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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29화 (1,329/1,559)

제 1329화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것은 이바노프도. 평소에 내 옷을 자기 취향에 맞춰 마음대로 바꿔버리고는 엄지를 들어 올리던 여신의 아바타도 아니었다.

잠들었을 태초신.

막대한 기적을 일으키고 그 대가로 기약 없는 잠에 빠져든 여신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리 들려온다는 것은 쉬이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아바타가 된 여신이 그녀의 의지를 일부 각성시킨 것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내 질문에 그녀는 대답 대신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투웅!!!!

동시에 하늘의 구름이 원형태로 찢어지며 막대한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늪지대.

이곳은 균열 안인 만큼 바깥세상과 다르지만, 신의 권능. 그것도 다른 권능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태초의 권능이 그 영향을 행사하는 데에 거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 모든 차원계는 그녀가 만들어낸 것인 만큼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테니.

숨을 쉬기 힘든 엄청난 크기의 빛의 짓눌림 속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그녀가 잠들면서 영웅들과 내게 맡긴 권능은 그저 맛보기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희생의 권능의 부여는 너무도 무거웠다.

강제로 내 몸 안, 아니 내 내면에 있는 신격과 융화되려 하는 이 힘에 내 신격이 내 정신을 보호하고자 저항하지만, 태초신의 신격은 아무리 떨어져도 감히 일개 신격이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끄으윽…… 끅…….”

[계약자! 정신 차…… 꺄악!]

엘라임이 당혹스런 목소리를 내며 다가오려 하지만 신의 권능은 허락되지 않은 자가 접근하는걸 두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튕겨내 버렸다.

가히 엄청난 힘을 지닌 원소의 정점.

정령왕조차 감히 저항할 수 없는지 볼품없이 나가떨어진 그녀의 몸 곳곳에 기포가 일었다.

물로 이루어진 그녀의 육신이 수복되지 않은 것이다.

[아아…….]

막대한 힘의 소모를 실감한 엘라임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무거운 짓누름 속에서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권능을 물려받는다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여신은 내게 희생의 무게와 그 자격을 입증하였다고 했다.

그 말인 즉, 그녀가 지닌 희생의 권능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태초신의 상위권능 중 하나를 물려받는 만큼 신격이되 자아를 유지하고 있던 내가 이것을 물려받고 신격으로 더욱 기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일대 전체를 뒤흔드는 막대한 힘의 기둥으로 인해 주변에 살아있던 생명체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해 대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내게 쏟아지는 막대한 빛의 세례가 약 5분간 이어졌을까.

한참 동안 이어지던 진동이 마치 거짓말처럼 일순간 멎어 들며 소리까지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빛이 내 안으로 완전히 스며들며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후 내 앞에 서 있던 이바노프가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주저앉았다.

“혀……형…….”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여력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있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표정이 어두울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안에 휘몰아치는 감정은 격양. 고조. 그리고 환희였다.

여신이 넘겨주지 않은 고유의 상위권능을 받아서?

아니었다. 조금 전 여신이 내게 했던 말.

비화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내게 엄청난 사실로 다가왔다.

소멸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저릿저릿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축하해요. 형.”

“알고 있었냐?”

“유르기안에서 따라오기 전 여신께서 찾아오셨어요. 여신께서 직접 형의 곁을 지켜줄 수 없으니 저를 통해 계속해서 지켜보시겠다고.”

여신의 아바타가 발이 묶여 나를 보러오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터.

현 상황을 유추해볼 때 여신의 아바타가 무엇을 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잠든 여신의 성소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체에 간섭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여신의 아바타라도 직접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었을 터.

영웅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일은 정말로 여신이 나를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했다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희생의 무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약자. 괜찮은 건가요?]

“그래. 좀 어지럽긴 해도 문제가 있진 않아.”

[신의 권능으로 생긴 문제에요. 제가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죠. 치료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괜찮아. 그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먼저 돌아가.”

[……부디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길 기도할게요.]

엘라임은 곧바로 물방울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후 나는 기절한 페르세르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였다.

휘릭!!! 파악!!!

기절해있던 페르세르크가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내 멱살을 낚아채 그대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나를 엎어 쳤다.

터엉!!

묵직한 소리지만 타격은 거의 없었다.

“데이비!!!”

어찌나 화났는지 그녀의 격성이 터져 나왔다.

“그대는 본녀를 어찌 이리 믿지 못해!!”

쓰러진 내 몸 위에 올라타 멱살을 쥐고 흔드는 페르세르크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어찌 마지막까지 속죄의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게야…….”

“속죄…… 그걸 봤으면 넌 제정신 유지 못 해.”

“데이비!”

“그리고. 속죄는 죽은 묘비에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몸이 스르륵 밀려나 허벅지 쪽으로 움직였다.

앉아있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유일한 희망의 불씨를 던졌다.

“비화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고 하네.”

“뭐?”

“아직. 기회가 있다고.”

내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의 눈이 쟁반처럼 크게 뜨여지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화에게…… 기회가 있다 이 말인 게야?”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가능하게 만들게.”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는지 그녀는 그대로 내 몸에 자신의 팔을 감아 품에 머리를 묻었다.

옅은 축축한 감촉과 잘게 떨리는 몸을 보며 나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 * *

신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전 이바노프를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도 전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색이 덧칠되는 것처럼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기점으로 서서히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자 이바노프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기존의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현상…… 이건 대체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거지.”

다시금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는지 주변이 변해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바노프와 달리 나와 페르세르크는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신의 영역.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가 머무르는 공간.

신의 영역 안쪽에 위치한 성역이었다.

“이렇게 불러낼 힘도 있었습니까?”

내 부름에 여신은 대답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동시에 이바노프가 흠칫 놀라며 몸을 납작 엎드렸다.

-축하해. 그리고 안타깝구나.

그녀의 손에 쥐어진 태블릿이 반짝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희생의 권능은 그리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이고 사용해온 잔불.

일리나의 목숨을 한번 구하고 내 목숨을 구했고, 울드에게 살해당했던 에이리아의 목숨까지 한번 되살렸던 다시 구하기 힘들 최고의 신물, 잔불.

잔불의 그 근원이 바로 희생의 권능이었으니까.

“비화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방치하면 소멸한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합니까?”

내 물음에 여신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내가 가지고 있던 비화의 잔재 결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여신의 손바닥 위로 날아간 잔재 결정 주변으로 사방에서 붉은빛의 꼬리 같은 것들이 날아들며 하나둘 스며들기 시작했다.

직접 회수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비화의 잔재들이었다.

빛무리들이 결정으로 스며들수록 결정은 더욱 도 선홍빛을 띠었고 이내 환한 빛과 함께 그 형태가 변했다.

그 형태의 끝은 커다란 팔각형의 보석이었다.

그 안에선 내가 알던 비화, 그 이상의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졌다.

-희생의 권능 그 첫째.

나는 그녀의 손이 뻗어지며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잔재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히 잠깐 다시 보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릴 수 있는 거겠죠? 소멸하지 않은 거니까.”

비화가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기에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내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가 과거로 가기를 말린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싶었다.

“데이비! 어서.”

“잠깐만.”

페르세르크는 비화를 살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인지 상당히 조급해져 있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나는 거기서 미묘한 점을 발견했다.

“여신이신 당신이 내려준 권능에 대가가 없을 리가 없죠.”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잔불 같은 것을 만들어 내게 내밀었는지는 아직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소멸 직전인 비화를 되살리는 데에 대가가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을.

희생의 권능이 괜히 희생의 권능이라 불릴 리가 없었다.

권능의 발현조건은 고귀한 희생을 이루는 대가로 창조의 기적을 발현하는 것.

“제가 뭘 대가로 지불하면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나를 보다 말했다.

-희생의 개념은 단순히 등가교환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

그녀의 그말과 함께 비화의 잔재에 스며들던 내 희생의 권능이 튕겨 나갔다.

챙그랑!!!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나와 페르세르크의 눈이 동시에 크게 뜨여졌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반응만 보아도 이게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것이다.

권능의 사용실패.

내가 권능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왜……왜?”

페르세르크는 허망하다는 얼굴로 주저앉아버렸고 나는 멍하니 비화의 잔재를 바라보았다.

비화가. 소생을 거부했다.

현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왜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 나는 고개를 퍼뜩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왜 비화가 소생을 거부하는 겁니까.”

여신이 답하지 않자 내가 다시 물었다.

“혹, 내가 비화를 소생시킴으로 인해 내가 잃는 게 너무 많아서입니까? 그래서 비화가 그걸 거부하고 있는 겁니까?”

비화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나올 수 있는 답변이고, 반대로 비화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면 이걸 거부할 이유가 없다.

특히 비화는 소멸하기 전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게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소생을 거부하다니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뿐이었다.

그런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데이비.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비화의 소생에 필요한 희생의 대가는…… 그녀가 치렀어.

“네?”

-눈을 뜨고 처음부터 너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을 희생시킨 것.

희생의 대가는 때때로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녀의 소생조건은 그것으로 충분해.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너를 향한 사랑을 대가로 지불했고 이제 그녀 안에 남은 건 더욱더 커져 비대해진 그녀의 원망.

그렇기에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나를 원망하는 그녀는 소생을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누구 마음대로…….”

허탈하게 중얼거리자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네가 대신 지불하면 될 터.

그녀가 고개를 움직이자 휘청거리며 한 여성이 다가왔다.

최후의 최후에 나를 절망하게 만든 권능의 악랄함을 보듬어주듯 다가온 그녀.

음유시인 뮤트가 내게 말했다.

“데이비. 절망스럽습니까?”

그 물음에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긴 왜…….”

“왜긴 왭니까. 널 구원해주러 왔지. 둘 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으세요.”

뮤트가 나와 페르세르크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신의 조각과 특수한 음률을 이용해서 너희 둘을 비화의 심층세계로 날려 보내겠습니다.”

동시에 이바노프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곳에서 그녀가 너희들에게 한 헌신 이상으로 그 아이를 보듬어주세요. 너희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이 그녀의 헌신과 저울질 될 때.”

그때 그 아이가 지불한 대가를 회수하고 너희들이 그곳에서 보낸 모든 기억을 대가로 지불할 겁니다.

“그게 무슨.”

상식적으로 불가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물고 늘어져야 했다.

“신의 조각이라는 게 뭡니까.”

내 물음에 그녀가 이바노프를 가리켰다.

“저기 있잖습니까. 신의 조각.”

그녀의 설명과 함께 이바노프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가 천천히 떼어내자 그의 손위로 새하얀 백광의 조각이 넘실거리며 나타났다.

“신기하죠? 제가 신의 조각이었데요. 제가 형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됐네요.”

“그게 무슨 소리냐 이바노프.”

“신경 쓰지 마세요. 나중에 알려드릴 테니.”

이바노프가 손을 흔든다.

“꼭 원하는 걸 쟁취하세요. 형.”

그 말과 함께 뮤트가 어떤 신비로운 음률을 노래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음률에 주변 대기가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와 페르세르크는 평화로워 보이는 하인스 영지로 와있었다.

겉보기엔 하인스와 같지만, 이곳은 비화의 심상 공간이었다.

나에 대한 악다구니만 남은 그녀의 공간.

그럼에도 그녀의 보금자리는 하인스 영지였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고 급히 시선을 돌렸을 때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새하얀 머리가 브릿지 된 예쁘장한 소녀가 나와 페르세르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말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당장 꺼져!!”

그녀가 격하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나와 페르세르크에게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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