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9화
어두운 골목길에는 간혹 유기된 고양이나 처음부터 길거리에서 태어난 길고양이들이 존재한다.
보통 야행성이라 불리는 이 고양이들은 무리 지어 행동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으레 그렇듯 길고양이들은 굶주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을 이끌고 오는 어미 고양이가 초단이의 눈에 비쳤다.
“너희는 내가 안 무섭니?”
조용히 물어봐도 고양이들은 그저 묵묵히 그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
대답을 기대하는 게 웃긴 일이긴 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이리와.”
그러자 고양이들이 흠칫 몸을 떨며 한발 두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초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리와.”
그르르르르…….
샤아아악!!
하악질하는 고양이, 경계하는 고양이들 종류는 다양했지만, 초단이는 요지부동이었다.
“…….”
그렇게 노려보길 잠시. 그녀의 전신에서 순간적으로 검은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야. 당장 이리와.”
한낮동물이 그녀가 내뿜는 묵직한 위압을 견뎌낼 리 만무했다.
겁에 질린 고양이들은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초단이를 올려다보았고 이내 그녀가 손을 까딱하자 와들와들 떨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이후 초단이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고양이들은 죽음을 직감했다. 저만한 포식자는 인간과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한 고양이들은 고개를 바짝 낮춘 채 눈빛으로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곧이어 초단이가 손을 움직이자 고양이들은 눈을 꽉 감았다.
달칵. 차악!
무언가 캔이 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고양이들이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고 이내 눈앞에 놓인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다 주웠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고양이 간식 캔을 두어 개 더 놓아준 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고양이들은 그녀가 떠나갈 때까지 그녀를 지켜보았고. 이내 그녀가 사라진 후에야 조심스레 캔 통조림에 혀를 가져다 댔다가 마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제야 젖을 뗀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가 자리를 비켜주기가 무섭게 옹기종기 모여들어 식사에 열중했다.
* * *
취조실의 흔적은 핏자국을 제외하고 거의 지워지다시피 했지만, 시신에는 제법 많은 단서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것을 통해 상대가 포식의 힘, 정확히는 포식과 매우 흡사한 무언가를 다룬다는 것을 알아냈고, 상대가 충동적으로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도 확신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뇨. 따로 조사해봐야 할 게 있으니 자리 좀 비켜주세요.”
내 요청에 요원은 생각이 많은 듯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이후 나는 다시 정령왕 노아스를 불러냈다.
“노아스. 이 시신에 남은 기억도 한번 봐줄래?”
[이곳에도 없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사건 현장과 시신이 동떨어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즉, 범인은 황급히 정령의 기억 등, 자신의 기억이 남는 부분만 지워냈다.
취조실에는 포식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시신에는 남아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시신에만 남겨놓은 것일까.
문득 그렇게 의심하고 나니 이것도 제대로 된 단서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졌다.
“데이비. 어쩌면 2차 침투가 아니었을까 하네만.”
“2차 침투?”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뒤 범인은 일차적으로 시신을 방치한 채 도망친 게야, 그 후 시신을 발견한 요원들이 시신을 옮기고 난 후에 다시 취조실을 찾은 게지. 흔적을 지운 것은 그때일 테고.”
“가능성은 있네. 하지만 2차 침투도 몰랐다고 하기엔 너무 무능한 거 아닌가?”
“범인은 이미 한번 전례가 있지 않나. 그리고 본녀가 오는 길에 알아본 바로는 시신 쪽에 모두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다더군.”
확실히 국정원에서 취조실은 두고 시신을 지켰다면 범인이 손을 댈 수 있는 건 취조실뿐일 것이다.
이에 나는 그 가설을 확신해보고자 노아스를 불렀다.
페르세르크의 말이 맞다면 노아스를 통해 이 육신에 남은 기억을 복구할 수 있으리라.
물론, 장소도 아닌 시신 자체에 정령의 기억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내가 다시 노아스를 불러내자 녀석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했다는 듯 시신에 자신의 힘을 발현했다.
“어때?”
[아주 조금…… 기억이 남아있군.]
“그럼 맞다는 거네. 얼마나 남아있어?”
[많이 소실되긴 했지만 아주 짧게나마 남아있다.]
그말과 함께 노아스가 손짓을 하자 허공에 흙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흙들은 곧 빛으로 화하며 어떤 장면을 흐릿하게 보여주었다.
그 시야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대상의 하반신이었다.
-그……그만!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방금전엔!! 끄으흑!!!
그를 죽인 범인에 대한 단서는 이게 전부였다.
“체격만 보면 여인, 그것도 조금 어린 10대 정도의 소녀.”
내가 범인의 체격을 대충 짐작해내자 페르세르크가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아직 어린데 이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라…….인간이 아닌 초월체일 가능성도 있겠군.”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결국, 얻어낸 단서라곤 조금 변질된 포식의 힘과 범인이 여성, 그것도 어린 소녀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릴 게야?”
“알려서 어쩌게. 검은 원피스 아래쪽과 남자보다는 여자에 가까운 다리, 기본적인 체형. 그 외에 뭘 알아냈는데.”
“그야…….”
“일단은 지켜보자.”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 * *
사건 현장에서 더 건질 게 없었던 나는 현아의 집에 돌아와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지켜보았다.
“일반적인 검이 아닌 기검류다.”
마나를 검처럼 응축시킨 기검은 확실히 보통 기술은 아니었다.
단순 흔적만 놓고 보면 범인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아빠. 뭐해요?”
그때 언제 온 건지 다리안을 품에 안은 에반젤린이 졸린 눈으로 방에 들어왔다.
“아니, 별거 아니야.”
“응? 무슨 영상이에요?”
“이번에 테러리스트를 죽인 범인에 대한 유일한 단서.”
이미 본 마당에 숨겨 뭣하겠는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에반젤린은 조용히 영상을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영상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흐음…… 여자네요?”
“그런 거 같더라.”
“그……극단적인 광신도 쪽 사람인가 봐요?”
“아직 몰라. 그렇다고 하기엔……. 아니다. 이건 말해서 뭣하겠냐.”
내 대답에 에반젤린이 입을 댓발 내밀었다.
“아빠는 맨날 그렇게 숨기기만 하지.”
“네가 나서면 위험하니까 그래.”
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위험하다고요?”
“포식.”
이어지는 내 대답에 그녀가 잠깐 굳었다.
“범인은 포식의 힘을 가지고 있어.”
“잠깐만요. 범인이 포식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건 아빠만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의문이지.”
여신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했으나 그녀는 단호할 정도로 협조해주지 않았다.
보통 프리아 여신이 이렇게 나오는 경우는 내 스스로 해결하라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하네…… 그걸 왜 아빠 말고 다른 이가 가지고 있지?”
“그걸 알면 내가 고민하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실루엣만 보면 인간으로 쳤을 때 성년도 안된 소녀 같은데…….”
일리나 같은 존재가 있으니 꼭 10대에 강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지만, 조금 뜬금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상하네. 처음 보는 옷인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때였다.
“자자~ 자자~”
에반젤린의 품에 안겨있던 다리안이 영상을 보며 손을 뻗었다.
“다리안?”
“자자! 자자!”
“자장자장?”
“대따!”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륵 웃는 녀석을 보며 나는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런 장면을 다리안에게 보여줄 만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영상의 구현을 해제시켰다.
그러자 정령 마나들이 주변으로 흩어진다.
다리안은 마치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는 듯 해맑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럴 리가. 다리안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 중에 저만한 힘을 지닌 이가 있을 턱이…….
“언니?”
그때였다.
혼란스러운 듯 에반젤린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강타했다.
“뭐라고?”
“……네?”
“아니,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것일까.
머리가 아픈지 끙끙거리던 에반젤린은 다리안을 품에 안아 든 채 몸을 돌렸다.
“저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그래.”
“빠빠~”
나를 향해 손을 흔든 녀석이 양손을 들어 머리에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최근 일리나가 어디서 배워왔는지 사랑해, 라는 말을 하며 저 행동을 가르치더니. 몸에 익은 모양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다리안의 애교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나는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복잡한 상념 때문에 밖으로 나온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밤바람을 음미했다.
범인을 찾을 수가 없으니 이쪽도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그런 사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익숙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파아앙!!
허공을 튕겨 이동하면서 더욱 속도를 높인 나는 검은 원피스에 새까만 가면을 쓰고 있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영은 겁에 질린 어린 남녀를 골목 구석에 몰아넣고 청적색이 섞인 기검을 끌어내고 있었다.
겉보기엔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방불케 하는 힘이지만 그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포식의 힘이었다.
범인이다.
영상에서 봤던 검은 원피스, 기검의 형태나 색.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포식의 힘까지.
온전히 내 것과 같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걸 여기 와서 깨달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손에 막대한 마나를 끌어모았고,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소녀의 머리를 짓눌러 제압하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내가 접근하기도 전에 내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아…… 아파…….”
어두운 골목길에 남은 것은 상처를 입었는지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남녀뿐이었다.
단순한 테러분자가 아니다.
테러범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번엔 일반인까지.
정체가 상당히 궁금했지만, 상대는 용의주도하게 흔적까지 지워버렸다.
다친 이들을 적당히 치료한 뒤 구급차를 호출한 나는 복잡한 상념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그때 내 곁에 다가온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초단아?”
“아빠?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그런데 어딜 갔다 온 거야.”
“산책 다녀왔어요.”
해맑게 웃는 초단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초단이가 내게 아빠라고 불렀던가.
“아빠라고 불러주는 거야?”
“헤헤. 그편이 더 친근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초단이는 내 품에 안겨들었고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하아…… 아빠 제가 많이 사랑해요.”
“어……어어? 어 그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은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초단이의 새하얀 원피스, 등 부분에 약간 피가 묻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초단아? 등은 왜…….”
“아…… 넘어졌어요.”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겠지.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물었다.
“초단아.”
“네?”
“너, 어딜 갔다 온 거야.”
“네? 산책하러 갔다 왔다고…….”
“거짓말하는구나.”
내 물음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