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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32화 (1,332/1,559)

제 1332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해보고 싶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으리라.

‘나는 눈을 직접 맞아본 적이 없어. 그저 보기만 했으니까.’

그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눈을 내리게 할 거야.”

“블리자드를 사용하는 건 어떠할까.”

“눈싸움하기도 전에 눈에 파묻히겠네. 안돼.”

“눈을 내리는 마법이 존재하는가?”

“기상조절 마법 정도는 있는데. 문제는 이곳이 일반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거지.”

이곳은 비화의 심층세계. 기상 변이 마법은 상당히 많은 간섭력을 요구한다. 안 그래도 힘이 약해져 있는 그녀의 심층세계에서 그만한 무리를 시킬 순 없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마법을 최소한으로 한 채 적당히 눈을 내리게 만들면 될 일이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그날부터 나와 페르세르크의 계획이 시작되었다.

비화의 상처가 가득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약을 바른다면 며칠 정도는 싸게 먹히리라.

* * *

“그래서. 눈은 어디 있는데요.”

싸늘한 말투로 비화가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쏘아붙인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었다.

당장 눈이 내려야 뭘 하든지 할 텐데 눈이 내리지 않으니 그녀로썬 내가 그녀를 가지고 장난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아빠 못 믿어?”

“네. 안 믿어요.”

못 믿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믿는다고 못을 박지만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텅텅!!

“그럴 줄 알고 보여주려고.”

나는 천으로 덮어씌워 진 커다란 장치를 두드렸다.

“그게 뭔데요.”

“눈을 내리게 해줄 장치. 자,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

과장되게 억양을 조정하자 비화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비화가 보였다.

가능성은 있다.

그렇기에 너무 고마웠다.

마치 상품을 소개하는 호객꾼처럼 천을 확 걷어내자 굉장히 투박해 보이는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을 쓰면 되잖아요.”

“심층세계는 네 거야. 여기서 기상 변이 같은 마법을 쓰면 네게 부담이 되니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잘 돌아갈 거 같진 않은데.”

그녀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싸늘하게 읊조렸다. 그러면서도 궁금증이 가진 않는 듯 보였다.

“잘 봐.”

나는 가볍게 장치의 레버를 당겼다.

그리고 한 손으로 마나를 대량 밀어 넣어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옅은 소리와 함께 가동하기 시작한 장치에 박힌 마석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공명하기 시작했고 이내 나팔처럼 생긴 위쪽의 관을 통해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에게? 꼴랑 이거?”

장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주 소량의 눈이었다.

눈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눈.

도저히 눈이 온다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흩뿌리는 수준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하……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실망감이 가득 담긴 말투로 톡 쏘아붙인 그녀가 돌아선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멈춰졌다.

“어?”

그도 그럴 것이 돌아서서 걸어가던 그녀의 주변으로 새하얀 빛의 가루가 흘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그녀가 장치를 본다.

처음처럼 소량의 눈을 흩뿌리는 게 아닌 주변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눈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진짜 눈은 아니지만, 장치만 숨기고 보면 눈이 내린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금은 고작 이정도야.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하거든.”

다만.

여기서 나가서 세상의 공기를 다시 마시게 되면.

그땐 진짜 제대로 된 눈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축하한다. 첫눈을 맞아본 소감은 어때.”

내 물음에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향해 손을 뻗은 비화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차갑네…….”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

그것으로 충분했다.

뒤이어 무언가를 준비하고 돌아온 페르세르크는 직접 짠 것으로 추정되는 목도리를 가져와 그녀의 목에 둘러주었다.

“뭔데요 이건.”

“추울 수도 있으니 두르라는 게야.”

“나는 추위를 안 타요.”

정확히는 내성이 너무 강한 것뿐이지만.

“그래도…….”

“됐고. 눈싸움은 어떻게 하는데요?”

“좋아. 그럼 가르쳐줄 테니 잘 봐.”

나는 눈이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기다렸고 이내 바닥에 어느 정도 눈이 쌓이자 손을 뻗어 눈을 뭉쳐 동그랗게 만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뭉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어. 그리고…….”

피식 웃으며 페르세르크의 목덜미에 눈을 가져다 댔다.

“꺅!!”

갑작스런 기습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아하하하하!!!”

하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나는 벌떡 일어난 뒤 양손에 눈덩이들을 들어 올렸다.

“오냐. 그리 전쟁을 바란다면 본녀가 못 해줄 것도 없지.”

“혼자 덤비게? 기왕이면 둘 다 덤비지?”

내 물음에 비화는 나를 말 없이 노려보다 돌아섰다.

“됐거든요. 둘이서 덤비…… 꺅!”

당당하게 말하던 그녀의 얼굴에 눈덩이가 작렬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이미 시작했는데 몰랐어? 혼자 덤비면 눈사람이 된다.”

나는 마치 지휘를 하듯 손을 휘저었고, 동시에 바닥에 있던 눈덩이들이 날아올랐다.

“참고로 눈싸움을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직접 손으로 뭉쳐.”

“그러는 당신은 왜!!”

“나는 혼자잖아. 이정도 어드밴티지는 가져가야지.”

“그게 무슨 개수작…… 꺅!!”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차가운 눈덩이들을 보며 비화가 펄쩍 뛰어 장소를 피해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그녀를 추적했다.

“자자! 어디 마음껏 덤벼봐. 아빠한테 화난 만큼 시원하게 던지면 돼.”

그 말에 비화의 입가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후회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이내 눈덩이들을 빠르게 뭉쳤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를 향해 계속해서 눈덩이들을 던졌다.

“바……반칙 쓰지 마세요! 탄환도 없는데 어떻게 싸우라고!”

“글세. 눈싸움하는데 그런 사정까지 봐줘야 하나?”

한창 비웃으며 내가 깐죽거리자 그녀가 이를 빠득 간다.

“좋아. 어디 해봐.”

이걸로 충분하다. 그녀가 괜한 상념에 빠져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할 바에. 나를 향한 분노를 일으켜서 아주 원 없이 즐기게 만들리라.

뒤이어 페르세르크가 나를 견제하듯 눈덩이들을 직접 던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가 던진 눈덩이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반격했다.

하지만 페르세르크에게 집중하는 순간 비화를 놓친 것도 사실이었다.

퍽!!

“끄악!”

비명을 지르며 내가 물러나자 비화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별거 없네.”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모녀와 아빠의 눈싸움은 그렇게 물 흐르듯이 시작되었다.

* * *

“아니지! 그게 아니지! 눈덩이가 날아오면 여긴 그대로 무방비잖아요!”

“허어. 그렇구나.”

“저쪽에 단단히 틀어막아요! 또 날아오면 눈에 파묻히니까.”

“그것 또한 좋을 테지.”

“내가 견제하는 동안 빨리 만들어줘요.”

자신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걸려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비화는 신이 나서 눈덩이를 던지고 숨기를 반복한다.

“아하……아하하하!! 꼴 좋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크게 웃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페르세르크와 나는 굳이 집어내지 않았다.

그녀가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이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약 30분간 더 눈싸움이라 쓰고 눈전쟁이라 읽는 투쟁을 지속했다.

제법 협동이 되는 것일까.

비화는 아주 작정하듯 눈으로 방벽까지 쌓으며 반격에 나섰다.

그래도 화가 난다고 눈 안에 돌멩이를 넣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눈덩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던지는 눈덩이의 화력이 상당하다.

상념을 잊어버리고 마치 아이처럼 눈싸움에 열중하는 비화를 뿌듯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그녀에게 맞춰 나는 밸런스를 적당히 조절했다.

비화는 원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아이처럼 눈싸움이라는 경험에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지도 잊은 채 어느새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눈덩이를 던지고 숨기를 반복하는 행동은 마치 첫눈을 본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계획적으론 성공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풀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그녀가 바랬던 일 중 하나를 이루어 줄 기회를 이렇게 얻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숨까지 헐떡이며 한참을 뛰어다닌 비화가 정신을 차리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이대로 기회를 날릴 생각은 없었다.

* * *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에 파묻혀버린 나를 보는 비화의 얼굴엔 승리자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별거 없네.”

이미 수차례 내 기습에 당해 옷가지 않에 눈덩이를 집어넣는 테러를 당했던 그녀였다.

요리조리 피하며 요격하는 내가 너무 얄미웠는지 그녀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까지 동원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어때. 만족해?”

내 물음에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는지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크흠! 크흠! 뭐, 제법이네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게 끝이 아닌데.”

피식 웃으며 눈 속에서 빠져나온 내가 눈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눈덩이를 만들어내자 그녀가 경계하듯 손에 쥔 눈덩이를 보여준다.

“또 덤비게요?”

“아니. 눈싸움만 하면 질리잖아. 다른 것도 해야지.”

나는 바닥에 눈덩이를 내려놓은 뒤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건데요?”

“지금부터 눈사람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게.”

“눈사람!! 핫! 크흠! 큼! 그……그래요. 어디 해봐요.”

이윽고 내가 눈덩이를 천천히 굴리자 눈덩이의 크기가 서서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스노우볼링이라는거지. 어때. 전보다 커졌지?”

“그래도 작은데요?”

“요령이라는 게 있는 거야. 잘 봐.”

나는 계속해서 눈덩이를 굴렸고, 약한 부분을 두드려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전보다 확연히 크고 둥글며 단단해진 눈덩이를 보여주자 그녀는 뭔가 생각한 듯 눈을 번뜩였다.

“직접 해볼래?”

“……시켜서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또 상념에 빠져드는구나.

이럴 때 쓰는 특효약이 반드시 존재한다.

“에게? 이건 재주가 없나 보네?”

또 한차례 거들먹거리며 깐죽거리자 그녀의 얼굴에 분노가 서린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그녀의 독기에 불이 붙었다.

“누가 더 크게 만드는지 어디 한번 붙어봐요.”

그녀의 집념은 상당했고 처음엔 단순히 적당한 사이즈의 눈사람을 만들고자 했으나…….

“세상에…… 고작 30분 만에 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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