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7화
주요 스트리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채널.
그곳에는 한 방송에서 있었던 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크게 화제가 될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방정 가득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봤던 사람들은 가볍게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시간을 태우기엔 충분한 소재였다.
-티오니스 성자한테 잡혀서 끌려나가는 컨셉 여신님 클립. 귀여우면 개추.
영상에는 한창 툴툴대면서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던 비화가 데이비의 난입에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가는 모습이 비친다.
-ㅋㅋㅋㅋ 비명 지르면서 끌려나가는 거 봐 ㅋㅋㅋㅋ
-아니 저 집안은 유전자가 진짜 왜 저래?ㅋㅋㅋㅋ
-요즘 방장 방송보다 보니 눈이 너무 높아짐.
-액면가만 보면 부녀관계가 아니고 남매 같은 게 함정.
-티오니스 성자 우리랑 나잇대 비슷하지 않음? 20대라 들은 거 같은데.
-20대에 결혼…… 육아…… 결혼…… 하지 마…….
-왜요 형님?
-이 x불놈아 하지 말라면 그냥 하지 마!
-그런데 방장은 드래곤이라서 그렇다 치는데. 저 비화라는 애는 정체가 뭐임?
-몰러. 자칭 여신이래.
그녀는 현재 방송을 통해 자칭 조율의 여신이라고 말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라고 알려져 있다.
-ㅋㅋㅋㅋㅋㅋ 여신ㅋㅋㅋㅋㅋ 앜ㅋㅋㅋ 그게 맞음?
-몰러, 컨셉인갑제 ㅋㅋㅋ
-하긴 요즘 버튜버들도 컨셉 많지. 근데 여신 컨셉은 또 처음이네 ㅋㅋㅋ 신박하긴 하다.
-근데 인간은 아닌 거 같긴 했음. 보통 같으면 막 별의별 말 다 나와야 하는데 도저히 실천이 안 되더라.
-아 나도 그랬음. 했다간 진짜 엄청 죄짓는 느낌이라.
비화가 여신이 되면서 생긴 자연스런 오오라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을 그들은 몰랐다.
사자자리 - 경배하라.
사수자리 - 아 경배하라고 ㅋㅋ
-저짝 회장님들은 전부터 계속 저러더라.
-근데 저 둘도 인간 아니라고 들은 거 같은데 컨셉이 아니라 진짜 아님?
-진짜 여신이면 극호감 ㅋㅋㅋㅋㅋ 이렇게 소박하고 푼수 같은 여신이 있다?ㅋㅋ
-푼수 인정 ㅋㅋㅋㅋ 개까칠한데, 개허당임 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빡 대가리들아. 어떻게 사람 딸이 여신일 수가 있음, 미침?
-하긴 아빠가 성자인데 딸이 여신이면 그것도 이상하긴 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비화가 여신이라는 컨셉을 지닌 것으로 굳히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는 법이다.
-에반젤린 방송에 나온 비화 진짜 여신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세 가지가 있음.
-첫째. 일단 티오니스 성자가 20대인데 딸이 저만큼 크다는 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뜻임. 실제로 티오니스 성자나 우리 여왕님 사이에서 나온 딸이 저렇게 성장하는 건 말이 안 됨.
-둘째. 중간중간에 버릇처럼 손을 휘젓는데 기현상들 벌어지는 거 봤음? 내가 여러 마법사나 각성자들을 봐왔지만 실제로 저렇게 힘을 쓰는 케이스는 본 적이 없음
-셋째. 현재 우리는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고 신의 사도도 티비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반박 시 니들 말이 맞음.
나름의 추측이지만 사실 설득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반박한다. 애초에 티오니스 성자는 그렇다 치고 니가 여왕님에 대해 어떻게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임.
-그리고 X불 티오니스 성자 와이프가 왜 네 여왕님임 미친놈아 ㅋㅋㅋ
당연 반박 글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글을 올린 이는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이였다.
-나 1세대 각성자임, 여기 1세대 각성자 증 자세한 건 비공개지만 이거 소유 가능한 건 1세대 각성자뿐임. 게다가 극소수 티오니스로 넘어간 알프 온라인 유저 중 하나기도 함. 거기서 하인스 영지 유명했었는데 듣기로는 여왕님은 인간이라고 들음. 실제로 아인이나 다른 종족이면 그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 일반적인 케이스면 보통 애기처럼 이제 아장아장 걸어 다녀야 하는 수준임.
-듣고 보니 그렇네.
-1세대 각성자면 여왕님 드립치는 것도 이해는 되지.
-아니 그래도 여신은 선 넘었지 미친놈들아…….
물론 의혹은 있지만 믿는 이는 극소수일 뿐이다.
-아 몰라 그냥 비화 졸귀여서 클립 무한반복 재탕 중.
-미친놈. 저러다가 잡혀가 봐야 정신 차리지.
-딥웹 쪽에 딥페이크 기술로 개수작 부리다가 싹 다 하루아침에 증발했다고 들었는데. 또 고개 들이밀라나.
-모르지.
그리고,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비화는 현재 무릎을 꿇은 채 울상을 짓는 얼굴로 혼이 나고 있었다.
* * *
“손 내려간다.”
비화에게 부여된 그녀의 성역. 그곳에서 현재 비화는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들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빠.”
“반성 안 하지.”
“진짜 이제 다 잡은 물고기다 이거- 꺅!”
“다 잡은 물고기는 무슨.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아직 이 녀석이 상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
말로 백 번 해서 무슨 소용일까.
나는 비화의 팔을 내려준 뒤 녀석을 다시 둘러멨다.
“꺅! 뭐 하는 거예요!”
“꽉 잡아. 이동할 거니까.”
쩌억!!
비어있는 왼손을 가볍게 그어 내리자 허공이 찢어지며 균열이 생겨났다.
이후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까. 한서불침에 들어선 이후 감각이 상당히 무뎌져 있다.
꽁꽁 얼어붙어버린 대지에 도착한 나는 비화를 가볍게 내려놓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비화가 손에 닿는 눈의 감촉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여신이라 그런지 고작 추위에 떠는 모습은 없었다.
“그래도 조금 기대했는데.”
“뭘, 뭘! 뭘 기대했는데!”
내 팔을 툭툭 치며 투정을 부리는 비화였다.
“그보다. 여긴 뭔데요?”
“네가 잠깐 도망가면서 생긴 문제.”
그 말에 짜증을 내던 비화가 우뚝 굳은 채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도 안 돼…… 나 고작 한 시간 조금 있었어요.”
“그 결과지. 원래 이 차원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아.”
“제가…… 억제를 안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요?”
“그렇다고 보면 되겠지?”
어지러운지 비화가 한 손으로 이마를 잡고 비틀거렸다.
“말도 안 돼…… 대체 나한테 무슨 족쇄를 씌운 거야…….”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 거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여신의 상위 권능을 부여받은 존재.
비화가 부활할 때 여신이 권능을 은근슬쩍 밀어 넣은 의심이 들지만 그런 게 없었다면 비화는 부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일단 여기 눈부터!”
그녀가 황급히 손을 뻗어 휘젓자 오색의 빛가루들이 흩날리며 그녀의 손을 따라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던 지독한 폭설이 마치 거짓말처럼 멎어 든다.
끔찍한 저온을 유지하던 세사에 다시금 따사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고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쌓인 눈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아빠.”
“응.”
“저 그럼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몰라.”
나는 허공을 가볍게 두드리며 설명해주었다.
“매직미러 알지?”
“네.”
“그것과 같은 논리야. 넌 차원을 보고 만질 수 있지만, 저쪽에선 네 존재를 인식 못 해.”
“그런 공간이 있어요?”
“네가 있으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더라. 실제로 와본 건 나도 처음이라.”
비화와 함께 차원을 넘으면서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에 진입한 것이었다.
비화는 멍한 얼굴로 눈에 파묻혀버린 차원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죽은 거예요?”
“다행히 이곳에 생명체는 없어.”
“그건…… 다행이네요.”
복잡한 얼굴로 설원이 되어버렸던 차원을 보던 비화가 몸을 돌렸다.
“기다릴게요.”
“그래. 착하다.”
“약속이에요. 꼭 해결해줄 거죠?”
“그래.”
“많이 심심한데…….”
비화는 그렇게 자신의 성역으로 돌아갔다.
* * *
데이비의 노력이 물거품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비화는 그녀의 앞에 놓인 약 스물 정도의 빛무리를 보며 물었다.
“정화…… 생각보다 너무 빨리 된 거 아니에요?”
“그게 나도 의문이다.”
수많은 제노엔 중에 기적적으로 빠르게 정화가 된 혼이 약 스물.
이 정도 숫자라면 비화의 일을 대리로 처리해줄 수 있는 사도로써 충분한 양이었다.
“뭐해. 어서 종속시켜.”
어차피 이들은 신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
그렇기에 비화의 종속에 거부반응 따위는 없었다.
말없이 손을 뻗어 빛무리들을 손에 모은 비화는 천천히 그것을 사방에 퍼뜨렸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신력이 터져 나오며 빛무리를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특이한 형태의 존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형태는…….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
황당함을 담아 쳐다보자 비화는 눈을 반짝이며 오히려 되물어왔다.
“귀엽지 않아요?”
“너 지금 쟤들을 고양이로 만든 거냐?”
어이가 없을 수밖에.
제노엔들은 악마종 이전에도 인간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기억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형의 존재들을 고양이로 만들어버리다니
“아니죠. 일반고양이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비화가 눈을 감고 신비로운 언어를 내뱉기 시작한다.
그러자 고양이들의 목에 걸린 목줄들이 일제히 빛을 뿜으며 흩어졌고 그들은 고양이 귀에 꼬리를 가진 수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신기한 점은 그들의 등 뒤엔 작은 날개들이 돋아나 있다는 점이었다.
“조율의 여신께 제 모든 것을.”
신을 갈구해온 이들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종속 자체에 거부감이 너무 없었다.
그들은 평생을 모실 존재로서 비화를 인지했고 비화는 그런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환영해. 그럼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저…… 아빠? 이제 어떻게 해요?”
“……나도 모르지.”
애초에 비화의 여신화는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희생의 권능이라는 막대한 상위권능을 이용해 비화의 잔재 결정을 활성화시키고 그녀를 다시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묶었다.
여기까지라면 사실 비화가 여신으로써 부활한다는 건 이상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 오랜 시간 품어온 힘이 트리거가 되어 그녀를 신적인 존재로 인지해버리면서 생긴 문제라고 하기엔 분명 이상한 점도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비화가 가진 조율의 권능은 프리아 여신의 권능이기도 했다.
즉. 비화 이전엔 여신이 직접 관리하던 힘이라는 뜻이다.
“여신님. 혹시 은근슬쩍 비화에게 조율의 권능을 밀어 넣은 겁니까?”
그 물음에 프리아 여신은 시선을 돌린 채 무시로 일관한다.
이에 계속해서 그녀의 얼굴을 따라 이동하자 결국 그녀는 어떤 사실을 전해주었다.
-공허한 여신은 버티는 게 불가능해.
즉. 비화가 상위 권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신적인 존재로서 부활은 했는데 속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여신이 자신의 권능을 나누어주었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애초에 이런 케이스를 겪어봤어야 알지.
여신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녀는 천천히 비화의 이마에 손을 뻗어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우웅!!
그러자 신기한 소리와 함께 비화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온전한 신격과 완전한 신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비화는 상위권능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사용법을 이해한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빠져나온 빛의 줄기들이 사도가 된 제노엔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에 총기가 돋는다.
“자!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를 대신해서 내가 신경쓰지 못하는 곳의 조율을 담당할 거야. 비록 나에 비해선 작은 힘이지만 큰 문제를 제외하면 너희들도 조율을 할 수 있어.”
모든 현상을 적정수준으로 폭주시키거나 억제한다.
비록 비화처럼 차원 하나를 일순간에 조율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적정수준까진 가능할 터다.
비화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하나둘 흩어지듯 사라졌다.
“어디로 보낸 거야?”
“조율이라는 게 상시로 신경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적당히 자리를 잡고 각 차원과 공명하기 시작하겠죠.”
비화를 대신하여 업무를 봐줄 녀석들은 생겼다.
이제 남은 것은 비화가 현신을 했을 때 생기는 막대한 부담을 해결할 방법뿐이었다.
아무리 일반인 정도의 힘을 지녔어도 비화의 존재가 차원에 가하는 부담은 막대했다.
강신의 여파가 그러하리라.
막상 이 문제에 직면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빠. 난 괜찮으니까 가봐요.”
“뭐?”
“어차피 당장 문제를 해결할 것도 아니잖아요. 머리 아플 정도로 많은 일을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통이 트이니까 무리하지 말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비화가 손을 뻗어 그대로 밀어버렸다.
그러자 뒤편으로 균열이 생기며 튕겨 나간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고 하인스 영지에서 눈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 페르세르크가 물어왔다.
“벌써 온 게야? 갔던 일은?”
“일단 사도는 만들어냈어. 뒤틀린 차원도 조율했고. 문제는…… 현신으로 생기는 부담인데…….”
“비화가 멋대로 탈출하긴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일 테니 그걸 위안 삼아야겠지.”
그 말대로였다.
그때 문밖에서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손님? 누군데.”
“그게…….”
“들여보내.”
내 말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프레이아?”
발키리아 종족. 넬타리드에게 남은 두 사도 중 하나.
그녀가 말한다.
“넬타리드 신께서 계시를 내리셨어. 그것도 네게.”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비화가 강신했을 때 그 문제를 대신 처리해준 신.
넬타리드가 내게 할말이 있는 듯 보였다.
“좀생이처럼 후배가 실수 한 번 했다고 꼽 주는 건 아니겠지?”
“너……너! 감히 신께 무슨 말버릇이야!!”
“너나 말조심해. 사도가 어디 건방지게.”
“이익!!”
“됐고. 빨리 말이나 해 뭐라고 전하라든.”
내 물음에 프레이아는 한숨을 내쉰 뒤 경건한 자세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