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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33화 (1,333/1,559)

제 1333화

사람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눈덩이를 만든 비화가 한창 비웃음을 담은 채 팔짱을 끼고 말했다.

“고작 그 정도 크기로 머리를 할 수 있어요? 거참…… 아빠도 별거 없네요.”

“아빠…….”

“흡…… 크흠! 큼! 말이 헛나왔네요. 됐고. 진짜 별거 없네요.”

풉 소리를 내며 내가 만든 눈덩이를 비웃는 그녀였다.

과하게 만든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애초에 내가 속도를 조절하고 일부러 그녀가 이기게끔 유도했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계속해서 깐죽거리는 비화의 목소리를 멜로디 삼아 천천히 눈덩이를 완성해낸 나는 작은 사이즈인 내 눈덩이를 그녀의 눈덩이 위에 천천히 올려놓았다.

“밋밋하지? 그래서 눈사람은 여기에 치장을 해주는 거야. 이를테면 저런 거로.”

주변에 있는 나무를 적당히 부러뜨려 팔을 만든다.

그리고 눈코입 눈썹 등등 여러 가지를 장식하자 비화 또한 한창 재미가 들렸는지 저도 모르게 열중하며 아주 조각상을 깎아내는 장인정신을 내비친다.

“아니! 아니죠! 거기 그렇게 하면 눈이 짝눈이 되잖아요! 아니 팔을 또 왜 건드려요! 관절 방향 몰라요?!”

페르세르크와 나를 향해 마치 감독처럼 훈수를 두고는 빙그르르 날아다니는 비화였다.

그렇게 한창을 푸닥거리한 끝에 예상했던 것보다 수배는 큰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작정하고 만든 인공눈인 터라 쉬이 녹지 않는다는 건 장점이 있으리라.

“이름을 지어줄래?”

“스노우맨.”

“너무 대충 짓는 거 아닌가 싶은데.”

내가 재차 묻자 그녀는 이미 결정을 한 듯 다시금 말했다.

“스노우맨!”

“그……그래. 그렇게 하자.”

자신이 만들고 정말 만족했는지 비화는 한참이나 눈사람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이구나. 저리 즐거워하다니.”

“비화에게 남아있던 건 원망이야. 다만, 그렇다고 천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비화의 원망이 투정에 가까웠다는 거겠지.”

좋은 의미 같지만 사실 페르세르크와 내게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제대로 미워하지도 못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말을 격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방어기재였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나는 손이 빨갛게 된 것도 잊은 채 눈사람을 이리저리 수정하는 비화를 불렀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서 들어가서 쉬자. 식사도 하고.”

“…….”

내 제안에 다시금 자신의 작태를 깨달은 그녀가 흠칫 놀랐다.

“크흠! 누……누가 즐거웠다고 했나.”

“그런 것 치고는 잘 즐기던데.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대단하네. 손재주가 제법이야.”

“…….”

“그럼 날이 어두워진 김에 이벤트라도 하나 하고 들어갈까?”

내 물음에 비화가 호기심을 애써 숨기며 나를 본다.

“흐……흥! 또 뭔데요.”

“페르세르크. 완성됐어?”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준비가 끝난 셈이지.”

그녀가 천천히 다가가 비화에게 조작용 마석을 건네주었다.

“조작용 마석?”

“그걸 사용하면 알게 될 게야.”

호기심이 결국 경계를 이긴 것일까.

그녀는 천천히 조작용 마석을 가동시켰다.

퍼엉!!!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큰 폭음이 울려 퍼졌고 비화가 흠칫 놀라 나와 페르세르크에게서 몇 걸음 떨어졌다.

그리고는 뭔가 화를 내려던 찰나.

하늘로 쏘아지는 오색의 빛무리를 보며 멈칫했다.

피잉!! 퍼버버벙!!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놀이.

비록 비화가 보고 싶어 했던 알프랜드의 불꽃놀이와는 달리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지만 겉보기엔 화려한 불꽃놀이나 다름없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하늘에 수놓아지자 비화는 입을 살짝 벌린 채 탄성을 흘리며 하늘에 시선을 빼앗겼다.

“예쁘다…….”

그동안 해주고 싶었던 게 많았으나 해주지 못한 것들.

고작 그 일부였다.

“어때. 끝내주지?”

“그…… 봐줄 만하네요.”

떨떠름하게 말하며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는 그녀였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하늘에 쏘아지는 불꽃놀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단이를 통해 본 것과 달리 직접 보는 건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그녀의 안에 있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 *

그 후로도 비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원망이라는 감정만 남았다고 했지 그녀의 행복이나 사랑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없다면 새로 채워 넣으면 되는 일.

처음엔 그토록 싸늘했던 비화였지만 불꽃놀이 이후부터 몇 주간은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페르세르크와 나는 그녀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잠이 들 때면 혹여 불편하게 자지 않는지 신경 쓰고, 그녀가 맛있는 것을 먹어볼 수 있도록 밤새도록 서로 머리를 굴려 가며 고민했다.

부모 노릇이라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단둘이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는 현 상황만큼 난이도가 높진 않았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 그녀의 감정이 상해서 며칠간 극한의 냉전 상태가 되기도 했고, 소멸 직전이던 그녀가 갑작스레 아파하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간호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렇게.

그녀의 심층세계 속에서 3년이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화의 원망의 뿌리는 생각보다 두껍다고 느끼게 했고, 때로는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페르세르크와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념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고집이었다.

대가 없는 헌신. 그 헌신은 그동안 많은 것의 변화를 불러오는 시발점이 되었다.

완전히 소용이 없는건 아니었는지 그동안 많은 것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했다.

“아빠. 뭐하는데요.”

“오늘 저녁엔 제대로 고기 뜯자.”

커다란 돼지고기에 다른 재료들을 감싸 이리저리 감싼 뒤 실로 단단히 묶어 숙성시키는 걸 보며 비화가 침을 살짝 흘렸다.

“흐…… 맛있겠다.”

“그렇지?”

“그러네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와인이라도 따자. 그리고 셋이서 같이 먹는 거지. 미식연구회의 레시피는 기대해도 좋아. 미식연구회가 가끔씩 또X이짓은 해도 굉장히 요리에 미친것들이거든.”

내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그 말을 하지 않았고 저녁이 되어 요리를 늘어놓고 와인을 들이켜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후에야 내게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그녀가 묻는다.

한참 웃으며 대화하던 나와 페르세르크의 미소가 끊어진 건 그 순간이었다.

“비화야?”

“여긴 엄마 아빠가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왜 여기서 사는데요?”

“…….”

“그렇게 다 회피하면서 평생 여기서 살 거예요?”

“네가 바란다면.”

내 대답에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대체 뭔데요…….”

“비화야?”

“3년이야……. 3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나만 신경 쓰는 거 힘들지도 않아요?”

“그거야……”

“말을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동안 두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모를 거 같아요?! 3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기나 하냐고!”

그녀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가 대답했다.

“그 3년에 가까운 시간을 너는 얼마나 고통받았니.”

“…….”

“고작해야 3년이야. 부모는 평생 자식을 위해 사는 거야. 우리에게 초단이와 청단이, 홍단이, 아벨과 다리안. 에반젤린까지 다 똑같아. 그건 비화 너도 마찬가지고. 고작해야 3년이야. 네가 받지 못한 사랑은 몇 년 시간이 지났다고 여기까지 하고 끝내겠습니다 하면서 떠나가는 것도 아니야.”

내가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비화야.”

“마……말하지 마. ……말하지 말라고!”

“우리는 평생, 네 둥지가 될거다. 우리가 바보같이 네 고통을 몰라줬다면, 그 수배. 수십 배에 달하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네 아픔을 보듬어주마. 그 고통의 시간 따위 싹 다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하게 만들어주마.”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곤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다.

“우리는 네게 아직 미숙한 부모야.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이를 키워본 경험은 핏덩이나 다름없는 거지.”

“그 3년이라는 시간을…….”

“고작 3년이야. 평생토록 네 둥지가 되고 네 버팀목이 되어줄 건데 그게 중요해? 네가 소멸하면 평생을 네 자리를 지키며 너를 애도하지 않을 거 같아?”

자식을 평생토록 걱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부모라는 존재였다.

“화를 풀라고 하지 않으마. 네가 원망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마. 오히려 원망해도 좋아. 다만, 네가 고통받은 시간 이상으로 우리는 네게 더 많은 행복을 쥐여줄 거다.”

그것 또한 부모로서, 부모가 된 나와 페르세르크. 그 외에도 일리나와 에이리아까지.

모두가 생각하는 삶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었건 넌 우리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자식이다.”

내 말에 결국 비화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오열했다.

숨죽여 울던 그녀는 끝내 아이처럼 엉엉 울며 아팠다고, 괴로웠다고 소리치며 울었고, 페르세르크와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끌어안은 채 그녀가 진정할 때 까지고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 울었을 때.

그녀의 전신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희생의 권능은 단순한 등가교환이 아니다. 이게 어떻게 대가가 되지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때로는 대가가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3년간 그녀를 향했던 거짓 없던 헌신은 어떤 트리거가 되었고, 그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그녀가 빼앗긴 대가를 되찾아온다.

그녀가 빼앗긴 대가 이상으로 큰 대가를 지불하며 불완전하던 권능이 마치 기름칠한 것처럼 공명했다.

“아빠…… 엄마…….”

드문드문 사라져 있던 비화의 기억이 기적처럼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내주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그녀를 위해 한 치의 거짓 없이 헌신해온 그 행동 자체가 대가가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비화의 단단하던 마음의 벽이 결국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런 비화를 안고 있던 페르세르크는 안도감과 미안함. 그리고 행복함에 그녀를 마주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두사람을 보며 나는 내 안에 자리 잡은 여신의 상위 권능 희생의 권능이 완전히 가동할 준비를 마쳤음을 깨달았다.

이제 심층세계를 빠져나가 그녀를 되살릴 기적을 행할 때가 온 것이었다.

뮤트가 준비해준 악보를 통해 희생의 권능을 발현하면 될 일이지만 나는 당장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그저 오열하며 페르세르크와 내게 안겨 엉엉 우는 비화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다독일 뿐이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화는 자신의 벽을 허물어뜨렸고 결국 생존의 의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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