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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24화 (1,324/1,559)

제 1324화

요란스레 등장한 우치가 뻘쭘한 표정으로 물러난 뒤 영웅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흩어졌다.

피곤하다며 떠나가버린 일부와 할 일이 있다며 떠나간 일부.

하지만 그 누구도 데이비를 타박하는 이는 없었다.

“한잔 받아라.”

검신 하레스는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은 채 열반주의 잔을 내밀었다.

“한잔 쭉 들이켜라.”

“혼자 드시고 계셨습니까?”

“뭐. 가끔씩은 이렇게 조용히 마시는 것도 좋지.”

그는 버드나무에 등을 기댄 채 무언가를 회상하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데이비에게 말했다.

“나를 원망하나?”

“됐습니다. 원망한다고 빵이 나오나. 비화가 살아 돌아오길 하나.”

진정했다 할지라도 비화로 인해 생긴 이 지독한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떠나가는 건 참 슬픈 일이지. 그게 자신과 관련된 이유라면 더더욱 괴로운 법이지.”

그는 과거의 일이 떠올랐는지 씁쓸한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데이비. 그 일에 얽매여서 네가 망가지는 걸 비화 그 아이가 바랬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모르죠. 속으로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을지…….”

“정말 그리 생각하나?”

“만약에 저였다면 원망 많이 했을 겁니다. 제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

내 아버지는 자신 나름대로 나를 신경 쓴 모양이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비화에게 똑같이 이해를 해달라고 하기엔 너무 뻔뻔한 점이 많았다.

“네가 그랬으니 네 딸 또한 그럴 것이다라…… 얄궂은 대물림이군. 반면교사로써 너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 했지만 결국 그대로 이어지는구나. 피라는 게 참 무섭긴 하구만.”

그 물음에 데이비는 첨언하지 않고 열반주를 들이켰다.

“비화와 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 네 마음의 짐 중 가장 무거운 게 바로 그거겠지.”

그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반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회랑 최고의 술고래 천마 독고준이 만든 우화등선주 이상으로 지독하게 독한 열반주를 물처럼 들이키는 걸 보면 남 일 같지 않게 여겨진 듯 보였다.

“자세한 건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자 데이비.”

“예.”

“비화를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시간을 되돌려 네가 그 아이를 살려낸다 해도 그 대가로 반드시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

물론, 말은 그리했지만, 검신 하레스는 데이비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벨 때문이더냐?”

“예. 코오나가 제노엔 파르테논의 각성에 휘말려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미래의 저와 여신이 아벨을 과거로 보냈더군요. 과거를 개변시키라고.”

문제는 전지에 가까운 힘을 지닌 여신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돕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했습니다.”

복수를 꿈꾸던 제노엔들은 모두 소멸했고 그들에게 이용당하던 제노엔들의 영혼은 여신이 따로 거두어 정화를 시작했다.

아마 오랜 시간 후엔 제대로 된 여신의 사도로써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리라.

“그래. 아벨의 경우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그가 피식 웃었다.

“다만, 데이비. 잊으면 곤란하다. 비화의 일은 안타깝지만 네가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데에 비화의 희생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알았으면 절대 내리지 않았을 결과물이었다.

제노엔과 달리 비화의 문제가 해결되어버리면 그동안 초단이를 도와줄 비화의 힘이 사라진다는 뜻과 같았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너는 초단이를 제대로 다뤄내지 못할 수도 있고, 자칫 청단이와 홍단이 두 아이의 자아까지 위태로웠을 수도 있다.

비화가 심연과 포식의 힘에서 자유로워지면 그 힘은 곧바로 나머지 아이들을 향해 마수를 뻗칠 테니 말이다.

“여신께서 말씀하시더군. 비화를 살리는 건 어떤 과정을 겪던 네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그래서 이들이 그토록 말린 것이며 데이비 또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일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지. 세계의 법칙에게서 시간의 권능을 다시 빼앗는 것부터가 문제가 될거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데이비가 물었다.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겁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위선적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데이비는 비화를 생각할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은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야야. 너 인마 예전에 알베르타 쪽에서 그 꼬마 재상 아가씨의 부친이 소멸했을 때 어떻게 했냐. 그녀가 힘이 있었고 지금 같은 일을 저지르려 했다면 넌 어떻게 했을까.”

그때 언제 온 것인지 우치가 피식 웃으며 데이비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하지만 하레스와 데이비의 시선이 그에게 닿자 그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왜……왜.”

“후…… 좀 아가리라도 닥치면 좋으련만…….”

검신 하레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우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아닌가?”

“끅! 멍청하기는 이리 따라와.”

그리고, 그런 우치의 난입은 뒤이어 찾아온 독고준의 난입으로 무마되었다.

독고준에게 뒷덜미를 잡혀 떠나가는 우치를 보며 데이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표정 풀어라. 저 인간도 나름대로 널 생각해서 한 말이니. 나는 그 속내를 이해하기 어렵다만.”

“예……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정론이라 해도 여기서 할 말은 아닌듯하다만.”

어쩌면 우치는 이 상황을 예측하고 저런 말을 한 게 아닐까.

현실적으로 데이비가 가진 신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꾸짖는 것.

하는 짓이 경박한 인간이지만 우치 또한 영웅이라 불리던 위대한 존재였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잘 참았다.”

조용히 데이비의 어깨를 두드린 하레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잘한 서론은 넘어가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여신께서 비화 그 아이가 소멸한 파편을 모으고 계신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재를 모은다고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지요. 게다가, 설사 가능하다 해도 지금 여신님은 그런 걸 해낼 힘이 없어요.”

데이비의 정론에 하레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만.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으면 도전할 생각 아니었나?”

“그렇죠.”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가 데이비의 뒤편을 바라보자 그 또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페르?”

“데이비…… 홀로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게야…….”

걱정이 다분히 섞인 말투로 뛰어온 그녀가 그대로 데이비의 품에 안겼다.

“다 들었음이니…… 어찌 홀로 그걸 다 감당하려 해.”

“아니…… 얘가 왜 여기 있습니까?”

“오딘이 그녀를 불러냈다.”

그게 되나?

데이비가 놀란 듯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지만, 하레스는 그저 마법사들이 하는 일이다 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두 사람 다 자잘한 상황은 알 거다. 여신께서 직접 말씀해주시면 더 편하겠지만 일단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마.”

그가 주머니 안에 있던 어떤 작은 보석을 꺼냈다.

“이건…….”

“비화가 소멸하면서 남긴 잔재를 모아 응축시킨 거다. 비화가 소멸하면서 이 잔재들이 많은 곳으로 퍼졌어. 대부분은 회수 가능하지만 너희들이 직접 가서 회수해야 하는 곳도 있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이는 없었다.

“우리가 찾아오란 말이네요.”

“하지만 이걸 어찌 찾으라는 겝니까?”

페르세르크가 비화의 소멸잔재를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걱정 마라. 곧 방법을 전해줄 테니, 소멸한 잔재는 티오니스와 지구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도 놓치지 마라.”

* * *

“아아아아!”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알싸한 고통이다.“

페르세르크는 내 뺨을 마구잡이로 꼬집고 당기며 나를 흘겨보았다.

“적당히 했어야지! 그걸 홀로 떠안고 있으면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뭐가 되는 게야!”

“아프다! 아프다!”

“아프라고 꼬집는 것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터!”

그녀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십여분간을 드잡이질과 바가지를 긁힌 후에야 그녀는 속앓이가 조금 풀렸는지 내 머리를 끌어안고 울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힘들었을 게야.”

“너도 그렇겠지.”

“본녀보다 비화 그 아이를 눈앞에서 떠나보낸 그대만 할까…….”

말은 그리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다를 것이다.

청단이 홍단이를 만들 때 페르세르크의 힘도 일정량 들어간 만큼 비화는 사실상 페르세르크와 나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상당했던 페르세르크에게 있어서 자신이 태어나게 한 아이가 고통받다가 보지도 못한 곳에서 조용히 소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말이라도 못하면.”

“일어나.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그 아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쩌면 또 기적이 발현할 수도 있을지 모를 터.”

“그래. 만약에 되살린다고 쳐도 잔재가 있어야 되살릴 수 있겠지.”

차라리 비화가 그냥 죽은 것이라면 내 수명에 영향이 가는 한이 있어도 소생을 시도했을 테지만 비화가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닌 것이 첫째 이유로 불가했고, 단순한 죽음이 아닌 소멸이라는 게 둘째 이유로 불가했다.

“그래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건지.”

“여기 있었네요. 그래도 어디 안 싸돌아다니고 그 자리에 있는 건 칭찬해줄게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자 음유시인 뮤트가 독특하게 생긴 악기를 손에 쥐고 자박자박 걸어왔다.

현이 12개 달린 작은 악기로 리라처럼 생겼지만, 그 형태가 조금 달랐다.

“그건 뭡니까?”

“보면 모릅니까? 비화의 잔재를 찾아줄 물건입니다. 여신의 축복까지 서렸으니 성능은 확실할 겁니다.”

“사용방법은?”

“그냥 튕기면 되지 뭔 의심이 많습니까.”

그녀의 퉁명스런 대답에 나는 조용히 악기의 현을 튕겨보았다.

독특한 음색이 퍼져나간다.

동시에 나와 연동된 막대한 신력이 강제로 빨려 나가 악기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연비가 안 좋네.”

“보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제야 악기가 소리를 내면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악기에서 흘러나온 음률이 마치 눈에 보이듯 퍼져나가며 어딘가로 수십 가닥 나누어져 이어져 있었다.

아마 비화가 소멸하면서 흘린 잔재들과 이어진 것이리라.

“여신님이 이곳에 남겨놓은 힘의 잔재를 건네주지 않았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영혼을 듣는 음유시인 뮤트가 만들었고, 여신의 축복이 서린 악기.

그 악기의 목적은 음악의 연주가 아닌 무언가를 찾는 데에 있었다.

“참고로 데이비. 잔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그렇다고 다 때려 부수진 마세요.”

“걱정 마세요. 방해하는 놈은 싹 지워버릴 테니까.”

“죽어도 말을 안 듣네요. 이놈은.”

* * *

티오니스의 비밀기사단 라스트 위스프에는 여러 지부가 존재한다.

“전 기사단!! 무기를 들어라!! 마물왕 그라나토스가 곧 태동한다!”

라스트 위스프 본산에서 파견을 온 수호자. 바사라는 긴장한 얼굴로 숲 너머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가리키고 소리쳤다.

정말 오랜만에 출현한 거대한 마물왕의 출현이었다.

라스트 위스프가 한차례 앓는 소리를 낸 이후 어째서인지 오지에 존재하는 기존 하위 마물과 마물왕들이 몸을 사리듯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관측된 어떤 돌연변이 마물의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위험한 존재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용종형태의 마물왕의 이름은 그라나토스로 수백 마리의 와이번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존재이기도 했다.

마물왕의 수준은 기사단 내에서도 극히 위험인자로 분류되는데 이 그라나토스가 위험하다 알려진 이유는 마스터급 기사단원 5명이 투입된 작전에서 패퇴했기 때문이었다.

놈의 힘은 기존의 마물왕 이상으로 위험했던 만큼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의 영역은 현재 그야말로 전장을 방불케 했다.

이미 다수의 마스터급 기사들이 패퇴한 만큼 놈의 저력은 입증된 셈이었다.

그 때문에 앵커 나이트는 물론, 로밍 나이트에게도 연락이 닿았지만 가장 중요한 하인스 영지는 현재 연락이 두절 상태였다.

일리나가 보내온 전언에 따르면 현재 데이비가 행방불명 상태라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일리나라도 합류해야 했지만, 마물왕을 제하고도 현재 다른 지역의 오지에서 대규모 마물의 태동을 틀어막기 위해 그녀가 파견된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마물왕 그라나토스는 수호자들과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원들이 공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명에게 의존하는 건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지만,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그라나토스는 상위 나이트들이 맡을 것이다. 그러니 평기사들은 놈의 주변에 포진한 와이번들을 공략하도록.”

“네!”

데이비가 있던 기수를 포함해 신입 기수들까지 기사단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이라면 평생 겪을 일 없을 마물왕과의 전면전인 만큼 겁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함부로 목숨을 버리지 말고 후퇴하라.”

바사라의 옆에 있던 보리스의 명령에 기사단원들이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앙!!!

이윽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숲 너머에서 쓰리아이 크로우들이 대량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풀이나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먹이사슬 최하위의 마물인 터라 거대한 무언가에 겁을 먹고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떠올랐다는 것은 곧 놈이 나타난다는 뜻과 같았다.

검을 뽑아 들고 숲 너머를 보던 기사단원들. 그리고 보리스와 바사라는 곧이어 거목들을 박살 내며 나타난 존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검은 비늘을 지닌 거대한 용종 형태의 마물왕이 내뿜는 위압은 지금껏 봤던 것들 이상으로 무거웠다.

“겁먹지 마라. 우리는 이미 오래전 저런 놈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마물과 맞서 싸운 적이 있다.”

샨드라미네아의 분신체.

그랜드 마스터급 환수왕의 분신체의 위압은 당시에도 정말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런 거 치고는 저거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데요…….”

파충류 같은 눈을 세 쌍 달고 있는 놈의 시선이 기사단원들에게 닿았고 놈의 입에서 독기가 서린 안개가 퍼져나 왔다.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위용 속에서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절도 있게 검을 내리 세웠다.

“전 기사단! 돌격!!!”

이윽고 보리스의 명령과 함께 기사단원들이 빠르게 산개하며 그라나토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당연히 그라나토스는 그런 날파리 같은 인간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자신의 하수인인 대량의 와이번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이들의 전면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슈슈슉 쩌어엉!!!

하늘에서 떨어진 수십 개의 빛의 기둥들이 일제히 와이번들을 꿰어버리며 지상에 처박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앙!!!

갑작스런 공세. 그리고 와이번들이 대거 당해버리자 마물왕이라도 놀란 것일까.

지능이 상당한 그라나토스가 거대한 포효를 울리며 지축을 울리고 몸을 버둥거리듯 물러났다.

조금 전의 공격이 굉장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놈의 저항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쩌억!!

하늘에서 다시 한번 쏟아진 전혀 다른 거대한 검격이 놈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버렸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지가 뒤흔들리고 엄청난 먼지가 일었다.

“쿨럭쿨럭!!!”

기사단원들은 갑작스런 재앙에 놀라 벙찐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이내 먼지에 노출되어 기침을 토해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엄청난 충격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기사단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라나토스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유일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던 수호자 바사라와 기사단장인 보리스는 멍하니 먼지 너머의 인영을 보며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갈수록 이해가 불가능하구만…….”

“동감입니다…….”

바사라가 짧게 대답했다.

그라나토스의 비늘은 마스터급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한, 놈의 발톱은 미스릴제 장비도 찢어발길 만큼 날카로웠고 녀석의 브레스는 그야말로 산을 지워버린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많은 마물왕들을 유도하고 때에 따라선 대규모 기사단원들을 투입해 토벌해왔지만, 그라나토스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재앙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그라나토스는 현재 온몸이 찢겨 나간 채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그라나토스의 머리 위에 한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창을 박아넣은 채 한 손에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게 보였다.

“데이비 올 라운…….”

라스트 위스프의 기사단원이지만 단순히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가 단번에 그 재앙을 짓밟아버린 것이었다.

멍하니 있던 보리스가 상념에서 빠져나온 듯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데, 데이비 단원! 대체 어떻게 된 겐가!"

하지만 보리스의 그런 외침에도 데이비는 쓰러진 그라나토스의 몸 안에서 빛의 가루 같은 것들을 뽑아내 결정에 끌어모으며 허공만을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윽고 데이비가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대부분은 듣지 못했지만, 귀가 좋은 일부는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기억에 동화되니 그렇게 미쳐 날뛰지…….”

비화의 잔재에 어떤 문제가 생겨 일부가 생명체에 스며들었고, 그녀의 기억과 아픔이 그 생명체에게 동화되며 생긴 변화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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