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3화
회랑의 영웅들은 내게 있어서 전부였고, 내가 세상을 직접 배우는 근원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가진 힘의 대부분은 그들로부터 나왔고, 천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냈던 만큼 그 애착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비화가 남긴 편지를 봤을 때부터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방법이 존재하면 닥치는 대로 거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영웅들은 반발했지만, 세계의 법칙에 강제로 간섭해 다시 시간의 권능을 빼앗아오려던 내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비화야. 널 그렇게 소멸하게 두진 않으마.
쩌어어엉!!
“이게 진짜!!”
거대한 폭발, 그 여파로 생긴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프네가 으르렁거리며 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먹으로 새하얀 빛줄기들이 빠르고 절도있게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새하얀 광원이 되어 빠르게 여러 방향으로 회전했다.
“우리 막내, 머리 좀 크고 가장 됐다고 이제 막 기어오르지? 어?!”
콰아앙!!!!
순식간에 대지가 박살 나며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파고드는 그녀의 공격에 내가 롱기누스를 빠르게 회전시켜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창을 찌르진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빛의 화살들 때문이었다.
“데이비. 네가 아무리 은인이라 해도 다프네를 다치게 하면 너를 변호해 줄 수가 없다.”
평소의 장난기는 버린 듯 무겁게 말하는 궁신 아폴론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그럼 비켜주시죠.”
“지x 하고 자빠졌네! 시간을 넘어서 과거 역변을 시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제일 잘 아는 네가 그딴 소리를 해?”
다프네의 역정이 크게 울려 퍼졌다.
과거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에 미래가 바뀐다.
여신의 전지가 아니라면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미친놈이 틀림없긴 했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붙어버린 머리는 오히려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거 에이리아가 여신의 축복을 받아 첫 아이를 지녔고, 그 아이를 잃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독한 상실감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내 정신을 좀먹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완전히 잠식할 것 같은 무기력감도 들었다.
다프네의 접근전을 흘려내며 그녀를 튕겨내기 위해 힘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무기를 허공에 던진 뒤 뒤로 당긴 주먹에 거대한 충격파를 응축시킨 그 순간, 다프네가 미련 없이 내게서 멀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누구 마음대로.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지.
그녀를 추적하며 주먹을 내지르자 그녀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물들었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지금…….”
그 말과 함께 내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내 쪽으로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왔다.
“흡?!”
언제 온 것일까.
몸을 살짝 낮춘 채 엄청난 속도로 진입해온 무왕 유르그가 막대한 힘을 모은 뒤 주먹을 내지르는 내 공격에 그대로 카운터를 박아넣었다.
덕분에 내가 내지른 주먹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고 뱀처럼 유연하게 파고든 유르그의 일권이 정확히 내 명치에 파고들었다.
어렵게 몸을 비틀어 피하려 하지만 그는 그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더욱 강하고 빠르게 몰아붙였다.
무리하게 몸을 빼낸다면 다른 영웅들의 공격이 쏟아진다.
둘 중에 하나는 버려야 하는 상황.
유르그의 공격도 위협적이지만 여기서 무리하게 몸을 빼는 순간 그걸로 싸움은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무왕 유르그의 주먹이 고스란히 내게 닿았다.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명치 X나 세게 치기]
짧은 순간의 침묵이 일었다.
1초라는 어떻게 보면 정말 긴 시간 동안 침묵했지만, 그 후의 여파는 일직선으로 대지를 완전히 갈라버리며 뻗어 나갔다.
지름 5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흔적이 갈수록 넓어지며 지평선 너머를 갈아버리듯 뻗어져 나간다.
아주 작정하고 때린 게 확연히 느껴지는 일격이다.
“컥!!”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내 몸이 마치 포탄처럼 튕겨 나가 수차례 바닥을 뒹굴며 처박혔다.
“와…… 이 미친 새끼…….”
제대로 된 한방인 만큼 내게 타격이 가해지는 건 분명했지만 정작 공격을 한 유르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얼마나 나갔어?”
“당장 짚기만 해도 세 군데는 부러진 거 같은데. 치료돼?”
“치유 방해 저주까지 걸렸네. 쉽지 않을 거 같은데.”
“팔 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서 비명을 지른다.”
유르그의 중얼거림에 거대한 정령 마나를 일으키며 유르그의 부인이자 정령여제인 유리아나가 물었다.
“쟤가 저렇게 강해졌었나?”
“타나토스와 싸우기 직전에 실력이 급상승한 것도 있고…….”
추욱 늘어진 자신의 팔의 부러진 뼈를 강제로 맞추며 그가 대답한다.
분골의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그의 표정은 짜증만 서려 있었다.
“지금 저 육체가 너무 사기 같은 것도 있고. 데이비가 죽자고 싸웠으면 우리 중 상당수가 나가떨어질 거다.”
“망할 신체화.”
튕겨 나가는 순간 반격을 가한 것은 거의 본능적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숨을 조절한다.
명치에 꽂힌 한방 때문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몸이 잘 펴지지도 않지만 나라는 인간은 집념하면 어디 가서 꿀리는 인간군상이 아니었다.
촤르르륵!!!
하지만 유르그로 인해 생긴 틈은 오딘에게 큰 역할을 해주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금빛과 흑빛의 사슬들이 이중 삼중으로 내 전신을 휘감아 억눌렀다.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는 아트렐리아의 전설. 오딘과.
페스리사 대륙의 지워진 절대자.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합작품이었다.
단순 무력만 놓고 봐도 최상위에 달하는 두 영웅인 만큼 그녀들의 마법은 나로서도 쉬이 풀 수가 없었다.
“힘 조절 해.”
“알고 있으니까 좀 닥쳐.”
술을 들이켜며 묵묵히 지켜보던 천마 독고준의 말에 오딘이 짜증스레 받아쳤다.
그래. 저들은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압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물러날 수가 없었다.
“흐읍!!”
쩌적! 쩍!
“이런 미친.”
오딘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한 손을 허공에 그어 내렸다.
쩌저적!!!
동시에 사방에서 몰려든 냉기의 폭풍이 내 전신을 얼리기 시작했다.
오딘과 로 아이아스가 펼친 속박을 내가 힘으로 깨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쩌적……쩍!!!!
와장창!!!!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둘의 마법은 내 힘에 의해 박살이 났다.
“힘 너무 뺀 거 아니야?”
“죄송하지만 제압마법은 제 특기가 아니라서…….”
내가 그들을 강제로 소멸시키는 악수를 두지 않듯 그들 또한 최소한의 부상을 상정하고 나를 제압하려 했다.
나를 속박하던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버린 뒤 대량의 마나를 신력에 뒤섞어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오딘과 로 아이아스가 한발 물러나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같은 동작을 펼치며 각자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두사람을 공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근접전으로 끌고 가는 것.
내가 그녀들을 사정권 안에 두기 위해 파고들자 오딘과 로 아이아스의 옆으로 검은 그림자 둘이 동시라고 할 정도의 속도로 쏘아져 들어왔다.
“기왕이면 나서지 않았으면 싶다만…… 끅!”
“형씨. 적당히 시선 빼앗아주면 좋겠네.”
“그렇게 하지.”
[천마신공]
[극광신참]
[중검]
[태산 가르기]
카아아앙!!!!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것처럼 정확하게 합을 나누어 나의 힘을 분산시킨 이들은 다름 아닌 천마 독고준과 검신 하레스였다.
그들 또한 나를 완전히 멸할 작정으로 힘을 끌어다 쓸 수는 없는 만큼 적당히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지만, 그 위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장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내 틈을 파고들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그뿐일까.
냉정함을 잃고 점점 광폭하게 손을 쓰는 탓인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연달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으로 수천 년을 해먹은 두 인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독고준의 현란한 검로 속에 완전히 어그로가 끌려버린 내 빈틈을 파고들며 하레스의 묵직한 중검이 내 전신을 베어버릴 듯 휘둘러졌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몸이 반 토막이 나버릴 정도로 묵직한 일검이지만 현재 내 신체에 서린 신력은 내 의지를 벗어나 나를 지키기 위해 방어능력을 강제로 끌어올렸다.
콰아앙!!!
맹렬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나도 계속해서 맞고 날아다니지만은 않았다.
“많이 늘었구나.”
하레스가 대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휘두른 검을 튕기듯 회전시킨 롱기누스를 대지에 꽂아 지지하는 것으로 공격을 틀어막은 것이다.
“다만, 내가 한 말을 잊은 건 아닐 테지. 다굴에 장사 없다.”
쩌저저적!!!!!!
하늘이 찢어지고 갈라지며 검은 벼락들이 순식간에 내게 쏟아져 내렸다.
그의 말대로 어느 정도 비비는 수준에서는 다굴에 장사 없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절절히 체감했다.
* * *
아무리 그래도 회랑의 막내였다.
정령여제 유리아나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팔의 상처를 치유하는 그녀의 남편, 마왕 유르그의 팔을 속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단순히 팔이 아작난 것을 너머 상당한 내상까지 입었다.
단순히 과거의 데이비를 생각하고 싸운 대가였다.
순간적인 반격 때문에 큰 부상을 입은 터라 다프네와 신의 히포크리아가 그를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은 거 맞아?”
“침 바르면 낫겠지.”
헛소리하는걸 보니 상황이 그리 나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표정 풀어. 왜 그리 죽상이야.”
“표정이 풀리게 생겼어? 데이비가 지금 저 지경인데.”
“그래. 아주 미쳐 날뛰고 있지.”
“그런 뜻이 아니야. 이 화상아.”
“으악! 이 여자가 미쳤나 진짜!”
유리아나는 푼수처럼 구는 제 남편이 얄미운지 그를 흘겨보며 등짝을 후려갈겼다.
“조금 따끔할 거에요.”
우드득!!
“으아악!!! 이 미친 돌팔이 의사가 마왕 죽인다!!”
신의 히포크리아에게 저런 말을 하는 놈도 잘 없을 것이다.
“데이비에게 붙어있는 정령들이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건 처음 봤어.”
“정령이 운다고?”
“쉽게 말해서 데이비의 감정에 동화된 정령들이라는 거야. 유리아나는 그걸 피부에 닿을 정도로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거고.”
다프네의 부연설명에 유르그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저렇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는데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저 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한스럽다…….”
결국, 조용히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흐느끼는 그녀였다.
유르그는 그런 유리아나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던 찰나. 그의 시야에 데이비의 얼굴이 보인다.
처음부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유리아나의 상태를 확인한 뒤에 다시 본 데이비의 표정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오딘과 로 아이아스의 포격. 그리고 이어지는 궁신 아폴론의 견제.
마지막으로 검신 하레스와 천마 독고준의 전면 공격에 맞서 악귀처럼 싸우고 있는 데이비의 얼굴은 분노 같은 단순히 싸구려틱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화를 내고 있으나 가장 슬퍼하고 있다.
“영혼이 울고 있는 느낌이네요.”
뒤이어 모든 요소를 듣고 느낄 수 있는 음유시인 뮤트까지 못을 박아버렸다.
“지금 데이비에게서 느껴지는 건 지독한 슬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거 같으니.”
“하…….”
비화라는 아이가 눈앞에서 소멸했다.
이유는 심연의 힘과 포식의 힘에 오랜 시간 노출되고 갉아 먹혔기 때문이었다.
비화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아빠를 찾아 헤맸고, 데이비는 그것도 모르고 초단이의 힘을 마구잡이로 끌어내면서 그 아이를 더욱더 궁지로 몰았다.
그렇게 윤회도 불가능한 자아는 소멸했다.
“비화 그 아이는 세상 경험이 부족해. 그래서 자기가 남긴 편지가 데이비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몰랐던 것 같더라.”
그 편지 한방에 데이비의 멘탈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의는 없었다고 하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는 뮤트였다.
“표정은 화를 내고 있지만. 지금 제일 크게 울고 있는 건 저 멍청이라는걸 모를 수가 없어요.”
뮤트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죠. 내가 처음부터 초단이의 안에 비화가 있는걸 알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커지진 않았을 텐데…….”
“누구 잘못을 따질 건 아니지.”
“그래도 책임은 져야 하니 슬슬 참전할게요.”
그말과 함께 그녀가 리라의 현을 가볍게 뜯었다.
띠리링 소리가 옅게 울려 퍼지며 녹빛의 음률이 섞인 바람이 주변을 휘감는다.
안 그래도 다수의 영웅들에게 집중 견제를 당하면서도 최악의 수를 두지 않던 데이비였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곳의 영웅들 중 소멸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본디 소멸했어야 할 이들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 또한 영웅들을 잃고 싶지 않아 하던 그의 정 때문이었다.
뮤트의 악기에서 흘러나온 음률은 포근하게 데이비를 감싸듯 휘감았고 로 아이아스와 오딘의 폭격을 피해낸 뒤 숨을 고르는 데이비를 완전히 감쌌다.
“윽?!”
놀란 그가 황급히 그 힘을 포식의 힘으로 먹어치우려 했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저 버릇은 어디 안 가네.”
뮤트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파고든 하레스가 시공격검을 박아넣어 데이비의 흐름을 저지했다.
아무리 힘 조절을 했다 해도 영웅 여섯이 넘게 달려들어서 제압한 꼴이다.
한시대를 풍미했다는 이들 모두가 어마어마한 강자이며 데이비가 현재 냉정한 판단을 못 하는 상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그의 무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지경까지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힘을 뺐네요. 내가 다칠까 봐 저항하지 않은 겁니까?”
뮤트의 공격을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었으면서도 데이비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시공격검의 충격파에 튕겨 나가 바위에 몸을 기댄 채 주저앉아있는 데이비에게 그녀가 다가갔다.
“후우…….”
숨을 조심스레 고르며 그녀를 노려보는 데이비를 향해 그녀가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를 그녀의 작은 품에 끌어안은 뒤 말했다.
“우리는 너를 매 순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어요. 멍청한 새끼야. 일단은 조금만 진정하세요.”
그녀의 반말과 존대가 섞인 기이한 말투에 계속해서 힘을 방출하던 데이비가 멈췄다.
“대체 누구 눈치 본다고 그렇게 억누르고 있어요. 지켜야 할 게 많은 이고, 반신격이고,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 슬프면 울 수도 있는 거지.”
그녀의 다독임에 난폭하게 날뛰던 데이비의 기세가 천천히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의 오열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
뮤트는 그런 그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렀고, 그의 눈물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작은 몸으로 데이비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등으로 가렸다.
물론, 그렇게 가린다고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 또한 표정이 어두워진 채로 그저 묵묵히 못 본 척, 못 들은 척 데이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이비의 오열은 그렇게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다만,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놈 또한 존재했다.
“짜잔! 내가 돌아왔다!”
허공을 찢으며 수백 장의 부적들이 허공을 장악한다.
그리고 기다란 봉을 돌리며 등장한 주술사 우치가 마치 이소룡처럼 엄지로 코밑을 스윽 훑으며 요란스레 등장했다.
“데이비! 형 왔다!”
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한다.
“이게 아닌가?”
“어휴 저 x신 진짜…….”
“눈치가 저렇게 없으니 저 모양 저 꼴이지…….”
눈치가 더럽게 없다며 눈총을 한몸에 받은 우치는 뻘쭘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좀 많이 늦었나 보네.”
다른 영웅들은 그를 정말 한심하다는 듯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조금 추슬렀는지 데이비의 떨림이 잦아들자 뮤트가 담담한 얼굴로 그를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
“여신님께서 비화의 소멸 조각들을 조금씩 모으고 계세요.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녀가 데이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주 잠깐이라면 그 아이의 의식을 이어붙여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게 해줄게요.”
데이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미안해요. 데이비. 우리가 해줄수있는게 이런 것뿐이라서.”
표정변화가 잘 없고, 예전부터 데이비에게 딱히 친근하게 군적이 없던 뮤트였지만 그녀 역시 데이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회랑의 막내를 걱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