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1화
“이 일은 절대 아빠한텐 비밀이야.”
에반젤린이 강하게 못을 박았다.
“아빠라면 함부로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 하겠지.”
정작 본인도 그러는 주제에 말이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걱정하시니까 하는 말씀이겠죠.”
물론, 에반젤린을 포함한 이들이 무리하게 힘에 심취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겠지만 세 자매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정리해보자. 초단이 네 친구인 배승우. 그 인간이 사랑해온 사람이 그를 배신했다. 요지는 그거네?”
다만 상황이 듣는 사람도 열 뻗치게 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냉정하게 분석해볼 건 두 가지야. 첫째. 이 이야기가 정말로 진실인가.”
“비화야…….”
“넌 좀 다물고 있어 봐. 그땐 상황에 이입돼서 나도 모르게 말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분석했을 때 그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어.”
“또 하나는 뭐야 언니?”
“만약 사실이고 우리가 돕는다고 쳤을 때 어떻게 도울 건지.”
“언니, 그냥 지난번처럼 각성자의 힘을 회수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넬타리드의 권한을 마구잡이로 침해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그놈 S급 내정이라고 했던가? 이미 S급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을 품었을 거야.”
“그게 중요해?”
“이게 설명이 참 어려운데…….”
비화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다 대답했다.
“S급이라는 건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준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넬타리드가 허용한 범위야. 그걸 간섭하는 건 넬타리드랑 정면으로…… 가만. 내가 왜 넬타리드의 상황을 봐주고 있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회수하기 쉬운 건 하위 각성자 정도지 S급의 힘을 마구잡이로 회수하는 건 나도 쉽지 않아.”
이미 많은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초단 언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도와주고 싶어…… 내가 이래저래 곤란할 때 많이 도와준 사람이야.”
성정이 착했던 승우는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을 돕는 걸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착한 사람이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초단이의 말에 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사실 여부는 내가 알아…….”
말을 하던 찰나 다수의 고양이들이 그녀의 곁에 나타난다.
“X. 하필 이럴 때.”
“돌아가야 해?”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일단 기다려. 둘이 괜히 허튼짓하다가 사고 치지 말고. 정말 그렇게 되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
비화가 자신의 성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자 유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아가씨. 그 부분은 저희가 해결해도 될까요?”
“미식연구회가?”
“네~ 잠입 정도는 어렵지 않답니다. 궁극의 미식연구를 위해선 많은 정보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레시피는 며느리도 알려주지 않는다잖아요?”
“설마. 남의 비전을 훔치거나 그랬어요?”
“설마요. 살짝 맛만 보고 돌아온 게 전부인걸요.”
저게 미식연구회야 정보국이야.
언뜻 듣기로는 미식연구회의 기행은 아이나 헬리샤나가 있는 정보국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라는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저리 자신만만해 하는 걸 보니 일단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알았어. 다만, 조금이라도 상황이 어긋나면 괜한 짓 하지 말고 물러나. 너희들이 들키면 귀찮아지는 건 아빠야. 난 아빠의 삶에 어떤 스크래치도 남길 생각이 없으니까.”
비화가 단호하게 말하고 사라지자 에반젤린이 초단이에게 물었다.
“초단 언니. 아빠가 귀찮아할까?”
“음…… 글쎄. 아버지는 별로 신경도 안 쓰실 거 같지만 그래도 비화의 말을 듣자. 비화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자. 그럼 출발해볼까요? 가볍게 잠입만 하자구요. 필요한 정보를 캐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
* * *
정민아가 배승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갈아탄 인물인 박지훈은 제법 금수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집안이 상당한 힘과 돈을 얻게 된 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단기간에 급부상하며 주가를 날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똑바로 하란 말이야. 내가 그러라고 너희들 월급 주는 줄 알아?!”
퍽!!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 사내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사내의 표정이 팍 찡그려지며 몸이 구부러졌다.
“끄윽…….”
“그놈이 아예 숨도 못 쉬게 만들라고.”
“하……하지만 이 이상 압박하면 협회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협회? 그놈들이 이쪽을 신경이나 쓰겠어? 사방팔방에 사고 치는 놈들투성이인데. 일일이 신경쓸 틈도 없겠군. 그리고.”
짧게 이죽거린 그가 고개를 돌렸다.
‘조만간 국회에서 협회의 권한을 줄일 법안이 발의될 테니.’
어차피 세상일이라는 것은 권력이 중심이다.
세상이 아무리 큰일을 겪어도 권력자라는 것들은 다시금 고개를 들이밀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습성이 있다.
가장 큰 변수는 협회와 관련이 있는 티오니스 성자이지만 직접적으로 협회와 충돌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별문제는 없겠지.
그는 이런 길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자연재해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간 응접실에는 한 여성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앉아있는 게 보였다.
“왔어?”
“아. 선배.”
“이제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럼 오빠라고 부를까요?”
“그건…… 나쁘지 않군.”
씨익 웃으며 앉자 그녀가 요사스럽게 일어나 그의 다리에 앉아 목에 팔을 걸었다.
“그런데 오빠. 그 일은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잘 진행되고 있지. 넌 아무 걱정하지 마. 내 여자가 된 시점에서 그 누구도 널 건드리지 못해. 넌 이제부터 쭉쭉 승승장구해서 상위 각성자가 되는 일만 남은 거야.”
상위 각성자.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는 각성자. 그것도 상위 각성자에 대한 대우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실제로 몬스터를 저지할 수 있는 최고 전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등급을 더 올리기엔 아직 마나가 부족한데…….”
“걱정 말래도. 이름만 먼저 올리는 거야. 길드의 이름을 이용해서 널 우선 A급으로 책정한 다음 영약이든 몰아주기든 해서 등급을 올리면 되지.”
“진짜!?”
“그럼, 각성자들의 등급이란 건 말이야. 재능이 미쳐 날뛰는 놈들 몇몇을 제외하면 다 재력으로 어떻게든 돼. 그러니 넌 아무 걱정 마라. 조만간 A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
“안되면…….”
“쓰읍. 뭔 걱정이 많아. 안된다고 누가 뭐라 해? 괜찮아. 어디 갈 것도 아니잖아. 내 곁에 있으면 네가 A급이 아니라도 아무도 몰라.”
“지……진짜지? 나 믿어도 되는 거지 오빠?”
“……그……그래. 오빠만 믿어.”
기분이 좋은 듯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입을 맞추는 정민아를 보던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난 오늘 네 A급 심사 서류 정리해야 하니까. 지금은 일단 쉬고 저녁에 식사나 같이하자.”
“그래! 기다릴게!”
문을 닫고 응접실을 나온 그는 한발 두발 내딛기가 무섭게 미소를 지웠다.
“귀찮은 년. 적당히 가지고 놀려고 했더니. 의심만 많아선.”
몸에 묻은 무언가를 툭툭 털어내기가 무섭게 곁에 있던 한 여성 비서가 다가와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늘 할 일인가?”
“네. 도련님.”
“음?”
의아한 듯 젊은 여성을 본 박지훈은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번에 비서실로 승진했습니다. 유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나? 성은?”
“성이 유, 이름이 나입니다.”
“독특한 이름이군. 따라와. 오늘 할 게 많으니까. 인수인계는 다 받았겠지?”
“그럼요. 문제없이 보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건 좋군. 아참. 그리고 그 백승우인지 백숙인지 하는 놈은 내가 분명 처리하라 했을 텐데.”
“마침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분했습니다만 그의 상태에 대해서도 보고 드릴까요?”
“됐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들이 어떻게 망가지든 사실 내 알바가 아니지. 단순 여흥인데.”
“여흥……인가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따라와. 여기서 들은 이야기를 괜히 어디 가서 하지 말고.”
그 말에 유나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그녀의 뒤로 푸른 정령의 기운이 스르륵 하고 움직였다가 사라졌다.
같은 시각.
어두운 기계실 내부로 누군가가 빠르게 진입해 들어왔다.
사박…….
새하얀 붕대만 감긴 맨발이지만 걷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듯 작은 소녀는 허리춤에 나 있는 작은 날개를 작게 펄럭이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연결된 데이터베이스 서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입자들이 모여들며 그녀의 손등 위로 특수한 장치가 생겨났고 거기서 뽑아낸 선을 이용해 장치에 연결한다.
“동기화 개시. 륀느의 정보수집 능력을 높게 평가.
그녀의 눈동자 주변으로 엄청난 문자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광학미채 사용.”
그때 그녀의 눈이 잠깐 크게 뜨여지더니 이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고 동시라고 할 시간에 일부 인간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휴……. 이놈의 장비들. 맨날 말썽이야.”
그들은 서버를 관리하는 직원들이었다.
“우리야 성과금 나오니까 상관없긴 하다만…… 귀찮은 것도 사실이니까 일이나 하세.”
여러 장비를 꺼낸 뒤 문제가 생긴 서버 장비를 오픈한 그들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거참…… 이놈의 장비는 툭하면 말썽이군.”
“군소리 말고, 이거나 교체하게.”
“그런데 저건 그냥 두는가?”
“뭘…… 아아. 여기온지 얼마 안됐구먼. 저건 건드리지 말라더군. 폐기 장비라고.”
“그런데 폐기 장비를 저렇게 두나?”
“모르지 않에 중요한 걸 숨겨놨을지. 괜히 들쑤시다가 피 보지 말고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일만 하면 돼.”
이윽고 장비를 마치고 돌아간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던 륀느는 사뿐사뿐 걸어 홀로 가동정지 상태인 장비를 올려다보았다.
“조사개시.”
이윽고 그녀의 해킹이 시작된다. 물론. 내부에는 상당한 프로텍트가 걸려있는 듯했지만 이미 지구에 온 지 수년간 많은 정보를 종합하며 진화해온 륀느에겐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CIA 정보가 더 어렵다고 평가.”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는 륀느였다.
그녀는 수 시간 동안 몸을 숨기며 박지훈이 소속되어있는 그의 부친의 길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빼돌렸다.
“필요정보 획득 완료. 복귀를 요망.”
-수고했어요. 이쪽도 필요정보는 어느 정도 챙긴 거 같으니 이제 그만 복귀하도록 해요. 흔적은 남기지 말고요.
“확인.”
짧게 답한 륀느는 연결된 것들을 모두 회수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날아 환풍구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같은 시각.
미식연구회의 세 번째 멤버인 점순이는 한창 몽롱한 얼굴로 환상을 헤매는 그들을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바라보았다.
“뭐 별로 필요는 없겠네. 그런데 참 기가 막힌단 말이지. 이런 일을 한두 번 저지른 게 아니라니…….”
손뼉을 가볍게 치자 그녀의 주변으로 날아다니던 빛을 뿌리는 나비들이 사라진다.
동시에 환각에 빠져있던 이들이 모두 멍하니 그녀를 직시한다.
“내려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그리고 이번엔 다른 사람 보낼 필요 없어.”
그 말에 두 사원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사라졌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나비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 * *
“가끔씩 느끼는데. 당신들이 어떻게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잘 알겠네요.”
“어머. 그런 말씀은 좀 서운한데요?”
“서운하기는……. 이게 말이 돼요? 나름대로 상위 길드잖아. 보안이 철저한데 어떻게 반나절도 안 돼서 길드 사정을 모조리 털려요?!”
“그야…… 길드가 허술해서? 아가씨. 하인스 영지에서 똑같은 짓 하다간 30분도 안 돼서 모조리 잡힐 거랍니다. 오히려 미국 정보국인 CIA 쪽이 좀 더 짜릿할 거에요.”
“하…… 그거야 당연한 거고……. 유리아 언니는 무슨 잠입 액션을 그렇게 과감하게 해요?! 들키면 어쩌려고.”
“예전에 은공의 곁에도 잠입했던 저랍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이가 없지만, 그들이 가져와 준 정보는 제법이었다.
“웃긴 놈들이네. 협회 쪽에서 알면 난리도 아니겠어. 뭐 상관없지만.”
지구의 각성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건 사실 무슨 상관일까.
물론, 협회와 관련이 있는 현아를 생각하면 이 정보를 넘기는 게 맞겠지만 괜히 이걸 넘겼다간 캐묻기라도 하면 피곤해질 터였다.
“나중에 일 다 끝내고 고모한테 보내야겠다.”
“어떻게 할까요? 그 정민아라는 여성 쪽도 조사해볼까요?”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좀 부탁드릴게요. 비화 언니가 올 때까지는 해야 하니까.”
“물론이죠. 엄청 재미있답니다.”
“그냥…… 미식연구회 이름 바꾸죠? 정보국으로.”
“농담이 재미있네요.”
농담이 아닌데.
승우는 현재 심신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기에 치료를 위해 수면제를 먹인 상황이었다.
“나 왔어. 아오! 넬타리드 이 개X끼!”
열이 뻗친 듯 넬타리드를 욕하며 나타난 비화가 씩씩거린다.
“언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뭐 이렇게 이상한 짓을 많이 해놨어!”
“큰일인 거야?”
“그건 아닌데…… 좀 귀찮게 됐지. 그보다. 어떻게 됐어? 정보는? 내가 알아보러 갈까?”
비화가 나서면 사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작정하는 순간 잠입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질 테니까.
“그러면 재미없죠. 마침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수집했답니다.”
유리아는 서류와 녹음장치를 꺼냈고 륀느는 서버에서 빼낸 정보가 담긴 드라이브를 점순이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새 한 거야? 첩보 느낌 나서 재미있다. 그래. 결과는?”
“결과야 나와 있지만, 이제부터 확인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유리아가 꺼낸 녹음기를 가동했다.
-아니 내가 시킨 건 똑바로 하란 말이다! 니들 머리엔 똥만 차 있어?! 어?! 전부 길거리 나앉고 싶어?! 사람 하나 퇴학시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난리야!!
격한 외침이 들려온다.
“이 목소리 주인은…….”
“이름은 박지훈. 나이는 20대 중후반 정도에요. 그리고 승우 씨의 연인이었던 정민아와 정분이 난 인물이죠.”
“……그리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네. 그런데 이게 전부야?”
“아뇨.”
이후 유리아는 다시 녹음기를 가동했다. 그 안에는 그가 정민아의 등급을 조작하려는 듯한 목소리와 배승우를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버리기 위한 말들이 담겨있었다.
“물론, 상황은 이미 많이 흘러서 필요한 정보를 육성으로 담아내진 못했지만요.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있었어요.”
“륀느 또한 마찬가지.”
“이쪽도. 이놈 이거 이런 일을 저지른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야.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은근슬쩍 빼앗는 거지. 그것도 상대가 있는 여자만 노리는 악질이고.”
정민아는 평생을 서로 지지해온 배승우를 욕심 때문에 버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만난 남자는 정민아 이상으로 지독한 놈이었다.
“뭐. 이건 필요한 정보로 두고. 현재 상황을 미뤄볼 때 이야기는 이렇게 접목할 수 있어요. F급 각성자였던 정민아는 B급이 되면서 욕심이 생겼고, 그런 틈을 놓치지 않고 박지훈이 그녀의 틈을 파고들면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뭐 이런 이야기죠. A급 이상의 각성자로 만들어주고 그녀의 모든 활동에 보조를 해준다.”
“필요한 장비. 필요한 지원 영약. 모든 면에서 단순히 거부하기 힘든 수준의 지원은 확실하다고 평가.”
“웬만해선 넘어가겠네. 그래서. 욕심에 흔들리던 정민아는 문제가 적은 편이다?”
“누가 그래. 그년 그것도 또라이야. 도움을 받은 건 받은 거지만 자기 위치가 올라가니까 마음이 바뀐 거지. 내가 아무리 그래도 B급에 재능까지 A급에 도달할 수 있는데. 고작 이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해도 되나.”
그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배승우가 창백해진 얼굴로 손에 든 스마트폰을 부서뜨리고 있었다.
“정말……인가요?”
“이미 직접 확인한 문제니까 정보의 신빙성에는 문제가 없어. 유일한 변수라면 그게 본심이 아닌 경우인데…… 그건 아닌 거 같아. 겉으론 만난 지 얼마 안 됐다……라고 하는데. 알아보니까. 정민아 이 여자 B급 측정받자마자 그와 연결점이 있더라.”
B급이 되자마자 욕심이 생겨난 것이다. 그가 도와준 건 모두 잊고 자기 정도면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고작 이 정도에 멈출 이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쪽 과로 이전한 것인가.
“어떻게 하고 싶어요?”
초단이의 물음에 그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함께 지탱해왔다. 그녀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서 삶의 전부였으니까.
“너무 억울해요……. 이런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고작 C급인 것도! 그녀에게 아무런 복수도 못 하고 있는 것도!”
“복수하고 싶어요?”
에반젤린이 뒤이어 묻자 그가 이를 빠득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고 싶어요. 무슨 짓을 해서든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그냥 하면 재미없지. 그쪽이 당신을 가지고 놀았으니까. 이쪽도 가지고 놀아볼까?”
“어떻게요?”
“너…… 네가 가진 각성자 힘이 뭔지 모르지?”
“네? 그냥 육체 강화…….”
“아니야. 너 그런 단순한 능력이 아니야.”
비화가 빙그레 웃었다.
“네 힘은 말이야. 증폭이야.”
“증……폭?”
“그래. 네 힘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힘까지 증폭시키는 능력. 웃긴 건 잘나신 어떤 놈이 네 힘에 리미트를 걸어놨더라고. 나는 풀어줄 수 있어. 어떻게 할래. 더럽게 아프긴 하겠지만. 성공하면…….”
“하겠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외치자 비화가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탁월한 선택. 그럼 계획을 수립해볼까?”
“일단 언니 말대로 증폭이면…… 그 정민아라는 여자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는 거네?”
“그보다 심하지. 그년은 이제 점점 약해질 거야.”
비화는 비웃음을 날렸다.
“평소에 고마움을 모르는 것들은 어디 한번 크게 데어봐야 해. 그리고 그 박지훈이라는 놈 말이야. 이놈이 피해를 준 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지?”
“륀느가 긍정. 해당 관련 일로 파묻어버린 각성자의 수가 일곱은 된다고 분석 중.”
“기가 막힌 새끼네 이거. 그럼 이렇게 하자. 우선 저 녀석의 등급을 계속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뭐가 됐건 이 녀석이 잘나가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성립이 안 돼.”
비화의 스산한 미소에 초단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기…… 내가 할 일은…….”
“사실 네가 할 일은 없어. 에린이 넌 나중에 좀 도와줘야겠다. 그리고 미식연구회는 지금처럼 정보를 계속 모아줄 수 있지?”
“그럼요.”
“니들 말이야…… 미식연구회 이름 바꾸지 않을래? 정보국으로.”
“아까도 들은 말이네요.”
자매는 자매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