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4화
삶의 의지를 되찾은 비화인 만큼 더 이상 희생의 권능이 발현되는 데에 장애물은 없었다.
대가로써 바친 마음이 완전히 돌아왔는지는 사실 잘 알지 못하지만 비화가 우리에게 마음을 연 것은 분명했다.
물론.
“잘 생각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주마.”
“믿을게요.”
다만 비화가 가지고 있던 벽이 허물어졌음은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건데요?”
“나가야지. 나가서 널 불러내야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해도 목적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비화의 마음을 돌려 그녀가 부활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서 이곳에 들어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었지만 과정만 놓고 보면 반드시 필요했고, 앞으로도 필요할 일이었다.
“그럼…… 여기 나를 두고 가는 거예요?”
“걱정 마. 어디 안 가니까. 그보다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운을 떼자 그녀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뭔데요?”
“테러리스트.”
“음?”
“왜 죽였어?”
그 물음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아…… 기억이 잘…….”
“혼난다 그러다가.”
“와…… 마음 바꿔먹자마자 태세 바꾸는 거 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가 화를 내지만 나는 단호했다.
“사랑하니까 잘못한 건 혼을 내야지.”
“지금까지 그런 적 없잖아요.”
“어허, 비화가 말대꾸?”
“아 씨!”
화를 내며 그녀가 발을 강하게 굴렀다.
“여기서 다시 돌리는 수가 있어요?!”
“진짜로 그러게?”
내 물음에 울상을 지어 보인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새끼들, 아니 그 새끼.”
비화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처음엔 단순 충동이었어요. 그놈을 만나서 묻고 싶었죠.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아빠를 공격했냐고.”
기억과 애정이 조금 돌아온 건 분명해 보인다.
지칭하는 대상.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확연히 처음과는 달랐으니까.
그녀는 당시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 * *
보통 극단적인 광신도의 경우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구에는 여러 종교가 존재했다. 그중엔 사이비든 그것이 아니건 여러 종류의 극단주의 적인 인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법 유명한 것이 이슬람계의 극단주의자들이었다.
그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지만, 지구는 몇 차례 침공사태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입증되지 않은 신과 입증된 신의 존재.
넬타리드 교단의 출현과 그 입증으로 인해 지구의 많은 종교들이 엄청난 위세로 흔들렸다.
물론 넬타리드 교단은 다른 종교를 억압하고 부정하지 않았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그렇게 유야무야 넘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달랐고 많은 종교들의 위세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개중엔 이슬람교도 또한, 포함되어있었는데 문제는 이 내부의 인간 중 극단주의 적인 인간들의 생각이었다.
넬타리드 교단 때문에 자신들의 교가 흔들리고 있다.
악의 뿌리를 처단해야 한다.
이 사안은 지구를 직접 지켜주고 있는 넬타리드 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은 건드리지 마라.
그리고, 그들의 존재가 자신들과 교에 해악이다.
신적인 존재가 있는 세상에서 뒷감당은 가능하냐.
목숨 따윈 두렵지 않다.
알프랜드에서 대규모 폭탄테러를 일으키려 했던 이는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넬타리드 교단을 매우 혐오하는 이들이었다.
그는 테러에서 많은 이들을 희생시켜 넬타리드 교단의 지지자인 티오니스와 지구의 사이를 흔들어 놓으려 했다.
하지만 재수가 없게도 실패해버렸고, 그렇게 경찰에 잡혀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아무리 외국인이라 한국의 법 테두리가 상당히 느슨하다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살인미수죄.
거기에 거의 겪을 일이 없는 자살폭탄 테러였던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조사이기도 했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그로 인해 지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비화가 그를 찾았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또 조사를 하러 온 건가? 미안하지만 이번 일은 나 혼자…….”
“누가 시켰느니 과정이 어떠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에게 익숙한 언어, 그리고,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아한 소녀의 목소리.
흠칫 놀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본 것은 흑색의 머리카락에 백색의 브릿지가 군데군데 된 아름다운 소녀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서 있던 소녀가 다시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그랬냐는 거야.”
“하…… 한국의 경찰은 이런 핏덩이까지 경찰 노릇을 하는 건가? 세상 인력이 많이도 부족하겠군.”
초단이의 외모는 세계에서도 유명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리색은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테러의 준비로 바쁜 그들에게 초단이는 그리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초단이, 아니 초단이의 몸을 쓰고 있는 비화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말에 천천히 다가가 그가 앉은 조사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비화가 다시 물었다.
“왜 그랬어.”
“뭘.”
“우리 아빠가 너희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아빠?”
“데이비 올 라운.”
그녀의 말에 사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탄성을 흘렸다.
“아…… 악귀의 자식이구나?”
“…….”
순간 비화의 눈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침묵한다.
죽이려고 온 게 아니었다. 여기서 그를 죽이면 데이비가 곤란해질 터.
그럼에도 물어야 했다.
“대체 왜 그랬어?”
“하……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그는 수갑을 찬 손을 장난스레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걸 풀어주면. 말해줄지도 모르겠네.”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 빨리 말해.”
“뭐, 좋아. 대의를 모르는 멍청이들에겐 직접 따끔하게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겠지.”
잠시 침묵한 그가 입을 연다.
“알라께서 함께 하시는 사도로써 세상을 좀먹는 악귀와 그 악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소각한다. 그게 이유다.”
어이가 없었다.
극단주의자들의 생각이야 어떻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들의 자리를 강탈한 것이 되어버린 넬타리드 교단이 미웠고,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었으리라.
더는 할말이 없었던 비화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기 있어도 되나? 허락받고 온 건가?”
“그건 네가 신경쓸 필요 없지 않나?”
“기왕이면 좀 풀어주고 가. 혹시 알아? 우리의 위대한 대의에 동참하면 위대하신 알라께서 아가씨만큼은 용서하실지?”
“…….”
잠시 고민하던 비화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수갑 중간의 사슬 부분을 잡았다.
“그래. 그래. 풀어주고…….”
콱!!!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비화는 사슬을 그대로 당겨 그의 몸이 앞으로 젖히게 만들었고 나머지 손으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가 나뒹군다.
“아이고야!!”
“살려주는 거로 감사해야 할 거야. 여기서 널 죽여버리면 에린이 볼 면목이 없거든.”
애써 분노와 살심을 참은 채 비화는 몸을 돌렸다.
처음엔 죽이려고 했는데. 애써 살심을 억눌렀다.
이대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아이고…… 내 코뼈……. 역시 악귀의 자식은 악귀의 자식이네.”
빈정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비화의 걸음이 멈췄다.
“한 번만 더 아빠를 악귀라 부르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몰라.”
“하. 위대하신 신께서 다스리는 이 세상에 감히 잡신을 끌고 온 것도 모자라서 진리를 왜곡하고 빛을 가리는 괴물을 보고 악귀가 아니면 뭐라 할까.”
그는 고통 속에서도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꼬맹이들도 그랬지.”
그가 피식 웃으며 비화에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한국. 이 나라는 말이야. 여러 법이 강해서 폭발물 반입이 참 번거롭거든.”
“…….”
“그런데 어떻게 그만한 폭약을 입수했을까. 궁금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그가 고개를 움직여 자신의 주머니를 바라본다.
이에 비화는 그를 무표정하게 노려보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앞주머니 속에 든 작은 가루 봉지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지?”
“뭐일 거 같아?”
“…….”
말없이 가루를 바라보던 비화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이 냄새…… 뼈?”
“오우. 악귀의 자식이라 금방 눈치채네.”
피식 웃어 보인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맞아. 뼈. 폭약 반입을 했지. 그런데 너무 번거롭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지. 외부 반입이 안 되면 내부에서 만들면 되지. 그래서 쓴 게 그거야.”
그가 씨익 웃으며 전말을 말했다.
사람을 죽이고 화장시켜 나온 뼈를 곱게 갈아서 티오니스에서 수입해온 특수한 재료들을 섞는다.
거기에 각성자의 힘을 이용해 변환시킨 뒤 응축시켜 화약과 섞는다.
사람의 뼈가 화약과 섞인다고 폭탄이 되진 않지만, 티오니스에서 지구를 위해 들여온 물질 중엔 그 두 개의 구조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아빠는 분명 그걸 극히 위험한 물자로써 취급하라 말했을 텐데?”
“알지. 아니까 만들었지.”
사람의 뼈. 그것도 특수한 힘을 지닌 각성자의 힘으로 정제된 가루는 일반적인 폭약의 수십 배에 달하는 화력을 내는 만큼 최고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쯤 되니 비화도 머릿속에 스치는 섬뜩한 가설이 정립된다.
“누구야…… 대체 누구의 뼈를…….”
비화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묻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누구긴. 감히 위대한 신의 말을 곡해하고 악귀와 잡신의 말을 따르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이지.”
그가 고개를 까딱인다.
“한국엔 넬타리드 교단의 신전이 꽤 있던데. 제법 신도도 많고.”
“…….”
“거기서 구했다. 뼈는 아이들의 뼈가 참 효과가 좋거든.”
“네가…… 사람이야?”
“악귀의 자식에게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미안하지만 나는 배려를 한 거야. 언젠가 그것들이 죽어서 위대하신 신의 앞에 도달했을 때. 그분에게 죄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그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데!!!”
분노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 비화의 발작적인 외침에 그가 말했다.
“악귀를 따르고 믿는 것.”
“미친 새끼!”
“그리고, 앞으로 커서 그 악귀와 잡신을 믿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려를 한 거야. 그러한 죄인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신께 도달했을 때. 그 신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
퍼억!!!
그대로 그의 가슴팍을 걷어찬 비화가 숨을 거칠게 쉬었다.
지금 이 미친 사이코패스는 넬타리드 교단을 믿으며 교에 기도를 하러 가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뼈를 으깨서 폭약으로 만들었다 말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정도 폭약이라면 보통 숫자는 아닐 것이다.
“이런 뉴스는 본 적이 없는데…….”
“없지. 악귀를 따르는 것들은 없는 집 아이들에겐 관심이 없거든. 특히. 부모에게 사랑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겐.”
부모에게 사랑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존재.
그 말은 비화의 역린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손이 떨린다.
“뭐. 나름대로 조심하기도 했지. 조력자가 제법 있거든. 세상에는.”
그는 마치 자랑하듯 말했다.
“죄인들이 감히 신께 용서를 빌 생각은 하지 않고 악귀의 이름을 부르짖더니. 역겹기도 하지.”
이후 그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잊지 마라. 악귀의 자식아. 세상에는 위대하신 신을 모시는 존재들이 존재한다. 지금 내가 죽어도 나는 순교자로서 다시 길을 열어젖힐 뿐이야. 언젠가. 우리 동지가 악귀의 사지를 찢고 그의 입에서 참회의 비명이 나오게 만들 것이다.”
“…….”
덜덜 떨리는 비화의 눈에 살심이 치솟았다.
“그리고, 악귀의 곁에 있는 것들도 싹 다 잡아서 화형에 처해 신께 올리는 제물로써 쓸 것이다.”
“우리 아빠가 대체 너희에게 뭘 했다고!! 오히려 지구를 지켜주려고 온 거잖아!! 그런 짓을 하고도 죄책감도 없어?!”
“죄책감이라…… 그래. 죄책감이 들지. 위대하신 신의 계시에 따라 그곳의 인간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광기 어린 미소를 보며 비화가 낮게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그만해.”
“악귀에게 자비는 없다. 언젠가 반드시 신의 철퇴가 내리리라.”
“너희에게 사람의 생명의 소중함 같은 건 없어?”
“미안하지만 그런 안일한 놈들과 우리는 달라. 신께서 바라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한다. 그것이 우리다.”
“너희 무력으론 아빠를 어떻게 하기 힘들걸?”
“미안하지만 우리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번 테러 사태의 전말을 교묘하게 퍼뜨려 악귀가 뒤에서 조종한 일로 만들면 그만이거든. 누구도 못 막아. 죄인들이란 그렇게 귀가 얇은 법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마치 선언하듯 말했다.
“신께서…… 함께하신다.”
비화는 그의 말을 끝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마치 환각에 빠져있듯 그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무슨……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네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의 외침에 비화는 한 손을 천천히 뻗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으로 흑백의 기검이 쥐어진다.
“별거 없어. 조금만 네 정신을 폭주시킨 것뿐이야.”
“하…… 나를 죽일 건가?”
“아니. 네 동료들이 있는 곳을 불기 전엔 내 허락 없이 못 죽어.”
“크흐흐흐…… 고문이라도 하시게? 미안하지만 나는…….”
콰직!!
“커헉?!”
그의 전신이 비틀린다. 말없이 그를 노려보던 비화가 차갑게 일갈했다.
“네 몸은 몰라도 네 정신까지 단단한지 한번 보자고.”
아빠에게 배운 것은 이런 것이다.
생명체로써 대접할 가치가 없는 놈은.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리라.
그것이 그녀가 당시에 생각한 데이비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후 그는 정신이 끝도없이 억제되고 폭주되기를 반복하며 피폐해졌고 끝내 그녀에게 정보를 발설했다.
이후 정신이 나가버린 그를 뒤로한 채 떠나가려 했지만, 그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그것도 부모의 욕을 내뱉었고 결국 비화의 인내심이 완전히 끊어졌다.
뒤늦게 냉정함을 되찾고 이곳을 찾아와 흔적을 지웠지만 옮겨진 시신의 흔적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 * *
“그럼. 그 일반인들은 왜…….”
비화의 행동이 결국 내게서 배운 것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반인…….”
잠시 고민하던 비화가 시선을 돌렸다.
“비화야.”
“아빠를 모욕했잖아. 그 빌어먹을 두 사람. 엄마를 두고 성희롱을 하고 아빠를 모욕했어.”
없는 곳에선 임금님도 욕한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을 베어 넘기느라 정신이 메말라가고 있는 비화에게 그 말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결국, 극심한 충동과 스스로 소멸해간다는 고통에 판단이 흐려진 그녀는 그대로 그들을 습격.
그리고 나로 인해 저지당했다.
“비화야.”
“아빠를 보고 정신이 들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아니라고. 알아요. 잘못한 거.”
혼자 그 사실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게 착잡하게 다가온다.
“혼낼 거에요?”
“…….”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혼나야지. 다음부터 혼자 그렇게 다 끌어안지 마. 이런 일은 전부 아빠에게 넘겨.”
“아빠.”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어디에도 없어. 다만.”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알밤을 놓는다.
“일반인들까지 건드리는 건 아니지. 그들이 선을 넘었다면 몰라도 말로 욕하는 거야 누구든 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찾아가 사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입밖에 내뱉었으니 그 책임도 져야지.
그리고 그 대가 또한.
“뒤처리는 아빠가 다 할 테니 넌 다 잊어버리고 몸 성히 있어 주면 돼.”
그 말에 비화는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침묵했다.
* * *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온 뒤 나는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는 비화를 한시바삐 소생시키기 위해 희생의 권능을 발현했다.
창조신의 상위권능.
소생이라는 건 어떤 개념으론 재창조의 개념에 가깝기에 사실 사용 여부에 관해선 엄청나게 정교한 조작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데이비.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여신님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예.”
-그 아이는 온전히 소생시킬 수 없어. 현재 네 실력으론 불가능해.
이제 막 받은 권능이었다.
대가를 지불함으로 인해 그녀를 소멸의 늪에서 구원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녀는 다시금 초단이의 안으로 들어갈 순 없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말에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모든 일엔 인과가 있…….
글씨가 출력되다 먹통이 되자 여신이 태블릿을 쾅쾅 내리쳤다.
하지만 먹통인 태블릿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말없이 태블릿을 보다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그리고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청아하고 신성하며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의 힘과 법칙의 힘을 오랜 시간 품어온 그 아이. 불완전한 네 실력으로 소생시킬 경우.
“…….”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녀가 하는 말을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저기…… 여신님. 제가 귀가 안 좋은 거 같은데. 방금 뭐라고…….”
* * *
며칠의 시간 후 데이비는 굳은 얼굴로 희생의 권능을 발현했다.
비화의 잔재 결정에 그의 막대한 권능이 모여든다.
기다리겠다 약속한 만큼 비화의 자아는 빠르게 수복되기 시작했다.
가히 신기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이면서도 성스러운 권능이었다.
태초신의 상위권능.
그것이 데이비의 손에서 펼쳐진다.
막대한 빛의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그녀의 잔재 결정에 스며들고 막대한 에너지를 뿜기 시작했다.
검에서 태어난 자아.
타나토스가 지니고 있던 신의 힘과 포식의 힘을 너무 오랜 시간 품고 존재해온 비화는 이미 신격에 다다른 존재로서 검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가 소생한다면 생기는 거대한 힘의 충돌은 예상했어야 했다.
이윽고 막대한 권능에 세계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일대 전체가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잔재 결정은 이내 거대한 빛으로 변했고 이내 10대 중후반 정도 소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예쁘면서도 신성하기 그지없는 이목구비. 외향이 변하진 않았지만, 그 분위기는 많이 변했다.
아마 본인이 가장 당혹스러울 테지.
나와 페르세르크는 비화의 부활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마치 선녀의 옷처럼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비화가 천천히 눈을 뜬다.
“비화야.”
“아빠……?”
이렇게 부활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지 비화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몸은 뭐고?”
“비화야.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뭐……뭐에요 무섭게…….”
“넌 이제 초단이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아. 아니 못 들어가.”
“그건…… 아! 혹시 새로운 몸체인가요? 헬릭시윰 같은?”
“아니. 네 육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야.”
수수께끼 같은 내 설명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하늘거리던 오색의 실타래가. 일렁인다.
“비화야.”
“네.”
“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단 네 본체는 무기가 아니야. 그 몸이지.”
“제 본체가 이 몸이라고요? 저기…… 이해가 안 되는데…….”
“신의 힘을 품고 태어났고 오랜 시간 그 힘에 익숙해진 너는 일반적인 존재로는 부활할 수 없다.”
“그럼…… 저는…….”
“그래 너는 지금…….”
일개 생명체가 아닌 여신으로써 태어난 거다.
“무슨…… 아하하 아빠 무슨 헛소리를…….”
“조율의 여신, 비화. 그게 네게 주어진 이름이야.”
폭주와 억제 모든 것을 조율하는 신성한 존재.
그것이 바로 그녀에게 내려진 이름이었다.
정작 그녀를 만들어낸 나도 어이가 없는데 본인은 오죽할까.
중요한 것은 비화의 경우 타나토스와 넬타리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여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여신이 감정을 깨우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아니면 그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침묵하는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하던 비화가 천천히 입술을 뻐끔거렸다.
“비화야?”
“그럼 아빠…….”
“그래. 말해봐.”
“내가 아빠 상사가 되는 거예요?”
그녀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