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5화
비화는 참 제 아빠를 많이 닮았다.
적어도 에반젤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히히히!”
하지만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총을 쏴대고 있는 비화를 보고 있자니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와…… 악질…….”
처음엔 단순 비화도 그녀 자신처럼 고생 좀 하겠거니 했다.
배틀 오버 스트라이크.
여러 나라에서 유명한 FPS 게임으로 동시접속 최대 500만을 찍은 역대 게임이라는 평가가 많다.
고인물들이 판을 치는 이게임은 뉴비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에반젤린 또한 이 게임을 했으나 영 맞지 않는다며 금방 포기한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비화는 대충 알겠다고 말하듯 터보엔진을 단것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경이적인 함정설치. 심리전에 이어 거의 놓치지 않는 실력까지.
이게 도대체 게임 시작한 지 3시간 된 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봐. 이거, 처음 아니지? 막, 자랑하고 싶어서 일부러 처음인 척 하는 거지?”
“뭔 헛소리야. 당연히 처음이지. 넌 내가 게임이나 할 만큼 한가해 보여?”
“응.”
단호한 에반젤린의 대답에 비화의 표정이 대뜸 찌푸려졌다.
“이년이?”
“아니,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 재능이 있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게 말이 돼?”
“왜 안돼. 그리고, 여기 초보지역이라면서. 다 초보들밖에 없는데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어.”
그 말에 에반젤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비화를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아닐걸?”
“맞다니까……. 아…… 이것들 또 시작하자마자 다 죽었네.”
짜증스레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비화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놈 이거 다른 애들하고 좀 다르네. 할 맛 나겠어.”
작은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시며 비화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난동은 가히 경이적인 야바위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둘을 정리하고 나머지 한 명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비화는 근처의 도구들을 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설치했다.
그리고,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아한 행동을 하더니…….
콰앙!!!!
결국, 상대를 침묵시켜버렸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아무리 봐도 단순히 초보라서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 * *
“그래서 여러분한테 물어보려고요. 여기 방에 배오스 잘하는 사람 많죠?”
-배오스ㅋㅋㅋㅋㅋ
-방장이 하고 30분 만에 때려치운 게임 ㅋㅋㅋㅋ
“아……아니 나는 됐고. 사실 비화 언니가 최근에 배오스를 시작했거든요. 근데. 내가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잘하는 거 같아서.”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 그러시겠죠~
-방장 게임 보는 눈 생각하면 신빙성이…….
“아니 직접 보면 되잖아!”
결국, 그녀는 다른 방에서 한창 배오스에 열중하고 있는 비화의 팔을 잡아끌고 방송 룸으로 들어왔다.
“언니. 잠깐 들어와 봐.”
“뭔데. 나 지금 바빠.”
“아니. 됐고. 일단 앉아봐.”
“하아…… 얘한테 또 무슨 말 한 거야?”
애꿎은 화살이 시청자에게 돌아가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아니 우리가 뭘 했다고…….
-이거 탄압이야. 어?
-비화 누님이 배오스를 그렇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슴미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대충 상황을 유추한 비화는 손사래를 쳤다.
“그냥 쟤 호들갑 떠는 거야. 나 그 게임 시작한 지 이틀도 안 됐어.”
최근 비화는 툭하면 에린의 레어에 처박혀 지낸다.
당장 익숙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넬타리드가 사라진 것도 의문이고 아무리 각성했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강신 상태가 그 이유였다.
솔직한 말로 현재 비화는 완전히 자신의 힘을 비우지 않고 내려 와있었다.
즉. 이전처럼 완전히 일반인수준이 아니라 그녀의 권능을 조금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라는 뜻이었다.
저 용은 참 예쁘구나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렇지? 방장 호들갑이야 늘 알아줘야 함.
“다 좋은데 닉네임이 좀…….”
혐오감을 담은 얼굴로 중얼거려보지만, 그는 비화가 상상하는 이상의 또라이였다.
-미안. 나는 이제 용이 아니면…….
“미쳤나 봐…….”
완전히 질려버린 듯 비화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물러났다.
자잘한 해프닝이 그렇게 떠난 뒤 비화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오. 좋은 거다.”
-????
-처음에 저걸 집는다고?
-저 쓰레기를???
비화가 낙하한 곳은 사람들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전쟁터 한복판.
아무리 고수라도 이런 곳에 함부로 내렸다간 언제 머리에 바람구멍 뚫릴지 모르는 그런 장소이기도 했다.
“거참…… 많이도 내린다…….”
-ㅋㅋㅋㅋ 당연하지 ㅋㅋㅋ 거기 좋은 템들이 얼마나 나오는데 ㅋㅋㅋ
-영상 보고 다 거기서 내리지 ㅋㅋㅋ
-비화 비명 지르는 거 상상하니까 벌써부터 카타르시스 조지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에반젤린이 호들갑 떤다고, 비화도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마당에 처음 주운 아이템이 손대포라 불리는 최악의 권총과 머리를 맞추면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지만, 그 외 부분에 맞추면 절대 이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저격 라이플이었다.
“이야. 풍년이다. 이렇게 잘 나오기도 힘든데.”
-???대체 어디 가요?
-그 와중에 m4 시리즈들 다 버리고 저거 줍는 거 실화냐…….
-어우 속에서 끓는다 끓어…….
-그거 말고 m4 시리즈를 주우라고!!!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은 비화가 왜 저런 안 좋은 총들만 줍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부들거렸다.
“스코프가 있으면 더 좋긴 한데…… 없다고 못 쏘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거 스코프가 없으면 못써요…….
-배오스 1000시간 정도 하면 쓰라고 할 정도인데. 너무 겉멋 든 거 아님?
일부는 좋지 않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충 아이템을 기워입은 비화는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거 많이 죽이면 점수 더 준다면서?”
“그렇긴 하지?”
에반젤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그거 진짜 불편하던데…….”
“에린아.”
“응?”
“맞추면 돼.”
그말과 함께 미친 듯이 뛰어나가던 비화가 순식간에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지며 몸을 엄폐시킨다.
“한 놈 찾았다.”
그리고는 어딘가를 빠르게 조준하더니 그대로 격발했다.
타앙!!!
순식간에 올라가는 킬 로그.
줌은 땡겼다고 하지만 거의 보이지도 않는 점을 상대로 몸을 살짝 내민 비화가 단 한발에 적을 침묵시킨다.
이 모습에 에린은 물론 다른 시청자들도 물음표를 띄우기 시작했다.
-방금 머선 일이고??
-뭔데. 방금.
-봤음? 난 못 봤는데.
-난 저런 거 보이는 게 개 신기하던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액세서리 달지도 않은 저격 라이플로 저게 돼?
물론 없다고 안 맞는 건 아니지만 이게 가능한지 묻는다면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론상 가능하다고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이 구간은 초보구간이잖아. 그래서 쉬운 거지. 호들갑은…….”
-아니 선생님…… 아무리 초보구간이라도 그렇게 쏘는 인간은 잘 없어요…….
“잠깐만. 두 놈 더 오는 거 같다.”
건물에 진입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총성을 듣고 몰려든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이에 적당히 방안에 몸을 숨기고 정비를 마친 비화는 주변 기물들을 보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이야. 여기 함정으로 써먹을 게 많네.”
그리고는 근처의 밧줄을 이용해 연막탄을 엮어 설치한 뒤 망설임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물론, 운이 따라준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매복해있었던 것일까.
“앗!”
마치 그녀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는 양 그녀를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한 유저가 보인다.
비화의 손에는 저격총 하나. 저격총의 특성상 아무리 가까워도 줌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타격이 힘들다.
하지만 줌을 땡기고 머리를 맞추려고 하면 그전에 이쪽의 머리통이 박살 날 상황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예상한 그때. 비화의 보조장비가 빛을 발했다.
일명 손대포.
엄청난 반동과 엄청나게 느린 연사속도 대신 상당히 강한 한발을 보여주는 권총으로 빠르게 스왑을 한 그녀는 그대로 상대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넣은 뒤 몸을 튕겨 슬라이딩으로 움직였다.
투두두둑!!
바닥에 총알이 박히는 특유의 사운드가 들려온다.
매복하고 있던 만큼 상대가 쏜 총알 일부가 맞긴 했지만, 연사가 가능한 대신 한두대 맞는 거로 죽진 않았다.
물론 비화가 쏜 총알 또한 마찬가지였다.
빈사까지 가긴 했지만 그 정도에 그친 정도였다.
“아니 총알을 머리에 맞고 사는 게 말이 돼? 에휴…… 원래 이렇게 쓰려고 한 게 아닌데. 어쩔 수 없네.”
설마 피할 줄 몰랐다는 듯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어진 상대가 급히 비화가 있는 쪽으로 총구를 돌렸지만, 엄폐가 괜히 엄폐가 아니었다.
그가 난사한 총알이 허공에 흩뿌려지고 뒤이어 비화의 탄환이 다시 한번 날아들어 상대를 완전히 침묵시켰다.
두 발 모두 헤드샷.
그 이후로도 그녀는 종횡무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가 설치해둔 함정은 그녀의 행동 사운드나 움직임 반경을 차단하며 상대를 혼란스럽게 했고 그것을 이용해 역으로 둘을 모두 사이좋게 하늘나라로 사출시켜버리는 결과까지 냈으니까.
현재 킬 스코어는 5점.
그 짧은 시간에 비화가 죽인 수가 무려 다섯이었다.
다만 정작 그런 난장판 속에서 비화는 유저들의 시쳇더미를 뒤적거리며 적당한 방어구나 아이템들을 파밍 해나가며 콧노래를 부른다.
-저게 가능해?
-둘 다 이론상 맞추기만 하면 정말 좋은 총기긴 한데…… 탄 낙차도 그렇고 생각보다 드럽게 안 맞는 것도 그렇고. 디지게 어려운 것도 사실인데…….
-내가 알던 배오스 맞음?
뭔가 심상찮다는걸 깨달은 건 비화가 어렵지 않게 1등을 해버렸을 때였다.
1등이라는 게 원래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운도 따라줘야 하고 실력이나 상황판단도 좋아야 했다.
그래서 초보들만 모아놓으면 그중에서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 걸리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 얻어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비화의 승리에는 치밀한 플랜의 결과가 뒤따랐다.
“한판 더해?”
비화가 고개를 돌려 멍하니 바라보는 에반젤린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한 번만 더…….”
눈을 게슴츠레 뜬 비화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뭐…….”
* * *
사실 비화의 실력이 호들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하는 이들에겐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자유도가 높다고 해도 어차피 컴퓨터 게임인 만큼 표현에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비화가 쓰는 전술들은 대부분 한 번씩은 다 사용된 전술이기도 했다.
물론. 강산을 날려버릴 때 사용한 심리전처럼 잘 이용하는 케이스가 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한 것은 비화의 에임 보정실력이 가히 경이적이라는 것이었다.
거의 핵에 가까운 보정실력은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다.
-그래서. 저거 핵이라고?
-모르지.
-아니 모르긴 뭘 몰라. 캠 방송하는 애들이 핵을 어떻게 쓰냐 미친놈들아.
-캠 방송하면 핵 안 쓰는 거냐? 개소리 자제 좀……
-손캠도 있었음. 희고 예쁘더라.
-저 페도 새끼 쳐내.
-아 왜! 겉으론 애들도 아닌데!
이상한 주제로 빠지는 놈도 물론 있었다.
-애초에 의심해봄 직함. 요즘 핵 프로그램은 방송하는 사람들한텐 안 보이고 직접 하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ESP도 있고 에임핵 같은 경우엔 티도 안 나게 할 수 있음.
-에임핵이 어떻게 티가 안 나 미친놈아. 다 맞으면 그게 핵이지.
물론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에 근데. 에반젤린 방송 컴퓨터에 그런 거 설치한 적이 있나? 걔 배오스 안 하잖아.
-안 하니까 의심이 되는 거지. 방송 안 할 때 설치하고 뭐 그런 거 아님? 근데 사실 내가 보기엔 탄이 좀 튀는 거로 봐선 핵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음.
-아아니, 우리 여신님 핵쟁이로 몰아감?
뜨겁게 달구는 주제는 간단했다. 비화가 핵이냐 아니냐.
다만 비화가 장기적으로 즐기는 것도 아니고 잠깐 나와서 몇 판 한 게 전부였기에 사실 크게 타오르기엔 무리가 있는 장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화가 한창 게임에 빠져들어 그녀의 티어가 빠르게 수직 상승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고작 며칠 만에 최상위권 티어인 다이아 티어를 코앞에 두고 있는 그녀를 두고 있는 그녀를 보며 핵 의심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거두 되기 시작했다.
정작 본인은…….
“어? 이 새끼들 선 넘네?”
탕!! 탕!!!
일반적으론 잘 보이지 않는 점이나. 엄청나게 빠른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겐 딱히 대수롭지 않게 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인간과 같은 외향이지만 인간이 아닌 상위의 초월체인 여신이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었고. 순간적으로 제어 가능한 범위도 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승리에 도취한 비화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게시판에 들어갔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
-비화 이년 빼박 핵임.
글의 제목부터가 어그로성이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