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6화
배승우를 습격하려 했던 범죄자의 리더 박효수는 객관적으로 자신이 조졌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범죄자이며 지명수배를 받는 이들이다.
그 동기야 다양하겠지만 박효수의 경우 던전 내에서 같은 파티원을 간살한 죄명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 충동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는 그 일에 제법 흥미를 얻었고 수차례 같은 짓을 벌이다가 적발되었다.
당연히 그는 지명수배자가 되었지만 제법 강한 각성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는데 이골이 난 그라도 현재 상황 속에서 빠져나갈 수단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거래를 제안했으며 뒷배가 되어준 박지훈?
그가 여기 올 일도 없거니와 온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눈앞에 있는 세 명의 소녀가 어떤 이들인지 모를 리가 없는데.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면 당장 침을 삼킬 정도로 예쁘장한 소녀들이지만 그에게 지금 닿는 감정은 공포뿐이었다.
“사……살려만 주신다면…….”
“흐음…… 그래. 어디 이야기해봐. 뭘 어떻게 하려고 했다고?”
비화의 물음에 그는 덜덜 떨며 대답했다.
이상하게 두 소녀와 달리 비화만큼은 똑바로 고개를 들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체 모를 지독한 죄책감이 그의 전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가……간에 부상을 입히라고 했습니다. 각성자들의 해독능력은 뛰어나기 때문에 독을 쓰기 전에 반드시 간의 상태를 나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간이라는 게 해독작용을 하는 장기이긴 했다.
“그래서. 그 독이 뭔데?”
한참 어린 소녀지만 그녀의 반말에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그……그게…….”
쩌엉!!!
그의 바로 앞의 지면이 움푹 파여 들어가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계속해.”
“매……맹독입니다! 하위 각성자는 그대로 마나가 흩어져서 각성자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그런 약입니다!”
“하위 각성자?”
“네……넵! 다.다만 듣기로는 상위 각성자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서 장기간 힘을 약화시킨다고 들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영구적으로 힘의 지표를 낮추기도 한다고…….”
그 말에 초단이가 인상을 찡그렸고 에반젤린은 뭔가 생각하듯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독이 있었다고? 듣도 보도 못했는데.”
“아마 유르기안에서 온 물질일 거야. 아빠가 전에 하는 말을 들었어. 각성자의 몸에 부하를 일으켜서 마나의 운용을 막는 성분이 있다고.”
“예……예! 그겁니다요!”
박효수는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다……다 박지훈 그 인간이 시킨 겁니다! 주변 경계가 허술해졌을 때 잠입해서 그의 몸에 상처를 남기라고…….”
“그런 것치고는 다른 세 명은 그냥 보내주던데.”
“그게…….”
말을 하던 박효수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 저 멀리서 새하얀 토끼들이 세 명의 남성을 어깨에 짊어진 채 다가온다.
“어딜 갔다 온 거야.”
그 말에 보팔레빗의 분신체 중 하나가 손짓을 하며 무언가 의사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표정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게…… 어차피 거래내용에는 저 사람만 살짝 손대면 되는 거라. 나머지는 굳이 건드릴 필요가…….”
“진짜 이유.”
“그게…… 최근에 좀 쌓여있어서…… 남자는 치우고 여자들은 조금…….”
“이 미친 새끼가.”
퍽!!!
비화가 가차 없이 그를 걷어차 버리자 그는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가볍게 걷어찼음에도 그의 팔이 부러진 것처럼 기이하게 꺾였다.
그럼에도 비화는 가차 없이 그의 나머지 팔과 다리도 짓밟아 분질러버렸다.
“끄아아아악!!!!”
애초에 이놈들은 배승우와 파티를 했던 남녀 혼성그룹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박지훈이 시킨 거라 이거지?”
“끄윽……흡……. 예. 사……살려주세요!”
“언니. 어떻게 해?”
에반젤린이 비화의 의견을 물어오자 비화는 담담하게 박효수를 향해 말한다.
“네 몸에 붙은 원귀 잔념이 얼마일 거 같아?”
“네?”
“네 몸에 붙은 원한이 얼마나 되는 거 같으냐고.”
비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대지가 찢겨나가기 시작한다.
갈라진 땅 아래로 불지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무자비하게 흔들리는 대지에 모두가 당황한 듯했지만 비화의 표정을 보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보는 이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 지옥의 살풍경을 가리키며 비화가 말한다.
“지옥 불 구덩이야. 본래 이런 용도는 아니지만…… 내가 관리해야 하는 생지옥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예전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던 박서형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때 보여준 것은 고작 환각인데 반해 지금의 것은 진짜나 다름없었다.
“사……살려주십시오! 제발! 잘못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하길 바랐어?”
“으……으으으…….”
비화는 천천히 다가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는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본래 시스템은 네 영혼을 영혼의 강에 처넣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그에게, 그리고 그와 함께 다니는 범죄자들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잔념이 너무 지독했다.
“저 아래에서 네가 한 짓을 곱씹어봐. 네가 정말로 뉘우친다면, 그때 올바른 혼의 길로 인도해주지.”
쩌적!!
그말과 함께 박효수의 몸에서 반투명한 무언가가 천천히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비화가 그의 혼을 그대로 뽑아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혼을 지옥 밑바닥에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아!!!!
박효수의 영혼을 시작으로 비화는 이곳에 있던 이들의 영혼을 모조리 뽑아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지독할 정도로 가차 없는 그녀의 행동에 모두가 굳어버린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
“여신이라는 건 진짜 x같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봐야 하고.”
조용히 읊조린 그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제 편히…… 쉬라고 해본들 이게 무슨 위로가 될까.”
약간 잠긴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빛의 가루 같은 것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그녀의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방금 그건 뭐야?”
“저놈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잔념. 영혼은 영혼의 강으로 회수되었겠지만, 잔념이 남아있었어.”
물론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아……아아 이런! 이러시면 곤란하십니다!”
그때 허공이 찢어지며 저승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뭐가 곤란한데?”
“그……그게 영혼을…….”
“됐어. 내가 처리할 테니 이건 눈 감아.”
“그…….”
“우치 삼촌에겐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비화의 박력에 황급히 상황을 중재하려던 저승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승이도 처음엔 저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는 초단이였다.
* * *
“실패했다고…….”
박지훈은 마른세수를 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침착해야 한다. 실패는 예상했던 일이다. 다만. 이 일로 한 가지는 확실해진 셈이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던 일개 서민인 배승우가 그런 이들과 커넥션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티오니스 성자의 딸들과 그가 모종의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대입하면 확실히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배승우가 복수를 계획하고 있고, 그 모든 과정에 그녀들이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런 X발!!!”
쾅!!
집무실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폭주하듯 주변의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박지훈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대체……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정민아가 눈에 들어온 건 단순 우연이었다.
적당히 반반한 여성. 길 가다가 잠깐 본 그런 여성을 건드린 것뿐이었는데. 그 남친은 세계가 주목하는 레어 능력의 S급 각성자 자질을 지니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티오니스 성자와 커넥션이 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둘 다 있는게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배승우가 문제가 아니야…… 이 일로 티오니스 성자와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가 아는 티오니스 성자는 제법 상식적인 사람이지만 적대관계가 되는 순간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나서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승산이 없었다.
오죽하면 박지훈 같은 이들이 모이면 하는 말이 그쪽으론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겠는가.
괜히 긁었다가 부스럼이 생기면 그땐 늦는다고 했던가.
불합리하지만 티오니스 성자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지구는 이미 그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좋은 예시로 과거 타국에서도 여러 사례가 존재했었다.
“정계 꼰대 새끼들은 뭐 하는 거야! 그런 타국 인사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손톱을 잘게 물어뜯었다.
“빌어먹을 재수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건드렸지. 그쪽으론 쳐다보지도 않았지.
물론 이렇게 초조해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아직까지 티오니스 성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애지중지하는 금지옥엽들이 관련되어있다면 모든 것을 손절하고 상황을 중재시키는 게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후계 박탈을 당하면서 그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쾅쾅쾅!!!!
그때였다.
“박지훈!!”
단단히 화가 난듯한 외침이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의 아버지이자 신라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아버지? 무슨…… 컥!!”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그의 아버지는 그대로 그의 뺨에 주먹을 갈겼다.
그래도 각성자라고 주먹이 매섭기 그지없다.
“끄윽…….”
“못난 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왜……왜 이러십니까!”
“눈이 있으면 뉴스라도 봐라!!”
그가 한켠에 놓인 티비를 가리켰고 박지훈은 황급히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X발…….”
그는 직감했다. 이미 상황은 종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이다.
뉴스에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지명수배가 된 범죄자들이 배승우를 포함한 각성자 파티를 습격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 놓고 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들이 신라 길드소속. 박지훈의 사주를 받아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퍼져나 오고 있었다.
“아버지! 이……이거 누명입니다! 진짜예요!”
“멍청한 놈. 이 아비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느냐. 네가 그놈들과 연관되어있다는 것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즈……증거가 없잖아요! 대체 방송국 새끼들은 뭐하는 놈들이랍니까! 사실무근을 가져다가 사실마냥…….”
“증거가…….”
“…….”
“증거가 나왔단 말이다. 이 멍청한 놈…….”
속에서 무언가가 철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증거라니요…… 저는 진짜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
말을 하던 그가 흠칫 놀랐다.
“설마…….”
“그래. 그동안 네가 그놈들을 이용해서 일을 치고 놈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거나 뇌물을 먹였던 것들까지 전부.”
지명수배자인 그들이 그동안 들키지 않고 박지훈의 밑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했던 물밑작업들이 담긴 정보들이 모두 넘어갔다.
“말도 안 됩니다! 그건 이미 폐기한 데이터베이스에…… 설마…….”
“그래. 어떻게 알아간 것인지 몰라도 우리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은 정보에 그것들이 담겨있었다. 너뿐만 아니라 신라 길드는 물론 우리 뒤를 봐주던 정계 인물들까지 싸그리 쓸려가게 생겼다.”
한둘이 아니고 대량으로 엮인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괜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말도 안 됩니다! 그 정보들은 전부 제가 직접 폐기시켰습니다! 저건 가짜에요!”
“복구시킨 정보라더군…… 본래라면 복구하는 데 한참은 걸리게끔 더미 데이터까지 넣어놨다. 하지만…… 두 시간 만에 뚫렸다더구나.”
그 정도로 폐기된 정보를 복구시키려면 아주 작정을 해야 하는데 대체 누가 길드 사옥으로 숨어들어와서 그 정보들을 빼내고 복구까지 시켰단 말인가. 아무리 복구가 가능해도 특수 암호까지 걸린 정보인 만큼 복구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려야 정상이었다.
“그……그렇다면…….”
“네 뒤를 봐주던 그 치들은 이미 너를 손절했다.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건 물론이고 이 일로 너를 이용해 꼬리를 자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아……아아아!!”
아무리 S급 내정이라도 그는 아직 A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바에 S급 내정 각성자 하나를 쳐내는 쪽으로 돌린 듯 보였다.
“이걸 받아라. 비행기 표를 준비해뒀다. 넌 일주일 전에 이나라를 뜬 거다.”
“아버지!!”
“이제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조용해질 때까지 몸을 피해있어라.”
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못난 놈…… 때려죽일 놈…….”
그렇게 말하지만, 그의 눈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못난 놈이거늘…….”
아무리 아들이 못났다고 막말을 하는 아버지라곤 해도 아들을 향한 부정은 별개의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어서 가라. 검찰 쪽에서 들이닥치면 그땐 정말로 늦는다.”
“기……길드는…….”
“그건 네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다.”
그의 말에 박지훈은 아버지가 내민 여권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길드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반대편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비화 아가씨. 말씀하셨던 대로 그가 빠져나가고 있네요.”
-그럴 거 같더라.
“그냥 두셔도 괜찮나요?”
망원경도 없이 그저 압도적인 시력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리아가 묻자 비화가 차갑게 조소한다.
-경찰에 잡혀가면 그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러니 복수는 그 전에 끝낼 거야. 그 후에 잡혀가든 말든. 그 과정에서 각성자의 힘을 잃을 수도 있는 거고.
“가끔씩 보면 아가씨는 참 무서우신 분이세요.”
-일 처리를 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 주의라.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아……아니다. 이건 말할 문제는 아니네.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곳이 없어진 그는 최악의 수를 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그때가 복수의 마지막이겠지. 웃기지 않아? 남의 인생을 수도 없이 밟아버린 놈이 제 가족은 끔찍이도 아낀다니.
“그러네요. 정민아 때도 그렇지만 참 세상일이라는 게…….”
-아빠가 늘 말했잖아.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나는 그래서 싫어. 이 여신이라는 빌어먹을 자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게 하거든.
비화의 목소리에 짜증이 서렸다.
-이깟 세상 참 지랄 맞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가씨?”
-별거 아니야. 신경쓰지 마.
박지훈이 길드를 떠나 자취를 감추고 약 이틀 뒤.
그는 공항에서 해외로 뜨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어휴 머리 아파. 그래서. 이놈 이거 어디로 간 거야?”
“어디로 가긴. 내가 말했지? 그놈 반드시 돌아온다고.”
대체 그에게 무엇을 알려주었기에 그가 눈이 돌아가서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돌아온단 말인가.
아직 계획의 키포인트를 알지 못하는 에반젤린은 궁금증에 물었다.
“대체 뭘 보여준 거야?”
제작에 탁월한 힘을 지니고 있는 포도맛캣타워와 마가. 그리고 한때 제작 랭커였었던 알하자드까지.
세 각성자에게 애교를 피우고 필요장비들을 받아온 뒤 그것을 배승우에게 채워주던 초단이도 고개를 끼어들었다.
“나도 궁금해.”
“궁금해?”
“응. 지금 그가 승우 오빠를 찾고 있는 거잖아, 그래도 제법 냉철한 사람 같던데. 눈이 돌아가서 승우 오빠를 찾을 정도면…….”
초단이가 눈을 반짝이자 비화는 뭔가 씁쓸한 표정으로 초단이를 보다 시선을 돌려버렸다.
“별거 없어. 그가 해외로 튀면 그의 부친이 저지른 비리를 전부 세상에 폭로할 테니. 알아서 판단하고 이리로 찾아오라 했을 뿐이야.”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끔 보면 좀 무섭다…….”
에반젤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니. 나는 언니 참 좋아해. 그거 알지? 우리 천년만년 사이좋은 자매로 지내자.”
굳이 할 필요 없는 아부까지 하면서 말이다.
“눈물 나는 신파극이지? 적어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개 박살 낸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러네…….”
“박지훈은 이제 벼랑 끝에 몰린 거야. 앞뒤 안 보고 달려들 테지. 자존심이 강한 놈이니 이 이상 굽히고 들어오지도 않을 테고.”
비화가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배승우는 조용히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나가면 되는 건가?”
“그래. 마지막에 가서 용서를 하건, 복수를 완수하건 그건 스스로 결정할 몫이야.”
“용서는 없어. 그놈은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다만…… 한 가지만 정정하자.”
배승우가 웃었다.
“내 인생은 개박살 난 게 아니야. 너희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기에 오히려 전화위복이지, 다시없을 은혜도 입었고.”
“그 마음 평생 잊지 마. 우리가 이 정도로 오지랖 부린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게.”
그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