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6화
-비화 이년 빼박 핵임.
사실 비화가 유명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아는 이들은 대부분이 에반젤린의 방송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뿐.
실제로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비화가 제대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배틀 오버 스트라이크의 특수 랭킹 란에 이름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었다.
배오스에는 여러 종류의 랭킹란이 존재하는데 단기간에 최속으로 티어를 올린 이들의 이름이 등록되곤 한다.
사실 게임이 고인물이 많은 만큼 정말 재능이 넘치는 이들이 아니면 이곳에 이름을 등재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 티어 유저의 부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비화]라는 아이디가 그 랭킹란의 1등을 당당하게 해 먹고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유저들은 비화라는 닉네임이 그저 프로게이머의 부계정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방송을 하는 프로게이머들 중 그 누구도 비화라는 아이디를 부계정으로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프로가 부계정을 만든 건가 하는 설도 나돌았다.
이에 에반젤린의 방송을 보는 이들이 비화의 존재에 대해 알리자 그녀의 유명세가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구인가. 그런 설전이 오가던 도중 누군가가 그녀의 플레이 영상을 무단으로 올리며 그녀가 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비화 이년 빼박 핵임.
제목에서 그렇게 쓰여 있던 글을 쓴 이는 자신이 비화에게 어이없이 죽은 이후 그녀가 핵쟁이가 분명하다고 판단했고, 로비로 나가지 않고 그녀의 플레이를 고스란히 녹화한 뒤 그걸 허락도 없이 올린 것이다.
-우선 내용 보면 영상에 다 있음 게임시간은 총 12분 정도인데 내가 3분대에 비화 만나서 뚝배기 날아간 뒤로 하도 이상해서 녹화함. 7분대 영상부터 보면 아주 가관임.
7분대 영상에서는 비화가 갑작스레 마주친 샷건 유저와 싸우는 장면이었다.
-알다시피 이 게임 근거리에서 샷건 이길 수 있는 게 없음. 근데 이년 스나이퍼 들고 초짜 새끼마냥 쫄래쫄래 걸어가다가 만나자마자 대가리 따버림. 이게 말이 됨? 이미 대처하고 있는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거니와 그 와중에 총은 에임 맞추기도 어려운 저격총 중에서도 악질을 들고 있음. 근데 이걸 들고 그 짧은 찰나에 반응해서 대가리를 땄다? ESP에 에임핵까지 빼박임.
그는 이후로도 여러 영상을 들먹이며 그녀가 핵이라는 논리를 설파했다.
-이상 사기꾼에 대한 브리핑은 끝임 반박 시 내 말이 맞으니까 걍 닥치고 그렇구나 하면 됨. 실제로 반박할 것도 없겠지만. 일단 신고박았음.
반박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하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이런 반응속도에 정밀함을 보일 수 있는가 싶을 정도였던 만큼 신속했다.
이런 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핵이냐 아니냐로 갑론을박을 했다.
-핵이건 아니건 그걸 왜 네 멋대로 결론짓고 몰아가는지 모르겠네.
-핵일 수도 있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핵이건 아니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 걸 지켜보며 팝콘이나 뜯으면 그만인 것을.
중요한 것은 비화가 핵인가 아닌가였다.
핵이면 그만한 재미가 없고 핵이 아니면 경이적인 실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현재 비화가 승급전을 하고 있는 티어는 다이아몬드로 그 위에 존재하는 마스터와 그랜드마스터를 제외하면 최고의 단계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의미로 보면 두 단계나 위에 있는 애매한 위치인 것도 사실이지만 배틀 오버 스트라이크의 유저가 엄청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도 굉장한 위치임에는 틀림없었다.
“어이가 없네. 내가 핵이라고?”
비화는 짜증을 담아 그 글에 반박 글을 썼다.
-척 봐도 핵이 아니구만 뭔 헛소리야. 그리고, 영상 이거 본인 허락은 받고 올린 거 맞음?
자신을 얌체 같은 플레이어로 위장시키는 놈이 괘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그녀의 댓글에 답글이 달린 게 보였다.
댓글을 단 이는 다름 아닌 작성자였다.
-반박 안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핵쟁이 영상 올리는 거에 그딴 걸 왜 물어봄.
비화의 고운 이마가 찌푸려졌다.
“이 자식 봐라?”
-핵쟁이가 아니면 어쩔 건데.
-아니 핵쟁이 맞다고. 내 배오스 경력 다 합쳐서 장담하는데 이거 빼박 핵이라고.
-아니 그건 네 판단이잖아. 제대로 나온 증거 있음?
-아 됐다. 그냥 차단함.
그가 탱커 포지션이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실력가가 아닐까.
비화는 문득 속에서 천불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놈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긴 어려워 보였다.
“비하! 비하! 화 푸러! 화내면 안대!”
그때 그녀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온 홍단이가 비화의 팔을 잡고 귀엽게 올려다보았다.
이에 비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홍단이를 바라보다 물었다.
“청단이는?”
“청다니 에리니랑 놀고 이써!”
“너도 거기 가서 놀아. 나 바빠.”
“비하도 가치 노라!”
“나중에 놀아줄게…….”
문득 짜증이 일었지만, 초단이도 아니고 홍단이와 청단이를 상대로 모진 말을 내뱉기가 쉽지가 않았다.
평소에 멍청이 멍청이 입에 달고 살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홍다니는 비하랑도 가치 놀고 시픈데…….”
“……약속할게, 조만간 같이 놀러 가자.”
“진짜?”
“그래.”
아쉬운 감정을 뒤로한 채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뒤 쫄래쫄래 돌아가는 홍단이를 보며 비화는 그래도 조금 전까지 쌓여있던 화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휴 그래. 내가 인터넷에 어그로 끄는 멍청이 하나 때문에 신경 쓰는 것도 웃긴 일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써 무시하고 다시 게임을 켰다.
비화라는 닉네임을 지닌,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가 간편한 복장을 한 채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서있는게 보였다.
“이렇게 모니터로 볼 게 아니라 직접 뛰는 게 더 재미있어 보이는데…….”
가상현실 시스템……. 넬타리드가 한번 만들었었던가.
각성자들을 만들기 위해.
그럼 자신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가상현실 시스템을 내가 다시 만든다 해도 게임이 만들어지는데 시간도 많이 들 테고…….”
사실 지금 즐기고 있는 배틀 오버 스트라이크의 소스를 그대로 가져다 붙인 뒤 비화가 조금만 힘을 가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어지겠지만 귀찮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시하고 커뮤니티 사이트를 끄려던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어그로를 끌던 놈이 다시금 글을 올린 게 보였다.
“푸흡. 언니, 커뮤니티 봤어?”
아니나 다를까. 품에 청단이를 안은 에반젤린이 조소를 흘리며 그녀의 속을 벅벅 긁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잘하라니까……”
“아니 이 정도일 줄 몰랐지…….”
처음엔 초보 지역이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티어가 올라가도 똑같은 흐름에 그녀도 의아함을 내비치던 찰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신벌이라도 날릴까?”
“미쳤어? 누구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짜증나게 굴잖아.”
그냥두면 비화는 그놈을 찾아서 신벌을 꽂아버릴 기세였기에 에반젤린은 곤히 잠든 청단이를 침대에 눕힌 후 조용히 비화의 팔을 잡아끌었다.
“홍단이는?”
“저쪽 방에서 자. 그보다 언니. 생각보다 어그로 많이 끌린 건 알지?”
“그렇지. 무시해도 되긴 하는데. 괜히 열 받네.”
“누명이잖아. 그거 쓰고 억울하지도 않아?”
“그럼?”
“방송으로 해명해야지. 잘못된걸 바로잡는 거야.”
에반젤린의 미소에 비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캠 방송으로 하면서 했는데도 저런 말이 나오는데?”
“뭐, 손 캠도 하고 다해야지 뭐. 귀찮아도 별수 있나.”
“네 방송으로?”
“아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언니가 직접 해야지.”
그 말에 비화의 눈이 찌푸려졌다.
“에반젤린.”
“응.”
“너 지금 나보고 방송을 하라…… 이 말을 하는 거야?”
“계속하라는 것도 아니고. 잠깐 방송 켜서 해명용 플레이만 해. 사람들 끌어모으는 건 내가 할게. 어차피 인터넷에서 저런 말 올린 인간은 언니가 핵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도 없어. 그냥 어그로 끄는 놈이야. 중요한 건 저 선동에 놀아난 바보들이 더 늘지 않게 막는 거지.”
이 앙큼한 여동생이 그냥 이런 일을 꾸미진 않았을 텐데.
“너 영상 각 뽑으려고 이러는 거지.”
비화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노려보자 에반젤린은 시선을 피한 채 어색하게 웃었다.
“어……언니는? 내가 그렇게 약아빠진 년처럼 보여?”
상처받았다는 기색을 강하게 어필하는 그녀를 향해 비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답했다.
“약 팔지 마, 이 년아. 내가 너 기저귀 갈 때부터 봐왔어. 어디 개수작이야.”
“아 그 이야기가 왜 지금 나와!!”
* * *
데이비에게 괜한 부담을 주기 싫다.
결국, 비화는 알아서 사그라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
그 후 며칠 정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녀가 핵이라고 계속해서 글을 올리던 놈은 아주 물 만난 고기마냥 그녀를 물어뜯었다.
그 때문에 안 그러다가도 선동되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비화가 공인이 된 에반젤린의 언니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물론 그 또한 무시로 일관했다.
그동안 비화는 차원을 조율하거나 데이비를 만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짬이 나면 배오스를 플레이했다.
그렇게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건만.
어느 날 그녀가 게임을 하기 위해 접속을 한 순간 어이없는 문구가 그녀를 반겼다.
-현재 귀하의 계정은 대량의 신고로 인하여 보호 상태이며. 해제 심사 중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콰직!!
들은 적 있다. 핵이든 아니든 대량의 신고를 먹으면 약관 규정상 심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때문에 프로게이머들조차 부계정을 파는 이유이기도 했고, 일부가 방송 중에 핵 의심이라면서 계정 보호상태에 빠지는 일도 더러 존재했다.
물론, 한두 번 겪고 나면 더 이상 보호상태에 들어가지 않지만, 비화의 계정은 아직 그런 처분을 받은바 없는 깔끔한 계정이었다.
게다가 비화의 플레이는 보통 인간이 이런 반응속도를 보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순간적인 경우가 많기에 아마 의심 대상에 오른 것이리라.
손에 쥐어진 마우스가 그 자리에서 박살 나며 그녀의 주변으로 신력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왔다.
“이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남들이 보기엔 언니 플레이는 거의 버그에 가까울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다들 신고나 해대고 있으니……. 거기에 인터넷에 언니 핵이라고 꾸준하게 글 쓰는 그놈 때문에 더 한 것도 있고.”
한창 비화에게 억까를 당하고 커뮤니티를 찾은 이들은 핵을 선동하는 놈의 글을 보고 진짜인가? 하며 신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에린아.”
“응.”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얘는 피가 무슨 색일까.”
“언니. 일단 좀 진정해. 그냥 해명하면 끝나는 일이야. 애초에 저놈을 무슨 수로 찾…….”
“안 되겠다. 이 새끼 내가 오늘 날 잡아야겠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입고 있던 날개옷이 하늘거리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여신이 호구로 보여? 이 새끼 아주 죽었어! 그냥.”
“언니? 언니! 대체 어떻게 찾을 건데?!”
“내가 이런 놈 하나 못 찾을 거 같아? 나 여신이야. 망할.”
진짜 신이 되어버린 비화에게는 다른 것들도 보인다는 걸 에반젤린이 알 일은 없었다.
이미 사라져버린 비화를 보며 에반젤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단순히 에린이의 레어에 강신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반복된 숙련 덕분일까.
현재 비화는 지구를 포함한 타 차원에 단시간 머무를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사라져버린 비화의 자리를 보며 에반젤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네. 미래에서 온 아벨은 왜 비화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 * *
대구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평범한 남녀공학인 계수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동수는 피곤한 얼굴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냐…….”
화장실의 크기는 제법 크지만 현재 청소를 하는 건 그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청소를 해야 할 놈들이 전부 도망을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미친 꼰대들 진짜. 양아치 일진 새끼들이 저지른 폭행죄를 손잡고 악수하고 사과하면 그게 다 해결되는 줄 아나…….”
한숨을 내쉬며 그는 대걸레를 치덕거리며 바닥을 닦았다.
-자자. 악수하고 사과하고. 여기서 그만 끝내. 일 더 키우지 말고. 응?
그의 담임선생이라는 인간이 했던 말이었다.
박동수는 사실 평범한 학생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고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아갈 그런 이.
하지만 그런 평범함 때문에 그는 학교 동기들 중 악질적인 녀석들에게 희생양으로 찍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X병, 세상 망할 거같이 굴더니 변하는 건 하나도 없고.”
한때는 몬스터가 난동을 부리면서 학교고 관공서고 죄다 마비가 된 것 같았지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가 무섭게 학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다시 수행했다.
그리고.
인성이 되바라진 놈들 또한 여전했다.
양아치 일진들이 적당히 괴롭혀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좋은 대상.
박동수는 그런 대상이었다.
“이야, 혼자 다 끝낸 거야? 우리 똥수, 청소 잘하네~”
그때 그의 귓가에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가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자 네다섯의 소년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쭈. 표정 봐라? 그런데 청소 너 혼자 다 끝낸 거야?”
“볼일 없으면 처음 했던 것처럼 그냥 꺼져.”
물론, 박동수는 희생양으로 찍혔으나 그리 쉽게 굽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더 그를 못살게 군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의 날 선 대답에 한 소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구정물이 담긴 통을 그대로 걷어찼다.
“이 새끼가 처 돌았나…….”
“야. 이 새끼 아직 덜 맞았나 본데?”
“야. 형수 오늘 조사받고 나오는 거 알지? 걔 아빠가 이거야 이거.”
한 소년이 자신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백날 X랄 해봐라. 걔 절대 처벌 안 받아.”
“…….”
박동수로썬 사실 억울한 노릇이었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이들도 그렇지만 사실 제일 악질은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이들의 두목격인 박서형이었다.
박서형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이끌고 지독하게 박동수를 괴롭힌 원흉이었는데. 참다못한 박동수가 그들의 일을 모조리 경찰서에 신고해버린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다.
명목상의 조사랍시고 박서형이 끌려들어 가긴 했다.
티오니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으로 인해 미성년자 보호법이 상당히 얕아진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박서형의 부친은 경찰 쪽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아들이 이런 일에 엮이는 걸 원치 않았기에 압력을 가한 듯 보였다.
그리고.
학교는 현재 학생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며 오히려 박동수를 다그쳤고, 급기야 말 같지도 않은 화해를 강요한 뒤 정작 폭행의 가해자인 그들과 박동수를 똑같이 징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꺼져. 청소해야 하니까.”
“그건 네 사정이고.”
퍽!!
손바닥으로 동수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친 그가 씨익 웃었다.
“그거 아냐?”
“…….”
“서형이 지금 너 기다리고 있어. 뭐해. 같이 가야지.”
그 말에 박동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X병 인생 되는 일이 없네.”
퍽!!!
이어지는 주먹질.
어차피 돕는 인간 하나 없다. 신이 있으면 뭐하나,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이 거지 같은 세상. 다 망해버리라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그를 폭행하는 양아치들에게 린치를 당한 그는 피를 흘리며 옥상으로 질질 끌려 올라갔다.
본래라면 잠겨있어야 할 장소였다.
하지만 어이없이 문이 열렸고 다수의 소년들이 피투성이가 된 동수를 질질 끌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왔냐?”
그곳에는 한 소년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박서형.”
“이야. 네 덕분에 좋은 경험도 하고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천천히 다가와 박동수의 앞에 섰다.
이에 그의 추종자들이 동수의 팔을 양쪽에서 결박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동수야.”
“…….”
짜아악!!
시원하게 귀싸대기를 올려붙인 서형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뺨을 가볍게 찰싹찰싹 때렸다.
“야. 그렇게 경찰 부르면 다 해결될 거 같았지? 요즘 그 티오니스 성자인지 나발인지가 최근에 깽판 쳐서 법 바뀐 뒤로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지?”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바닥에 버린 뒤 발로 밟아 끄고는 말했다.
“변하는 거 없어 이 새끼야. 이나라는 그런 나라야. 너 같은 서민 새끼가 아무리 울부짖어봐야. 우리 아버지 경찰 고위직이고 나는 상류층이야, 니가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
“너희 부모님이 하도 X랄 해서 내가 조사까지 받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받기만 했는데 돌려주지 않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안 그래?”
비열하게 웃는 박서형이 품 안에서 작은 날붙이를 꺼내 든다.
“조만간 너희 부모님께 한번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려. 오늘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매 맞고.”
“박서형 너 이 개X!!”
퍽!!!
순식간에 이어진 공격에 박동수의 몸이 기역으로 꺾였다.
“커헉……컥!!”
박서형의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의 힘은 아무리 봐도 일반인이라 보기 힘들었다.
각성자.
그는 각성자이면서 괜한 법으로 얽매이는 게 싫어 자신의 각성 사실을 숨기고 있는 케이스였다.
“각성자……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 같냐.”
“적어도 들켜도 이 일로 처벌받지는 않지. 안 그래? 우리 갚아야 할 빚이 참 많아.”
퍽퍽!!!
구타가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졌을까.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박서형은 뭔가 떠오른 듯 피식 웃었다.
“야. 그냥 보내주기엔 너무 아깝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리 하나만 분지르자. 야 저거 가져와.”
한쪽에 놓인 각목을 가리키며 그가 씨익 웃었다.
“신벌 받아 뒤질 새끼.”
“하하하. 신벌? 야야. 세상은 돈이고 힘이야 이 새끼야. 티오니스 성자 보면 몰라? 그 새끼도 힘이 있으니까 제 맘대로 살잖아. 안 그래?”
피식 웃으며 각목을 받아든 그가 양손으로 잡았다.
“다리 잘 잡아. 깔끔하게 부러뜨려야 별 탈 없으니까.”
낄낄거리며 발악하는 동수의 다리를 붙드는 양아치들을 보며 박동수는 지독한 회의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저런 새끼들에게 당해야 하는 현실이나.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부모님이나.
‘X발. 세상에 신이 있다면.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그의 부모님은 독실한 넬타리드 교단의 신자였던 만큼 더욱 화가 났다.
세상을 저주하고 신을 원망하며 그가 곧 다가올 고통에 이를 악물려던 그 순간.
“여기 박서형이 누구야?”
너무도 예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년은. 옷 꼬라지가 왜 저래.”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새하얀 날개옷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뭘 봐! X발! 안 꺼져?!”
격하게 소리치는 박서형을 보며 소녀는 다시 물었다.
“여기 박서형이 누구야?”
“나다 이 x년아. 넌 누군데 아까부터 사람을 쳐부르…….”
소녀. 비화가 움직였다.
“너구나?”
쾅!!!
그녀의 말과 함께 옥상의 문이 스스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고 흠칫 놀란 이들이 비화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