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8화
넬타리드는 소멸하기 전에 내게 말했다. 뱀파이어가 왜 신을 배덕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자세한 내막은 사실 알 길이 없고 앞으로도 알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넬타리드가 타락하게 된 이유와 동일하게 태초의 진조는 시스템 자체에 항거했고, 그 결과 저주를 받아 종족 전체가 비틀렸다.
연좌제라는 웃긴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 그 무덤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왜 태초의 진조가 가진 힘이 고작 십수 년 전에 각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무덤이라는 사실이다.
무덤. 다른 말로 하면…….
“털어먹을게 많다는 소리지.”
“진짜 언제 한번 벼락 맞아도 이상하지 않겠네요.”
요시아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박살 내버린 갑옷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일단락 적으로 이야기를 끝냈는지 에이리아가 동굴의 입구 쪽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저…… 서방님…….”
그녀의 말에 나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요시아.”
“선생님, 저는 가서 쉬고 싶은데요. 이 부끄러운 잠옷을 입고 계속밖에 있기도 참…….”
“대학원생이고 부교수잖아.”
“네?”
“알아서 따라오라고.”
“아 씨, 진짜.”
무려 태초의 진조.
그 안에 어떤 보물이 있을지 모르는 데 관심이 너무 없다.
* * *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는 에이리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레디미아 황비가 사망한 건 에이리아가 아주 어릴 적 일이었다.
듣기로는 바사스 황자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에이리아를 그토록 아꼈다고 했던가.
-사위라도 불러도 되겠는가.
“편한 대로 부르세요. 장모님.”
-사위가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눈빛도 맑아. 속은 깊지만…… 선을 넘지 않는듯한 느낌……. 에이리아.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장난기는 좀 심해도.
“헤헤…….”
에이리아가 옅게 웃음으로 대답한다.
“저기…… 선생님…… 이분은 누구세요?”
“레디미아 황비 마마. 오래전 돌아가신 분이야.”
“네? 그런 분이 영혼의 강도 아니고 왜 이곳에 있는 거예요?”
-그쪽 아가씨는……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요시아 프랑소스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제자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참 밝고 싹싹하구나. 눈빛도 맑아. 조금 익숙한 기분도 들긴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파악하는 게 특기인 모양이었다.
-그보다.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사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날 사고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사실 벌써 듣긴 했네만…… 정말이었구나……. 대체 누가…… 아니…… 알 것도 같아…….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고란 왕국의 인사들. 그들의 짓이로구나.
“고란 왕국이요?”
-실은 에이리아와 사위가 오기 한참 전부터 그들이 이곳을 기웃거렸다네. 이곳은 린디스의 땅일 텐데 어찌 타국의 인사가 이곳에 있는가 궁금해서 조금 따라다니다가 우연찮게 들었네. 발고스 재상. 분명 고란 왕국의 재상의 이름이었지.
“고란 왕국이라…… 린디스와 한창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왕국이네요. 아 그리고 발고스 재상은 십수 년 전에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습니다. 명분이니 뭐니 하지만 그냥 권력 싸움이죠.”
린디스가 고란 왕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물론 전쟁이 아닌 정치적 싸움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고란 왕국이 라운 왕국과 분쟁을 벌였다는 것이 참 묘한 일이로고…… 분명 고란 왕국은 타국과 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을 테고 굳이 라운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을 터인데.
에이리아를 통해 현재 라운 왕국과 하인스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는 들은 그녀였지만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듯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고란 왕국은 라운 왕국과 어떤 유감도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린디스는 다르죠.”
-사위, 그게 무슨 말인가?
“고란 왕국은 현재 린디스와 계속해서 정치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군. 린디스와 싸우고 있는데 굳이 강한 세력인 하인스에 싸움을 걸 이유가…… 아아 설마…….
“예. 그놈들. 린디스에게 이번 사태의 죄를 덮어씌울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혼선을 주기 위해 남긴 말이…….”
이곳을 안내했던 사내의 잔념이 마지막에 했던 말. 데오르트 황제의 추악함을 언급한 것.
-마…… 말도 안 되네! 대체 어떤 수단으로! 황족 중에 에이리아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가 있을 리가…….
“있습니다. 두 명이요.”
내 대답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누군지 물어도 되겠는가…….
이 사실을 전해야 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체 누가…… 누가 가족을!!
레디미아 황비가 격분하며 소리쳤을 때.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린디스의 황자. 바사스 알 린디스.”
그 말에 레디미아 황비의 눈이 부릅 뜨여진다.
-무…… 무슨…….
“그리고, 그의 아들. 벨류아드 알 린디스. 장모님께서는 두사람을 모두 잘 아실 겁니다.”
-거짓말…… 거짓말! 바사스 그 착한 아이가 어째서 에이리아를 죽이려 한단 말인가! 사위! 장난이라도 이건 정도가 지나친…….
“아뇨. 사실입니다. 지금도 바사스 황자는 에이리아를 극도로 미워하고 있어요.”
-대체 무엇 때문에…….
“장모님이 죽은 원인이 에이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십수 년 전 이곳에서 있었던 산사태에서 살아남은 에이리아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고 단 한 가지만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자신을 구하려다 레디미아 황비가 토사에 휩쓸렸다는 말을 말이다.
“…….”
주변은 침묵에 휩싸였다.
“다만 바사스 황자는 영리한 인간입니다. 에이리아를 보면서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어리석고 멍청한 계략에 놀아날 인간은 아닙니다.”
-그…… 그렇다면!!
“하지만 벨류아드는 달라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미 그놈이 에이리아에게 편지를 보낸 정황까지 파악해두고 있습니다. 아마 고란 왕국의 인간들이 은근슬쩍 정보와 증거를 유출한 것이겠죠.”
고란 왕국의 목적은 린디스와 하인스의 반목.
그러니 중간에서 다리만 놓다가 빠르게 손절하고 모습을 감추면 알아서 싸울 거라는 입장이다.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아요.”
“제가 가서 항의할까요?”
“아서라. 네가 무슨 권한으로. 이번 일이 끝나면 고란 왕국에 직접 내가 찾아갈 거다.”
“서…… 선생님?”
“대가는 치러야지.”
스산하게 웃어 보인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란 왕국은 자신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겼다 생각했겠지만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가 레디미아 황비가 이곳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첫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증거들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만으론 밀어붙이기 쉽지 않을 텐데요.”
“요시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자 그녀는 놀란 얼굴을 했다.
“그냥…… 엎으실 생각이시군요.”
“에이리아의 목숨을 이용하고 노린 이상 그놈들은 대가를 치를 거다.”
“그럼 바로 고란 왕국으로?”
“아니. 기왕 온 거, 여기 한번 털고 가자. 그리고.”
말을 끊은 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모님. 여기 계시면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죠?”
-에이리아에게 들었다네. 사위. 영혼을 관장하는 경지까지 올랐다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이 땅 아래 묻힌 것 때문에 영혼이 유지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장모님의 혼은 비틀리고 깨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손을 쓰기가 어려워져요.”
스스로도 이제 내려놓고 올라가야 함을 알면서도 그녀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저…… 서방님.”
에이리아는 조심스레 내게 요청했다.
“문제가 안 된다면…… 한 번만 바사스 오라버니와 만나게 할 순 없을까요.”
그녀의 부탁에 나는 레디미아 황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그토록 착하던 아들이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래…… 오해는 풀어야겠지. 그때의 사고는 에이리아 네 잘못이 아니란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에이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바사스 오라버니는 오래전 아주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지난 십여 년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괴로워했겠죠. 자기가 따라가서 보호했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녀는 우울한 얼굴로 내게 다시 부탁했다.
“바사스 오라버니는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에이리아의 말에 레디미아 황비는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에이리아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면서 그렇게 어렸던 네게 너무 큰 짐을 지웠던 게야…….
아들의 변화와 그런 아들로 인해 미움을 받아온 에이리아에 대한 미안함이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저…… 선생님. 방법이 있을까요?”
“장모님의 혼은 여기 묶여있어. 성불을 못 하고 계속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즉. 이곳에 남아있는 태초의 진조가 남긴 잔재를 다시 고이 재울 수 있다면, 그녀의 혼은 억류에서 해방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장모님의 혼이 멀쩡할 거라곤 장담을 못 하겠다.”
권한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하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고, 어떻게 될거라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그 반동으로 영혼이 찢겨 나갈 수도 있습니다. 회복 가능할지도 미지수지만 가능하다 해도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고.”
레디미아 황비는 이곳에서 십여 년간 억류되어있었고 바사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이곳에서 잃으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은 추측뿐이지만 만약에 이 일의 전반으로 바사스 황자가 관련되어있다면.”
내가 모두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바사스가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았을 거라 여기기에 그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건 추측일뿐 확실한 정황이 아니었다.
반대로 벨류아드나 바사스 모두 관련이 없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두어야 했다.
고란 왕국이 가짜 정보를 이용해 내가 벨류아드를 의심하게끔 유도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놈일지라도 손댈 생각이 없다.
가능성은 낮겠지만.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회다 싶어 싸잡아서 죽일 정도는 아닐 테니까.
정황상 벨류아드가 관련되었고 바사스는 무관하다는 게 내 입장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장모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만약 두 사람 모두 관련이 되어있고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내 원수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무리 에이리아를 아꼈던 여인이라 해도 그녀를 도와 바사스에게 구원을 내려줄 수 없다.
“만약 그가 정말로 관련이 되어있다면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철저하게 대가를 징수할 겁니다.”
-그것은!!
“압니다. 바사스 황자든 벨류아드 황손이든 현재로선 가능성일 뿐인 것을요.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장모님께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녀에겐 어떤 원한도 없다. 오히려 에이리아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 만큼 고마움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쉽게 도와줄 수 없었다.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힘없이 떠올라 몸을 돌렸다.
-잠깐…… 머리를 식혀도 되겠는가. 사위…….
“이 와중에도 사위라고 불러주시네요.”
-어찌 사위를 탓할까. 이 모든 것은 바보같이 뒷일을 제대로 생각지 못한 이 못난 어미의 잘못인 것을…….
애초에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고였고, 그런 사고를 이용하는 놈들이 나쁜 것일 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 * *
레디미아 황비는 마음을 정리한 듯 보였다.
그동안 나는 안개에 다시 구멍을 뚫었고 하인스 쪽으로 연락을 취해 벨류아드나 바사스가 정말로 연관되어있는지를 알아보라 지시하려 했다.
-그렇지않아도 미식연구회 쪽의 도움을 조금 받아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벨류아드 황손이 이 일에 연관되어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증거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될 것 같고요.
“바사스 황자는?”
-실은 그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며칠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급히 그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향했다고 하더군요.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나?”
-네. 게다가 지금 하인스 영지 내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시잖아요. 에이리아 대공비 님이 얼마나 민심이 좋은지.
그런 그녀를 벨류아드가 암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벨류아드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열심히 숨겼는데 이게 왜 걸렸지라며 기겁할 말이지만 고란 왕국에서는 그게 최고의 베스트 시나리오일 테니 벨류아드가 겁에 질리건 말건 그건 그들이 신경쓸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결국, 벨류아드는 확정이라는 거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바사스 황자는 관련되지 않았다는 게 제 직감입니다.
“그럼 그 인간은 어디로 갔는데.”
-실은…… 그를 따르던 저택의 시종장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더군요. 제 사람은 아끼는 인간이니 어쩌면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움직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이 사실이면 바사스는 이일에서 관련이 없는 것이다.
바사스는 나가 있어. 뒈지기 싫으면.
픽 웃음이 나왔다.
“사리 분별 못 하는 망나니를 그냥 오냐오냐했으니 이 꼴이 나지.”
이 일은 벨류아드를 내가 잡아 족친다고 끝날 일은 아니었다.
이 일을 선례로 린디스 제국과 하인스 사이에 어떤 알력의 힘 싸움이 생기면 그것보다 귀찮은 게 없을 테니까.
제 아들을 잃은 바사스 황자가 눈깔이 돌아가 버리면 그땐 제대로 찍어누르는 수밖에 없겠지만. 어느 쪽이던 고란 왕국이 바라는 모양새라는 게 참 기분이 나빴다.
“후…… 사람을 얼마나 무시해야 이런 계략을 꾸미는 거지?”
-엎을 준비를 할까요?
“조사만 해놔. 여기 일이 끝나는 대로 고란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테니까.”
-그럼 고란 왕국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증거를 좀 더 수집해보겠습니다.
이 일의 원흉에 고란 왕국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아이나는 미식연구회와 힘을 합쳐 다시금 조사에 나설 모양이었다.
용의자가 특정된 이상 조사는 훨씬 빠르게 진행될 테니까.
팔란이나 콘타스, 린디스가 괜히 하인스를 건드리지 않는 게 아닌데.
이놈들은 대체 무슨 깡으로 이러는 것인지.
물론 부정부패는 물론 폭정으로 말이 많은 고란 왕국이다.
위에 놈들이 반드시 영리할 거라는 보장은 없을 터다.
아이나에게 추가 지시를 마친 나는 바사스 황자가 어디로 향했을지에 대해 추측해보며 동굴로 돌아갔다.
레디미아 황비. 아직 그녀에게 사고 당시의 일을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녀를 데리고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말이다.
“선생님. 볼일은 다 봤어요?”
요시아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물어왔다.
“곧바로 내려가자. 장모님의 속박을 풀고 바로 제국 쪽으로 이동할 거야.”
“네.”
-자…… 잠깐, 사위!
내가 곧바로 태초의 진조가 잠든 지하 묘지로 향하려 하자 당황한 기색을 내비친다.
-내 에이리아에게 들어서 사위가 강한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준비가 미흡한 채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네!
그녀는 아직 내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를 만류하는 모습이었다.
-그곳은 정말로 위험해. 십여 년간 내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깊고 어두운 기운을 얼마나 조사했는지 아는가.
“위치는 알고 계신다는 거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벗어두었던 겉옷을 걸쳤다.
“결론이 어떻든 장모님을 이곳에서 해방하려면 저 아래 잠들어있는 놈의 힘을 억누르든지 삼켜버리든지 해야 합니다.”
-너무 위험하네. 이 아래에 잠든 괴물은 무구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직도 이만한 힘을 내뿜는 존재야, 사람을 더 모아서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나를 말리면서도 그녀는 기를 안내했다.
그리고 거대한 석문과 함께 그 석문의 코어로 보이는 붉은 수정구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시금 내 앞을 막아섰다.
-사위. 내가 지금 개인의 영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닐세. 이 안은 너무 위험해. 자네는 물론 에이리아까지…….
위험을 재차 강조하며 나를 말려보지만 나는 그녀를 가볍게 지나친 뒤 붉은 수정구에 손을 뻗었다.
-아…… 안돼! 그걸 만지면 그 자리에서 모조리 힘을 빨려 나갈…….
콰작!!!
순식간에 내 손에 닿자마자 부서져 버리는 구승을 보며 레디미아 황비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 이게 무슨…….
그그그그그극!!!
동시에 지하 묘지를 지키는 거대한 석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그 안에서 이전에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품은 붉은 갑옷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위에서 보았던 건 단순 맛보기였다고 말하듯 압도적인 힘을 내뿜으며 걸어오는 갑옷들을 보며 레디미아 황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도…… 도망치게! 저것들은 극히 위험해!!
그녀의 말대로 강한 것은 사실이다.
“제가 할까요?”
“됐어. 너한테 맡겨놓으면 하루종일 걸린다.”
“아…… 진짜!”
투정을 부리는 요시아를 뒤로한 채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얼른 정리하고 여기 안에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싹 다 털어갈 생각이다.
이 묘지의 주인이 정말로 올바른 존재였다면 나름대로 예우를 갖추겠지만 닥치는 대로 사상자를 내는 현상을 일으킨 이상 내 주머니를 채워줄 의무가 있다.
“그거 맞아요?”
내 논리에 요시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시각각 우리를 향해 전진해오는 갑옷들을 두고 잡담이나 나누고 있자 레디미아 황비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말리려 한다.
-사…… 사위! 위험해!!!
그녀의 외침에 나는 허공을 두드렸다.
초단이가 수업 때문에 내 곁에 없기에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그극…….
손에 쥐어진 묵빛의 창.
신창 롱기누스를 손에 쥔 내가 한발 내디뎠다.
쩌어엉!!!
동시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칼바람이 송곳처럼 날아들었고, 단단한 벽면은 물론 그 영역 안에 있던 갑옷들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어?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다.
저 안에 보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털어가도록 한다.
뒤늦게 바스러지듯 조각나는 갑옷들을 텅! 텅! 걷어차며 내가 말했다.
“가자.”
-세상에…… 에이리아. 네 부군은 대체 뭐하다가 온 거니…… 말은 들어 알고 있지만 어떻게 저 나이에…….
“서방님은 참 굉장한 분이에요 어머니.”
-그…… 그런 거 같구나…….
하나같이 오러 블레이드를 피울 정도로 강한 갑옷들이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는 갑옷들을 순식간에 조각내버린 나를 레디미아 황비는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그래도 이곳은 아직 시작일뿐이야. 아래로 갈수록 점차 강한…….
-점차 강한 파생체들이 나타날…….
[롱기누스 2번째 형태]
[핵죽창]
-점차 강한…….
[8서클 폭염계]
[범위압축]
[프로메테우스]
-…….
묘지로 이어지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한치의 속도변화 없이 그대로 하이패스를 뚫어버리자 레디미아 황비는 더 이상 할말이 없어졌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단순과장이라 생각했건만…… 린디스 제국이 왜 하인스 영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지 알겠구나…….
마스터급이고 위험한 마법이나 함정이고 나발이고 다 박살 내버리며 지나가는 내가 어지간히도 당혹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장모님.”
그렇게 지나가며 나는 마치 산책을 하듯 말했다.
-왜…… 왜 부르는가 사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동하는 동안 과거 사고가 났을 때의 일……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괴로운 기억이실 테지만 에이리아는 그때 일로 충격을 받아서 당시의 기억을 잃었습니다. 에이리아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 기억을 찾기 위해서고요.”
이미 지워진 기억은 복구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알 수는 있을 것이다.
내 부탁에 레디미아 황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이 지하 묘지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는가 보군…….
“죽어 나자빠진 신격이 남긴 잔재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최하층 묘지에 간다고 해서 무덤의 주인이 갑자기 관뚜껑 박차고 튀어나올 일은 없어요. 그냥 힘의 여파가 남은 지하 던전일 겁니다.”
주인 없는 던전? 이거 못 참지.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뱀파이어도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쩌면 예상은 했는지도 모른다.
신을 배덕하는 종족이라니.
내가 아는 프리아 여신의 행보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종족이 바로 뱀파이어가 아니었던가.
-거참, 기가 막히는 일이로군…… 그러세…… 에이리아가 원한다면…….
이제는 놀라는 것도 지친다는 듯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 했다.
-그전에 사위. 조금 전에 마법도 쓰는 것 같던데.
“네? 아 그렇죠.”
-혹시…… 몇 서클인가?
그래도 생전에 마법사였다고 하시더니. 궁금증이 인 모양이었다.
“서클 개념을 예전에 지나긴 했습니다.”
9서클 초월을 지나 미개척영역까지 도달해있는 것이 현재의 나였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는 오딘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
황당하다는 듯 레디미아 황비가 에이리아에게 물었다.
-에이리아. 요즘 마법사들은 저게 보통이니?
“설마요……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던 대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 님도 7서클 정도라고 알고 있어요.
에이리아의 대답에 레디미아 황비가 다시금 나를 똑바로 본다.
그 시선에는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라는 감정이 짙게 묻어있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 레디미아 황비를 뒤로한 채 마지막 지점으로 보이는 문을 가볍게 걷어차 박살 내버린 나는 내부에 있는 커다란 관 하나를 볼수있었다.
“저건…….”
-나도 처음 보는구나…… 아마 저게 이 협곡을 잠식하는 힘의 원흉일 거야.
나를 제외한 이들은 혹여 관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양새였지만 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미 태초의 진조라는 건 예전에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에 남은 것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많은 아티펙트나 보물. 그리고, 태초의 진조가 죽기 전 힘을 담아둔 것으로 보이는 관이 전부였다.