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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77화 (1,377/1,559)

제 1377화

“에이리아! 물러나!”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소리치자 동굴을 둘러보던 에이리아가 흠칫 놀라 빛무리에서 떨어졌다.

내 시야에 비친 장면은 에이리아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여 물러난 여성 혼령뿐이지만 에이리아는 빛무리가 살짝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서…… 서방님?”

-뭐? 서방님? 에이리아. 벌써 혼례를 치른 거니? 대체 내가 죽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는 마치 무언가를 품평하듯 턱을 어루만지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그녀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다. 물러나.”

내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에이리아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는 듯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접근하려는 영혼을 밀어내려 했다.

-아…… 안돼! 제발! 에이리아. 내 말이 들리지 않니?! 제발 부탁이야.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제발 밀어내지 말아 주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쳐보지만, 당연히 에이리아에겐 들리지 않는다.

-내가 보이지 않는 거니?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이보게! 자네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니?!

네, 들려요. 너무 잘 들립니다.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나도 그녀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어렵게 만난 가족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일까.

그녀는 우울한 얼굴로 추욱 늘어졌다.

‘그래…… 섭리를 벗어난 망자가 어찌 세상에 간섭할까……. 그래도 미약한 흔적을 볼 수 있는듯한데…… 이를 어쩐다…….’

우울해진 그녀는 계속해서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흔적을 볼 수 있으니 유도하는 척하면서 바깥으로 내보내야 할 텐데…… 그보다 저 남자는 대체 왜 나를 경계하는 거지? 혹시 내게서 그 여자의 힘을 느낀 건가?’

그냥 두면 끝도없이 착각할 모양새였기에 나는 장난을 거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만. 거짓말이야.”

“네?”

내가 사실을 정정하자 에이리아는 물론 혼령 상태로 있는 레디미아 황비 또한 나를 본다.

겉보기엔 20대에서 30대 사이로 보이는데 바사스 황자의 나이를 생각하면 레디미아 황비는 분명 나이가 제법 있는 여성일 텐데도 경이적일 정도로 젊은 모습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반적인 동안의 수준을 넘어 어떤 이유로 노화가 멈추거나 느려진 케이스일 것이다.

‘뭐…… 뭐지?’

내가 갑자기 장난이라고 말하니 당황한 듯 그녀가 경계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본다.

‘이상하다. 내 목소리가 들리거나 보이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 청년은 대체 뭘 보고 판단하고 있는 거지? 뭐가 됐건 제발 내 의도를 눈치채 췄으면 좋겠…….’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어떤 길로 가든 수도로만 가면 된다더니 최고의 결과물이 나왔네요.”

내 말에 에이리아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유령 여성 또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무슨 소리람.’

“반갑습니다. 레디미아 황비님. 에이리아의 부군인 데이비 올 라운. 라운 왕국의 대공입니다.”

내가 예법에 맞춰 그녀의 혼을 똑바로 직시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무…… 무슨?! 내…… 내가 보이는 건가?!’

“당연히 보이죠. 처음부터 보였는데 괜히 보고 있으니 장난기가 샘솟아서 말입니다.”

레디미아 황비는 당황한 기색이었고 에이리아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귀만 쫑긋거렸다.

“서…… 서방님? 대체 무슨…….”

“조금 답답하긴 한데. 방법이 없나? 아. 그래.”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저승아.”

영혼을 관리하는 데엔 역시 영혼의 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치나 저승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손해가 적으리라.

곧 나타날 저승이를 기다리며 자신만만하게 서 있자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한 영혼과 한 구미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

이 새끼 왜 안 와.

나와 연결된 녀석의 끈을 흔들었으면 분명 나타나야 할 텐데. 마치 전파가 차단된 산에서 전화를 거는 것처럼 공허한 발신만 이어진다.

“설마…….”

그제야 나는 이 협곡 전체에 깔려있던 안개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 구조 자체가 달라서 이상하다 여겼는데.

“블러드 폴리스…….”

뱀파이어와의 싸움 이후 본적이 없던 뱀파이어의 영역.

블러드 폴리스가 분명하다.

다만 내가 아는 일반적인 블러드 폴리스와 달리 이 안개는 대상의 힘을 빨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일반적으로 내가 보고 겪어온 블러드 폴리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너무 많았다.

“크흠! 아무래도 연락이 닿질 않는 모양이네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두 사람 모두 이해한 듯 보였다.

“아까 그 안개가…….”

-그렇구나…… 역시 그 여자의 흔적이 외부의 연락을 막고 있었어.

“이 안개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맞아요.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침착하게 말하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마 조금 전 순간적으로 에이리아와 대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었다.

피가 이어지진 않았을 텐데.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게 그렇게 슬펐던 것일까. 벌써부터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저것이 연기라면 정말 대단한 것이겠지만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후…… 좋아. 그럼 이렇게 해봅시다.”

나는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는다.

영혼인 그녀는 자신의 팔을 잡혔다는 것에 기겁한 듯 흠칫 놀라더니 그대로 내 팔을 털어내고 한발 두발 물러났다.

-무…… 무엄하오! 어디 임자가 있는 여성의 팔을 함부로 잡는단 말인가!!

당황한 그녀가 소리친다.

“그럼 그냥 그렇게 계시게? 이야기하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그…… 그것이…….

그제야 내가 무언가 하려는 것을 깨달은 듯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기도를 하듯 눈을 감고 중얼거린 뒤 심호흡을 한다.

-아아…… 폐하……죄송합니다. 이 못난 년을 용서치 마시옵소서. 제 몸은 더럽혀질지라도 제 마음만큼은 언제나 당신을 향할 것이니…….

이 여자가 진짜.

순간적으로 성질이 뻗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집어치웁시다. 이건 뭐 누굴 성범죄자로 만들고 있네.“

“네? 서방님. 그게 무슨…….”

-아…… 아닐세! 그…… 그런 뜻으로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오!

“아 됐습니다. 미안한데 나도 와이프가 있는 몸이라 그냥 못 넘어갑니다.”

-미…… 미안하오! 내…… 생각이 짧았소……. 무엇이든 좋으니 제발 도와주시지요…….

결국, 백기를 들어 항복을 선언한다.

보아하니 처음 내가 그녀를 놀렸던 사실이 괜히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저항하지 않는 그녀의 팔을 잡은 나는 천천히 사령 마나를 끌어 올렸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다.

원한도 없이 대체 어떻게 승천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라면 어느 정도 간섭은 가능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쿠웅!!!

나는 그대로 사령 마나를 모조리 일으켰다.

어서 나를 쓰라며 재촉하듯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령 마나는 순식간에 레디미아 황비의 몸을 잠식해나간다.

-윽! 이…… 이게 무슨?!

경악스러운 수준의 깊이를 지닌 데스 로드의 힘이 퍼져나감에 따라 그녀가 마치 괴물을 보는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내면에 있던 마나들이 일정량 나와 반항하려 하지만 금방 제압당한다. 이정도 양이면…….

“마법사셨습니까? 놀랍네, 6서클이라니.”

대마법사라는 게 굉장히 놀랍다라고 말한 건 사실이었다.

마법은 생각보다 경지의 개척이 쉽지 않은 영역인 만큼 황족이, 그것도 황비가 이정도의 수준이라는 건 제법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는다.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명한다. 망자는 내 명에 따라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라.]

생령화.

하나의 망령이나 다름없던 그녀를 생령으로 바꾸고 그 후 그녀의 존재 자체에 데스 로드의 힘을 불어넣어 마치 부활이라도 시키듯 그녀의 가짜 몸을 제공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그녀의 몸은 유령과 다를 바 없지만 적어도 에이리아가 그녀를 보거나 대화는 할 수 있으리라.

-아…… 아아…….

자신의 몸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어도 뭔가 변했음을 깨달은 그녀는 금방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내려다보았다.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계속해서 헤져가던 영혼을 치료하고 색을 입혔을 뿐이에요. 근본적으로 다른 건 없습니다. 언데드로 되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고 튜나 때처럼 특별한 케이스인것도 아니니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이게 전부였다.

정확히 말해서 내가 보는 레디미아 황비는 조금이라도 빨리 영혼의 강에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할 영혼이었다.

-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마법사인 만큼 내가 그녀에게 가한 간섭이 정상의 범주를 넘었음을 인지한 그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어…… 어머니…….”

그제야 눈치챈 듯 레디미아 황비의 모습을 본 에이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에이리아…….

“정말…… 정말 어머니세요?”

-……그래. 우리 아가…… 이리 오렴…….

무언가 복잡하게 생각한 듯 보였지만 레디미아 황비는 이내 눈물을 보이며 에이리아를 품에 안았다.

에이리아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 사라졌다고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전의 기억까지 날아간 것은 아니기에 그녀를 금방 알아본 듯했다.

“왜…… 왜 이런 곳에 계신 거예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에이리아를 품에 안은 채 부드러운 표정으로 다독이지만 레디미아 황비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예쁘게 자라준 에이리아가 대견하다는 듯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아아…… 우리 아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주었구나…….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적이겠지…….

“그런 말씀 마세요!”

에이리아와 레디미아 황비는 정확히 말해서 친혈육이 아니다.

하지만 레디미아 황비는 그녀를 정말로 자신의 딸아이처럼 대했다.

저게 연기면 연기상을 받을 급이긴 하지.

웃긴 점은 레디미아 황비와 에이리아의 사이와는 달리 그녀의 친아들인 바사스 알 린디스 황자는 에이리아를 죽일 듯이 미워하고 있다.

십수 년 만에 만난 모녀간의 상봉인 만큼 나는 주변을 스윽 둘러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분간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해두세요.”

이것도 그녀의 혼이 온전하기 때문이리라. 마치 미라가 되어 방부 처리된 시신처럼 말이다.

“서…… 서방님…….”

“잠깐 자리를 비켜줄게.”

“……고마워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두 사람은 묻지 않았다.

이후 두사람을 두고 나는 다시 혼란스럽게 흔들리고 있는 협곡으로 나왔다.

제법 내부까지 들어왔다.

티오니스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린디스에서 출입을 엄금하는 마경이라 그런지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은 거의 없었다.

“뱀파이어의 블러드 폴리스는 맞는데.”

안개를 직접 뚫어 외부와 연락하는 게 아니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나가고자 한다면 이런 블러드 폴리스 따위 뚫어버릴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제야 눈치챈 사실이지만 레디미아 황비의 영혼을 묶어두고 있는 건 이 짙게 깔린 뱀파이어의 안개가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급진파 뱀파이어는 모조리 몰살당했고 남아있는 온건파 뱀파이어는 모두 대륙을 건너 동대륙 너머의 땅. 알라시스로 이주했다.

즉. 이 땅에 요시아를 제외한 뱀파이어는 사실상 없거나 있다고 해도 극소수일 텐데.

어떻게 이런 존재가 남아있는가.

“이건 요시아의 것보다 더 원시적인데.”

다른 말로 하면 순수한 힘.

즉. 요시아보다 더 높은 힘이 아니면 이런 기운을 띠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뱀파이어의 군주인 뱀파이어 로드보다 더 순수한 힘이라고? 그딴 게 존재할 리가.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사실이지만 나는 과거 이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넬타리드 이 개X끼.”

그놈은 끝까지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나는 뱀파이어 로드 이상급의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번 전해 들었다.

태초의 진조.

뱀파이어의 시조이자.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 그러한 존재에 대해 들었다.

다만 태초의 진조는 신에게 반항했고 그 결과 종족 채로 저주를 받아 신을 배덕하는 종족이 되었다.

그리고 정작 그런 일을 벌인 태초의 진조는 소멸했다고 들었다.

그럼 이 장소는 태초의 진조가 가진 흔적일까.

뱀파이어의 천성이 그러했던 것은 1만 년 전에도 있었던 사실이니 어쩌면 태초의 진조라는 존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여기는 유적지나 다름없다는 소리인데, 웃긴 점은 이 협곡에서 이런 극심한 변화가 일어난 게 고작 십수 년 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하나의 지름길로 많은 왕래가 있었던 곳이었으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다시금 하늘로 손가락을 뻗었다.

쩌어엉!!!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충격파가 터져나갔고 안개를 순간적으로 찢어발겼다.

[소환]

그리고 곧바로 계약의 힘을 발현했다.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써먹을 일이 생기네.

대학원생은 언제든 부를 때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단다. 제자야.

물론 그녀는 대학원생보다는 부교수에 가깝지만 내게는 영원한 대학원생, 다른 말로 하면 노예나 다름없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튀어나온 요시아는 잠이라도 자고 있었는지 퍽 귀여운 토끼 잠옷을 입고 있었다.

지구에서 사다 준 것인데 잘 애용하는 듯하다.

“어라? 여긴…… 꺄악!! 서…… 선생님!!”

당황한 그녀가 자신의 상태와 내 존재를 깨닫고 허겁지겁 잠옷을 벗으려 든다.

“그…… 그러니까요! 이건 꽤 푹신푹신해 보이고 따듯해 보여서…….”

“추운 날씨는 아닌데?”

“그…… 그냥 호기심에!”

“됐어. 관상용으로 사달라고 했지만 사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입어 볼 수도 있지. 음.”

시뻘게진 얼굴로 수치심을 억누르며 나를 노려보듯 올려다보는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음을 날렸다.

“주…… 죽으세요!!”

콰아앙!!!

뒤이어 핏방울이 맺힌 피의 창이 수십 발 가까이 날아들었지만 내게 닿지는 못했다.

요시아를 진정시키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백색의 블러드 폴리스는 남의 힘을 끌어당기진 않지만 어떤 방식인지 뱀파이어의 힘을 빠르게 강화했다.

요시아도 처음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점점 이질감을 눈치챈 듯 더욱 열심히 내게 투정을 부렸다.

“보통 이상한 걸 눈치채면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선생님. 아무리 사제 간이라곤 해도 사생활을 보호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계약소환인데 어쩌랴. 다음에 조율해보자.”

“……네.”

아닌척하던 잠옷을 들켜버린 탓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던 그녀는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라도 하는지 물었다.

“이거…… 블러드 폴리스…… 맞죠?”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네. 그런데…… 조금 다르네요. 뭔가 제가 아는 뱀파이어의 힘과 달라요.”

“그렇지?”

“아까부터 자꾸 그렇지가 뭐에요.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예요.”

요시아의 타박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친 게 아니야. 여기 있던 거지. 혹시 이 안개를 보고 느껴지는 게 없어?”

“없어요. 직접 이 안개를 펼친 존재를 확인하기 전…… 잠깐만.”

그녀가 인상을 찡그린다. 뱀파이어에게만 보이는 안개 특유의 변화를 눈치챈 듯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를 침입자라고 판단한 모양인데요?”

“대체 여기에 뭘 숨겨놨길래 이런 안개가 깔려있을까.”

“거. 침부터 좀 닦으시죠? 하여튼 보물이라 하면 눈 돌아가서는…….”

혀를 쯧쯧 차며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엉성하긴 하지만 그녀는 뱀파이어 로드.

로드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강자인 만큼 비록 완숙한 뱀파이어 로드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힘은 굉장한 영향력을 발현했다.

절그럭…… 절그럭…….

이윽고 안개 너머에서 무언가가 걸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뭐에요?”

“뱀파이어 로드가 뱀파이어의 힘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냐.”

내가 한심함을 숨기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요시아의 표정이 콱 일그러졌다.

“진짜 재수 없어…….”

“니가 미드 차이드를 가르칠 때 이런다.”

“아 그 이야기가 왜 나와요!”

그녀가 빽빽 소리를 질렀다.

“근데…… 저거 지금 우리 공격하려는 거 맞죠?”

“그래 보이는데?”

“저 X새들이!!”

콰아앙!!

요시아가 귀여운 잠옷을 입은 채로 발을 한번 들었다가 강하게 굴렀다.

여기선 보는 이가 없으니 마음껏 힘을 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발 이 내려 찍힌 점을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수십 수백 개의 붉은 피의 채찍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콰직!! 콰득!!!

“감히…….”

뱀파이어 특유의 동공을 번뜩이며 그녀가 오른손을 뚜둑 소리 나게 꺾었다.

동시에 갑옷을 입은 존재들을 향해 미친 듯이 파고들어 간다.

그녀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새빨갛고 반짝이는 혈선들이 생겨나며 갑옷들이 찢겨나간다.

스트레스가 굉장해 보인다.

앨리스 대주교가 사람을 그렇게 굴렸던가.

의문이 서리지만 마침 잘되었다는 듯 미친년처럼 날뛰는 요시아를 그저 지켜본다.

요시아를 표현할 단어로는 신출귀몰 정도가 있었다.

괜히 로드가 아닌 듯 엄청난 힘으로 순식간에 적을 압도해버린 그녀는 조각나버린 갑옷을 짓밟으며 목을 뚜둑 소리 나게 꺾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그래서. 거기 느껴지는 건?”

“모르겠어요. 생판 처음 보는 거라. 그런데…… 이상하게 그리운 느낌이네요.”

여기 아래에 잠든 게 태초의 진조가 맞네.

생각해보니까 죽은 태초의 진조가 이 아래에 있다면…….

“우리는 도굴꾼이 된 건가?”

이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어쩌면 이 안개는 왕묘를 침입한 적이 쳐내려는 게 아닐까.

“그게 또 내 전문인데.”

내가 스산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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