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7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스스로 닫혀버린 문을 보며 소년 중 하나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듯 걸어가 문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어떤 힘이 문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어어? 이 x발 이거 왜 안 열려!”
쾅쾅쾅!!
문을 강하게 밀어보고 당겨보고 두드려보기까지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비화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고 박서형이 피식 웃었다.
“네가 했냐?”
“말이 짧네?”
“그럼 내가 존대라도 해주리?”
건들거리며 다가온 박서형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비화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비화가 씨익 웃었다.
“어때. 소리라도 질러서 도움을 요청해보는 건?”
“하하…… 이년이 미쳤…….”
짜아악!!!!
순식간에 기습을 가하듯 그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 비화의 뺨을 쳐올리려던 그 순간.
그의 머리가 자연스레 돌아가며 서너 바퀴를 굴러 바닥에 처박혔다.
“아아……아아아아!! 이 x발! 쳤냐?”
조금만 냉정했다면 뭔가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
열이 받아있는 박서형의 판단에는 전혀 해당하지 못했다.
천천히 일어나 다시 달려들려는 그를 그의 추종자들이 말린다.
“서……서형아! 뭔가 이상해!”
“x발! 저년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제야 그들은 비화가 갑작스레 그들의 곁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쫄지 마! 쥐 콩알만 한 년 상대로 왜 쫄아!”
“아니 그게…….”
“나랑 오래 볼 거 같냐 저년이랑 오래 볼 거 같냐. 선택 잘해라. 뒤지기 싫으면.”
박서형의 위협에 그를 추종하는 소년들이 손을 파르르 떨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뭐해. 안 들어와?”
이에 비화가 도발하듯 묻자 소년 중 하나가 손에 든 각목을 가지고 그대로 덤벼들었다.
“으아아아아!!!”
콰직!!!
하지만 그가 휘두른 각목은 비화의 주변으로 오기도 전에 스스로 붕괴하듯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부서져 버렸다.
당황한 소년들이 물러나지만, 비화는 그들보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의 작고 흰 손이 가볍게 움직인다.
그리 빨라 보이지 않지만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악!!!”
“끄하아아아!!”
비화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몸이 크게 꺾이며 바닥에 처박혔다.
쉬릭!!
그때였다.
비화가 다른 소년들에게 정신 팔려있는 사이 기습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붙이가 날아들었다.
“x발. 한 발짝만 더 움직여봐. 얼굴 확 그어버릴라니까.”
“할 수는 있고?”
“못할 거 같냐? 각성자가 일반인 위협하는 게 얼마나 중죄인지 모르지? 넌 이제 x됐어 개년아!”
악다구니를 쓰듯 칼로 위협하는 박서형을 보며 비화는 빙그레 웃었다.
정작 본인도 각성자 같은데 이런 말을 하니 퍽 우습기 짝이 없다.
“오……오지마 이 미친년아!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해봐.”
너무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이니 당황하는 건 상대 쪽이었다.
비화가 걸어 나갈 때마다 그는 점점 뒷걸음질 쳤고, 결국 옥상의 끝에 내몰렸다.
“오지마…… 오지 말라고…….”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 모른다고 이 개……. 읍읍!”
“모르면 네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네.”
빙그레 웃은 비화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이에 그가 열리지 않은 입을 이용해 비명을 지르며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지만…….
콰창!!!
비화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칼이 완전히 조각나며 흩어진다.
덜덜 떨고 있는 박서형의 가슴에 손을 얹자 그의 눈이 부릅 뜨여지며 공포에 질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너, 인터넷에 재밌는 글 쓰더라?”
“…….”
“내가 보는 게 좀 많거든. 글을 쓰는 인간의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악의라고 해야 하나. 뭐 어쨌든. 인간은 보지 못하는 그런 걸 내가 볼 수 있다는 말이야.”
빙그레 웃으며 비화가 가볍게 손을 밀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
그 물음에 그가 덜덜 떨며 비화를 응시했다.
뒤이어 비화에게 걸려있던 인지저해가 파스스 흩어지며 그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이제 알았나 보네? 모른 척했지만 사실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지금부터 거짓말을 하면 내가 널 지옥에 처박아버릴 거야.”
“…….”
“불가능할 거 같지? 아래 좀 볼래?”
그 말에 그가 떨리는 고개를 돌려 난간 바깥쪽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시야에 비친 난간 아래쪽은 그야말로 불구덩이 지옥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형체가 일그러진 존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어떻게든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기어 올라오려 하지만 불구덩이에서 뻗어 나오는 불의 팔이 그들을 잡아끌어 다시 뜨거운 지옥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 너.”
이윽고 비화가 쓰러져 있던 박동수를 부르자 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신에게 빌었지? 이딴 게 어떻게 신이 있는 세상이냐고. 콱 망해버리라고.”
“그……그게…….”
비화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위압이 서려 있었다.
“축하해. 오늘 신벌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겠네.”
툭!
“으. 으으으?! 으아아아아아!!!”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게 풀렸는지 박서형이 거친 비명을 터뜨렸다.
비화가 가볍게 그의 가슴팍을 밀쳐 지옥 밑바닥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간 아래로 떨어지는 녀석을 바라본 비화가 고개를 돌리자 쓰러져서 끙끙대던 양아치들이 벌벌 떨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조아린 채 엎드렸다.
“사……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들에게 비화의 자세한 정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지금 당장 빌지 않으면 박서형처럼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와들와들 떠는 그들을 향해 다가간 비화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어디 한번 말해봐. 너는 신에게 어떤 걸 바래? 이 녀석들도 똑같이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주길 바라?”
그 물음에 박동수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비화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그게…….”
“목숨의 무게는 무거운 거야. 네가 말하는 신벌은 그렇게 무서운 거고.”
담담하게 말한 비화가 손뼉을 치자 타오르던 주변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기절한 박서형이 허공에서 나타나며 털썩 쓰러진다.
“죽은 뒤에 너희가 살아온 삶이. 너희가 이유 없이 괴롭혀온 모든 것들이. 다시 너희들의 업보가 될거야.”
그게 싫다면. 초월자가 되는 수밖에.
물론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 비화였다.
“오늘 본 기억은 모두 잊게 될거야. 다만.”
비화의 목소리가 서늘하다.
“너희들의 영혼 끝에 아주 짙게 각인된다는 건 잊지 마.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
그말과 함께 정신을 차리고 있던 소년들이 모두 기절하듯 쓰러졌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 박동수뿐이었다.
“이 녀석 각성자네? 넬타리드도 제정신이 아니야. 어떻게 이런 놈에게 힘을 내려.”
물론, 넬타리드가 각성자를 만드는 건 어떤 의미로는 비화가 가진 권능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넌 탈락.”
그말과 함께 비화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억제의 힘이 기절한 박서형의 몸 안에 스며든다.
동시에 그에게 내려져 있던 각성자의 힘이 모조리 압축되며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흩어져 버렸다.
“저……저는…….”
“네 기억은 지우지 않을 거야.”
비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 저 녀석만 혼내려고 했는데. 오는 길에 네 기도를 들었거든. 네가 바란 게 어떤 건지. 잘 생각해. 그리고.”
비화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걸린다.
“복수했는데 기억도 못 하면 억울하잖아?.”
멍하니 있던 박동수의 머리에 손을 뻗어 올려 쓰다듬어준 비화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축하해. 각성한 것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고.”
그말과 함께 눈부신 빛이 박동수의 몸에 퍼져나갔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지가 않는지 눈을 크게 뜬다.
비화가 한 것은 그의 안에 잠재된 각성자의 재능을 폭주시켜 강제로 개화시킨 것뿐이었지만 박동수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효도 열심히 하고.”
“…….”
“아참, 나에 대해서 괜히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내가 네 기도를 들어준 대가로 치자.”
그말과 함께 비화는 빛이 흩어지듯 서서히 사라졌다.
박동수는 그렇게 비화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그녀가 사라진 장소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며칠 정도가 흘렀다.
박서형을 포함한 박동수를 괴롭히던 양아치들은 그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치 겁에 질린 듯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에 극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고 그중에서 가장 심한 것은 박서형이었다.
그는 방안에 처박혀 와들와들 떨며 넬타리드 교단의 상징을 붙잡고 자신을 용서해달라 계속해서 비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빌면서 살게 되리라.
영혼단위로 새겨진 각인의 여파였다.
신벌이되 신벌이 아닌 무언가.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른 비화는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마우스를 딸깍인 뒤 카메라 각도를 다잡았다.
“반가워……요. 어디 보자 사람이…… 헙…… 왜 이렇게 많아…….”
시청자 수가 5천 명에 가깝다.
첫 방송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화가 중얼거리자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비화 누님!!
-욋쳐! 비.화!
-방송하는 거임?
-자매가 둘 다 방송? 리얼루다가?
“아니…… 방송을 하는 건 아니고. 요즘 커뮤니티에 말도 많고, 그거 때문에 자꾸 신고도 들어오고 이래서. 확인 차원에서 일회성 방송을 켰어……요.”
존대가 도저히 입에 붙지 않는지 그녀가 어색하게 웃는다.
-존대 안 어울림. 걍 평소처럼 반말해주셈.
-ㅇㅇ 맞음.
-비화 여신님 컨셉은 반말이지.
-여신님이 일개 인간에게 존대한다? 이거 못 참거든요~
현재 비화는 여신이라는 컨셉이 제대로 잡혀있었다.
믿는 인간 일부. 안 믿는 인간 대다수.
새삼 고칠 생각은 없었다.
“후우…… 좋아. 그럼 말 편하게 진행할게. 다들 알다시피 최근에 좀 귀찮을 정도로 신고를 많이 받아서. 그거 해명하려고 방송을 켠 것뿐이야.”
-사자자리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경배하라.
-사수자리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경배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린 방 회장님들도 와있엌ㅋㅋㅋ
-그러고 보니 방장은 왜 방송을 안 해.
-옆에서 보고 있나?
“아.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인가? 에린이는 오늘 좀 바쁠 거야. 홍단이가 아끼던 간식거리 홀라당 까먹었다가 들켰거든. 달래주느라 오늘은 정신없을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
-어떻게 동생 간식을 뺏어먹냨ㅋㅋㅋ
-방장 인성 ㅋㅋㅋ
-용성이짘ㅋㅋ
-그 와중에 100만 원 후원 깔끔하게 무시하는 거 봐라 ㅋㅋㅋㅋㅋ 저건 진짜 집안 유전인가 봄 ㅋㅋㅋ
“뭐야. 후원기능 꺼져있는데? 이거 후원하지 마, 나 방송하는 거 아니야. 특히 너희 둘. 여기서까지 그러면 밴으로 안 끝나.”
-사수자리 - 네…….
-사자자리 - 충성충성.
-ㅋㅋㅋㅋㅋ 회장님 두 명 바로 꼬리 내리는 거 보소 ㅋㅋㅋㅋ
-방장은 백날 화내도 듣지도 않더니 ㅋㅋㅋ
“마침 게임사에서도 핵 아니라고 공인해주긴 했는데. 그래도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잖아. 안 그래?”
비화의 말에 채팅창 일부에서 불편하다는 듯한 글들이 올라온다.
대부분은 핵이 아니고서야 그런 플레이는 불가능하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비화가 핵이라는 말에 선동된 이후 그녀가 핵을 썼을 것이라 확신하는 부류였다.
“미안하지만 사람이 많으니까 말은 순화해서 하길 바랄게. 선 넘으면 나도 책임은 안 져.”
환하게 웃은 뒤 그녀가 배오스를 실행했다.
“손 캠에 일반 캠. 화면까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줄 테니까 이 기회에 그놈의 귀찮은 논란 좀 없애. 에린이가 피해 보잖아.”
핵 논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단순 비화뿐만이 아니었다.
방송을 하는 에반젤린에게까지 찾아가 깽판을 치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을 넘는 놈들은 죄다 하얀 토끼가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소리임. 핵처럼 잘하는 건 알겠는데. 핵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까가 심하지.
-애초에 게임사에서 핵 아니라고 공언했는데. 왜 아직도 안 믿음?
-그리고 공인도 아닌데 막 몰아가는 거 개웃기네 진짜 ㅋㅋㅋ
핵이니 아니니 신나게 물어뜯고 싸우는 이들을 보며 비화는 간단히 화면을 보여주며 형식적인 설명 후 게임 매칭을 돌렸다.
“아. 이거 이기면 승급이네. 이히히히.”
배시시 웃는 그녀의 미소에 열광하는 채팅들이 올라온다.
사실상 시청자 중 상당수가 그냥 비화의 방송을 보러온 이들일 뿐.
이윽고 게임이 시작된다.
“어디로 가지?”
-당연 학교 아님?
-이 맵에서 학교지역을 포기한다? 안 될 말이지.
애초에 학교지역은 극심한 교전 지역 중 하나라는 걸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비화가 당황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럼 가볼까.”
-근데 이랬다가 죽 쓰면 진짜 개 웃긴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 그럼 핵이지 뭐 ㅋㅋㅋ
“사실 상관없긴 한데.”
말은 그리 하며 빠르게 학교지역으로 낙하한 비화는 근처에 있는 자동권총 하나를 빠르게 집어 들고 9mm 탄환을 집어 장전했다.
“에이. 시작부터 영 시원찮네. 일단 처음 제일 중요한 건 무기의 종류가 아니야. 가방이지.”
키득거리며 말한 비화는 적당히 넓은 가방 하나만 주운 뒤 맹렬하게 달렸다.
-웬 가방?
-당연 방어구에 무기지 이년아…….
-무친년…….
“무슨 소리야. 그걸 일일이 어느 세월에 찾고 다녀.”
비화가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말을 반박한다.
-???
-아니 파밍을 해야 하는 게임에 파밍이 귀찮다고?
“아이템 많은 교전지역이면 당연한 거 아니야?”
타다다다닥!! 덜컥!!
“왔네.
드르르르륵!
순식간에 문을 열며 갑작스레 뛰쳐나온 유저 하나의 머리에 자동권총을 갈아 넣듯 박아버린다.
다만 무기의 질이 좋지 않아 한번에 죽지 않자 그가 반격을 위해 비화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가 비화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역으로 당해버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비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총을 집어넣은 뒤 주먹으로 유저를 때려 눕혀버렸다.
정확히 주먹에 맞는 순간 누워버리는 hp라는걸 감안한 것이다.
비화 님께서 바로크 님을 처치했습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킬로그를 보며 시청자들의 채팅창에 물음표가 무자비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
-???
-아니 거기서 주먹질로 죽인다고?
-피 1만 남았어도 바로 역관광인데?
“대충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보이니까. 치명상 부위는 맞으면 피가 튀기는 양이 조금 다르더라고. 튀기는 횟수만 계산하면 대충 어느 정도 피가 남았는지 보이지. 너희도 해보면 쉬울걸?”
-아니 선생님…… 그건 보통 안 보여요…….
-시력이 어떻게 되먹어야 그게 보임?
시작부터 경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그녀는 느긋하게 사망한 유저의 가방에서 아이템을 빠르게 수집했다.
“아까 말했잖아. 가방이 제일 중요하다고. 파밍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는 거야. 난 그걸 빼앗으면 되는 거고.”
-세상에 날강도 마인드…….
-무조건 이긴다는 마인드 보소ㅋㅋㅋ
“아니, 애초에 교전지역이잖아. 이런 거 예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 거기 다이아 티어에요…… 프로도 잘못하면 갈려 나가는 곳인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마치 배경음 삼듯 가볍게 총을 이리저리 파밍한 그녀는 그것을 시작으로 종횡무진 날아다니면 싹쓸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일부는 거의 경이적일 정도의 에임 실력을 뽐낸다.
줌인 조준 발사 줌아웃이라는 4단계를 가볍게 무시하듯.
줌인 발사 줌아웃으로 돌아갈 정도로 그녀의 에임은 정확하게 상대의 머리통을 노렸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획득한 스나이퍼 저격총으로 인해 거의 태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불나방마냥 계속해서 그녀를 노리고 아이템을 상납하는 유저들 덕분일까.
비화의 가방은 어느새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도 빵빵해질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따로 파밍 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 와중에 비화는 자신의 기행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이 사기 총은 왜 너프를 안 해? 이거 조만간 버프 한다면서?”
-……이년아…… 너처럼 그렇게 쏘는 미친놈이 거의 없어요…….
-아니 그 총 그렇게 쓰는 인간이 없는 걸 어째.
-이론상으로 가능한 짓을 손으로 구현하고 있네, 어이가 없어서…….
근거리고 원거리고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상대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샷 빨은 아무리 봐도 핵으로 의심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정작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녀가 핵을 쓰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진짜 근데, 핵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맞추는 거임?
“그냥 조준하고 쏘는 게 다 아니야?”
물론, 시스템을 건드리는 월핵이나 스피드핵같은 부류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 유저 스펙이 핵이면 할 말 없다…….
-와…… 진짜 정체가 뭐임?
-진짜 말 그대로 개잘핵이네…….
한두 번도 아니고 마치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듯 상위권 유저들을 싹쓸이해버리는 그녀의 플레이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물론 그녀도 게임 캐릭터인 만큼 총에 맞으면 위험한 순간도 온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히 탄 피격까지 계산했는지 맞을 건 과감하게 맞아가며 싸웠다.
“제발 부탁인데 지금 들이닥치진 않으면 좋겠네.”
간당간당한 hp를 보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다수의 발소리가 그녀에게 들려온다.
치료를 하던 비화는 황급히 행동을 캔슬했고, 순식간에 그녀가 있는 곳으로 들이닥치는 유저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뭐지? 착각인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정확하게 그녀의 위치를 아는 행동거지에 그녀의 눈이 가늘게 뜨여진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다 보고 있다고 말하듯 숨어있는 그녀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 들이닥치는 이들을 보며 비화의 가늘게 뜨여진 눈에 어떤 확신이 서렸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혹시 유저 위치도 파악해주는 아이템이 있나?”
-ㅋㅋㅋㅋ그런 게 있을 리가 ㅋㅋㅋ
-방플이지 당연히ㅋㅋㅋㅋ
-저격러 개 많네 ㅋㅋㅋㅋ
“얼씨구? 저 둘은 서로 협력하네? 이거 개인 플레이게임 아니야?”
이제는 작정하고 셋 이상 몰려다니며 그녀를 찾는다.
게다가 그녀가 창틈을 통해 보고 있다는 것도 아는지 곧바로 고개를 돌려 프리 파이어를 갈겨버리는 행동거지에 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하……이거 선 넘네.”
그말과 함께 그녀의 내면에 내재된 신력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의지가 강력하게 폭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느려진다.
천천히 회복되는 hp가 어느 정도 확인되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저격총을 집어 들었고 고배율 스코프를 해제했다.
“어디 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방플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50명 이상이진 않을 거 아니야.”
남은 유저가 50명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다.
찰나의 순간마저 확실히 판단된다.
평소에도 기계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한 사격을 하던 그녀였지만 권능이 폭주하는 현 상황에선 마치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탕!! 탕! 탕!!
이윽고 산개해서 달려오는 셋의 위치를 파악한 비화는 망설임 없이 스코프가 없는 저격총을 줌한 뒤 당겼고,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스나이퍼 총기가 정확히 그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그들의 속도와 탄의 낙차까지 완벽하게 계산한 것도 모자라 쏘는 시간마저 거의 즉발에 가까운 사격이었다.
비화 님이 베토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비화 님이 까나리액젓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비화 님이 깐따삐야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
-??????
-아니 머선 일이고?
-저게 뭐임.
셋을 날려버리는데 들어간 시간은 줌인을 하는 시간과 총을 쏘는 시간. 그리고 다시 줌아웃을 했다가 줌인을 하는 시간이 전부였다.
거의 정확하게 상대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행동에 시청자들은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핵에 가까운 사격 솜씨였으니 말이다.
“손 보고 있지? 이거 핵 아니다?”
정작 비화는 태연하게 말하며 권능의 사용을 해제하고 다시 장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나쁜 놈들이네. 나인 건 어떻게 알고 저격한대? 안 되겠다. 함정 좀 설치하자…….”
-아니 무슨…….
-후…… 됐다. 그냥 이해를 포기하련다 ㅋㅋㅋㅋ
-진짜 할말이 없다…….
-그냥 니가 다 해 먹어라…….
방플 저격러가 많은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