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9화
배승우의 복수가 끝난 직후 뉴스에서는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괴물의 형체와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신의 기적에 대해 떠들었다.
신의 기적.
단순 비유가 아니라 진짜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기절한 박지훈은 며칠 뒤에 깨어났지만, 그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아작났다는 사실과 각성자로서의 힘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에 극심한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물론, 그런다고 그가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의 구속에 신라 길드의 길드장이 부단히 그의 형벌을 깎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그 또한 여러 정계 인물들에게 찍혀있는 상황.
크게 나설 수는 없었다.
복수를 끝마친 배승우는 착잡함과 후련함을 뒤로한 채 초단이와 함께 다시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거라 말했다.
물론, 이전과 달리 S급이 된 그의 생은 이제 확연히 달라지리라.
그리고. 비화는 현재 데이비를 만나고 있었다.
“아빠.”
“이게 그 미쳐버린 천사라고?”
“네. 각성자의 몸에서 나온 거고, 각성자의 힘의 근원이에요.”
데이비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잠깐만, 그러면 지금 각성자들이 전부 미친 천사들이 깃들어있다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넬타리드의 힘으로 이만한 각성자들을 만들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비화는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넬타리드는 특정 몇몇에게 미친 천사를 부여하고 남은 잔여의 힘을 이용해 다른 각성자들을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그 과정에서 비화의 힘. 아니 정확히는 프리아 여신의 권능을 흉내 내 힘을 부여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힘을 부여한 조건은…… 잘 모르겠지만요.”
“넬타리드는 감정이 거의 없는 신이지. 아마 효율 위주로 그랬을 가능성도 높네.”
사람들은 신이 자비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자애의 여신 프리아라고 해도 그녀는 세상 전체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만큼 어떤 면에선 자애에 맞지 않게 잔혹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리라.
다만 프리아 넬타리드와 타나토스는 언제부터인가 아주 소량의 감정을 소유하게 되었고 프리아 여신 또한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이레귤러와 엮이며 감정의 편린이 만들어졌다.
“그 외에 변수는? 그 미친 천사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만한 힘을 발휘하게 된 이유는 잘 몰라?”
“아직 몰라요.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비화는 그렇게 말한 뒤 그의 품에 안겨 들어갔다.
“나 지금 굉장히 불안한데요.”
“그래. 이해한다.”
조용히 비화의 등을 토닥여주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그녀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는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며 자신의 성역으로 떠나려 했다.
“가려고? 조금 더 있다가 가지.”
“가야죠. 넬타리드도 없는 상황에서 이걸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건 나뿐인데.”
그녀가 애써 웃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아빠.”
“음?”
“다녀올게요. 그리고 사랑해요.”
데이비의 뺨에 입을 살짝 맞춘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도망치듯 사라진다.
딸아이의 애교. 과거 비화가 보여준 괴로워하던 모습과 차갑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렇게 애정을 표현해주는 게 그렇게 고맙고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웃고 있으니 페르세르크 쪽에선 자신에겐 왜 안 해주냐는 듯 뾰로통한 시선을 보내온다.
물론, 언제까지고 행복에 젖어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의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고민하듯 서류를 내려놓았다.
“여신과 넬타리드 신이 정말로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 게지.”
“감정이 있어도 극한의 효율과 질서를 추구하는게 신이니까.”
비록 넬타리드가 과거엔 감정이 풍부한 존재였다곤 하나 그는 신격화되면서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이 같은 일은 이전부터 있지 않았더냐.”
“제노엔 같은 거.”
“그래. 본녀의 생각이지만…… 어쩌면 말이네.”
그녀가 하려는 말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세대교체를 하려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 말대로. 본녀가 생각하기에. 여신은 그대에게, 그리고 넬타리드는 비화에게…… 자신의 것을 물려주려 하고 있는 겐지 모를 일이지.”
귀찮은 상황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길 엄청난 성장통은 분명 존재할 터.”
“미친 천사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건가?”
“그것뿐만이 아닐 수도 있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태동하고 있을는지…….”
현재 프리아 여신은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태초의 겨울. 즉 비화의 각성 이후로 온전히 침묵하는 두 신이 잘못되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이 정도 되면 상당히 귀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쪽도 슬슬 여유가 나니까 따로 조사해볼게.”
“본녀도 함께할 게야.”
“같이 간다고? 굳이…….”
“본녀와 같이 가는 게 싫은 게야?”
“그럴 리가.”
사실 그동안 이쪽 일도 굉장히 바쁜 건 사실이었다.
많은 것을 다스리는 만큼 일을 내팽개쳐두면 고통받는 건 영지민들이었다.
그래서 비화와 초단이 그리고 에반젤린과 미식연구회가 짜고 작당하여 배승우라는 녀석과 무언가 음모를 꾸몄다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판단은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세 아이 모두 기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조율하면서 적당 선에서 일을 잘 마무리한 셈이었다.
“미식연구회.”
“네. 은공.”
비화와 함께 복귀했던 미식연구회를 찾아간 데이비는 그녀에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잘해줬어. 예산 올려줄게.”
“어머나 은공! 뭘 이런 걸 다 주실까요? 안 주셔도 되는데.”
“회수할까?”
“아니요.”
마치 좀 전에 했던 말이 인사치레였다고 말하듯 단호하게 서류를 챙기는 그녀였다.
“아참.”
데이비가 빙그레 웃자 유리아 또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러시죠?”
“콘타스 제국에서 항의 들어왔다.”
그 말과 함께 미식연구회의 전원이 우뚝 굳었다.
“보호종을 훔쳐가서 회 처먹었다고?”
“그…… 그게…….”
“한두 번이 아니더만.”
상은 상이고 벌은 벌이다.
신상필벌은 확실해야지.
“그래. 이번엔 어디 매달릴래.”
“저…… 은공? 요……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인생이라는 게 원래 마음대로 되는 건은 아니지. 그러니까 더 재미있는 거 아니야?”
매달리는 것에 그렇게 학을 떼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 더 과한 벌을 내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멈췄다.
결국, 세사람을 모조리 잡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매달아버리는 것으로 종결이 되었다.
프랑스 당국에선 의외로 이것을 쌍수 들고 환영했는데. 그 이유가 하도 많이 매달리다 보니 이제 미식연구회가 매달리는 게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 때문에 평소 이상으로 에펠탑에 관광객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그들이 좋아할 수밖에.
결국, 또 한차례 티오니스 미식연구회 오늘 자 근황이라며 에펠탑에 매달려 서로 으르릉거리며 투닥거리는 셋의 사진이 올라왔다.
-오늘 자 미식연구회 근황. ㅋㅋㅋㅋ
[에펠탑에 세 명이 나란히 매달려 있는 사진.]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프랑스에서 잘도 허락해줬네 ㅋㅋㅋ
-전에 그랜드캐니언이랑 나이아가라 폭포도 그랬지만 저거 의외로 관광객들 개 많이 모음 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주기적으로 안 매달리면 심심한 수준이네 ㅋㅋ
-이 와중에 영상 보면 티오니스 성자 호위대장 개 귀여움 ㅋㅋㅋㅋ
-아 그냥 륀느라고 하라고 ㅋㅋ
-이 부딪히면서 몸 흔드는 거 보소 ㅋㅋㅋ
영상에는 유리아의 무슨 말을 들은 륀느가 발을 버둥거리면서 온몸을 움직여 그네를 차듯 유리아에게 덤벼들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부딪치면서 닿기만 하면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될 정도였다.
반면 점순이는 피곤한 표정으로 추욱 늘어져 있다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걸 보고는 묶여있는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미식연구회는 놀라울 정도로 참 한결같았다.
* * *
“그래서 내게 뭔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으시다?”
“일단은.”
S급 각성자.
그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미국의 히어로. 크리스 마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전에 있었던 그 사건 때문인가?”
“비슷해.”
그도 정보통이 있다. 게다가 현아에게 마음이 있는 만큼 그녀가 이번 일로 바쁘다는 것을 듣고 따로 조사한 것이리라.
물론 기밀에 붙였다곤 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의 몸에서 나온 괴물이라…… 그래서? 티오니스 성자님이 보기엔 어때 보입니까?”
그가 물었다.
박지훈은 미친 천사를 한번 내뱉었고 미친 천사가 사라진 뒤 그의 힘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 말인 즉. 그의 안에 스며들어있던 미친 천사가 그의 각성자의 힘의 원천이었다는 소리였다.
페르세르크는 딱히 이것을 구분할 시야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계통인 사도, 천족 레이나의 경우에도 크게 뭔가를 알아낸 것 같진 않았다.
이에 나는 조용히 신력을 끌어올렸고 육체를 신체화시켰다.
머리가 길어지고 몸이 가늘어진다.
성별이 사라진 모습으로 변하자 그가 상당히 놀란듯한 시선을 보낸다.
“신기하네…… 뭐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신성한 느낌이라고 할까.”
“당연하죠. 신체화니까요. 육체가 신의 육체가 되는 건데 일개 피조물이 그걸 느끼지 못할 순 없어요.”
레이나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하자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 되게 자랑스러워하시네.”
“조용.”
내 말에 미묘하게 투덕대던 두 사람이 침묵한다.
“지금 굉장히 불안한데…… 기왕이면 좋은 소식으로…….”
“…….”
자신의 안에 파괴적인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만큼 크리스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박지훈을 예로 들면 분명 힘의 근원 안에 천사의 흔적이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에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단순 내가 찾지 못한 것인지. 그에게는 미친 천사가 깃들지 않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자 상황을 지켜보던 현아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오빠. 어때? 이 사람 안에도 있어?”
별로 관심 없니, 뭐니 하더니 제법 신경 쓰는 꼴이란. 이래서 동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그대가 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반대겠지. 그리고 본녀가 보기에 이건 남녀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친분…….]
‘쉿.’
페르세르크의 말을 가볍게 억누른 채 나는 다시 집중했다.
그러기를 약 5분 나는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없다.”
“응?”
“없다고. 그 괴물.”
내 말에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 신이시여. 그거 참 다행스러운 소식이로군…….”
혹여라도 괴물이 있으면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
괴물을 치워버리면 힘을 잃고 그냥두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는 셈이다.
“S급이라고 무작정 천사가 심어진 건 아니라는 거네.”
“그럼…… 박지훈 그 인간은?”
“일단 추측이긴 하다만, 그 괴물이 심어진 건 극히 일부인 것 같네. 그나마 좋은 소식이다.”
“왠지 나쁜 소식도 있는 거 같은데?”
크리스가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맞아. 나쁜 소식도 있지.”
“홀리 쉣…….”
“규칙성이 없다는 건 누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대체 어떻게 심어놓은 건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신이 안 설 정도였다.
그런 마당에 수많은 각성자들을 일일이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그거 지금 당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가?”
“그런 건 아닐 거다. 문제는 그게 무슨 이유로 문제가 되는 건지. 언제 되는 건지를 알 수가 없다는 건데…….”
“그게 더 나쁜 소식이군. 솔직히 신께서 내리신 힘인 각성자의 힘에 그런 게 스며들어있다는 게 알려지면…….”
“지금 한국정부가 기밀에 붙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죠. 사정이 어쨌건 대중에 알려지면 정말 귀찮아질 테니.”
모르긴 몰라도 넬타리드 교단이 받을 타격도 상당할 터였다.
문제는 넬타리드가 그렇게 한 게 맞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조금만 돌릴 수 있는 변명거리만 존재하면 참 좋을 텐데…… 그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게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기도 하고.”
“후…… 한 놈이라도 잡히면 일단 제압해서 이리 뜯어보고 저래 뜯어보고라도 할 텐데…….”
마음 같아선 이거 다 넬타리드가 한 거다!!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많은 곳에서 귀찮아질 게 틀림없었다.
숨을 짧게 고르며 침묵하고 있던 찰나. 현아가 어딘가에서 온 전화를 받는다.
“뭐라고요?!”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 * *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미식연구회가 매달려 있는 현재 이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마침 관광객도 많은 현 상황에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오다니.
거대한 눈알에 수십장의 검은 날개가 달린 기괴한 생명체.
이미 한차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는 미식연구회는 본능적으로 저 괴물의 정체를 파악했다.
“미친 천사……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점순이가 꽁꽁 묶인 밧줄을 풀기위해 버둥거려보지만, 이놈의 밧줄은 데이비가 수차례 강화시킨 밧줄이라 도저히 풀리지가 않았다.
나란히 매달려 있는 상황이라 돕기도 어려운 판국에 괴물은 기괴한 하울링을 흘리며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절시켜버렸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를 찾듯 계속해서 가운데 달린 하나의 거대한 눈동자를 굴렸다.
“뭘 찾고 있는 거 갖죠?”
“분석 중. 륀느의 사고회로에 따르면 비화를 찾는 것이라 판단.”
“정확히는 신적인 존재겠죠. 비화 아가씨나. 넬타리드 신이나…… 혹은 은공 같은.”
“아니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쟤 날뛰기 시작하면 어쩔 건데!”
이전에 만난 괴물이 쏘아내던 광선은 그리 강한 게 아니라곤 하지만 직격타로 맞으면 꽤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점순이나 륀느야 자체적인 방어능력이 강하다지만 유리아는 달랐다.
“이봐. 네가 제일 위험해 지금.”
“어머 그런가요?”
유리아나 대롱대롱 매달린 채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륀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의 흔적을 느낀 것인지 다른 형태의 미친 천사가 날개를 펄럭이며 그녀들을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거대한 눈동자가 륀느를 담았을 때.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며 끔찍한 이빨이 달린 입이 벌어진다.
한입에 륀느를 포함한 셋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저저저! 어떻게 좀 해봐!!!”
비명을 지르며 점순이가 버둥거린다.
반면 륀느와 유리아는 담담했다.
“어떻게 하죠? 이거 풀면 그날로 은공이 저희를 삶아버릴 거 같은데.”
“현재 저항하지 않을 경우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말한 유리아가 어디서 숨겼던 건지 모를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더니 가볍게 밧줄을 풀어버린다.
동시에 륀느도 그렇게 밧줄을 풀고 에펠탑 아래로 낙하했다.
내가 뭘 본거지?
“아니 저걸 어떻게 풀어? 저 미친년들…….”
한두 번 묶인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너무 당연하게 풀어버리는 둘을 보며 점순이가 소리 질렀다.
“야 이 의리 없는 것들아! 나도 풀어줘!! 니들끼리만 튀…… 으아아아악!! 먹히기 싫어!!”
맹렬하게 돌진하는 미친 천사가 점순이를 삼키려던 그 순간.
화아아아악!!!
엄청난 기세를 풍기며 모든 날개를 펼친 륀느가 새하얀 빛의 창을 들고 섬광처럼 괴물을 한차례 꿰뚫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놈이 몸을 버둥거리자 륀느는 창을 꽂은 채로 비틀어 놈을 튕겨냈다.
그리고 유리아가 꺼낸 것과 같은 기이한 작은 도구를 이용하더니 순식간에 점순이를 포박하고 있던 밧줄을 풀어버렸다.
“아니 그게 대체 뭔데 이걸 이렇게 쉽게 풀어?!”
“영업 비밀이라 륀느가 포장.”
“아주 x랄을 한다. x랄을…… 깐프나 하얀 닭둘기나…….”
“대피를 촉구. 또한, 닭둘기라는 표현의 정정을 요청. 륀느는 고고한 송골…….”
“아 됐어. 난 인간들이나 대피시킬 테니 저거나 막아.”
그 말에 유리아는 정령의 힘을 이용해 착지했고 대지의 정령들을 엄청난 수로 깨워내기 시작했다.
한때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려 했던 유리아였다.
그녀에게 이 정도 정령의 소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좋아요.”
“일단…… 알겠어.”
점순이가 손뼉을 쳐 대량의 환영 나비를 만들어내고 기절한 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선 단순 관광객의 보너스 효과를 얻기 위해 받아들인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구하게 된 셈이었다.
-키아아아아악!!!!
다시금 몸을 회복한 미친 천사가 다시 륀느와 충돌한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거대한 존재와 륀느를 시야에 담고 있던 점순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미친 천사는 처음부터 미쳐있는 게 아니라. 각성자의 몸에서 강제로 방출되면서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어이 미친 깐프.”
“어머. 깐프라니 천박하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저기 말이야. 저 괴물. 사람 몸 안에 있을 때 미친 게 아니라 밖으로 나오면서 미친 게 아닐까?”
“그게 큰 차이가 있을까요?”
“있지. 예방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니까. 어이 륀느!! 그거 죽이지 말고 제압하자!”
“해명을 요청.”
“내 생각인데. 이거 샘플로 잡아가야 뭐라도 건질 거 같거든? 가능해?”
점순이의 물음에 륀느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78퍼센트 확률로 사살 가능.”
“생포확률은?”
“10퍼센트 미만, 정보의 부족,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판단.”
“그만큼 강한 건가?”
“아마 강한 것을 넘어 어떤 걸 숨기고 있을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겠죠?”
정령들을 부리던 유리아의 첨언에 점순이는 짧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그럼 시간이라도 끌어보자.”
점순이의 강력한 요청에 륀느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칫하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 륀느가 그 방법을 낮게 평가.”
“나 한번 믿어봐. 이거 내 생각인데. 잘 나타나지 않는 놈인 만큼 정보가 필요할 거야.”
자칫하면 엄청난 피해는 물론, 죄다 덤터기 쓸 수도 있는 판단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아주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