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3화
각성자에게 자신들의 등급을 올려줄 수 있는 이는 그야말로 하나의 보물이나 다름없다.
뛰어난 장비나 영약을 먹는 이유도 그런 이유였으니까.
물론, 버프형식의 마법을 쓰는 이들이 없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은 1~20퍼센트씩 강해지는 정도였지만 배승우가 가진 힘의 증폭은 그 계열이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그 증폭 방식이 단순 강해지는 게 아니라 잠재력의 개화에 가깝기에 그와 함께 할수록 성장에도 막대한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다.
그야말로 밸런스를 파괴시키는 존재.
그렇다고 해도 그가 끝도없이 성장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를 확보하는 길드는 더 높은 게이트를 손쉽게 공략할 수 있는 키를 얻는다는 것이다.
길드뿐만 아니라 각성자의 확보에 눈을 켜는 여러 국가들에게도 그의 존재는 매력적인 우량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정작 배승우는 자신의 힘이 이런 것이라는 것에 영 적응을 못 한 듯 보이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망의 점검 날.
비화와 에반젤린 그리고 초단이는 조카의 필살 애교를 선보이며 현아를 살살 녹여버렸고 수많은 이들이 배승우의 검사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막지 않게끔 풀어버렸다.
그리고.
검사가 끝났을 때 배승우는 C급 하위 각성자에서 특수한 S급 각성자로 급부상했다.
그의 기본적인 육체능력은 사실상 S급 힐러들과도 크게 차이 없을 정도로 높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각성자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건 S급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힘이었다.
한순간에 로또 맞은 것처럼 각성자 인생을 역전해버린 배승우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엄청난 인파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수많은 러브콜이 떨어졌고 협회에서도 그가 협회소속이 되기를 바라는 낌새를 보일 정도였다.
각성장 업계에선 그야말로 살아있는 토템이나 다름없는 그를 영입하려고 필사적이었다.
박지훈의 부친이 이끄는 신라 길드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이 사람입니다.”
배승우의 각성자 명단을 보여주며 회의가 시작되고 박지훈은 조용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가 가진 힘은 이례적입니다. 그를 확보할 수만 있으면 길드의 클리어 가능 범위를 압도적으로 늘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A급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S급조차 더 강하게 만든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어떻게 할까요. 영입 시도해볼까요?”
“…….”
정작 박지훈은 짜증이 치솟았다.
배승우를 모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그가 묻어버린 사내였으니까. 비루하고 별 볼 일 없는 C급 각성자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다고? 누가 뒤에서 밀어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저희 측의 우수한 조건을 내걸면 충분히 섭외 가능하다 봅니다. 누가 바보같이 실수만 저지르지 않는다면요.”
아직 배승우와 박지훈의 관계를 모르는 영업팀 일부는 알게 모르게 박지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일단 진행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그는 회의실을 나온 뒤 제 아버지를 만났다.
“지훈아.”
“예 아버지.”
“이번에 새로운 S급 각성자 이야기 들었느냐?”
“……네. 들었습니다.”
“네가 나서라. 그를 꼭 영입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게…….”
아직 그의 아버지는 배승우가 아들과 어떤 관계의 인물인지 몰랐다.
“왜. 무슨 일 있느냐?”
“아……아닙니다.”
아버지에겐 그저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처리했다 정도로 말했다.
박지훈의 아버지가 배승우가 그의 취미로 인해 이미 한번 희생된 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짜증이 날 대로 난 박지훈은 개인 연습실에 처박혀있는 정민아를 찾아갔다.
“아 씨!! 왜 안 되는 거야!!!”
악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정민아는 갑작스런 지훈의 등장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목을 가다듬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다가갔다.
“오빠~”
“…….”
“무슨 일이야? 나 보고 싶었어?”
이 속 빈 년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말이야. 요즘도 그놈하고 연락해?”
그의 물음에 정민아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오빠. 다 정리했어. 이제 내 옆에는 오빠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안겨드는 그녀를 보며 박지훈은 차갑게 조소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저녁에 식사나 하자. 그리고 나 지금 좀 바빠서. 다시 가봐야 할 거 같아.”
“어……어? 응 알았어.”
“그래. 아 그리고 영약 먹은 건 어때. 효과가 있어?”
“어……영약? 아아…… 효과…… 있지! 있어!”
“그래. 좋은 기대해볼게.”
비록 남의 여자를 빼앗는 취미가 있다지만 배승우가 그만한 황금알이라는 걸 알았다면 굳이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민아는 그에게 딱 그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연습실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이전에 봤던 여비서가 서류를 내민다.
“여기 말씀하신 서류에요.”
“내놔.”
차갑게 말하며 서류를 읽어내려가던 그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B급? 하? 장난해? 그 비싼 영약 처먹고 오히려 내려간다고?”
“글쎄요. 저는 일단 결과가 나온 대로 보고를 가져온 터라…… 자세하게는…….”
“쓸모없기는. 됐다. 다시 한번 조사해봐. 이런 케이스가 있었나?”
“제가 알기론…… 없죠?”
옅게 웃으며 보고하는 그녀를 보며 박지훈은 혀를 짧게 찼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이름이 유나라고 했나?”
“네.”
“혹시 남자친구 있나?”
“……없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가 대답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후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던 유나는 씨익 웃으며 돌아섰다.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스르륵 변하더니 유리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제집마냥 드나드는 그녀의 모습에 여유가 가득하다.
“비화 님. 계획 성공했습니다.”
-이제 필요한 정보는 알았을테니 슬슬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겠지. 그럼 쐐기라도 박아볼까?
“제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아가씨…… 참 잔인하세요. 쿠쿡…….”
-웃음기부터 빼고 말하지? 그보다 고생했어. 어서 복귀해.
“네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하며 그 장소를 벗어났다.
* * *
배승우의 능력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그의 인맥에 대해서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이 실시됐다.
“와…… 진짜 굉장한데요?”
-미친. 저게 뭔 능력이야 ㄷㄷ
-S급이라길래 괜히 거품인 줄 알았는데 미쳤누…….
오랜만에 공략방송을 하면서 그와 친분이 있음을 드러냄은 물론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의 의심을 종식시킨다.
그 외에도 세계적인 가수로서 한때 활동했던 초단이가 그와 친근한 모습을 이리저리 보여주며 배승우가 단순히 능력뿐만 아니라 티오니스 성자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까지 퍼뜨렸다.
그냥 능력만 해도 굉장한데 티오니스 쪽과 관련이 있다?
일전 발해 길드의 연수아의 사례를 아는 길드들은 이제 그의 존재에 대해 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또 지났다.
각성자 업계에선 그가 활동할 때마다 그의 힘이 가져다주는 여파에 대해 굉장히 많은 호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를 통해 본래 가고 싶었던 길드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본래 가장 가입하고 싶었던 길드가 박지훈이 있는 그 길드. 신라 길드라고.
하지만.
“아. 그럼 신라 길드에 가입할 수 있으면 가입하실 건가요?”
-신라 길드요…… 사실 과거형이긴 합니다. 복지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렇네요. 그 길드에 당한 게 있어서.
“당한 게 있다구요?”
에반젤린이 인터뷰를 하며 놀란 듯 물었다.
-네…… 개인적인 일이라…….
그 영상이 이리저리 퍼져나간 뒤 박지훈은 그의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퍼억!!!
“못난 새끼.”
“…….”
“네 취미야 네 마음대로다. 네가 무엇을 하건 내가 어디 간섭했더냐.”
“아버지 그가 그런 힘을 품고 있을지 몰랐습니다.”
“닥쳐라. 지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네 손으로 내친 거다. 알고 있나?”
“아버지 하지만…….”
“듣기 싫다. 고작 여자를 후리는 데에 빠져서 길드의 자금을 멋대로 유동했던 것도 눈감아줬더니 뭐? 오히려 등급이 내려가? 그런 주제에 정작 큰 효능을 가져다줬을 녀석을 내치고 몰아붙였다고? 그놈은 이제 S급이다! 그놈의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 파급력을 가진단 말이다!”
“그게…….”
박지훈은 죽을 맛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비렁뱅이 하급 각성자가 설마 이렇게까지 떡상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못난 놈. 당장 나가라! 꼴도 보기 싫으니. 그리고 길드는 네 동생에게 물려줄 거다.”
“……아버지?!”
“이미 결정 났다. 이사회에서도 만장일치다. 시골에나 가서 근신해라. 번복은 없다.”
그렇게 쏘아붙이며 그를 쫓아낸다.
박지훈은 길드장 실을 나온 뒤 자신의 집무실로 왔고 그대로 주변의 기물을 다 쳐내며 악을 썼다.
“으아아아악!!!!”
그리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악을 쓰던 찰나 노크 소리와 함께 유나로 변장한 유리아가 들어온다.
“말씀하신 보고서입니다.”
그녀에게 화를 내려던 박지훈은 여유로운 그녀의 미소에 짜증을 내고는 거칠게 서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C급? 장난해? B급이 어떻게 C급이 된다는 거야!”
“그게…… 저희 측 연구에 따르면……. 그 배승우라는 각성자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면서 그의 능력에 오랜 시간 영향을 받아 강해진 거로 보입니다.”
“그 말은…….”
“네. 그와 떨어졌으니 점점 내려가겠지요. 그녀의 재능은 사실 F에서 더 올라갈 수준이 아니었다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빌어먹을 년…….”
욕지기를 내뱉으며 그가 일어났다. 애물단지 밖에 안되는 주제에 길드의 자금을 털어먹고 있는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일을 방해해버린 방해꾼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정민아는 같은 길드의 각성자들에게 한창 왕따를 당했다.
낙하산처럼 밀고 들어올 땐 그래도 장래가 유망한 각성자로써 했으나 그녀는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특혜란 특혜는 다 받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등급이 떨어졌고 이번 일도 길드 내에 알려졌으니 아주 입장이 곤란했다.
한창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한 그녀였지만 정작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준다던 박지훈은 그녀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최근 들어 굉장히 쌀쌀맞아졌다.
“이럴 순 없어. 난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울먹거리며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승우를 다시 만나서 강해지면 돼. 내가 다시 부탁하면 될거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곧바로 길드를 빠져나갔고 승우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집에 있던 승우를 만날 수 있었다.
“승우야!”
그녀가 황급히 승우에게 다가갔다.
과거의 꾀죄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모습은 꽤 깔끔했다.
지금 보니 박지훈보다 훨씬 잘생겼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착한 남자였는데. 자신을 위해 헌신했는데.
뭐가 씐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승우의 팔을 잡았다.
“나랑 이야기 좀…….”
파악!!
하지만 이미 떠난 버스였다.
“뭔데 잡아. 안 꺼져?”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차가움이 그녀의 전신을 잠식했다.
“스……승우야?”
“꺼져. 너 같은 년이랑 할 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가 고개를 든다.
동시에 멀찍이서 초단이가 달려와 그에게 해맑게 웃었다.
“승우 오빠. 기다렸어요?”
“아. 초단아. 그래. 갈까?”
“그럴까요?”
초단이의 연기에 정민아는 멍하니 그녀와 승우를 보다 소리쳤다.
“잠깐!!!”
“뭔데.”
“두……두 사람 대체 무슨 관계야?”
떨리는 눈동자로 그가 어렵게 묻자 승우가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그걸 왜 대답해줘야 하는데? 그보다. 왜 안 가고 버티고 있어. 안 꺼져?”
그의 말에 정민아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의 힘을 되찾아줄 승우는 이미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않았다.
“이럴 순 없어…… 승우는 나뿐이었다고……. 아니야 이거 다 거짓말이야…… 승우야 이러지 마! 나 진짜 무서워!”
“어쩌라고. 초단아. 가자.”
“네.”
옅게 웃으며 그와 함께 걸어가는 초단이를 보며 정민아는 소리 질렀다.
신라 길드. 박지훈. 다 좋다. 하지만 이제는 별로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을 왕따나 시키는 신라 길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옆자리를 다시 차지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야! 배승우!! 너 이렇게 나 버릴 거야?! 진짜 버릴 거냐고!”
그의 외침에도 승우는 들은 채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갔다.
이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개인전에 한해서 아직 그녀의 힘은 그보다 높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초단이의 손이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파악!! 퍼억!!!
그리고 엇! 하는 순간 그녀는 바닥을 뒹굴었다.
“오빠…… 이 사람 대체 왜 이래요?”
“몰라.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가자. 내가 커피 쏠게.”
“진짜죠?”
끼를 부리듯 말하는 초단이를 보며 쓰러진 정민아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초단이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죄송해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뭐……뭐라고?!”
그녀가 반문하듯 소리쳤지만, 초단이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버린 그녀는 그렇게 힘없이 길드로 돌아왔고.
짜악!!
“이 시국에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박지훈에게 뺨을 맞았다.
“때……때렸어?! 대체 어떻게!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닥쳐 이년아. 너 때문에 지금 모든 게 망하고 있으니까!!”
그의 외침에 정민아는 초단이가 떠나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던 말.
그게 섬뜩하게 그녀의 가슴을 난자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