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2화
생명은 언젠가 죽고 자아는 언젠가 닳아 사라진다.
사령술을 익히는 인간이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무리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한 데스 로드 급 사령술사라 할지라도 가까운 존재의 갑작스런 죽음은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무로 돌아가 버린 비화를 되살릴 방법은 곧바로 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얼마나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짓인지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여신님. 너무 오래 자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개수작 부리지 말아주렴.]
“여신님, 당신밖에 없어요. 이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내가 여기 찾아올 것도 알고 계셨을 테지요.”
[그래,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말을 안 한 겁니까!!! 예?!”
순간적으로 발작하듯 내가 소리 질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흔들리면 생명력의 유동도 흔들려.]
“죽은 것도 아니고 소멸이잖아요, 지금 x발 진정하게 생겼냐고요!!”
이때의 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못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알려준다 한들. 사실 달라질까.
그런 내 생각과 동일하게 그녀는 조용히 태블릿을 반짝였다.
[많이 슬플 거야.]
“…….”
그녀는 어떤 타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쥐어진 태블릿이 한번 반짝일 때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내리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녀가 그것을 알려주었다 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말이다.
이윽고 내가 털썩 주저앉아버리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애초에 여신을 찾아온 것은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행동이었다.
잠들어있는 전능의 여신은 지금 눈앞의 아바타보다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지만, 그녀는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와는 달랐다.
감정이 어느 정도 깨어있다고 한들 그녀는 본디 감정이 없는 초월체.
아마 아무리 나를 편애하기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녀가 근본적인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비화를 되돌려놓을 가능성은 낮았다.
설사 그녀가 움직인다 할지라도. 그녀가 비화를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만들지라도 그 후의 문제는 쉬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퍼져나가리라.
그저 묵묵히 나를 다독이는 그녀였다.
해결책은 없는데.
정작 이렇게 위로받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외롭게 소멸한 비화일 텐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여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간 내가 얻어낸 수확은 사실상 없었다.
* * *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나는 멍하니 비화가 사라진 나비 여제의 섬에 다시 돌아왔다.
나를 걱정하고 있을 존재들이 보인다.
“왜 따라오신 겁니까.”
[슬픈 기억이 묻어나는 곳이야.]
뜬금없는 대답을 하며 여신은 묵묵히 나를 지켜보았다.
여신을 깨워서 비화의 소멸을 다시 되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설사 내가 계속 요구하더라도 잠든 여신이 깨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
이미 흔적도 남지 않은 장소였다.
이곳에서 비화는 소멸했지만, 이곳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멍하니 넋이 나간 것처럼 걸어 나간 나는 말 없이 달빛이 비치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할 수만 있으면 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완전기억능력이 이토록 저주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비록 비화와 내가 이렇다 할 추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추억이 없다 하여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는 지금은 그 괴로움이 더욱 격했다.
독한 술이라도 들이키면 나을까.
아공간을 찢어 그 안에 담긴 열반주를 꺼내 털썩 걸터앉은 나는 멍하니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벌컥벌컥 열반주를 들이켰다.
어지간한 술에 면역인 영웅들조차 고주망태로 만들어버리는 특수한 술인 만큼 나는 굳이 취기를 몰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열반주를 들이켰다.
본래라면 알딸딸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야 할 텐데.
술을 들이켤수록 변함이 없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술을 들이켜던 나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차라리 윤회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비화는 애초에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생명체가 아니었다.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그녀의 혼은 일반적인 생명체와 달랐고 심연과 포식의 힘에 갉아 먹혀 결국 소멸한 만큼 그녀에게 윤회라는 개념은 사치에 불과했다.
“영혼을 다룰 수 있으면 뭣하나…….”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든다.
“비화야…… 비화야…….”
단 한 번도 똑바로 불러주지 못한 그녀의 이름을 계속해서 곱씹어도 그녀를 향한 슬픔이 더욱 짙어져만 갔다.
[돌아가.]
그때 여신이 내게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널 걱정하는 아이들의 곁으로.]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아…….”
취한 듯 말끝이 늘어지지만, 정신의 한켠은 너무도 온전했다.
멍하니 중얼거린 내가 다시 열반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여신은 그런 내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여신님. 세상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기회 한 번을 안 줄 수가 있습니까?”
시련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했던가.
평소라면 납득했겠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서 이런 거지 같은 시련은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현 상황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술을 들이켜나갔다.
그때 내 시야에 미묘한 무언가가 잡혔다.
비화가 내게서 도망칠 때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작은 주머니였다.
비화의 육체는 초단이의 것이니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기에 이 주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한 탓에 휘청거리며 걸어 나간 나는 멍하니 비화가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주머니를 주워들었고 그것을 펼쳐 내용물을 확인했다.
뭐 대단한 것은 없었다.
다만, 그 안에는 자그마한 증명사진 사이즈의 내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고 작은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이건 무슨…….”
멍하니 종이를 펼쳐 보인 나는 그것이 그녀가 남긴 편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
초단이의 필체와 흡사하지만, 말투나 조금 다른 느낌의 필체였다.
비화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써 내린,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편지를 읽어내렸다.
-이걸 쓸까 말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이걸 봤다는 건 내가 소멸한 후일 테니까. 굳이 이런 미련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참 많이 생각했어.
후련한 듯한 필체였다.
-처음엔 아빠 원망 많이 했어. 내가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데. 아빠는 끝까지 나를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든.
-그래도 그럴 수가 없더라. 처음 내가 의지를 가졌을 때 아빠를 처음 봤을 때가 잊혀지지가 않아. 비록 나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환하게 웃던 미소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거든.
-그 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 그동안 나는 멀리서 지켜보면서 청단이 홍단이가 혹여 힘을 제어하지 못할까 걱정 많이 했어. 폭주하면 아빠가 다치니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내가 뒤에서 많이 힘썼는데, 그건 알까 몰라.
-그날 기억해? 아빠가 처음으로 홍단이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다 썼던 날. 아빠가 오르뎀 영지에서 대기 중의 뇌운을 끌어모아 키메라들을 대규모로 처리했을 때, .
-그날 폭주하는 힘을 제어하느라 정말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정말 뿌듯하더라. 내가 아빠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 거니까. 언젠가 아빠와 마주했을 때 내가 이렇게 했다! 라면서 자랑하고 으스댈 생각만 가득했다니까.
-직접 밖으로 나가진 못했지만 언젠가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빠에게 큰 힘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 다 부질없었지만.
종이의 일부에 물기가 묻은 듯 젖어있었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지를 읽던 내 손이 떨린다.
삐뚤삐뚤한 이모티콘으로 나 화났다! 라고 말하듯 씩씩거리는 게 보였다.
-알다시피 결국 나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어, 내 힘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거든, 그러다 보니 기대감보다 원망이 커지기 시작하더라. 언제까지고 알아봐 주지도 않고 아프다고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고. 혹시라도 영원히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내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겁도 많이 났어.
손이 점점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밖에 나온 건 참 우연이었어. 초단이가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 틈사이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나온 것이었거든. 웃기지? 의도하지 않게 세상 공기 맡아보니까 참 텁텁하면서도 상쾌하더라. 사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빠를 만나러 가는 거였어.
걷잡을 수없이 많은 눈물 자국들이 새겨진 게 보였다.
-밉다. 짜증 난다. 증오한다. 세뇌하듯이 중얼거려도 오히려 나만 더 괴롭더라. 그…….
무언가로 덮어씌우듯 글씨가 검게 지워져 있는게 보였다.
엉망진창이지만 나는 지워진 부분의 다음을 읽어내렸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해, 아, 혹시 울거나 그러진 않겠지?
젖은 편지지 때문에 뒷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운 것인지.
아니. 그녀의 흔적이 아니었다.
“아…… 아아…….”
글씨를 읽는 걸 방해한 것은 그녀의 눈물 자국이 아닌 마른 편지 위에 떨어지는 내 눈물이었다.
상당량 번지고 지워졌지만, 마지막 문장은 내 눈동자에 강하게 박혔다.
-사랑해.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좋아하는 첫째 딸 비화가.
“으아아아악!!!!!”
편지를 한 손으로 구겨버리며 몸을 웅크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듯 오열하는 것 뿐이었다.
콰아앙!! 쾅!!! 쾅!!!
몸을 숙인 채 편지를 움켜쥔 손으로 미친 듯이 땅을 내리치며 오열했다.
그럴 때마다 대지가 갈라지고 비틀리며 내 불안전한 의지에 영향을 받은 주변 대기가 묵직하게 떨려왔다.
잔잔하던 밤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게 몰아쳤고 고요하던 바람은 폭풍처럼 흩날렸다.
끔찍한 자괴감과 슬픔이 내 전신을 좀먹기 시작했고 나는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비명 섞인 오열을 토해냈다.
그런 나를 여신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고 그녀의 품에 안긴 채 어린아이처럼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평생 이토록 스스로가 증오스럽고 용서가 안 되는 건 전생의 삶에서 현아에게 사과하지 못하고 죽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런 오열을 여신은 그저 묵묵히 다독일 뿐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소멸한 비화는 사라졌고, 남은 내게는 그 무게를 짊어질 의무가 있었다.
여신의 고유 권능이 아니라면 비화를 되살릴 방법 따윈 없을 테니까.
그러던 중 나는 문득 어떤 섬뜩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은 딸의 복수라 할지라도 나는 멍하니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내 의도를 눈치챈 듯 여신이 나를 꽉 끌어안은 채 태블릿을 허공에 띄웠다.
[그만. 안돼.]
“그건 내가 판단합니다.”
내 말에 여신은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번뜩인 방법에 대해서 나는 물러나지 않고 결정을 밀어붙였다.
“당신이 돕지 않겠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내가 직접 세계의 법칙과 거래해야겠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창조신의 힘으로 그 아이를 되살릴 수 없다면.
다른 수단을 써서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수밖에.
나를 제지하려는 듯 앞을 막아서고 양팔을 벌리는 프리아 여신을 무시한 채 나는 전신을 신체화시켰다.
다부진 근육이 서서히 사라지며 희고 매끈한 피부가 전신을 뒤덮는다.
짧았던 머리카락은 무성의 형태에 따라 길게 자라났고 내 전신에 옅은 빛의 가루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신격에 가장 걸맞는 신의 육체 형태.
그것이 현재 내 모습이었다.
팔을 뻗어 나를 제지하려는 여신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을 찢어 신의 영역. 아니 정확히는 신의 영역 심층부로 향했다.
바로 세계의 법칙의 핵이 있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거대한 구체형태의 에너지 덩어리가 보인다.
겉보기엔 별거 없어 보일 정도로 잔잔하지만, 저 안에 든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거대한 정보의 집합체이며 세상을 조율하고 있는 근본적인 여신의 이면이었다.
찰박…… 찰박…….
아주 얇게 물이 깔린 지역을 걸어 나가며 내가 말했다.
동시에 세계의 법칙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인 태초의 포식자가 발현된다.
“시간의 권능을 내놔. 그 대가는 지불하겠다.”
스스로도 미친 짓인 것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비화가 사라지면서 보여준 미소가 당장이라도 정신을 갉아먹고 나를 미쳐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순간순간 비화의 웃음과 서러운 눈물이 잊혀지지 않는다.
완전 기억능력.
아마 평생 나를 괴롭게 만들리라.
비록 위선일지라도, 비록 자기만족일지라도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평생을 두고두고 갈 업이 쌓이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우웅!!!
세계의 법칙이 내 요구를 거절하듯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나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세계의 법칙이 내 제안을 거절하겠다면 강제로라도 거래를 성사시키게 만들 작정이었다.
쩌어엉!!!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은 갑작스레 날아든 거대한 충격파에 튕겨 나가며 무산되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데이비.”
평소엔 게을러터진 주제에.
나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온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이러는 건지.
검신 하레스는 묵빛의 검을 한 자루 든 채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데이비. 돌아가라. 네 결정에 대해서 그 누구도 찬성하지 못한다.”
“비키세요. 장인어른.”
“남아있는 이들을 생각해라. 멍청한 놈아.”
“…….”
헛웃음이 나왔다.
휘청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은 내가 스산하게 웃었다.
“장인어른.”
“데이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그러면 안 되잖아요.”
당신도 딸을 직접 베어버린 전적이 있으면서.
이어지는 뒷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대충 이해한 듯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쩌어엉!!!
잠든 초단이의 힘을 강제로 끌어올려 내가 거대한 검풍을 만들어냈다.
이에 검신 하레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튕겼고,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중량의 일검이 내 검기와 충돌했다.
쩌저저적!!!!
일검의 충돌에 주변의 공간이 찢어지고 깨졌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간다.
“네 기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가 착잡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네 위치를 잊지 마라. 데이비, 네가 흔들리면 세상 또한 같이 흔들린다.”
그의 말에 나는 짜증스레 투덜거렸다.
“내 알바인가?”
이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아 든 채 내게 말했다.
“정 힘들게 쌓아 올린 현 세계를 박살 내고 싶다면…….”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허공이 찢어지며 다수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초대 성녀 다프네.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 검신 하레스와 천마 독고준. 신의 히포크리아와 마법사의 신 오딘. 그 외에도 다수의 존재가 나를 포위하듯 에워쌌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안 된다. 데이비.”
하레스가 대표로서 말하며 검을 들기가 무섭게 나는 자아가 잠들어있는 초단이의 검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주세요.”
하지만 영웅들은 단 한 명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이윽고 오딘이 천천히 손을 튕기자 사방에서 엄청난 규모와 크기의 마법진이 일대 전역을 감싸기 시작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만. 지금의 네 몰골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딘의 독설과 함께 내 전신에서 막대한 마나와 신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