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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11화 (1,311/1,559)

제 1311화

기억을 못 한다고 해도 시현이 브레디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놈……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이에요.”

“보니까 알겠더라.

브레디의 손은 완전히 뭉개져서 더 이상 재능이 넘치던 악기를 다룰 수 없게 되었고, 극한의 공포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리면서 더 이상 음악인으로서의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겁나?”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좀 안타까워서요. 제가 음악 자체에 미쳐있었다면 그놈은 순수하게 명예라는 것 자체에 잡아먹혔죠. 원래는 그런 놈이 아니었어요.”

브레디 프레드릭.

그는 과거 시현이나 쥴리아나와 같은 음대에 다니던 재능 좋은 일반적인 인간상이었다.

“물론, 놈이 자기 재능을 이용해 욕심에 써먹은 적은 있지만, 녀석이 그렇게 된 건 졸업 후부터였죠.”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명성을 거머쥐게 된 그는 집안의 분위기와 환장하는 콜라보를 이루어내면서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렸다.

“녀석에게 인생의 가장 우선순위는 결국 명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아버지를 뛰어넘는.”

“뭐. 그놈 사정이야 내 알바가 아니지만.”

중요한 건 놈이 시현과 내 사이를 비틀기 위해 초단이에게 칼을 들이밀었다는 사실이었다.

녀석도 바보는 아니니 나와 정면으로 충돌할 생각은 없었겠지만, 녀석이 생각하는 최악이라는 수보다 조금 더 나쁜 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 끝난 건가요?”

“아니. 이제 시작이지.”

“네?”

“초단이를 건드리고 그걸로 끝날 거라 생각한 건가? 누구 마음대로.”

차갑게 웃으며 못을 박자 그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명예에 미쳐있던 놈에게 가장 괴로운 게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명예를 모두 잃어버리는 거 아닐까요?”

“잘 아네.”

내 대답에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생각하기 나름이지. 그보다. 몸은?”

“글쎄요. 딱히 이상한 점은 없네요. 그런데. 제가 지배당한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언제 나왔는지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뮤트를 바라보았다.

“절대 음감이라고 아나?”

“절대 음감? 예 알고는 있죠.”

“그 위가 있다면 믿을래?”

“예? 그딴 게 어딨어요.”

“있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음을 넘어 그 사람의 본질까지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뮤트는 그래서 정말 외로웠다고 한다.

물론, 나야 그녀의 삶을 본 것이 아니라곤 하지만 남들과 다르고, 남들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건 기피의 대상이 되며 그녀를 고독 속으로 몰아넣을 테니까.

“그런 게 있다면…….”

“추천은 안 해. 저주라고 느낄 만큼 고독해질 수밖에 없으니.”

“아…….”

눈치 빠른 시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 뒤따라 갈 테니.”

시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뮤트에게 다가갔다.

“뭘 보십니까?”

“하늘에 뜬 달 봅니다.”

“그건 알고 있는데 그 달에서 뭘 보냐 물었습니다.”

“알게 뭡니까. 신경 끄세요.”

손사래를 치며 얼른 꺼지라는 시늉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번 일로 가장 싱숭생숭한 건 다른 이가 아닌 그녀가 아닐까.

“제가 괜한 짓을 한 거 같네요.”

그녀를 괜히 데리고 나왔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데이비.”

“예.”

“고맙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우리 막내가 참 효심이 깊네요.”

“거 효심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 덕분에 미련을 털어낸 이가 몇 명인 줄 압니까?”

페르세포나와 엮인 다프네. 그런 다프네를 보며 슬퍼하던 아폴론.

마왕 페르세르크를 베어버림으로써 슬픈 기억을 안고 살아야 했던 검신 하레스에게 페르세르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트렐리아의 오딘.”

그 외에도.

“헤라클래스. 로 아이아스. 수르트.”

그 외에도 환수왕들을 떠나보낸 것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던 환수 소환사 셰인 스크리프트.

“뭐. 이바는 방향성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마찬가지네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결국, 당신이 만들어낸 이 기회가 내게 남겨진 마지막 미련을 털어낼 수 있게 했네요.”

“거 불안한 소리 하시네.”

내 말에 그녀가 옅게 웃었다.

“그렇게 들렸습니까?”

“예.”

“그럼 그런 거겠죠.”

불안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 * *

솔직히 말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뮤트는 평상시와 같았지만 나는 그녀가 뭔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브레디의 수작이 허사로 돌아간 뒤로 더 이상 악단에 악재가 겹칠 일은 사라진 셈이었다.

미묘하게 어긋나있던 시현 또한 본래의 폼을 되찾으며 젊고 싸가지없는 천재라는 이명을 제대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악단은 그 후로도 본래의 계획대로 여러 국가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고, 밝히지 않았던 곡을 선보일 때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때문에 초단이의 이름이 가지는 입지가 굉장히 높아지긴 했지만, 그녀는 정작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거 들었어? 미국 쪽에서 가장 섹시한 인물 중 하나로 네가 꼽혔어.”

“네?”

마지막 공연은 한국에서 마무리 짓기로 되어있었다.

그동안 제법 친해졌는지 쥴리아나는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초단이에게 농담을 던져왔다.

“제가 섹시요? 어…… 음…….”

“그렇게 복잡하게 볼 거 없어. 네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나 봐. 그거 알아? 이전에 한창 미국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가 네 엄마야.”

일리나. 일리나 데 라운.

그녀가 미국에서 먼저 이름을 한창 알리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 시구 이후로 인기가 상당했거든. 다만 네 엄마는 이렇게 공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으니까. 그렇게까지 큰 파장이 생기진 않았는데 이번엔 좀 다르잖아?”

엄연히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만큼 일리나 때보다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게 꼭 필요한가요?”

초단이가 뭔가 부담스럽다는 듯 내게 물어왔다. 그 모습이 퍽 귀엽게 보여 나는 절로 실소를 지었다.

“인기 많으면 좋지. 물론, 그만큼 제약도 따르겠지만. 초단이 네가 원하면 당장이라도 그런 게 없게 만들어줄 수 있어.”

“괜찮아요. 아버지께 하나하나 의존할 순 없는걸요.”

그녀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닌 검이기에 상관없지만, 에반젤린이나 다리안처럼 살아가는 걸 바라는 듯 보였다.

물론, 초단이의 경우 다시 청단이와 홍단이로 나뉘는 점이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에린이와 다리안 아벨에게 지금의 세상을 고스란히 물려주고자 하신다면 저는 그에 맞출 거에요.”

비록 아버지라 부르지만, 초단이는 엄연히 그 셋과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두고 있는 듯 보였다.

마음이 쓰게 느껴지지만 당장 강요한다고 해결될 부분은 아니었다.

“자! 준비 다 됐으면 갑시다! 마지막 대단원입니다!”

시현과 뮤트가 만들어낸 곡은 총 10곡. 그중 공개된 것은 9개로 사실상 마지막 공연에서 그 하나가 공개되는 셈이었다.

그 때문일까.

초단이는 현재 자신의 인기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세상에…….”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눈을 크게 뜬 그녀가 주춤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녀를 향해 환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그녀의 이미지가 좋은 건 대학생활 때문에 익히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이토록 큰 반응을 일으키는 데엔 그녀의 노래가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국에서 따라온 사람도 있나 보네.”

한국이지만 한국 사람이 아닌 이들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원정 공연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수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초단이에겐 조금 얼떨떨한 느낌을 받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아버지 뭔가 이상한…….”

“뭐해. 뭐라도 반응해줘야지.”

내 말에 초단이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시선을 내리깔고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러더니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눈을 감고 조심스레 양손을 살짝 들었다.

검지와 엄지를 이용한 하트.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반응과 부끄러움으로 점칠 된 얼굴은 수많은 이들의 시야에 내리꽂혔고 더욱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나름대로 엉뚱한 반응을 해주는 초단이에게 더욱 열광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넋이 나간 것처럼 시달리고 나서야 대기실에 들어설 수 있었던 초단이는 쥴리아나의 도움을 받아 멍하니 누워 머리에 수건을 덮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거 저러고 본래 생활 돌아가는 게 되려나 모르겠네.”

본인이 원했으니 하긴 했지만 이게 생각보다 파장이 너무 큰 게 문제였다.

예측을 못 한 것은 아니지만 예측범위가 상당히 차이가 난 정도.

게다가 지금 내게 있어서 초단이도 중요하지만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

말없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는 뮤트의 무덤덤한 시선을 바라본다.

가능하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꼭 이런 느낌이 들어서 직감이 경고를 하면 무슨 일이 터지기 마련이더라.

* * *

마지막 공연이기 때문일까.

혹은 기대감이 가득 차오른 마지막 곡 때문일까.

수많은 기대감이 느껴진다.

애초에 소문난 잔칫집에 별거 없다던 말이 있다.

사실 시현 혼자서 작업했다면 어쩌면 그 말이 들어 먹혔을지도 몰랐다.

그가 천재라곤 하지만 작곡까지 완벽한 천재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뮤트라는 변수가 끼어들면서 그야말로 인생 최대 업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후우…… 여러분.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잖아요. 평생 다시 없을 것 같은 열정도 불태웠잖습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 젊은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허허. 미스터 박. 자네는 아직 젊네만.”

“뭐. 저는 상시로 젊게 살잖아요?”

분위기를 독려하듯 시현이 소리친다.

이번 공연에는 페르세르크나 에반젤린 일리나나 에이리아도 관람한다는 의지를 보내왔다.

그만큼 초단이에게 거는 기대가 커져 있다는 소리였다.

“자! 유종의 미를 거둡시다! 그리고 돌아가서 그동안의 경험을 발판삼아서 우리 각자 목표 잘 이뤄보자고요.”

처음엔 단순히 자신의 어떤 열정을 새로이 확립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과의 협동은 그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불씨를 지폈고, 그들을 더욱더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뮤트가 심심찮게 지나가며 그들에게 조언을 툭툭 던진 것이 가장 컸다.

결국, 시작은 초단이었으나 초단이의 시너지에 이어 뮤트라는 정말 경이적인 존재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아버지.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봐요.”

초단이가 내 품에 가볍게 안긴 뒤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마지막은 신경 좀 쓸게.”

* * *

시현이 작곡한 공개되지 않은 마지막 곡은 다른 곡과 여타 컨셉이 다른 편이었다.

애잔한 슬픔.

조금 고리타분하긴 하지만 사실 오래도록 써 먹혀온 소재임에는 틀림없었다.

처음 이것을 만들 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시현도 사실 의문이었다.

다양할수록 좋다던 뮤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꼭 마지막을 이런 곡으로 장식할 필요가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그였지만 곧이어 초단이가 연주를 시작하며 첫음절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을 어떤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초단이는 공연 도중 현악기를 자주 다루었다.

가야금에 이어 하프 그 외에도 리라 등등 각 음악마다 다른 악기를 사용해왔다.

종류는 다양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초단이가 고른 악기는 기존의 현악기와 다른 피아노였다.

중앙에 놓인 피아노와 그런 그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퍼진 악단의 악기가 마치 대칭을 이루듯 자리한다.

겉보기엔 정말 웅장하고 잔잔한 오케스트라단 같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런 클래식과는 느낌이 달랐다.

당연히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음악 하나만을 달랑 내놓을 계획은 아니었기에 인기가 좋았던 곡들을 선정해 우선적으로 분위기를 띄운 이들은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리고.

초단이가 첫 건반을 누르며 아름다운 미성으로 노래하는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천천히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연주가 각각의 컨셉에 걸맞는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번엔 애잔한 슬픔이 묻어나는 멜로디가 분위기를 강하게 휘어잡았다.

잡을 듯 말 듯.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그런 멜로디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어놓았고 모두가 숨죽인 채 노래를 지켜보게 만들었다.

작정하고 중독성 있게 만든 박자와 음정도 아니건만 많은 이들이 따라서 흥얼거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마치 이번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은 없다고 말하듯 모두의 연주는 그런 슬픔을 담아 홀 전체를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연주를 하던 찰나.

초단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버지, 데이비를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버지?’

놀란 그녀가 의지를 그에게 보내보았지만, 데이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뮤트를 바라보며 연주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초단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뮤트를 바라보았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뮤트는 누가 봐도 아름답다 느낄 만큼 황홀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단이는 어째서인지 마냥 황홀하다 느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그 연주가 그녀의 생에 마지막 연주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뮤트와 대화할 땐 말로써 대화하기도 하지만 음악으로써도 대화한다.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그녀의 심정을 절절하게 드러냈으니 말이다.

처음에 시현의 곡을 적당히 조율해주면서 왜 마지막에 이런 곡을 넣었는지 조금 의문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내게 고마워하던 그녀.

그녀의 발끝이 아주 천천히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녀는.

이번 곡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영면에 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미안함과 슬픔을 담은 애잔한 연주.

마치 영혼으로나마 존재했던 그녀가 이제 모든 것을 놓고 소멸하기 전 마지막 말을 남기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뮤트는 수많은 이들 앞에서 초단이와 함께 연주하지만, 그 연주가 향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를 향한 것이었다.

물론, 그 여파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짓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서려 있었지만 가장 참담한 것은 나였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초단이도, 다른 이들도 뮤트의 연주 소리에 심취해 자신의 연주를 이어나가면서도 그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눈치챈 듯 놀란 얼굴을 하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가장 편안한 표정이었다.

무덤덤함은 집어치워 버린 요정 같은 옅은 미소가.

천년의 고생 끝에 본래 세계로 돌아갔고, 갖은 노력 끝에 다시 그들과 재회했다.

그런데. 얼마나 되었다고 나를 두고 벌써 떠나려 합니까.

그럼에도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바란 것이었으니까.

그녀가 그토록 원치 않는데도 그녀를 묶어둔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니었을까.

뮤트는 다른 영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강했으니 말이다.

회랑에 있을 때도 상당히 외로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고맙습니다. 데이비. 당신 덕분에 마지막 합주를 통해 내 미련을 털어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비라도 오는 것인지 시야가 영 흐릿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이런 몰골을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어 연주에 심취한 척 일부러 고개를 푸욱 숙였다.

이윽고 점차 연주가 무르익어간다.

초단이의 연주와 노래는 마치 떠나보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이게 맞다라고 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대체 그녀가 누굴 이렇게 떠나보내는데 슬퍼하는가 의문을 품었고, 이내 빛이 되어 조금씩 흩어지는 뮤트를 발견하고 짧은 탄성을 흘렸다.

그녀가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연주를 마지막으로 떠나고, 초단이는 그런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을 슬퍼한다고.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의 감정을 자극한 듯 보였다.

결국, 가십니까.

그녀의 의도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이상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연주를 통해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연주가 모든 것을 대변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이라 말하듯 그녀의 손끝이 움직임과 동시에 홀 전체에 정령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빠르게 선회하며 날아들 듯 빛의 가루를 흩뿌렸다.

특수효과 하나 없는 아름다운 절경에 사람들은 짧게 탄식했고 그 흐름 끝에 연주가 서서히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눈물을 조용히 한 방울 흘리며 마지막 음절을 내뱉은 그녀가 천천히 건반 위에 손을 내려놓았다.

연주의 끝을 알리는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평소처럼 환호하지 못했다. 연주의 분위기가 너무 슬펐기 때문이었다.

그 후 마지막 공연에 대한 인터뷰를 한답시고 사회자가 올라왔지만, 초단이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마지막 공연까지 봐주어 고맙다는 말만 했다.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상태를 짚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노래의 분위기대로 슬픔이 묻어나는 마지막 연주가 끝나 모두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천천히 뮤트가 향한 대기실로 향했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렇게 걸어 들어갔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정적이었다.

그리고. 한켠에 놓인 그녀의 바이올린을 보며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렇게 혼자 편하게 가면 다 됩니까?”

전에 말했죠. 괜한 짓을 한 거 같다고.

그녀의 미련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그녀를 불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x발 오늘 하루 재수가 좋더라니…….”

입안에서 괜히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멍하니 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뒤이어 나를 향해 다가온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버지…….”

긴말은 하지 않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며 내 슬픔을 다독여주려는 그녀였지만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짚은 채 입술이 찢어질 것처럼 강하게 물었다.

과거 타나토스와의 전쟁에서 영웅들이 하나둘 소멸할 때도 느꼈던 지독한 상실감이 다시 한번 나를 덮친 것이다.

적어도 수십 년만 더 있다가 가지.

그걸 못 기다려서 그렇게 갑니까.

“문…… 닫아놨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에요…….”

그녀의 영혼은 윤회의 강을 타고 환생할 것이다. 다시는 뮤트와 관련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녀의 혼이 다시 악기를 잡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더욱 슬플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울음을 짓누르듯 참고 있자 결국 초단이는 참지 못했는지 소리죽여 울며 내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때였다.

쾅!!!

“뭐합니까 둘이서.”

양손에 달달한 커피를 들고 있던 뮤트가 나를 바라본다.

“어?”

초단이가 멍한 얼굴을 했고 나는 황급히 놀라 시선을 돌린 채 물었다.

“가……간 거 아니었습니까?”

“가긴 어딜가요.”

“아니 마지막 연주인 것처럼 굴더니…….”

“예. 마지막 연주죠. 다시는 지상에 내려올 일이 없을 테니.”

“그럼 왜 내게도 마지막인 것처럼 굴었습니까.”

“원래 연주도 연기의 한 방향인 거 모릅니까? 적당히 밑밥 잘 깔아놓으니까 연주가 더 완성됐잖아요. 안 그래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스승을 패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빌어먹을 요정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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