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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49화 (1,349/1,559)

제 1349화

홀로 잘 놀고 있는 다리안은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다리안. 뭐해?”

비화의 부름에도 다리안은 손에 쥔 것을 얼굴에 처덕처덕 바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얘가 뭐하는…… 아…….”

그제야 다리안이 얼굴에 처덕처덕 바르고 있는 것이 일리나가 아끼는 화장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비화였다.

“대따!”

얼굴이 새하얀 가루로 가득했지만, 다리안은 그저 만족스러운 듯 손에 쥐고 있던 스펀지를 내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을 비화에게 건네며 해맑게 웃었다.

“대따!”

“됐어?”

“응!”

“누나 주는 거야?”

“응!”

자기는 다 쓰고 넘겨주는 꼴이 얄밉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화장품을 고이 챙긴 뒤 다리안의 얼굴을 닦아준 비화는 조금 전 다리안에게서 보았던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신력을 끌어올렸다.

그녀가 본 게 맞다면. 반응하겠지.

하지만.

조금 전 본 게 착각이었다고 말하듯 다리안에게선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신력을 본 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지만, 비화는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초단이가 폭주할 당시 그녀도 반쯤은 폭주상태였으니 말이다.

“흐음…….”

동글동글하고 맑고 큰 눈으로 올려다보는 다리안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던 비화는 다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거 내 화장품…….”

그때 일리나의 목소리가 비화의 귓가를 때리자 다리안이 벌떡 일어나 일리나에게 맹렬하게 달려갔다.

“엄므아!”

“다리안. 잘 놀았어? 그것보다. 비화야?”

“어……어어?”

“그건 뭐니?”

일리나가 웃으며 묻지만, 그 미소 안에 살벌함이 서려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일리나를 향해 비화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급히 화장품을 돌려주었다.

“세상에…… 거의 없잖아……. 데이비가 어렵게 만들어준 건데…….”

“엄마.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내가 가져간 거 아니야. 내가 쓴 거 아니라고!”

“비화야…….”

“다리안이야! 다리안이 가져가서 얼굴에 처덕처덕 바르는 걸 내가 보고 회수한 거뿐이야!”

당황해서 급히 소리쳐보지만 그건 악수였다.

“얼굴?”

애석하게도 동생을 아끼는 비화는 다리안의 얼굴을 이미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 어린 다리안이 해명해줄 리도 없다.

“……없는데?”

“지……진짜! 내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믿으라고?”

“엄마…….”

“에휴…… 됐다. 화장품 가지고 쪼잔하게 굴 생각은 없어. 그런데. 시간 있어?”

“뭐……뭐하게요?”

“오랜만에 몸 좀 풀려고. 상대해줄 수 있지?”

환하게 웃는 일리나를 보며 비화는 식은땀을 흘렸다.

* * *

에반젤린의 방송시간.

늘 그렇듯 그림을 그리고 단순 토크를 하던 그녀는 갑작스레 찾아와 울먹거리는 비화를 볼 수 있었다.

“어……언니?!”

“내가 진짜 억울해서!!”

대뜸 찾아와 엉엉 우는 비화를 당혹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기 집인 양 한쪽에 놓인 에반젤린의 휴식용 침대에 몸을 날리고는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기어들어 가버리는 그녀를 보며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침묵했다.

-비화 떴다!!

-아니 하라는 방송은 안 하고!!!

동시에 비화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맹렬하게 채팅을 올리기 시작한다.

“여러분 일단 좀 진정해요!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나와! 나 방송 중인 거 안보여?!”

“몰라…… 나 잘 거야…… 깨우지 마.”

꼬물거리며 이불을 돌돌 말아 아예 버티는 비화의 행동거지에 에반젤린의 머릿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년이 진짜!!”

한참을 푸닥거리한 결과 결국 비화를 이불 속에서 끄집어내는 데에 성공한 에반젤린이 그녀를 곁에 앉혔다.

“여러분 미안해요. 잠깐만 이야기 좀 할게.”

-응 마음껏 해.

-계속해도 괜찮아.

-둘이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재밌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 말이야.”

비화는 하인스 영지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데이비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갔다가 다리안이 일리나가 아끼는 화장품을 작살을 내버린 것을 보았다.

뒤늦게 회수하긴 했지만 이미 대부분 사용한 후였고, 어린애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며 다리안의 얼굴에 묻은 것들을 닦아주었다는 모양이었다.

직후 일리나에게 들켰고, 고스란히 비화가 화장품을 아작내버렸다고 오해를 산 뒤 대련을 했는데…….

“엄마가 대련할 때 가차 없긴 하지……. 아마 화장품은 뒷전이고 벼르고 있었을걸? 게임만 하고 늘어져 있는다고. 안 그래도 아빠가 걱정 많이 하더라. 그러다 배 나올걸?”

“내가 살이 찔 거 같아?”

피식 비웃음을 던지는 비화가 왠지 더 얄밉기 그지없다.

-그래서 비화 방송 언제 켜어어어어!!!

그때 비화의 시야에 채팅창의 일부 글들이 보였다.

“방송 안 한다니까…….”

-기다리는 사람들 말라 죽는 꼴 보고 시퍼?!

-방송을 켜라! 방송을!

“아니 왜 방송을 안 하는 사람한테 방송을 켜라 그래.”

-방송을 하지 않는 것은 재능 낭비다!

-방송을 켜라! 우리 다 죽는다!

“에반젤린. 너희 방송 보는 사람들이 저러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저 인간들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확실하게 입장 밝혀 그냥.”

“들었지? 나는 죽어도 방송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

-아니 컨셉까지 잡아놓고 그런다고? 그런 실력에 사운드 채우는 재능도 출중한데?

-세상재능낭비가 따로 없네.

-돈방석 앉기 싫어?!

-이거 기만이야!

“컨셉 아니라니까…… 그리고 돈이 무슨 상관이야! 니들 다 밴 당하고 싶어?!”

-응, 네 방송 아니야~

-에베베베 밴 당하고 쉬퍼?

“야……야! 에린아! 저거 다 밴 때려버려!”

“싫은데?”

“뭐……뭐라고?!”

“내 방송이야. 내 소중한 시청자들한테 왜 그러는데?”

에반젤린의 미소가 제일 얄미운 상황이었다.

이를 부득부득 갈아보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비화가 방송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권한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시청자들은 비화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한다.

초단이와 다르게 비화는 끓는점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스르릉…….

“어?”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비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면서 주변 기물들이 떨리기 시작하자 에반젤린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말렸다.

“언니 그만해! 빙하기 멈춰!”

“이런 인간들뿐이면 죄다 청소하는 것도 내 의무야.”

“그만!!”

피 말리는 상황 속에서도 시청자들은 비화가 정말로 세상에 빙하기를 가져올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듯 보였다.

육체능력은 에반젤린이 압도적이지만 비화는 현재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의 유동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의 입장에서 볼 때 비화가 여기서 성질머리대로 움직였다간 정말로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

결국, 에반젤린이 아끼는 한정판 간식을 뜯어내고 나서야 진정한 비화였다.

이후 방송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린다며 거실에 늘어져 영화를 보기를 약 두시간.

방송을 끝낸 에반젤린이 기지개를 켜며 나오는 게 보였다.

“끝났어?”

“응.”

“집에 들릴 거야?”

“아마 내일부터 며칠간 보낼 거야. 레어에만 너무 처박혀 있는다고 혼났거든. 사실 웃기지? 엄마 아빠 데이트하는데 중간에 끼여 들어가기도 참 미묘해서 일부러 자리를 비우고 있는 건데 말이야.”

“하핫, 그렇긴 하지, 그보다 그동안 뭘 했는데?”

“그림 그리고 수다 떨고…… 뭐 게임도 하고.”

“에린아. 너 가상현실 게임 해보고 싶지 않아?”

그 물음에 에반젤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끌리긴 하는데 별로 달갑진 않네. 그 일을 한다고 언니가 들쑤실 걸 생각하면 끔찍해.”

“말을 해도 꼭…….”

“그리고. 자꾸 뭘 해주려고 노력하지 마. 언니가 아무것도 안 하고 백수마냥 빈둥거려도 그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 없어.”

에반젤린은 찬장에서 고급 과자를 꺼내와 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내가 눈치채는데 엄마 아빠가 모를 거 같아? 계속해서 뭘 해내고 노력하지 않으면 거리가 멀어질까 겁나는 거잖아.”

반박은 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데이비와 페르세르크가 근 3년 가까이 그녀를 위해 노력했다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가족들이 혹여 비화에게 질릴까 봐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별나게 에반젤린의 방송 중에 난입하거나 열심히 조율을 했던 것도.

에반젤린이 혹여 기뻐할까 봐 가상현실을 만들어볼까 했던 것 또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런 점이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내심을 들킨 비화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고, 에반젤린은 그런 그녀를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그때였다.

“어머나. 맛 좋아 보이는 과자네요.”

“륀느가 꿀 과자를 높게 평가.”

언제 온 것일까.

맨날 사고만 치다가 이번에도 데이비에게 크게 혼난 미식연구회의 난입에 에반젤린과 비화는 멍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진짜 대단하다…… 역시 영지 내 최고의 악명을 떨치는 부서답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화가 질린 기색을 내비쳤다.

“륀느가 같이 먹어도 되는지를 요청.”

“머……먹어…….”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륀느에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에반젤린도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여길 온 거예요?”

에반젤린의 질문에 유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놀러 왔답니다. 마침 서부대륙에서 발견된 유명한 물고기종을 가져왔거든요. 은공께서 아시면 난리 치실 거 같아서……”

“일부러 우리에게 먹이고 공범을 만드시겠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륀느.”

그 말에 륀느가 입자를 구현화 시켜 날카로운 식칼을 두 개 만들고 양손에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점순이가 손을 휘젓자 허공이 열리며 커다란 오색의 물고기 하나가 털썩하고 떨어졌다.

“……저기 말이에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이거…… 서부 콘타스 대제가 포획금지 명령 내렸다는 그 희소종 아니에요?”

이런저런 소식에 빠삭한 에반젤린이 질린 얼굴로 묻자 유리아는 조용히 미소지은 뒤 헛소리를 내뱉었다.

“지금은 횟감이랍니다. 어차피 들키지 않으면 괜찮아요. 륀느 양. 갈고닦은 솜씨를 보여주세요.”

“3,682회 시뮬레이션결과 최적의 횟감 손질의 실력을 감행. 륀느가 사시미칼을 높게 평가.”

스릉!!

터엉!!!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손질하려 드는 륀느의 손을 막아낸 에반젤린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아! 피 튀긴다고!! 당장 부엌으로 가!”

* * *

결국, 오색의 물고기는 횟감이 되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비화와 에반젤린이었지만 유리아의 미식 능력은 확실했던 만큼 저도 모르게 손을 뻗고 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건 비밀로 안고 가자. 음…… 맛있네.”

비화의 말에 에반젤린도 회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주도한 미식연구회는 에반젤린과 비화의 입맛을 사로잡아 공범을 만듦으로써 혹여나 있을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

“넌 매번 미식 연구회에게 당하면서 또 당하냐?”

“그래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야. 륀느, 더 없어?”

“마지막 분량이었다고 보고. 명령하달 시 추가 포획을 감행.”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고…… 언니가 어떻게 못 만들어?”

“난 다신의 여신 같은 게 아니야. 조율이지. 그리고. 저 오색물고기의 개체 수는 저게 정상이야.”

비화가 보기에 오색물고기의 개체 수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때 또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린아!”

“아니 오늘 뭐 계모임 하는 날이야? 왜 이렇게 많이 몰려와.”

초단이의 등장에 비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언니? 수업은 어쩌…….”

말을 하던 에반젤린이 눈을 크게 떴다.

초단이가 부축하듯 데려온 한 청년은 척 보기에도 반죽음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화가 물었다.

“너…… 사람 팼어?”

“아니야!!”

당황한 초단이가 황급히 반박하자 에반젤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단이가 데려온 청년을 바닥에 눕혔다.

“일단 치료부터. 그런데 언니 신성 마법은?”

“그게…… 잘 안 먹혀.”

“비켜봐.”

이에 비화가 천천히 다가간 뒤 피투성이가 된 청년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비화 언니?”

“스스로가 치유를 거부하고 있네. 거기에 뭐야. 이 녀석 각성 능력이 뭐이래.”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쓰러진 청년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내리꽂았다.

“커헉!!”

“꺅! 비화 언니! 사람 죽어!”

“안 죽어. 이제 치료해봐.”

그 말에 초단이가 신성력을 끌어올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치유가 되지 않던 청년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타박상이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팬 게 아니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 같아…… 내 과 동기이기도 한데…….”

“뛰어내렸다고? 자살시도를 했다는 거야?”

“그런 거 같아…… 상황이 워낙 급해서 이리로 데려오긴 했는데…….”

사람이 적당히 착해야지.

“너 이거 잘못되면 니가 다 뒤집어쓰는 건 알지?”

“그렇다고 그냥 무시할 순 없잖아!”

눈앞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시할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와…… 진짜 별별일이 다 있네.”

“아가씨? 저희가 도울 게 있을까요?”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 적당히 죽 같은 거라도 부탁해.”

비화의 말에 유리아는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하겠다며 미식연구회원들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기절한 청년과 그런 그를 둘러쌓고 있는 세 자매가 잠시 침묵했다.

“내 참 별일이 다 있네.”

“그러게.”

“…….”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셋만 있는 건 처음인가?”

“그러네.”

비화가 심드렁하게 답하자 초단이가 고개를 숙였다.

“저…… 비화야.”

“뭐.”

“미안해.”

“그게 왜 나한테 미안한 일인데?”

“그…….”

“됐어. 지난 일로 캐물을 생각도 없고, 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는 건 아니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반젤린은 미묘한 분위기의 두 언니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청년을 말없이 바라보던 비화가 중얼거렸다.

“대체 사람이 얼마나 몰려야 영혼이 이렇게 닳아버릴 수가 있는 거야.”

“닳아?”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네. 가엾게도.”

단순히 상대를 보고 느낀 바를 발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비화의 말은 엄연히 그에게 벌어진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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