녀의 목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거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세계적인 거장은 물론, 신의 영역에 있는 음유시인, 뮤트의 참전은 그야말로 이례적이었다.
처음엔 뮤트의 등장과 그녀의 주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제법 존재했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자존심을 품고 있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은 곧이어 음악가가 입 아프게 말로 해서 뭣합니까. 하는 한마디에 종식되었다.
직접 연주하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감동시켜 봐라.
그녀가 내던진 숙제는 간단하고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정말로 어려웠다.
한창 사그라졌던 열정에 불이 붙었던 이들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완성시켜보겠다는 욕심을 내비쳤고 하나하나 숨기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펼쳤다.
인간적으론 싸워도 실력 면에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실력가들의 연주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누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말할 순 없는 정도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선 뮤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대단한 악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음? 뮤트 부인. 그것이 무엇이오?”
처음 뮤트를 향해 꼬마애라고 말하다가 정강이를 걷어 까인 시현 때문에 다른 교수들도 언행에 조심했다.
겉보기엔 이래 보여도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실제 나이가 여기 있는 희끗희끗한 수염을 지닌 이들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뮤트의 진짜 정체나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데이비가 데려온 초단이와 데이비의 스승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거 굉장히 부담스러운 칭호지만 상관없겠죠. 다들 저 아이 때문에 깨달은 바가 있어 보이네요. 아주 좋은 경험이 될거에요. 그것을 잘 녹여낸다면 한층 더 깊이 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을 테니.”
“아……. 그……그렇습니까.”
“내가 할 건 별거 아니고. 이거네요.”
뮤트가 꺼내 든 것은 길고 얇은 풀잎이었다.
이렇다 할 기교가 들어가는 것도 안되는 평범한 잎.
아무리 그래도 풀잎피리로 뭘 할 수 있다고.
뮤트의 기행에 당황하던 거장들은 곧이어 그녀가 연주를 시작하자 심드렁하던 얼굴을 지워버렸다.
일부는 입을 쩍 벌린 채 뭔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누구는 손이 근질거리는지 자신의 악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뮤트의 연주는 사실 아직 아무도 따라갈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단순 연주 하나만으로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울리고 정령들을 동화시키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고작 풀잎이었지만 그녀의 연주가 끝이 났을 때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는 이는 없었다.
* * *
자존심도 강하고 한 명 한 명이 이름깨나 날린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뮤트의 조율에 따랐다.
그것이 황홀한 연주를 들려준 뮤트를 향한 그들의 찬사였다.
“우선 첫 목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되겠네요. 익히 알려진 고정적인 흐름은 다 내려두세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아닌 우리들의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디 대학교 동아리에서나 할법한 발상이지만 그 멤버들이 쟁쟁한 존재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악기의 제한 따위는 필요 없어요. 조율해서 안 맞는 악기 같은 건 없으니.”
뮤트는 이후로도 시현이 처음 제안한 악보를 스윽 훑어본 뒤 한번 손가락을 몇 번 짚어보고 여기저기 체크하기 시작했다.
“여기 이 부분은 너무 쓸데없이 힘을 줬네요. 컨셉 자체는 굉장히 참신해요. 하지만 그 컨셉에 잡아먹혀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시현은 마치 홀린 듯 뮤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메인이 될 악보를 고쳐나갔다.
“처음엔 졸리니 귀찮니 하더니. 본인이 제일 신났네.”
“저…… 성자님?”
“예?”
“저분은 대체 어떤 분이죠? 티오니스의 유명한 악사분이신가요?”
문득 궁금증이 일었던 쥴리아나의 질문에 데이비는 고개를 저었다.
“티오니스는 아닙니다.”
“네?”
“오래전에…… 어떤 꿈을 꿨던 한 명의 악사일 뿐이에요.”
심드렁한 눈매와 다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뮤트를 보며 데이비가 부드럽게 웃었다.
“거봐요 그렇게 웃을 줄도 알면서.”
데이비가 알고 있는 영웅 중 가장 맥이 빠져있던 영웅이 그녀라는 사실을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이비에게 있어서 이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자신의 스승에게 보답해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시현이 공들여서 준비해온 덕분일까. 아니면 뮤트의 눈썰미가 굉장했던 탓일까.
악보의 조율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으론 만족할 수 없었던 뮤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곡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당연히 음악의 신이라 불리던 뮤트가 오랜 시간 만들어온 것들이다.
단순한 음부터 어려운 음까지. 하나하나가 전율에 드는 곡도 존재했다.
이 정도의 곡들을 보면 자신의 곡이 쓰레기라며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시현은 그런 일반적인 케이스와 달랐다.
그는 뮤트가 그것들을 보여준 이유를 금방 깨달았고, 그 곡 중 일부와 자신의 곡을 퓨전하여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룻밤을 까득 세워버린 그는 눈 밑에 다크서클을 잔뜩 끼운 채 그가 만든 악보들을 거장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천재라곤 하나 아직 젊은 청년이 만든 악보인 만큼 처음에 미심쩍어하던 그들이었지만 악보의 흐름과 직접 연주를 몇 번 해본 끝에 그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의 악기를 내버리고 새로운 악기를 잡아 연주할 생각까지 했다.
“어때요. 만족해요?”
같이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해 보이는 뮤트를 향해 물었다.
“그 육체. 뭔가 좀 안 맞는다거나.”
그녀의 현신을 위해 그녀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크기부터가 틀린 육신을 만든 것이다.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텐데 뮤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제법 기특한 짓도 할 줄 아네요. 저들은 자존심이 강하지만 하나하나가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에요.”
“거 참…… 저 영감님들보고 아이들이라고 하니 느낌이 이상하긴 하네요.”
“내 눈엔 니가 저들보다 더 늙어 보여요.”
대놓고 빈정거리는 뮤트였지만 평소와 달리 그리 냉막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내 미련의 일부를 끊어낼 수 있을 거 같으니.”
“그래서 나는 뭘 연주하면 됩니까?”
“그래요. 노래 빼곤 다 좋아요.”
뮤트의 독설은 여전했다.
“거참…….”
“기왕이면…… 그래. 이걸로 해주세요.”
그녀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리라였다.
“제일 자신 있는 거잖아요?”
그녀의 웃음에 데이비는 말없이 그녀가 건넨 리라를 받아들고 쓰게 웃었다.
“소리가 어울릴지 모르겠네.”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최선을 다하기나 해요.”
다시 없을 연주를 만들어 세상에 자취를 남겨봐라.
그녀는 그리 말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무명의 악단은 그렇게 차곡차곡 진행되었고, 일부에서는 무성한 소문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는 이가 늘어나면서 하나의 거대한 떡밥이 되어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떤 것을 내놓으려고 저만한 이들이 갑자기 모였는가. 하고 말이다.
기대감이 하나의 눈덩이가 되어 점점 거대해지는 건 당연했고. 이 소식은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런 소문은 시현에게 달갑지 않은 이에게도 들어갔다.
“재밌네. 누구 마음대로 내 악단 계약도 안 끝내고 이딴 짓을 하는 거지? 설마 이걸 성공리에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시현과 같은 오케스트라단의 출신이자 막대한 집안의 자본을 이용해 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브레디가 싸하게 웃었다.
“하고 싶으면 해. 얼마든지 허락해주마. 하지만 그냥은 안되지.”
그의 눈에 명예에 대한 탐욕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