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0화
성공리에 마친 첫 공연의 반응은 굉장했다.
그 반응은 당장 인터넷만 들어가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평소 이런 명예욕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확히는 명예를 쟁취한 게 아닌 자신들이 바라던 환상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공돌이도, 미식에 미친 미식연구회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들의 사상은 일반적인 케이스와는 확연히 달랐다.
“여기 계셨네요.”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현을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 갔다 왔나?”
내 물음에 그가 씨익 웃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요.”
“…….”
“예정됐던 대로 다음 공연은 이어서 진행할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처음 예정했던 대로니까. 문제 될 건 없어.”
“괜한 일을 부탁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알면 잘해. 네 덕분에 초단이가 기뻐하고 있으니까.”
술 대신 음료수 잔을 들고 첼로계의 거장인 백도블 교수, 그리고 쥴리아나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초단이를 가리켰다.
“아참. 너.”
“네?”
“초단이를 슬프게 하면 재미없을 거야.”
씨익 웃으며 잔을 내밀자 그가 떨떠름하게 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절대 그럴 일 없을 테니.”
가볍게 잔을 부딪친 뒤 떠나가는 시현의 뒷모습을 나는 말 없이 바라보았다.
본래대로라면 한 공연당 한 곡씩 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응이 좋았던 탓에 시현은 음악 중 일부를 과감하게 공개했고, 나머지를 천천히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첫 공연은 뉴욕에서 이어졌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공연은 유럽 각지에서 진행되었다.
두 번째 공연도 반응 자체는 굉장한 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실력이 실시간으로 점점 상승함에 따라 그녀와 합을 맞추는 이들 또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악기에 끝을 보았다는 평가를 받는 거장들조차 자신들의 변화에 아주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괜히 차트를 휩쓴 게 아니라고 말하듯 시간이 갈수록 초단이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 덕분일까? 곳곳에서 여러 분야의 섭외가 들어왔지만, 초단이는 그런 분야에 관해선 단 하나도 직접 적으로 참석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건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닌 그냥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시현 또한 그 사실을 아는지 딱히 그녀에게 이렇다 할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서서히 성장하는 선순환 속에서 어느 날 뮤트가 나를 불렀다.
“데이비.”
“무슨 일입니까?”
“쟤 변했네요.”
“변해요?”
내 물음에 뮤트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연주 소리만 들어봐도 알 수 있어요. 예전에 그 열정 넘치던 놈은 어디 가고 갑자기 이상한 게 섞여 들어와 있네요.”
정말 신기한 귀가 아닐 수 없었다.
절대음감이라고 하였던가. 듣는 순간 어떤 음이든 알아내는 음악가에게 있어서 최고의 재능이 바로 절대음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뮤트는 그런 절대음감을 넘어 연주, 혹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본질까지 파악해버리는 경이적인 귀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음악. 절대음감을 지닌 이 조차 구분할 수 없는 그 똑같은 음 속에서 뮤트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챘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데이비. 기왕이면 방해 없게 처리하세요.”
“너무 살인 청부하는 거 같지 않아요?”
“네가 죽여야 한다고 판단했으면 죽이겠죠. 이유 없이 죽이진 않을 테니.”
“……일단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지켜보려 했다만.”
“알고 있었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기시감이 느껴져서요. 저놈, 각성자는 아니었을 텐데. 이상하게 각성자들과 같은 마나가 몸 안에 있어서.”
처음엔 그게 녀석의 각성 징후이며 그게 녀석의 마나라 생각했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저게 저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각성자가 그에게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각성자가 함부로 민간인에게 손을 대는 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상당한 중죄일 텐데.
무엇이 목적이었을까.
애초에 누가 저렇게 은밀한 정신지배를 걸었는지 조금 의문이었다.
“초단아?”
“네?”
“잠깐만 괜찮을까?”
그때 시현이 초단이를 따로 부르는 것을 보며 뮤트가 내 등을 가볍게 쳤다.
“가서 처리하고 와요. 괜히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너무 신중한 거. 그거, 네 나쁜 버릇이라고 내가 말했어요.”
“신경 쓰겠습니다.”
세상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신중한 게 나쁜 것인가.
아무리 내가 이만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자식들에게 이 세계를 고스란히 이어주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속으로 그렇게 꿍얼거리며 손을 가볍게 휘저어 내 몸에 마나를 둘렀다.
동시에 내 마나가 퍼져나가며 내 형체가 주변과 동화되듯 사라졌다.
딱히 이 상황 속에서 시현이 초단이를 따로 불러낼 이유는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 작업실 뒤쪽 정원으로 빠르게 걸어간 그가 고개를 돌려 초단이를 바라본다.
“초단아.”
“네?”
“너 이 순회공연 끝나고 어떻게 할 거야?”
“네? 음…… 글쎄요. 생각해둔 건 없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공부에 다시 매진하려구요. 음악도 좋지만 역시 뭔가 새로 배우는 것도 좋아서.”
헤프게 웃는 초단이를 향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능과는 별개로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지.”
아쉬운 듯 그렇게 말한 그가 손뼉을 쳤다.
“아. 그러지 말고 오빠랑 조금만 더 해볼래?”
“네? 그건 좀…….”
“아냐. 넌 정말 재능이 있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내가 도와줄게.”
“괘……괜찮아요. 애초에 저는 학생인걸요.”
초단이가 거부하며 한발 물러나지만, 그는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말했다.
“잘 생각해봐. 지금 이건 정말 다시 없을 기회야. 네 재능을 개화시킨다면…….”
“그만…… 그만해주세요. 저 정말 싫어요.”
초단이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흐음…… 후원도 있을 거고, 모든 사람들이 너를 선망하게 될거야. 세계에서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거라고.”
“그만 하세요!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완강하게 거부하는 초단이를 보며 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안 해?”
“네. 처음과는 이야기가 다르시잖아요……. 이러지 않으시기로 했는데.”
“후우……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말한 그가 초단이를 똑바로 본다.
“그럼, 초단아. 나 좀 잠깐 볼래?”
그가 눈을 붉게 빛내기 시작하자 초단이가 경계하며 물러났다.
“초단아? 괜찮아. 잠깐만 보는 거야.”
그 말에 초단이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마나? 각성하셨어요?”
“아니 뭐. 네 몸에 좋은 거야. 내가 많이 가르쳐…….”
“정신 간섭 계통이죠? 실망이에요…….”
정말 음악에 한결같았던 그가 이렇게 변한 게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정말 실망이에요.”
“……안 먹히나?”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한 그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동시에 그가 품 안에서 작은 날붙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초단이를 향해 찔러넣었다.
콰직!!
하지만 그의 날붙이가 초단이에게 닿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초단이의 앞을 막아선 내가 그의 날붙이를 맨손으로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쯧!”
이에 그가 혀를 차며 다시 날붙이를 빼내려 들었지만 그게 빼낸다고 빠질 리가 있나.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날붙이를 보며 그가 한발 두발 물러났다.
“이봐요. 티오니스 성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
“기회를 놓치다니 멍청이입니까? 저 애는 완벽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내게 맡기세요. 내가 최고의…….”
“네게 맡기는 게 아니지.”
담담하게 말하며 손에 쥐어진 날붙이를 우그러뜨린 내가 그것을 휙 하고 던져버렸다.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봐야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분명 말했지.”
내 말에 그의 몸이 굳었다.
“초단이 슬프게 만들지 말라고.”
따악!!
동시에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눈이 마치 졸린 사람처럼 눈꺼풀이 휘청거렸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휘청거리며 주저앉는 그를 향해 내가 말했다.
“거기서 기다려. 내가 곧 찾아갈 테니.”
내 시야에 서서히 옅은 줄 같은 것이 어딘가로 이어진 게 보였다.
* * *
쾅!!
“뭐야…… 대체 어떻게 들킨 거야.”
브레디 프레드릭은 식은땀을 흘리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각성한 그가 얻은 힘은 단 한 명을 기준으로 정신을 지배하는 기술이었다.
물론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그였던 만큼 세세한 조정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여럿을 조종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기에 그는 우선 자신의 출세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현을 제압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제압한 채로 그의 눈과 공명해 연습을 하는 초단이의 연주를 곁에서 지켜보았을 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초단이는 시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명예를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에게 음악은 재능으로 얻어낸 하나의 기술이었고, 그 기술을 이용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현의 정신지배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초단이를 가지고 싶어졌다.
다른 이들은 다 필요 없다. 초단이만 곁에 있어도 그의 앞날은 승승장구할 테니까.
처음엔 초단이를 따로 불러내 그녀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그녀가 앞으로도 일을 할 경우 그의 후원을 받고 프레드릭 재단의 후원을 받게 만들어 발을 묶으려 했다.
물론, 티오니스 성자가 이 사실을 알면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딸아이가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문제점도 존재했다.
자신의 제안은 분명 거대했다. 부족함 없는 지원을 받아 그녀를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만들어주겠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명예의 훈장이거늘. 정작 그녀는 정말 이번 순회를 마친 뒤에 이쪽 분야에 손을 대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선 곤란했다.
이에 그는 무리하게 시현의 육신을 통해 그녀에게 정신지배를 걸고자 했다.
그녀의 정신만 지배한다면 그녀가 원치 않아도 곁에 묶어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정신 지배에 걸리지 않았다.
거기서 모든 게 꼬였다.
분명 다른 이들에겐 통했던 힘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계열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도 눈치챘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발을 빼야 한다.
하지만 그냥두면 문제가 발생하기에 그는 시현과 초단이 사이를 뭉개버릴 계획을 세웠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
그는 티오니스 성자의 눈이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화나게 만드는 법을 떠올렸고, 급기야 해선 안될 짓까지 하고 말았다.
미리 숨겨둔 날붙이를 이용해 초단이를 크게 다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범인은 시현이고 피해자는 초단이.
어느 쪽이던 간에 멀리서 지배나 걸었던 브레디에겐 혐의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죄는 시현이 뒤집어쓰게 될 것이고 초단이는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으리라.
어차피 곁에 있을 수 없다면 그의 앞날에 방해만 될 터.
그렇다면 절대 그냥 둘 수 없다.
그랬는데.
왜 가자기 티오니스 성자가 나타나 이 상황을 막은 것일까.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마치 시현을 보되 시현이 아닌 시현의 내부에서 그를 보고 있는 브레디 그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 그가 말했다.
내가 말했지. 초단이를 슬프게 만들지 말라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한마디는 시현에게 했던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급히 시현의 정신 지배를 해제하고 흔적을 지워버린 브레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현 상황을 해결할 방책을 궁리했다.
“그래. 어차피 증거는 없어. 내가 아니라고 잡아떼려면 최대한 침착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바람을 쐬고자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창문을 열었을 때 그가 본 것은 주변의 풍경이 아닌 새하얀 토끼였다.
작고 동그란 새빨간 눈이 그를 응시한다.
“흡?!”
깜짝 놀란 그가 황급히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토끼는 한 손으로 창틀을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가 비명을 지를 시간도 없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으아아아악!!!”
마치 세상이 빙빙 도는 공포 속에서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혼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초 정도 지났을까.
그의 몸이 딱딱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이었다.
“커헉! 쿨럭! 쿨럭! 이게 무슨…….”
그렇게 말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을 했다.
고개를 든 그의 시야에 새하얀 근육질의 이족보행 토끼들이 여럿, 서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누군가가 느긋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말했지. 곧 볼 거라고.”
“티……티오니스 성자……. 대체 왜…….”
“발뺌할 생각인 모양인데. 하나 재밌는 사실을 알려줄게.”
실시간으로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시현과 브레디 사이에 무언가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당연히 갓 각성한 브레디가 그런 심화적인 내용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러니까 시현의 몸에 붙어있던 끈을 찾아 역추적하면 네가 나온다고. 이해가 돼?”
“…….”
“내 딸에게 칼을 휘둘렀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 넘어가 줄까.”
데이비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그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옥죈다.
손가락이 생명인 음악가의 생명이 한순간에 박살 나버린 것이다.
으깨진 손을 보며 그가 침과 눈물을 질질 흘렸다.
“이……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아무리 당신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하나 착각하는 거 같으니 말해주마.”
데이비가 천천히 몸을 숙여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와 시선을 가까이 한 채 말했다.
“네가 죄가 없을 리가 없지만 설사 네가 무고하다고 할지라도. 지구에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내겐 별로 의미 없는 제한이네.”
콰직!!
데이비가 다시 발을 들어 으깨진 그의 손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끄으으으으으!!”
“내가 지구나 티오니스의 상식에 맞춰서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는 이유는 간단해.”
이 세계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공포로 억눌린 지배자의 자식이 아닌 하나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내 자식을 위협하면…….”
그걸 굳이 놔둘 필요가 있나?
티오니스도 지구도 영리한 작자들은 그것을 빨리 눈치챘기에 절대 선을 넘지 않건만.
그걸 모르는 놈들이 사람을 귀찮게 만든다.
“아아……. 사……살려줘…….”
“걱정 마라. 죽이진 않으마.”
살아있는 게 때로는 더욱 공포가 될 테니.
손끝에서 검은빛이 번뜩였다.
그 후 저택에서 발견된 브레디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휑해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와들와들 떨어댔다.
그의 부친은 갑작스런 아들의 변화에 경악하며 그의 상태를 어떻게든 되돌려보려 했지만, 브레디는 계속해서 한마디만을 반복했다.
“제발…… 제발 그가 오고 있어! 죽고 싶지 않아!”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정신병자 그 자체였다.
다만 각성했던 그의 몸 안에 있던 힘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