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50화 (1,350/1,559)

제 1350화

보통이라면 잘 경험하기 힘든 일을 겪은 그일 것이다.

한 명은 엄청난 시청자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스트리머이며, 또 한 명은 빌보드를 휩쓴 세계적인 가수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다름 아닌 세계를 조율하는 여신.

일반적인 사람이. 그것도 평범한 대학생이 이만한 이들에게 간호를 받는 건 확연히 보통 경험은 아닐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청년의 이름은 배승우였다.

초단이와 같은 학번의 과 동기이며, 초단이가 소속된 여행동아리에 뒤늦게 가입한 케이스이기도 했다.

각성자임과 동시에 평소에 굉장히 온화하고 착한 성격으로 과 내에서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는 학교의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서 자살시도를 했는데 그가 각성자인 것도 있고 운이 좋았던 것도 있어서인지 다행히 목숨은 건진 케이스였다.

“이거 놔!! 난 죽을 거야!!”

악을 쓰며 버둥거리는 그를 초단이가 잡고 말려보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걸 보다 못한 비화는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그를 걷어차 버렸다.

“커헉!!!”

“찡얼거리지 마. 다시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어디다 대고 블러핑이야. 진짜 죽고 싶으면 내가 지옥 밑바닥에 던져줄 테니까 어디 가볼래?”

“뭐라고?!”

“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앉아.”

비화가 으르렁거리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만! 지금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조금만 진정해!”

“아오. 진짜 성질 다 죽었다.”

욕설을 내뱉으며 비화가 나가버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에반젤린이 중얼거린다.

“다 좋은데 왜 여기서 싸우는 거야 진짜…….”

그렇게 한참을 난동을 부리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한 것일까.

배승우는 유리아가 만들어준 전복죽을 한 숟가락 떠먹은 뒤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흐윽…… 흑…….”

“승우 씨…… 울지 말아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미안해. 초단아. 미안합니다. 다들 미안해요…….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어느 정도 진정하고 난 후에야 에반젤린과 비화에게 난동을 부린 사실을 사과하는 그였다.

이렇게까지 오열하며 사과하는데 쏘아붙이기엔 떨떠름했는지 비화도 시선을 돌려버렸다.

“일단 좀 진정해.”

“…….”

억지로 울음을 멈춘 그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 자신이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세……세상에!”

“저…… 승우 씨.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혹시 발을 헛디뎠다든지…….”

초단이가 낮은 가능성에 걸어 물어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스스로 뛰어내린 거 맞아…… 운이 나빠서 이렇게 살아버렸다만…….”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신 건가요?”

“그건…….”

“말씀해주세요. 도와줄 수 있다면 돕고 사는 거잖아요.”

초단이의 말에 승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폐를 끼쳤네…….”

그가 중얼거리며 손에 든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었다.

“그래 이야기나 해봐. 너 지금 도와달라고 울고 있잖아.”

“아까부터 궁금한 건데 그쪽은 왜 자꾸 반말에 저에 대해 아는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뭔가 화가 난 듯 승우가 경계 어린 표정으로 비화에게 말하자 비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초단이와 에반젤린이 양쪽에서 그녀를 말린다.

“참아!”

“참아 언니!”

“아놔 저 x부럴놈 새끼 저거. 아 됐고, 난 저 새끼가 무슨 짓을 했건 손 뗀다.”

결국, 화를 내며 비화가 테라스로 나가버리자 에반젤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적어도 비화 언니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봐요. 언니의 눈은 인간과 다르니까.”

“…….”

“그리고 죽어가던 당신을 살려준 것도 비화 언니고.”

“그…….”

“비화 언니가 단순히 꾸며내는 말을 하는 거 같아요? 미안한데 당신을 보는 그대로 말해주는 거야. 그건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할 말을 잃은 듯 승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가서 사과라도 하지 그래요?”

초단이에겐 친한 동기일지라도 에반젤린에겐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 비화를 함부로 말하는 걸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비화가 말은 저렇게 해도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미안해 초단아.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사과하고 올게…….”

그가 휘청거리며 일어난다.

그리고는 비화가 나가버린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이후 창밖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그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보다 머쓱해졌는지 시선을 돌리고 뭐라 말하는 비화가 보였다.

“비화 언니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약하지?”

“그러게.”

그러니 아무런 불만 없이 세상을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천성이 그랬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래왔다.

“저기, 초단 언니.”

“응?”

“비화 언니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

“그게…….”

“말하기 어려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냐…… 내 잘못이 맞아.”

이후 초단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홍단이 청단이가 막 각성한 이후로 융합하며 초단이가 되었을 때.

초기의 초단이는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 데이비에게 엄청난 부담을 가했다.

본래대로라면 그 자리에서 데이비가 피를 토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 상황을 막아준 게 비화야.”

“…….”

에반젤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극한의 상황에 놓여있던 비화는 초단이보다 힘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고 초단이가 폭주하며 생긴 문제를 그녀가 인터셉트하며 데이비에게 가는 부담을 최소화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화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몰랐어. 그런데…… 나중에 비화에 대해 알고 나서 안 거야. 단순한 기적 같은 게 아니라…… 비화가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을.”

초단이는 그때의 일로 상당한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고 비화는 신경쓰지 않는다 했지만, 초단이로 인해 데이비가 크게 다칠뻔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나 있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사이라는 거네…….”

에반젤린이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비화에게 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줄래?”

“알았어.”

“고마워. 에린아.”

마침 기회가 생겼기에 나눈 소박한 대화였다.

“저……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초단이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조금만 늦었어도 치료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아무리 각성자라도 그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자살행위였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았어. 그냥…… 그땐 그랬어. 세상이 너무 미워서…….”

조심스레 입을 여는 승우의 말에 세 자매는 조용히 기다렸고 미식연구회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팝콘을 뜯다가 비화의 날카로운 눈총을 맞았다.

이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그의 눈시울이 붉혀졌다.

“초단이 너는 내 여자친구…… 민아에 대해 알지?”

“아…… 네. 잘 알죠. 과 내에서 제일 풋풋하고 예쁜 사랑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잖아요. 과 동기분들에 교수님에 선배님들도 축하한다고 말하고 그랬었는데.”

“응. 내게 민아는 전부였거든.”

뭔가 신파극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단순한 분위기였다면 그가 몸을 투신하지도 않았으리라.

“아는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분이라고 들었어요. 둘 다 각성자이기도 하고, 몬스터 사태에 부모님을 잃고 서로 보듬어주고 지켜온 사이라고…….”

“그런데?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그가 이렇게 망가질 정도라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혹시 변을 당했나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었다.

비화의 말에 승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고개를 들었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술 있나요?”

그 물음에 에반젤린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아빠가 저 술 마시는 거 보면 내 다리를 분질러 놓을 거 같아서.”

“그……그렇구나.”

“술이라면 저희가 가진 게 있답니다.”

그때 미식연구회 부장 유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독한 포도주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또 어디서 났어요?”

“원래 요리 재료로 쓰는 거지만 그냥 마셔도 제법 향취가 좋아서 가지고 다녀요.”

“가……감사합니다.”

“무얼요. 이야기를 듣는 값인 셈 치죠. 뭐…… 좋은 이야기인 것 같진 않지만 궁금한 건 참기 힘들거든요.”

유리아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공감하듯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륀느는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얼음 그릇에 담긴 얼음을 한 손에 한 움큼 쥐고 입안에 톡 털어 넣고는 와작와작 깨물어 부숴 먹었다.

“크으…… 독하네……. 그래.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유리아에게서 받은 독한 포도주를 한 모금 크게 들이킨 그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이의 눈빛이었다.

* * *

배승우는 어디서든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적당히 무난하게 살아가는 그런 인생.

특출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품을 정도로 불행한 것은 아닌 삶이다.

하지만.

지구를 덮친 몬스터의 창궐은 부자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공평한 재앙을 선사했다.

승우의 부모님은 몬스터 창궐 당시 변을 당했고. 그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하염없이 피난처를 전전하며 몬스터의 영역으로부터 도망치던 도중 정민아를 만났다.

정민아라는 여자는 배승우에게 있어서 조금 각별한 사이였다.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냈고, 어느 새부터 풋풋한 감정을 키워나갔다가 어느 순간 서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창궐한 이후 헤어졌던 그녀는 우연찮게 피난처 쉘터에서 다시 재회했고 두 사람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양 서로를 의지했다.

티오니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이 나타나 지구의 근간을 뒤흔들던 흉신들을 모조리 척살해버리고 인류의 반격이 이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러던 중 승우는 각성자가 되었다.

C급 각성자.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멸시받는 수준의 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민아 또한 각성자가 되었다.

둘은 서로 높은 각성자가 되어 보란 듯이 잘살아 보자며 약속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쉽지 않다고 했던가.

정민아는 각성은 하였으나 그 힘이 보잘것없었다. 일반인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전투 센스가 뛰어난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안고 가야 할 부담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담을 같이 짊어져 온 것이 승우였다.

어차피 결혼을 약속할 만큼 각별한 사이였던 만큼 승우는 평소 이상으로 무리를 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민아에게 좋은 장비를 사주거나 필요한 영약을 선물하고. 그 외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며 그녀의 전투실력을 향상시켜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재능에 절망할 때엔 같이 슬퍼하거나 위로해주며 그녀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럴수록 민아는 더욱더 승우에게 의지했고 승우 또한 그런 민아를 끝까지 뒷바라지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고 끝내 민아가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각성자 중에 일부는 약한 채로 있다가 추가로 재능을 각성하며 등급이 오르는 이들도 존재했다.

민아는 그러한 케이스였고 F급이던 그녀는 단숨에 C급보다 높은 B급 각성자가 되었다.

F급. 그것도 최하위 F급 각성자였던 그녀가 B급의 출력을 끌어낸 것은 순전히 그녀의 재능도 한몫했지만, 그동안 그녀만 보고 모든 것을 지원해준 승우의 노력이 엄청난 도움을 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생활에 여유가 조금 생긴 승우는 민아와 함께 몬스터 사태로 인해 해보지 못한 대학에 입학했다.

승우는 각성학과로, 민아의 경우 관련 다른 학과로.

승우가 입학한 각성학과는 전투 관련보다는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과에 가까웠다.

같은 각성자 관련학과라도 최전방과 전방의 차이 정도의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B급이 된 정민아를 다시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승우는 필사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점차 성장하는 민아와 달리 승우는 C급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민아가 괜찮다. 괜찮다 하여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나란히 있을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재능을 더욱 개화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각성학과에 들어선 뒤로 그런 그의 노력을 좋게 본 많은 동기들이 그를 응원했고 예쁜 사랑을 하는 두사람을 축복했다.

비록 F급 하위에 있던 민아가 갑자기 그보다 높은 등급이 되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등급을 보고 그녀를 좋아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초단이를 포함한 그의 과 동기들은 그가 조만간 프러포즈를 할 거 같다는 느낌을 받고는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프러포즈할 결심과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어느 정도 서로 자리가 잡혔으니 서로 함께 하자고.

평생을 같이 하며 서로 돕고 아끼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렵게 구한 다이아 반지를 언젠가 줄 날을 기대하고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과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다른 남성과 굉장히 친근한 표정으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는 민아를 믿었던 만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친한 과 동기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러나 그도 모르게 한층 쌓여버린 불안감은 점점 그 의심의 싹을 키워나갔다.

차라리 그 모든 게 오해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자신에게는 오직 승우뿐이라는 한마디만 들었어도 그러진 않았을 텐데.

그날 이후 그는 민아 모르게 그녀의 행동을 한 번씩 지켜보았고 그럴 때마다 점점 의심의 싹은 어둡게 피워져 갔다.

-남자친구? 아…… 응.

-선배! 같이 술 한잔해요!

그녀에게도 사생활이 있는데. 이렇게 의심하는 게 맞는가.

스스로 고민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그녀를 믿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평소 같이 다니던 훤칠한 인상의 선배와 입을 맞추는 그녀를 보았을 때.

그때 알 수 있었다.

아. 그녀는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더 이상 그녀는 자신의 버팀목이 아니구나.

하필 그날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하려고 계획하던 날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더 이상 숨어있을 자신이 없었고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민아는 그의 등장에 깜짝 놀란 듯했다.

“정민아……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그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아니지? 거짓말이라고 해줘…… 그런 거 아니잖아. 응?”

그는 현실을 도피하듯 필사적으로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그녀는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아……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이야.”

모른 척.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 겪어온 어떤 일보다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비록 C급 각성자지만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런 모든 노력과 사랑이 한순간에 부정당했을 때. 그는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무슨 헛소리야! 모른다니! 정민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황급히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으려던 그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낚아챈 뒤 그를 밀쳐냈다.

“뭐야 이 새끼. 아까부터 뭔데 아는 척이야. 너 우리 알아?”

“무슨 헛소리야…… 내가 민아의 남자친구…….”

“뭐야. 민아야. 너 남자친구 있었어? 없다며.”

“무슨 소리야. 나한테 남친이 어디 있어.”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뻔뻔하게 답했다.

“그보다, 가자 오빠. 나 배고파.”

“민아야 너…….”

그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이게 다 저 남자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라고.

그녀가 자신을 배신할 리 없다고.

그리 생각하며 그에게 소리쳤다.

“너지? 네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장 돌려놔!!”

민아라는 존재는 가족을 잃었던 승우에게 유일하게 남은 버팀목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등급이 낮아 괴로워할 때도 같이 괴로워해 주고 그녀의 모든 것을 도와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의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점점 곤란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민아의 팔을 다시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퍼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승우의 몸이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하…… 이 새끼 진짜 눈치 없네.”

짜증스레 중얼거린 사내 박지훈은 쓰러진 승우를 차갑게 노려보며 조용히 말했다.

“괜히 일 크게 벌이지 말고 그냥 꺼져. 별 거지 같은 게.”

“민아야. 아니지? 내가 그냥 미친 거지? 응?”

그 와중에도 승우는 필사적으로 민아에게 매달렸다.

“아니라고 해줘 제발…… 이거 다 깜짝 쇼라고…….”

“쇼가 아니야. 진짜야. 승우야.”

“너…….”

“솔직히 말할게. 나 이 사람이 좋아. 솔직히 내가 모른다고 했을 때 그냥 돌아가 주길 바랐는데.”

오히려 뻔뻔하게 대답하는 민아를 보며 승우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대체 왜…… 뭐 때문에…….”

“뭐 때문이냐니. 난 욕심이 많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거야. 보란 듯이 잘 살 거라고.”

민아는 그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

“내가…… 내가 그동안 너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야.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민아를 사랑한다면 놔줘야지.”

“뭐라고 이 개X끼야?!”

“솔직히 말할게. 난 A급 각성자야. 그것도 S급이 내정될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하고 있지. 그 외에 돈? 돈도 너보다 많아. 평생 민아를 편히 살게 할 만큼 많은 돈이 있어. 권력? 네까짓 평범한 C급 각성자 따위는 평생을 가도 잡지 못할 힘도 있고. 생긴 건 뭐…… 민아야 누가 더 잘생겼냐?”

“당연히 지훈 선배지~”

처절한 절망 속에 처박아버리는 한마디를 하며 그의 팔에 매달리는 민아를 보며 박지훈이 보란 듯이 그의 앞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끔찍한 현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니까 네까짓 놈보다 내가 더 그녀를 잘해줄 수 있다고. 이해가 돼? 그녀를 사랑한다면 물러나 줄 줄도 알아야지. 그녀를 위해서.”

“너 이 개X!!”

결국, 분노가 임계점을 뚫어버린 그는 박지훈에게 덤벼들었고.

보기 좋게 짓밟혔다.

“별것도 아닌 잡놈이 까부네. 진짜.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덤벼봐.”

“개X끼! 죽여버릴 거야!”

악을 쓰며 다시 덤벼드는 그를 제압하며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야. 네 인생은 내 한마디면 망가질 수 있어요. 그게 이해가 안 돼? 그럼 지켜봐.”

그 말을 끝으로 그를 기절시켜버린 뒤 두 사람은 유유히 떠났다.

이후부터 그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각성자로서의 모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심지어 각성자의 물품을 파는 어떤 매장에선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그에게 판매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자신은 그토록 노력했을 뿐인데.

그날 이후 그는 반쯤 속이 문드러졌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완전히 문드러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앞날이 완전히 박살 났을 때.

그는 민아를 만났고 그녀에게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소리를 들었다.

-나 그 사람이 더 좋아. 네가 도와준 건 고맙지만…… 어차피 푼돈이었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우리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서로 갈 길 가자. 애초에 너랑 나랑 급이 맞니? 외모도 재력도 등급도.

자신의 모든 버팀목이 부서진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를 벼랑으로 떠밀었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의 의지를 모두 잃어버렸고.

그렇게. 절망한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고 괴롭고 슬프며. 역겹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차라리 죽자. 죽어서 이 개같은 놈의 세상. 떠나버리자.

그의 결정은 금방 내려졌고, 그는 결국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 * *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초단이는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남녀 간의 연정 같은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야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 화가 난다.

정말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날 수준이었다.

그의 절절한 감정에 이입되듯 분노하는 초단이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붙잡고 진정한다.

그녀가 나서서 뭘 한다는 건 오지랖이니까.

하지만.

둘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이 개 XX 해서 XXX를 튀겨먹을 새끼가. 처음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삶의 의욕을 잃었다고 위로라도 해줄까 했더니만…….”

“와. 이건 진짜 아니지!!!”

격분하는 에반젤린과 비화를 보며 초단이는 생각했다.

아. 이거 내가 잘못한 게 아니구나. 화나는 게 맞구나.

그렇게 초단이는 새로운 것을 배웠다.

“야. 모여봐. 이거 그냥 못 넘어가.”

“오지랖인 거 아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초단이 언니 친구잖아. 그럼 우리 친구이기도 하네!”

별의별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분개하는 세 자매였다.

처음엔 별로 관심도 없고 쌀쌀맞게 대하던 것도 잊어버린 뒤였다.

그리고.

“저희도 참전해도 될까요?”

“륀느가 강력한 제제를 높게 평가.”

“이건 좀 심하네. 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줄게.”

유리아와 륀느, 그리고 점순이.

미식연구회도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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